「한정록(閑情錄)」은 허균이 중국 서적에 나오는 ‘은거(隱居)’에 대한 글들을 16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한 글이다. 유사(幽事)는 10번째 주제로 허균은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한가한 곳에서 혼자 살면서 담박하게 아무것도 구하지 않아도 일상 생활하는 일이야 그 일을 당하면 역시 하게 된다. 그러므로 제10 ‘유사(幽事)’로 한다.”
● 알맞게 화초와 대나무를 심고, 적성(適性)대로 새와 고기를 키운다. 이것이 곧 산림(山林)에서의 경제(經濟)이다. 《암서유사》
● 산에서 살려면 네 가지 법이 있으니, 나무는 일정한 줄이 없고 돌도 일정한 위치가 없다. 집은 굉장하게 짓지 않고 마음에는 바라는 일이 없다. 《암서유사》
● 붉은 낙화(落花), 이끼 반점(斑點)은 비단 요에 해당될 만하고, 향기로운 풀, 아리따운 꽃은 맵시 있는 여인에 해당될 만하다. 거스르지 말아야 할 것은 산 사슴과 시내 비둘기이고, 음악[鼓吹]은 물소리와 새 울음이다. 짐승의 가죽과 거친 베[毛褐]는 비단[紈綺]이고 산과 구름은 주인과 손님이다. 뿌리를 섞은 야채(野菜)는 후청(侯鯖 : 훌륭한 진미)보다 못할 것이 없고, 잎이 엉킨 사립문[柴門]은 갑제(甲第)만 못하지 않다. 초생달이 산으로 들어가고 나면, 모든 생각이 가지가지로 마음속에 얽히게 되는데, 매번 한 가지 생각이 날 적마다 이러한 것으로 낙을 삼으면 10여 일이 못 되어 일체 모두 없어진다. 《지비록(知非錄)》
▶갑제(甲第) : 좋은 집. 으뜸가는 집. |
● 손님이 초당(草堂)을 지나가다 암서(巖棲)하는 것을 물었는데, 내가 응답[酬對]하기 귀찮아 단지 옛사람들의 시구(詩句)를 가지고 대답했다.
“무슨 감개(感慨)로 숨어 살기를 좋아하는가?”
하기에,
得閒多事外 일이 많은 가운데서도 한가로움을 얻었고
知足少年中 젊은 시절에도 족함을 알았노라.
하고,
“무슨 일을 하면서 해를 보내는가?”
하기에,
種花春掃雪 꽃 심느라 봄이면 눈 치우고
看籙夜焚香 글 보느라 밤이면 향 피우노라.
하고,
“무슨 일을 하여 살아가며 노년을 마칠 것인가?”
하기에,
硏田無惡歲 연전(硏田)엔 흉년이 없고
酒國有長春 주국은 언제나 봄이라네.
하고,
“어디를 왕래하며 적막을 없애는가?”
하기에,
有客來相訪 찾아오는 손님 있을 때
通名是伏羲 인사 나누면 복희(伏羲) 제왕일세.
하였다. 《암서유사》
▶암서(巖棲) : 암거(巖居). 세상을 피하여 숨어 사는 것. ▶연전(硏田) : 벼루. 선비는 글로 먹고 산다하여 벼루를 논밭에 비유한 말. ▶주국(酒國) : 술 마신 뒤에 느껴지는 별천지(別天地)의 황홀경(恍惚境). 취향(醉鄕). |
● 육평옹(陸平翁)의 《연거일과(燕居日課)》에,
“서사(書史)로 정원[林園]을 삼고, 시 읊조리는 것으로 음악[鼓吹]을 삼고, 의리(義理)로 고량진미를 삼고, 저술(著述)로 문채를 삼고, 글 읽는[誦讀] 것으로 농사[菑畬]를 삼고, 기문(記問)하는 것으로 저축을 삼고, 전배들의 언행(言行)으로 사우(師友)를 삼고, 충신(忠信)과 독경(篤敬)으로 수신[修持]을 삼고, 착한 일을 하면 복 받는 인과(因果)로 삼고, 천리(天理)대로 하고 천명(天命)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극락계[西方]를 삼는다.” 《미공비급》
● 나규(羅虯)가 지은 화구석(花九錫)에,
“첫째는 이중 장막으로 바람을 가려준다. 둘째는 금착도(金錯刀)로 전지(剪枝)한다. 셋째는 감천(甘泉) 물을 준다. 넷째는 옥(玉) 화분에 심는다. 다섯째는 문의(紋儀)를 조각한 좌대에 놓는다. 여섯째는 그림으로 그린다. 일곱째는 염곡(豔曲 : 연가(戀歌))을 번인(飜印)한다. 여덟째는 좋은 술로 상을 준다. 아홉째는 새로운 시를 지어준다.”
하고, 또 말하였다.
“또한 난초ㆍ혜(蕙)ㆍ매화ㆍ연이 있어야 흉금(胸襟)을 털어 놓게 되고, 부용(芙蓉)ㆍ철쭉[躑躅]ㆍ수선화(水仙花)ㆍ석류(石榴) 같은 것은 어찌 은전을 내릴 수 있으랴.” 《소창청기》
● 나무 심는 방법이 동파(東坡 : 소식(蘇軾))보다 묘한 이가 없다. 그가 말하였다.
