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

허균 39 - 한정록(閑情錄) 청공(淸供) 1

從心所欲 2021. 11. 7. 08:15
「한정록(閑情錄)」은 허균이 중국 서적에 나오는 ‘은거(隱居)’에 대한 글들을 16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한 글이다. 청공(淸供)은 14번째 주제로 허균은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산에 은거하여 살 때도 역시 필요한 일용품(日用品)이 있는데, 침석(枕席)이나 음식이 세속(世俗)과는 매우 다르다. 그러므로 제14 ‘청공(淸供)’으로 한다.”

 

● 산거(山居)에 필요한 도구 : 경적(經籍)과 기저(機杼)를 준비하여 풍속의 교화와 자손의 교육에 사용하고, 약품과 방서(方書)를 준비하여 사악(邪惡)한 것을 물리치고 질병을 막는 데 쓰고, 좋은 붓과 종이를 저장하여 그림을 그리고 시를 읊는 데 쓰며,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채소를 심어서 손님의 접대와 홀로 술을 마실 때 쓴다.

또 떨어진 옷과 낡은 갓을 수리해 두었다가 눈 내리고 바람 불 때 쓰고, 아름다운 돌과 좋은 먹ㆍ고옥(古玉)ㆍ기이한 서적 등을 수집하여 긴 날의 지루함을 덜고, 유서침(柳絮枕)과 노화피(蘆花被)를 만들어서 침상을 잇대 놓고 야화(夜話)를 즐기는 데 쓰고, 황면 노수(黃面老叟 : 석가여래의 별칭. 여기서는 중을 가리킨다)와 백발의 어부를 가까이하여 늙는 근심과 번거로운 세상사를 잊도록 한다. 《암서유사(巖棲幽事)》

▶경적(經籍)과 기저(機杼) : 경서(經書)와 좋은 책.
▶유서침(柳絮枕)과 노화피(蘆花被) : 버드나무 꽃으로 채운 베개와 갈대꽃으로 채운 이불.

 

● 두섬(杜暹 : 당 나라때 사람)은 집에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스스로 모든 책에 다음과 같은 발문(跋文)을 써서 자손을 훈계하였다.

“이 책들은 내가 녹봉(祿俸)을 받아 구입해서 손수 교정한 것이니, 자손들이 이를 읽으면 성인(聖人)의 도를 알 것이다. 그러니 이를 팔거나 남에게 빌려 주는 것은 모두 불효(不孝)이다”  《태평광기(太平廣記)》

 

● 문방구(文房具)를 보기 좋고 취미에 맞추기 위하여 이를 시장처럼 벌여 놓으면 자못 아취(雅趣)를 잃게 된다. 이를 정돈하는 방법은 원석공(袁石公 : 석공은 명(明) 원굉도(袁宏道)의 호)의 병화(甁花)처럼 청소(淸疏)해야 바야흐로 아치(雅致)가 있게 된다. 《소창청기(小窓淸記)》

 

● 군후(君厚)의 《화원(畫苑)》에 이렇게 되어 있다.

“그림은 보관해도 상자에 가득 차지 않고 운반하는 데도 우마(牛馬)의 땀을 흘리지 않는다. 명창(明窓)ㆍ정궤(淨几)는 앉고 눕는 편안함이 느껴지고, 고당(高堂)ㆍ소벽(素壁)은 지루하고 피곤한 느낌이 없고 그 가운데에 사람과 짐승ㆍ물고기의 변화 있는 모습과 산천(山川) 초목의 아름다운 자태가 환하게 눈앞에 펼쳐 있으니, 또한 호사자(好事者)의 취미 중의 하나이다.” 《소창청기》

 

● 청사(淸事)는 지나치게 의도적이어서는 안 된다. 만일 의관(衣冠)은 반드시 기고(奇古)한 것만을 찾고, 물품은 정량(精良)한 것만을 구하며, 음식은 색다르게 맛있는 것만을 구한다면, 이는 청사 중의 탁사(濁事)이니, 나는 이들을 청사의 좀이라고 생각한다.  《소창청기》

 

● 사공도(司空圖)가 중조산(中條山)에 은거(隱居)할 때에 소나무 가지를 깎아서 붓대를 만들고는 말하였다.

