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

허균 37 - 한정록(閑情錄) 현상(玄賞) 1

從心所欲 2021. 10. 27. 17:12
「한정록(閑情錄)」은 허균이 중국 서적에 나오는 ‘은거(隱居)’에 대한 글들을 16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한 글이다. 현상(玄賞)은 13번째 주제로 허균은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옛날에 고인(高人)이나 운사(韻士)는 풍류(風流)를 서로 감상하거나 문예(文藝)로써 스스로 즐겼다. 그러므로 서화(書畫)나 거문고 타기, 바둑 등 여러 가지 고상한 놀이는 사람의 성미(性味)에 맞아 근심을 잊어버릴 수 있는 도구(道具)로서 없앨 수 없다. 따라서 제13 ‘현상(玄賞)’으로 한다.”
▶운사(韻士) : 시가(詩歌)나 서화(書畫) 등에 취미가 있는 사람. 운치가 있는 사람.

 

● 어떤 이가 범맹박(范孟博 : 맹박은 후한(後漢) 범방(范滂)의 자)에게 곽임종(郭林宗 : 임종은 후한 곽태(郭泰)의 자)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니, 맹박이 대답하였다.

“곽임종은 숨어 살면서도 부모를 떠나지 않고 곧게 살면서도 세속을 끊지 않은 사람이다. 천자가 그를 신하로 할 수 없고 제후가 그를 벗할 수 없는 사람이며 그 밖의 것은 알 수 없다.” 《세설신어(世說新語)》

 

● 산도(山濤 : 진(晉) 고사(高士))가 혜숙야(嵇叔夜 : 숙야는 진(晉) 혜강(嵇康)의 자)를 지목하여 말하였다.

“숙야는 인품(人品)이 고결(高潔)하여 높이 뛰어난 것이 마치 외로운 한 그루의 소나무가 우뚝 서 있는 것과 같다.” 《세설신어》

 

● 채사도(蔡司徒)가 낙양(洛陽)에 있을 적에 육기(陸機) 형제를 만나보고 참좌(參佐)로 삼아 관아(官衙)에 머물게 하였다. 3칸(間)의 와옥(瓦屋)에 사룡(士龍 : 육운(陸雲)의 자)은 동쪽에 거처하고 사형(士衡 : 육기(陸機)의 자)은 서쪽에 거처하였는데, 사룡의 사람됨은 우아(優雅)하고 유순하여 사랑스럽고, 사형은 키가 7척 여이고 소리는 종소리 같으며 말에는 강개(慷慨)함이 많았다. 《세설신어》

 

● 표기장군(驃騎將軍) 왕제(王濟 : 진 무제(晉武帝)의 사위)는 위개(衛玠 : 자는 숙보(叔寶))의 장인으로서 준상(儁爽)한 풍자(風姿)가 있었는데, 사위인 위개를 볼 적마다 탄식하였다.

“주옥(珠玉)이 곁에 있으니 나의 형용(形容)의 더러움을 깨닫게 된다.” 《세설신어》

 

● 왕평자(王平子 : 평자는 진(晉) 왕징(王澄)의 자)는 뛰어난 재주가 있어 어려서부터 남들이 추앙하고 심복하였는데, 위개의 말을 들을 적마다 탄식하며 크게 감탄하였다. 《세설신어》

 

● 허현도(許玄度 : 현도는 동진(東晉) 허순(許詢)의 자)가 말하였다.

“이른바 금부(琴賦)는 지극히 정밀하지 않은 자와는 함께 이치를 분석할 수 없다.”  《세설신어》

 

● 유윤(劉尹)이 말하기를,

“그 사람은 연정(淵靜)하지 않은 자와는 함께 한거(閒居)할 수 없다.”

하였는데, 그 사람은 바로 간문제(簡文帝 : 진(晉)의 제8대 왕)이다. 《세설신어》

 

● 소사업(蘇司業)이 매양 당시 명사(名士)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불행히 쇠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는 바는 원자지(元紫芝 : 자지는 당(唐) 원덕수(元德秀)의 자)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씨어림(何氏語林)》

 

● 하지장(賀知章 : 당(唐) 나라 시인)이 이태백을 보고 칭찬하였다.