“큰 것은 살릴 수가 없고 작은 것은 노부(老夫)가 또한 크기를 기다릴 수가 없어서 오직 중간 것을 가려야 하는데, 흙이 많이 붙은 것이 좋다.” 《소창청기》
● 유거(幽居)하는 것이 비록 세상과 단절(斷絶)된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사람들을 시켜 장만하도록 하여, 교유(交遊)하는 사람들과 만나 노는 일은 마치 세속을 벗어난 것과 같게 된다. 화초들은 비복(婢僕)이 되고, 새 소리는 담소(譚笑)에 해당되며, 계곡의 나물들과 흐르는 물은 술안주와 국을 대신하게 된다. 서사(書史)는 스승[師保]이 되고, 대나무와 돌은 붕우(朋友)가 되며, 빗소리ㆍ구름 그림자ㆍ솔바람ㆍ나월(蘿月)은 한때의 흥이 도도한 가무(歌舞)가 되어, 정경(情境)이 진실로 농숙하고도 청화(淸華)하게 된다. 《소창청기》
▶유거(幽居) : 쓸쓸하고 궁벽(窮僻)한 곳에서 사는 것. ▶나월(蘿月) : 담쟁이덩굴 사이로 바라보이는 달. |
● 양원(羊元)이 산중에서 사는데, 문 앞에 선 산봉우리가 우뚝이 빼어났었다. 매양 호상(胡床)에 앉아 종일토록 세상을 비웃으며 깔보다가 때로는 드러눕기도 하다가, 손님들에게 말하기를,
“이 취병(翠屛)은 저녁때 대해 보아야 사람의 심중(心中)과 눈을 상쾌하게 한다.”
하였다. 그래서 안노공(顔魯公 : 안진경(顔眞卿)의 별칭)이 그 산을 취병산(翠屛山)이라고 명명했었다. 《소창청기》
▶호상(胡床) : 등받이가 있는 접이식 의자. ▶취병(翠屛) : 나무와 넝쿨로 마당에 문이나 담 형태를 만든 것. ‘푸른 병풍’이라는 뜻. |
● 왕마힐(王摩詰 : 왕유(王維))은 평소 부처 받들기를 좋아하여, 언제나 채소와 밥만 먹고 마늘이나 고기는 먹지 않았다. 남전(藍田)에 있는 송지문(宋之問)의 별서(別墅)를 얻어 망천(輞川) 어구에서 살았다. 그리고 망천 물이 집 아래로 휘감아 흐르므로, 도우(道友) 배적(裴迪)과 함께 배를 타고서 대나무 기슭과 화초 언덕을 왔다 갔다 하며, 거문고를 타거나 시를 짓거나 휘파람을 불거나 하면서 날을 보냈다. 서울[京師]에 있을 적에는 중 수십 명에게 밥 먹여가며 현담(玄談)하는 것으로 낙을 삼았는데, 재실(齋室) 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다쟁(茶鐺)ㆍ주구(酒臼)ㆍ경안(經案)ㆍ승상(繩床)이 있을 뿐이었다. 《하씨어림(何氏語林)》
▶별서(別墅) : 소유한 논밭 근처에 한적(閑寂)하게 지은 집. 별장(別莊)과 비슷하나 농사를 경영(經營)하는 점이 다름. ▶현담(玄談) : 멀고 깊은 이치에 관한 이야기. |
● 3월에는 차와 죽순(竹筍)이 처음으로 살이 오르고, 매화 바람[梅風]이 시들어지지 않으며, 9월에는 순채(蓴菜)국과 농어회가 정말 맛이 좋고, 찹쌀로 빚은 술의 새 향기가 날 때다. 좋은 손님과 환한 창 앞에서 옛사람들의 법첩[法書]과 명화(名畫)를 내놓고 향을 피우며 감상[評賞]하기가 이때보다 나을 때가 없다. 《미공십부집(眉公十部集)》
● 종측(宗測 : 자는 경미(敬微). 남제(南齊)시대 사람)은 봄이면 산골짜기를 노닐다가 기이한 꽃이나 특이한 풀을 발견하게 되면, 허리띠에 매고 돌아와 그 모양을 그림으로 그려서 ‘취방원(聚芳園)’ ‘백화대(百花帶)’라고 명명(命名)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본받았다. 《소창청기》
● 허근선(許謹選)은 방광(放曠)하여 소소한 예절에 구애되지 않았다. 친절한 벗들과 화단 속에다 잔치 자리를 마련하면서, 아예 장막을 치거나 좌석을 만들지 않고, 단지 동복(童僕)들을 시켜 떨어진 꽃들을 모아 깔도록 하여, 그 아래 앉으면서,
“본래부터 있는 내 꽃방석이다.”