“은둔한 사람의 붓은 마땅히 이래야 한다.” 《하씨어림(何氏語林)》

 

● 붓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유황주(硫黃酒)로 붓끝을 풀고, 종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부용(芙蓉)의 가루로 종이의 빛을 내며, 벼루의 보호에는 문릉개(文綾蓋)를 사용하는데 이는 먼지를 멀리하는 데 뜻이 있는 것이고, 먹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표피(豹皮) 주머니에 넣는데 이는 습기를 멀리하자는 데 뜻이 있는 것이다. 《소창청기》

 

● 온공(溫公 : 송(宋) 사마광(司馬光)의 봉호)이 자첨(子瞻 : 송(宋) 소식의 자)과 차[茶]와 먹[墨]에 대해 말하기를,

“차와 먹 두 가지는 성질이 꼭 서로 반대이다. 차는 흰 것을 좋은 것으로 치는데 먹은 검은 것을 치고, 차는 무거운 것을 치는데 먹은 가벼운 것을, 차는 새 것을 치는데 먹은 오래 묵은 것을 친다.”

하자, 소자첨(蘇子瞻)이,

“상품(上品)의 차와 뛰어난 먹은 다 함께 향기로우니 이는 그 덕(德)이 같은 것이고, 모두 성질이 견고(堅固)하니 이는 그 지조가 같은 것이다. 비유컨대 현인(賢人)과 군자(君子)가 그 지혜와 아름다움의 정도가 같지는 않지만 그 덕과 지조는 한 가지인 것과 같다.”

하니, 온공이 매우 옳게 여겼다. 《소문충공집(蘇文忠公集)》

 

● 문사(文士)와 벼루의 관계는 미인과 거울의 관계와 같아서 일생 동안 가장 가깝게 지낸다. 그러므로 거울은 진도(秦圖)를 치고, 벼루는 송갱(宋坑)을 제일로 친다.  《미공비급(眉公祕笈)》

 

● 청천향병(淸泉香餠) : 어떤 사람이 일찍이 이를 구공(歐公 : 송(宋) 구양수(歐陽脩))에게 주었는데, 청천(淸泉)은 지명이고 향병(香餠)은 석탄(石炭)의 이름이다. 이것으로 향(香)을 피우면 향병(香餠) 하나로 종일토록 피울 수 있다. 《미공비급》

 

● 왕희지(王羲之)는 공교하게 생긴 돌로 된 필가(筆架)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름을 호반(扈斑)이라 했고, 왕헌지(王獻之 : 왕희지의 아들)는 반죽(斑竹)으로 만든 필통(筆筒)이 있었는데 이름을 취종(聚鍾)이라 하였다. 《소창청기》

▶필가(筆架) : 붓을 걸어놓는 기구.

 

● 심산(深山)에서 생활하는 데는 향로가 없어서는 안 되는데 은거한 지 이미 오래되어 좋은 향이 떨어지게 되면 사람들이 늙은 소나무나 잣나무의 뿌리ㆍ가지ㆍ잎사귀ㆍ열매 등을 채집하여 빻고 단풍잎으로 기름을 내어 가지고 이와 섞어서 향을 만들어서 한 심지씩 태우는데, 이 또한 청고(淸苦)한 분위기를 내는 데 일조(一助)가 된다. 《소창청기》

 

● 인주를 만드는 방법이 옛날에는 비마유(萆麻油) 또는 전책유(煎柵油)를 썼는데 이 방법은 모두 좋지 않다. 근래에는 천산갑유(穿山甲油)가 이용되는데 이는 색깔이 퍼지지 않는 장점을 취한 것이다. 시험해 보니 참으로 좋았다. 《선화학고론(宣和學古論)》

 

● 시통(詩筒)ㆍ규전(葵牋) : 백낙천(白樂天 : 백거이(白居易)의 자)과 미지(微之 : 원진(元稹)의 자)는 항상 시를 지어 죽통(竹筒)에 담아서 주고받았는데 녹색의 죽통에 시를 담으니, 윤택이 나서 자못 정채(精采)가 있었다. 그 제조법은 이슬 맞은 촉규화(蜀葵花)의 잎사귀를 따다가 갈아서 즙(汁)을 낸 뒤 베로 걸러서 죽지(竹紙)에 바른 후 약간 마르기를 기다려서 돌로 눌러 둔다. 허상(許常)의 시에,

 

不采傾陽色 경양하는 모양을 넣지 못했으니

那知戀主心 임금을 그리는 마음 어찌 알겠나.