“이 사람은 천상(天上)에서 인간 세상으로 귀양 온 신선[謫仙]이다.” 《하씨어림》

 

● 황노직(黃魯直 : 노직은 송(宋) 황정견(黃庭堅)의 자)이 만년(晩年)에 방안에 소동파(蘇東坡)의 초상(肖像)을 걸어 놓고 아침마다 의관(衣冠)을 하고 향을 피우며 숙배(肅拜)를 매우 공경스럽게 하니, 어떤 사람이,

“동시(同時)에 명망(名望)이 서로 엇비슷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그리하는가?”

하고 묻자, 그는 놀라서 곧 자리를 피하며 말하였다.

“내가 어찌 소공(蘇公)을 따를 수 있겠는가. 나는 그의 제자(弟子)일 뿐이니 예(禮)를 잃어서야 되겠는가.” 《하씨어림》

 

● 문언박(文彦博)이 성도 유수(成都留守)가 되었을 적에 문여가(文與可 : 여가는 송(宋) 문동(文同)의 자)를 보고 기특하게 여겨 말하였다.

“여가는 마음씨가 깨끗하여 마치 갠 구름과 가을 달 같아서 속세의 때가 묻지 않았다.” 《하씨어림》

 

● 진영중(陳瑩中 : 영중은 송(宋) 진관(陳瓘)의 자)이 원우당적비(元祐黨籍碑)에 쓰기를,

“아! 한(漢) 나라 때 인재(人才)를 얻은 것이 원우 때보다 융성하였다.”

하였다. 존재(存齋) 서천상(徐天相)이 왕사구(王司寇)를 칭찬하여 말하였다.

“왕사구는 반고(班固)ㆍ양웅(揚雄)ㆍ낙빈왕(駱賓王)ㆍ왕발(王勃)의 문장을 합하여 일가(一家)의 문장으로 완성하였다.” 《장설소췌(藏說小萃)》

▶원우당적비(元祐黨籍碑) : 송 신종(宋神宗) 원우(元祐) 연간에 사마광(司馬光) 등의 구당(舊黨)이 왕안석(王安石) 등의 신당(新黨)과 대립이 격렬하였는데, 휘종(徽宗)이 등극하자 증포(曾布) 등이 휘종에게 주청하여 구당 2백 20인을 간당(姦黨)으로 지목, 그 이름과 사실을 기록한 비(碑)를 단례문(端禮門)에 세웠고, 다음해에 원우간당비(元祐姦黨碑)를 세웠으며, 또 숭녕(崇寧) 3년에 사마광 이하 3백 인을 간당으로 정하여 황제가 친히 그 이름과 행적을 써서 새겨 문덕전(文德殿)의 동벽(東壁) 밑에 세웠다.

 

이상은 인물에 대해 말하였다.

 

● 고금의 문장은 오직 4가(家)뿐이다. 좌씨(左氏)는 간략하면서도 화려하고, 장생(莊生 : 장자(莊子))은 호방(浩放)하면서도 현묘(玄妙)하고, 이소(離騷)는 슬프면서도 그윽하고, 태사공(太史公 : 사마천(司馬遷))은 격렬(激烈)하면서도 웅장하다. 《장설소췌》

 

● 갈치천(葛稚川 : 치천은 진(晉) 갈홍(葛洪)의 자)이 육평원(陸平原 : 평원 내사(平原內史)를 지낸 육기(陸機))의 문장을 지목하여 말하였다.

“육기의 문장은 현포적옥(玄圃積玉) 같아서 야광주(夜光珠)가 아닌 것이 없다.”  《하씨어림》

▶현포적옥(玄圃積玉) : ‘선경(仙境)에 쌓인 옥(玉)’이란 말. 현포(玄圃)는 신선이 사는 곳으로 곤륜산(崑崙山) 위에 있다 한다.

 

● 안연지(顔延之)가 포명원(鮑明遠 : 명원은 남조(南朝) 송(宋) 포조(鮑照)의 자)에게 자기 시와 사강락(謝康樂 : 강락은 남조(南朝) 송(宋) 사영운(謝靈運)의 봉호)의 시의 우열(優劣)을 묻자, 포명원이 대답하였다.