했었다. 《소창청기》
▶방광(放曠) : 언행에 거리낌이 없음. |
● 관문연(關文衍 : 남조(南朝) 시대 송(宋) 나라 사람)은 산기상시(散騎常侍)로 있을 때, 흰 비단 반비(半臂)에다 구화산(九華山) 그림을 그려 ‘구화반비(九華半臂)’라 이름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내 몸을 항시 자연 속에 있도록 한 것이다.” 《소창청기》
● 강남(江南) 이건훈(李建勳 : 자는 치요(致堯). 오대(五代) 남당(南唐) 사람)은 일찍이 1자[尺]나 되는 옥경(玉磬)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침향(沈香) 나무로 만든 절안병(節按柄)으로 치면 소리가 지극히 맑게 퍼졌다. 손님 중에 간혹 외설[猥俗]스러운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급히 일어나 옥경을 소리 나게 두어 번 치면서 말하기를,
“이로써 귀가 맑아지게 하는 것이다.”
했었다. 죽헌(竹軒) 하나에다 ‘사우헌(四友軒)’이라 현액(懸額)하여, 거문고로 역양우(嶧陽友)를 삼고, 경쇠로 사빈우(泗濱友)를 삼고, 《남화경(南華經)》으로 심우(心友)를 삼고, 상죽탑(湘竹榻)으로 몽우(夢友)를 삼았었다. 《옥호빙》
● 섭석림(葉石林 : 섭몽득(葉夢得). 자는 소온(少薀). 송(宋)나라 사람)의 《낙수당기(樂壽堂記)》에 이렇게 되어 있다.
“내가 석림산(石林山)을 구득하게 되면서부터 그 산의 천석(泉石)을 좋아하여, 장서(藏書)할 곳으로 삼고자 한다. 또 종들[僕夫]을 데리고서 삽과 가래로 계곡을 고르게 닦도록 하고, 그 자신은 비록 비와 바람이 있더라도 피하지 않고 바위 구멍을 파헤치므로 사람들이 모두 피로하리라 여겼지만 나는 사실 일찍이 게을러진 적이 없었으니, 무엇에 홀린 것이 아니겠는가.” 《소창청기》
● 심운홍(沈雲鴻)은 자가 유시(維時)인데, 석전(石田 : 명(明) 심주(沈周)의 호)의 아들이다. 성격이 별나게 옛 기물(器物)과 서화(書畫)를 좋아하여, 이름 있는 것을 만나게 되면 만지며 애완[諦玩]하느라 기쁨이 얼굴에 나타났었고, 더러는 있는 것을 모두 털어 구입하기도 했는데, 전답에서 얻는 수입으로 이를 댈 만했다. 표낭(縹囊 : 책을 담는 쪽빛 자루)과 상질(緗帙 : 베로 만든 담황색 책갑)이 찬란하게 방에 그득한데, 수습하여 간수하기를 특히 조심스럽게 하여 손님에게나 손수 내다보이고 한 번도 적당치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려 하지 않았다. 연월(年月)을 따지고 호부[精駁]를 가리는 데 있어서도 하나하나 근거가 있게 하므로, 강남(江南) 감정가[賞監家]들이 모두 추앙했었다. 또 서책을 수집하기 좋아하여 교감[讐勘]을 열심히 하면서 말하였다.
“후인들이 재화(財貨)로 보지 않는다면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만에 하나라도 잘 읽어보게 된다면, 내가 남긴 것이 후하리라.” 《미공십부집》
● 설혜(薛蕙 : 자는 군채(君采). 명대(明代) 사람)는 벼슬을 그만두고서 아름답게 정원을 꾸며 한가로이 지내되, 시 짓기를 일체 끊고 《노자해석(老子解釋)》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달마(達磨)의 초상을 놓았으므로, 진(陳)의 소요부(邵堯夫)가 이를 두고 시를 짓기를,
是矣是矣蔑以尙矣 옳도다 옳도다 더없이 옳도다.
했었다. 《명세설신어(明世說新語)》
● 등정우(鄧定宇)가 장양화(張陽和)ㆍ옹용계(翁龍溪)와 함께 옛 난정(蘭亭)에서 싸리를 깔고 앉아 놀면서 물굽이 가운데 술잔을 띄워두고 마시는데, 갑자기 새 한 마리가 울면서 날아가자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는 관현악(管絃樂)보다 낫도다.” 《명세설신어》
● 미공(眉公 : 명(明) 진계유(陳繼儒)의 호)이 말하였다.
“산새가 오경(五更)에 소리치며 깨어나는 것을 ‘보경(報更)’이라 하는데, 대개 산중의 진솔(眞率)한 누각(漏刻) 소리인 것이다. 내가 소곤산(小崑山) 밑에서 살 적에 매우(梅雨)가 비로소 개고, 좌중 손님들과 술잔을 돌리는데 마침 뜰에서 개구리 소리가 들리기에 그만 마시자고 하고서는, 이어 연구(聯句) 하나를 짓기를,
花枝送客蛙催鼓 꽃가지에선 손님 보내느라 개구리가 북 울리고 竹籟喧林鳥報更 숲의 새는 대나무 퉁소 울리듯 오경을 알리네.
했는데, 산사실록(山史實錄)이라 할 만하다.” 《암서유사》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1984, 김주희 정태현 이동희 임정기 이재수 정기태 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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