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건물들에 붙여진 이름에는 다양한 종류의 호칭이 등장합니다. 창덕궁을 예로 들자면 인정전, 선정전,
대조전 같이 전(殿)이란 명칭이 붙은 건물이 있는가 하면 취운정, 부용정, 희우정처럼 정(亭)으로 불리는 건물,
가정당, 영화당, 연경당 등의 당(堂)건물, 승화루와 주합루가 있는가 하면 경훈각, 석복헌, 낙선재 같은 이름도
있습니다. 건물 앞에 붙여진 글자들에는 각기 나름의 의미가 있어 하나하나 뜻을 새겨 음미해볼 일이지만 전,
당, 루, 정, 각, 헌, 재....등은 어떤 기준으로 이름이 붙여지는지 궁금할 법한 일입니다. 김왕직 교수가 저술한
「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에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어느 곳 보다 자세히 잘 정리되어 있어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전(殿) : 가장 격식이 높고 규모도 커서 여러 건물들 중 으뜸인 건물이다. 사찰에서는 대웅전이나 극락전, 약사전
등으로 부처를 모신 불전을 부를 때 사용된다. 궁궐에서는 근정전, 명정전, 인정전, 자경전, 대조전 등과 같은
중심건물과 내전 및 침전의 대표 건물을 일컫는다. 따라서 '전'은 사찰과 궁궐 등에서 중심을 이루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堂) : 전보다는 한 등급 격식이 낮은 건물로 전에 딸린 부속건물이거나 부속공간의 중심건물을 부르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궁궐, 사찰, 공공건축, 살림집 등 모든 건축유형에서 '당'이 나타나는데, 각 영역의 중심건물을 일컫는다.
궁궐에서는 양화당, 영화당, 희정당 등과 같이 주전에 부속된 건물을 나타내며, 사찰에서는 불전에 딸린 선당과 승당
등을 나타낸다. 그러나 서원이나 향교에서는 사당, 강당 등 주전을 '당'이라고 하였고 살림집에서도 양진당, 충효당,
독락당, 일성당처럼 주전을 '당'이라고 하였다.
합(閤) : 많이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며 서궐의 사현합(思賢閤), 동궐의 체원합(體元閤), 공묵합(恭默閤),
의신합(儀宸閤) 등과 같이 전이나 당에 부속되어 공공 용도보다는 사적 용도의 다양한 기능을 가진 부속건물로 추정된다.
헌(軒) : 원래 비바람막이가 달린 수레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강릉 오죽헌이나 안동 소호헌, 낙선재 석복헌과 같이
살림집 성격의 당의 형식을 갖는 것과 화성 행궁의 낙남헌, 덕수궁 정관헌과 같이 정의 성격을 갖는 특별한 용도의
건물이다. 지방 수령이 공무를 보는 본 건물을 동헌(東軒)이라고 하였다.
누(樓) : 중첩시켜 올린 집을 의미한다. 즉 원두막처럼 마루를 지면으로부터 높이 띄워 습기를 피하고 통풍이
원활하도록 만든 여름용 건물이다. 남원 광한루와 밀양 영남루 등은 객사에 부속된 누각으로 접대와 향연을 위한
건물이었다. 경복궁 경회루도 궁궐 연회를 위한 것이었다. 다만 창덕궁의 주합루는 특수하게 도서관으로 쓰였다.
사찰에서는 불전 앞에 누를 세워 휴식과 문루로 이용하였다. 성곽에서는 문에 누를 세워 문루라고 하였으며 방어와
공격의 기능을 하였다.
정(亭) : 일반적으로 정자(亭子)라고 부르는데, 원래 의미는 잠시 쉬거나 놀다가는 건물이다. 강릉 해운정, 양동
관가정처럼 살림집의 당과 같은 기능을 하기도 하고 창덕궁 애련정, 부용정, 청의정, 경복궁 향원정과 같은 궁궐이나
별서 및 원림에 세워 휴식과 유희공간으로 사용하는 정자가 있다. 또 건축형식으로 보면 누각형태로 만든 것과
온돌을 들인 살림집형식이 있다. 유희를 위해 세운 건물은 누와 같은 기능을 하지만 대개 '정'은 규모가 작고
개인적인데 비해 '누'는 건물이 크고 공공성을 가지며 사적 행사보다는 공적 행사를 위한 시설이다.