“사영운의 오언시(五言詩)는 마치 처음으로 피는 부용(芙蓉) 같아서 사랑스럽고, 그대의 시는 비단에 수놓은 것 같아서 아름다운 무늬가 눈에 가득하다.” 《하씨어림》

 

● 왕무공(王無功 : 무공은 당(唐) 왕적(王績)의 자)은 《주역(周易)》과 《노자(老子)》ㆍ《장자(莊子)》만을 책상머리에 두고 다른 책은 거의 읽지 않았다. 《하씨어림》

 

● 소자첨(蘇子瞻 : 자첨은 소식(蘇軾)의 자)이 강을 건너 의진(義眞)에 도착하여 형공(荊公 : 왕안석(王安石)의 봉호)의 유장산시(遊蔣山詩)에 화답(和答)하는 시를 지어 형공에게 보내니, 형공은 그 시를 읽다가,

 

峯多巧障日 산봉우리가 많으니 햇빛을 가리고

江遠欲浮天 강이 머니 하늘을 띄우고자 한다.

 

한 데에 이르자 탁자를 어루만지며 감탄하였다.

“내가 일생 동안 지은 시가 이 두 구절만 못하다.” 《하씨어림》

 

● 위 무제(魏武帝)는 유연(幽燕)의 노장(老將) 같아서 기운(氣韻)이 침착하고 웅장하며,

조자건(曹子建 : 자건은 조식(曹植)의 자)은 삼하(三河)의 소년(少年) 같아서 풍류(風流)가 볼 만하며,

포명원(鮑明遠)은 주린 매가 나온 것 같아서 기교(奇矯)가 무쌍(無雙)하며,

사강락(謝康樂)은 동해의 돛단배에 바람이 지나가고 햇볕이 쬐는 것 같고,

도 팽택(陶彭澤 : 팽택령을 지낸 도연명(陶淵明))은 붉은 구름이 하늘에 있는 것과 같아서 권서(卷舒)가 자유로우며,

왕 우승(王右丞 : 상서 우승을 지낸 왕유(王維))은 가을 물에 부용화(芙蓉花)가 바람에 의지하여 웃는 것과 같으며,

위 소주(韋蘇州 : 소주 자사를 지낸 위응물(韋應物))는 원객(園客)이 홀로 양잠(養蠶)하는 것과 같아 음휘(音徽)에 암합(暗合)하며,

맹호연(孟浩然)은 동정호(洞庭湖)의 물결에 나뭇잎이 약간 떨어지는 것과 같으며,

두목지(杜牧之)는 동환(銅丸)이 비탈을 구르고 준마(駿馬)가 언덕을 내려오는 것과 같으며,

백낙천(白樂天)은 산동부로(山東父老)가 농상(農桑)을 힘쓰는 것 같아 일과 말이 모두 착실하며,

원미지(元微之 : 미지는 당(唐) 원진(元稹)의 자)는 귀년(龜年 : 당 현종(唐玄宗)의 악공(樂工))이 천보(天寶 : 당 현종의 연호) 유사(遺事)를 말하는데 모양은 초췌(憔悴)하나 정신(精神)은 상(傷)하지 않은 것과 같으며,

유몽득(劉夢得 : 몽득은 당(唐) 유우석(劉禹錫)의 자)은 얼음에 조각을 하고 아름다운 옥에 조각한 것 같아서 광채가 절로 나며,

이태백(李太白)은 유안(劉安)의 계견(鷄犬)이 하늘까지 음향(音響)을 남겼으나 그 소리가 나는 곳을 찾으려 하니 황홀하여 정처(定處)가 없는 것과 같으며,

한퇴지(韓退之)는 모래주머니로 강물을 막고 배수진(背水陣)을 친 것은 오직 한신(韓信)만이 할 수 있는 것과 같으며,

이장길(李長吉 : 장길은 당(唐) 이하(李賀)의 자)은 한 무제(漢武帝)가 승로반(承露盤)에 이슬을 받아먹었으나 다욕(多欲)을 고치는데 아무 도움이 없었던 것 같으며,
맹동야(孟東野 : 동야는 당(唐) 맹교(孟郊)의 자)는 물에 잠긴 단검(斷劍)과 구렁에 누운 쓸쓸한 소나무 같으며,

장적(張籍)은 우공(優工 : 배우)이 시골로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고 때로 해학(諧謔)의 기미가 있는 것과 같으며,

유자후(柳子厚 : 자후는 유종원(柳宗元)의 자)는 고추(高秋 : 중추(仲秋))에 홀로 졸고 갠 저녁에 외로이 피리를 부는 것 같으며,

이의산(李義山 : 의산은 이상은(李商隱)의 자)은 온갖 보물의 미관(美觀)을 위한 장식과 천사(千絲)의 철망(鐵網)이 화려하고 고우나 실용에 적합하지 않은 것과 같으며,