 

한 것이 있으니, 산가(山家)에서 쓰기에 편리할 뿐 아니라 또한 규곽(葵藿)이 태양을 향하는 뜻을 알게 한다. 《소창청기》

▶규곽(葵藿) : 해바라기

 

● 엽전(葉錢) : 납판(臘板)을 갈아서 잎사귀 모양의 무늬를 만든 다음 가위로 오려서 만드는데 붉은색의 것은 붉은 잎사귀를 만들고 녹색의 것은 파초잎 모양을 만들고 노란 것은 작은 패다엽(貝多葉) 모양으로 만든다. 산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절구(絶句)를 짓게 되면, 이 엽전(葉牋)에 써서 공중에 던져서 바람에 날리거나, 배를 타고 가면서 물속에 뿌려서 물결을 따라 부침(浮沈)하게 하면 절로 그윽한 정취(情趣)가 있게 된다.  《소창청기》

 

● 당(唐) 나라 방천리(房千里)의 죽실(竹室)은 집의 사방에 빙 둘러 대나무를 심고 네 귀퉁이를 묶어서 바로 선 것은 기둥이 되고, 옆으로 버티고 선 것은 서까래가 되도록 만든 것이다. 왕원지(王元之 : 원지는 송(宋) 왕우칭(王禹偁)의 자))의 죽루(竹樓)는 대개 이를 본뜬 것이다. 《소창청기》

 

● 산재(山齋)에서 쓰는 도구 : 가을에 감국화(甘菊花)를 따다가 바둑판만한 크기의 붉은 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담아서 베개를 만들어 사용하면 머리와 눈을 맑게 해주고 사악(邪惡)하고 더러운 욕심을 제거해 준다. 또 유서(柳絮)와 같은 포화(蒲花)를 따다가 잘 두드려서 부드럽게 만들어서 네모진 푸른 주머니에 담아서 방석이나 요를 만들면 햇볕을 흡수해서 따뜻하기가 솜보다도 낫다. 굽은 소나무 가지로 곡궤(曲几)를 만들어 등을 기대는 데 쓰는데 이를 양화(養和)라 한다. 《소창청기》

 

● 석침(石枕)은 송(宋) 나라 자백석(磁白石)으로 된 것인데 대부분 무덤에서 발견되어 사용할 수가 없으므로 자석(磁石)으로 만들어 쓴다. 만일 자석이 큰 덩어리가 없을 경우에는 작은 것을 다듬어서 베개의 윗부분만을 만들고 아래는 나무를 붙여서 사용하면 눈이 밝아진다. 눈을 밝게 해주는 것은 자석이 제일이니 자석으로 분침(盆枕)을 만들어 쓰면 늙도록 눈이 어두워지지 않는다. 영왕(寧王)의 궁중에서 이를 사용했다. 《소창청기》

▶석침(石枕) : 베개 삼아 베는 돌.

 

● 육무관(陸務觀 : 육유(陸游)의 자)이 이르기를,

“주장(拄杖 : 행각승(行脚僧)이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은 반죽(斑竹)으로 만든 것이 제일이다. 대나무는 늙고 가늘며 단단한 것이 좋고, 반점(斑點)은 약간 붉은색에 점이 드물게 박힌 것이 좋다.”

하였고, 가장강(賈長江 : 장강은 당 나라 때 시인인 가도(賈島)의 별호)의 시에는,

 

揀得林中最細枝 대나무 중에서 가장 가는 것을 고르니

結根石上長身遲 돌 위에 뿌리 내려 더디게 자랐구나.

莫嬚滴瀝經斑少 성글게 박힌 작은 점들 싫어 말 것이

恰似湘妃淚盡時 상비(湘妃)의 눈물 다할 때의 모습과 흡사하니까.

 

하였으니, 이는 주장(拄杖)을 잘 표현한 말이다. 내가 이 같은 성벽(性癖)이 없다면 또한 쉽게 이 뜻을 알지 못할 것이다. 《미공비급(眉公祕笈)》

▶상비(湘妃) : 순(舜) 임금의 두 비(妃)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 순 임금이 죽자 두 비가 슬피 울어 떨어진 눈물이 대나무에 배어 흑색의 반점이 있는 반죽(斑竹)이 되었다 하며 이들이 상수(湘水)에서 투신자살하여 상수의 귀신이 되었다는 뜻에서 상비라 부른다.