각(閣) : 누와 유사한 중층건물이 대부분이다. 합쳐서 누각(樓閣)이라고도 부른다. 살림집 대문간으로 사용되는 좁고
긴 단층건물을 행각(行閣)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궁궐에서는 창경궁 행각, 경복궁 행각처럼 주전 앞을 감싼 회랑(回廊)을행각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단지 '낭(廊)'으로 비어있지만 원래는 실로 사용했기 때문에 행각으로 불리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榭) : 무술을 익히고 수련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특히 궁술을 익히는 건물을 뜻한다. 창덕궁 불로문을 지나
서북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계곡에 폄우사(砭愚榭)가 있는데 정자의 기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舍) : 부속된 작은 건물을 부를 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수원 화성에서는 성 안에 지어진 작은 포루를
특별히 포사(舖舍)라고 했으며 대개는 마루로 구성되었다. 관아건물에서는 손님이 머무는 건물을 객사(客舍)라고
불렀다. 하회 옥연정사, 겸암정사, 원지정사, 빈연정사, 군지촌정사처럼 살림집 본채와 떨어져 경치 좋은 곳에
별서의 개념으로 지은 작은 규모의 살림채를 정사(精舍)라고 하였다. 정사는 공부와 휴식을 위해 지은 재(齋)보다는
작고 정(亭)보다 큰 별서 개념의 건물이다. 재와 정사의 차이점은 제사기능을 중심으로 하면 재가 되고 별서개념만
있으면 정사가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청(廳) : 관청이나 손님을 영접하는 장소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관청(官廳), 객청(客廳)이란 명칭이 자주
사용되었으며 청사(廳事)라고도 한다. 단위건물이 아닌 마루가 깔린 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정청(政廳),
정청(正廳), 양청(凉廳) 등의 용례가 있다.
재(齋) : 당과 비슷하지만 제사를 드리거나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소박하게 학문을 연마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경치 좋은 곳에 작고 은밀하며 검소하게 지어 사용하는 살림집에 부속된 암자와 비슷한 개념의 건물이다.
정사(精舍)와 개념이 비슷하며 두 개념이 결합한 것을 재사(齋舍)라고 부르며 안동 권씨 소등재사, 의성김씨
서지재사와 같은 사례가 있다. 서원과 향교에서는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고, 경복궁
집옥재(集玉齋)는 고종이 서재나 외국사신의 접견에 이용한 별서의 개념이었다. 재궁(齋宮), 재사(齋舍),
재실(齋室), 재전(齋殿), 서재(書齋), 산재(山齋) 등의 용례가 있다.
관(館) : 군사들의 지휘본부로 사용했던 여수 진남관 및 충무 세병관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크고
개방된 관아 성격의 건물을 말한다.
낭(廊) :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거나 감싸고 있는 좁고 긴 건물을 말한다. 궁궐 정전에서처럼 사방을 감싸고
있는 낭을 회랑(回廊)이라고 한다. 경복궁 근정전 회랑은 측면이 2칸인 복랑(復廊)이며 처음에는 실로
이용했다. 조선 초까지만 해도 정전은 건물 앞뒤 중앙에서 빠져나온 낭이 있었는데 이를 천랑(穿廊)이라고
했다. 현재는 창경궁 명정전 뒤쪽 천랑이 부분적으로 남아있으며 불국사 대웅전 양쪽에도 천랑이 남아있다.
또 살림집에서 마당 앞쪽에 좁고 긴 건물을 두고 중문이나 하인방, 창고 등을 들였던 건물이 있는데 이를
행랑(行廊)이라고 한다. 따라서 낭은 통로로만 이용된 것이 아니고 실로도 이용되었으며 대략 좁고 긴 건물을
일컫는 말이다. 또 종묘 정전이나 영령전에서와 같이 정전 양쪽에 날개처럼 빠져나온 건물은 익랑(翼廊)이라고
한다. 이외에 낭옥(廊屋), 낭하(廊下), 문랑(門廊), 장랑(長廊), 보랑(步廊) 등의 용어도 있다.