송조(宋朝)의 소동파(蘇東坡)는 천황(天潢)을 파헤쳐 창해(滄海)로 흐르게 하는데 온갖 변괴(變怪)가 다 생기지만 끝내는 웅장(雄壯) 혼후(渾厚)한 데로 돌아가는 것과 같으며,

구양수(歐陽脩)는 네 개의 호(瑚)와 여덟 개의 연(璉)을 종묘(宗廟)에 베풀어 놓을 수 있는 것과 같으며,

왕안석(王安石)은 등애(鄧艾)가 음평도(陰平道)에서 줄을 타고 내려가 촉(蜀)에 들어갔으니 험하기 때문에 공을 이룬 것과 같으며,

산곡(山谷 : 송(宋) 황정견(黃庭堅)의 호)은 도홍경(陶弘景 : 남북조(南北朝) 때의 은사)이 궁중(宮中)으로 들어와서 이치를 변론하고 현학(玄學 : 도가(道家)의 학)을 담론하면서도 송풍(松風)을 그리워하는 생각이 여전한 것과 같으며,

매성유(梅聖兪 : 성유는 송(宋) 매요신(梅堯臣)의 자)는 황하(黃河)의 흐름을 막으니 순식간에 소리가 없는 것과 같으며, 진소유(秦少游 : 소유는 송(宋) 진관(秦觀)의 자)는 혼기(婚期)를 맞은 처녀가 봄나들이를 하였다가 끝내 아름다움에 손상이 된 것과 같으며,

진후산(陳後山 : 후산은 송(宋) 진무기(陳無己)의 자)은 깊숙한 곳에서 학(鶴)이 홀로 울고 깊은 숲속에 꽃이 외로이 피어 조용히 스스로 곱게 여길 뿐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 것과 같으며,

한자창(韓子蒼 : 자창은 송(宋) 한구(韓駒)의 자)은 이원자제(梨園子弟)들이 음악을 연주하는데 차례로 늘어서서 질서 있는 것과 같으며,

여거인(呂居仁 : 거인은 송(宋) 여본중(呂本中)의 자)은 유학(儒學)을 버리고 선(禪)으로 돌아간 것을 스스로 뛰어났다고 여긴 것과 같다.

기타의 작자(作者)들을 다 진술(陳述)하기는 어려우나, 당(唐) 나라의 두공부(杜工部)는 주공(周公)이 제례 작악(制禮作樂)한 것과 같아서 후세 사람이 의의(擬議)할 수 없다. 《시인옥설(詩人玉屑)》

▶원객(園客)이 홀로 양잠(養蠶)하는 것 : 원객은 신선으로 미남(美男)이었으나 장가들지 않고 항상 오색(五色)의 향초(香草)를 10여 년 동안 길렀는데, 하루는 오색의 나비가 향초 위에 앉았다. 원객이 그 나비에게 베를 깔아 주었더니, 나비는 화잠(華蠶)을 낳았는데, 또 어떤 여자가 와서 양잠(養蠶)을 도왔다. 향초(香草)로 그 누에를 길러 고치 1백 20개를 땄는데 고치의 크기가 단지만큼 커서 6~7일을 켜야 고치 하나의 실을 다 뽑을 수 있었다. 실을 다 켠 다음 이 여자는 원객과 함께 신선이 되었다 한다.
▶유안(劉安)의 계견(鷄犬)이 ... 남겼으나 : 한 고조(漢高祖)의 손자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신선과 황로(黃老)의 방술(方術)을 좋아하였는데, 유안이 죽을 때 먹다 남긴 약을 닭과 개가 먹고 모두 신선이 되었다. 그러므로 닭은 천상에서 울고 개는 구름 속에서 짖었다 한다.
▶승로반(承露盤) : 한 무제(漢武帝)가 감로(甘露)를 받기 위하여 건장궁(建章宮)에 세웠던 동(銅)으로 만든 쟁반.

 

이상은 시문(詩文)에 대해 말하였다.

 

[<고사인물도 10폭병풍((故事人物圖十幅屛風)> 中 8폭, 민화병풍, 국립민속박물관]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1984, 김주희 정태현 이동희 임정기 이재수 정기태 공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