 

● 도복(道服)은 베로 만드는 것이 좋고, 그 중에서도 흰색이 좋다. 이는 좌선(坐禪)하거나 말 탈 때, 눈길을 걸을 때에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입는다. 도선(道扇)은 종이를 풀로 붙여서 만든 것도 있고, 대쪽을 엮어서 만든 것도 있다. 옛날에는 아모선(鵝毛扇)이 있었으니 즉 우선(羽扇)인 셈이다. 《소창청기》

▶우선(羽扇) : 새의 깃으로 만든 부채. 아모선(鵝毛扇)은 거위 깃털로 만든 부채.

 

● 죽장(竹杖)은 자죽(字竹)ㆍ방죽(方竹)ㆍ노죽(老竹)을 다듬어서 만든 것이 우아하다. 오래 묵은 등나무나 명아주로 만든 것은 노승(老僧)의 행구(行具)이다. 《소창청기》

 

● 정경(鄭敬)은 갈대로 자리를 만들어 가지고 항상 기류(杞柳)의 그늘을 찾아다녔다.  《소창청기》

▶기류(杞柳) : 버드나뭇과의 냇버들 또는 고리버들. 

 

● 포화욕(蒲花褥) : 9월에 부들을 베어다가 약간 쪄서 말린 후에 유서(柳絮) 등의 꽃을 따다가 요나 방석을 만드는데 모두 성긴 베로 주머니를 지어서 만든다. 《소창청기》

 

● 은낭(隱囊) : 탑(榻) 위에 두 개의 돈대(墩臺)를 만든 후에 푸른 꽃과 흰 꽃을 섞어 깔아서 만드는데 높이는 한 자 남짓하다. 안은 솜을 넣어 완전히 꿰매고 그 곁에 끈 두 개를 매어서 손잡이를 삼는다. 탑(榻) 위에서 졸다가 일어나서 두 팔꿈치를 돈대에 기대고 조금 앉아 있으면 편안한 느낌이 든다. 이것이 옛날의 제작법이다. 《소창청기》

▶탑(榻) : 침대와 긴 의자를 겸한 중국 가구. 탑상(榻牀)이라고도 하는데, 크고 높은 것을 상(牀)이라 하고 좁고 낮은 것을 탑(榻)이라 불렀다.

 

● 노화피(蘆花被) : 늦가을의 노화(蘆花)를 베어다가 포피(布被) 속에 넣어서 만드는데 옥색포(玉色布)나 난화포(蘭花布)로 만든다. 이어서 여기에다 호랑나비를 그린 천으로 덮개를 만들어 씌운다. 첫추위에 이를 덮으면 별로 춥지 않다. 그러나 북방에서는 쓸 수 없으니 그 청아(淸雅)한 멋을 취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소창청기》

 

● 지장(紙帳) : 등피지(藤被紙)나 견지(繭紙)를 가지고 단단하게 얽어서 물결처럼 구불구불하게 만든다. 이때에 풀은 쓰지 않고 접어서 실로 꿰매는데 윗부분은 성긴 베로 만들어서 바람이 통하게 한다. 《소창청기》

▶지장(紙帳) : 종이로 만들어 방안이나 창문에 치는 휘장(揮帳).

 

● 불주(拂麈) : 예전에는 홍불주미(紅拂麈尾)가 있었으나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없다. 자연생 대나무가 영지(靈芝)나 여의장(如意杖)처럼 생긴 것을 깎아서 자루를 만들었는데 매우 우아하다. 털이개는 말갈기를 길게 잘라서 만든다. 《소창청기》

▶불주(拂麈) : 먼지를 털거나 파리를 잡기 위해서 중이 지녔던 불구(拂具). 얼룩소의 긴 꼬리를 묶어 자루를 달아서 썼다.

 

● 기상(欹床) : 등나무와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다. 술을 마시고 누워서 책을 보거나 꽃 아래 누워서 감상할 때에 이를 쓰면 좋다. 《소창청기》

 

● 죽탑(竹榻) : 반죽(斑竹)으로 만든다. 3면(面)이 막히고 받침대는 없다. 높은 서재(書齋)에 놓아두고 낮잠을 자기에 알맞다. 《소창청기》

 

[<고사인물도 10폭병풍((故事人物圖十幅屛風)> 中 10폭, 민화병풍, 국립민속박물관]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1984, 김주희 정태현 이동희 임정기 이재수 정기태 공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