무(廡) : 당 좌우에 부속된 건물을 말한다. 따라서 당보다는 격식이 한 단계 낮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낭무(廊廡)라고 할 때는 단위건물과 회랑이 어우러진 집 전체를 가리킨다. 이때 무는 옥(屋)과 같이
일반적인 단위건물을 나타낸다. 현재 한국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지만 향교에서 사당 양쪽에 놓여 공자의 제자와
한국 명현을 모신 사당을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라고 부르고 있다.
실(室) : 독립된 건물을 나타내기도 하고 건물 내부의 단위공간을 나타내기도 한다. 제사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건물을 재실(齋室)이라고 하는데 이때는 독립된 건물을 뜻한다. 그러나 각실(各室)이라고 할 때는 단위공간을
나타낸다. 묘침제에서 쓰이는 용어 중에 '동당이실제(同堂異室制)'라는 말은 같은 건물에 칸만 나눠 신위를
봉안하는 것을 뜻하는 데, 이때는 각실을 의미한다.
가(家) : 집을 통칭하는 것으로 집의 쓰임에 관계없이 사용된 것이지만 요즘은 민가(民家), 반가(班家)
등의 단어가 쓰이면서 살림집을 뜻하는 의미가 강해졌다. 가는 물리적으로는 건물이 모여 있는 집합군을
이르지만 인문학적으로는 가족을 포함한 생활로도 해석된다.
택(宅) : 가(家)와 같이 집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지만 집의 성격과 관계없이 단위주호를 일컬으며, 현재는
살림집의 의미가 강하다. 고택(古), 고택(故宅), 사택(舍宅), 사택(私宅), 제택(第宅), 장택(庄宅), 전택(田宅),
연안댁(延安宅), 천동댁(泉洞宅)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옥(屋) : 기능을 구분하지 않는 모든 유형의 건축물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가(家)와 택(宅 )에 비하면 물리적인 성격이
강하다. 지붕을 뜻하기도 한다.
방(房) : 거실용도로 사용하는 실의 의미를 갖고 있다. 방은 대개 구들을 들인 온돌방(溫突房)으로 꾸며진다.
공방(空房), 서방(西房), 동방(東房) 등의 용어가 보이며 용도에 따라서는 다방(茶房), 미타방(彌陀房), 수방(水房)
등의 용례가 보인다.
궁(宮) : 왕이 기거하는 규모가 크고 격식 있는 집을 말한다. 운현궁과 같이 왕자나 공주, 대군이 사는 살림집을
궁이라고 불렀으며 현사궁, 경모궁과 같은 왕실관련 사당도 궁이라고 했다. 대개 '궁'보다는 궁궐이라고 많이 하는데
이것은 궁과 궁 앞에 설치되는 감시용 망루인 궐(闕)이 합쳐진 용어이다.
단(壇) : 건물이라기보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설치된 높은 대를 말한다. 사직단, 중악단, 마조단, 원구단, 선농단
등이 이에 속하는데 아산의 맹씨 행단과 양동마을의 향단처럼 살림집의 별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묘(廟) : 조상이나 성현의 위패를 모셔두고 제향하는 건물이다. 왕들의 신위를 모신 종묘(宗廟)와 공자를 모신
문묘(文廟), 일반 백성들의 조상신을 모신 가묘(家廟) 등이 있다.
사(祠) : 성현이나 충신 등의 위패나 영정을 모셔 놓고 제사하는 건물이다. 또 묘 앞에 제사를 위해 지어놓은 건물을
'사'라고 한다. 통영의 충렬사를 들 수 있으며 효령대군 묘 앞에 있는 청권사, 사육신묘 앞의 의절사 등도 이에 속한다.
대(臺) : 남한산성의 장군 지휘소인 수어장대와 화성의 지휘소인 동장대 및 서장대와 같이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높은 대 위에 지은 건물을 말한다. 강릉 경포대처럼 누각형태로 지은 것도 있으나 동장대처럼 단층이면서 사방이
트이고 마루가 넓게 깔린 것도 있다.
암(庵) : 주전과 떨어져 한적한 곳에 별도로 작게 지은 초막을 말한다. 해인사 홍제암, 실상사 백장암 등과 같이
대개 사찰건축에서 스님들이 기도정진하기 위해 산속에 암자를 만든다.
충처 :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김왕직, 2007,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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