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기(律己) 제5조 절용(節用) 5
무릇 내사(內舍)에 보내는 물건은 다 법식을 정하되 한 달에 쓰이는 것은 모두 초하룻날 바치게 해야 한다.
(凡內饋之物 咸定厥式 一月之用 咸以朔納)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율기(律己)의 제5조인 ‘절용(節用)’은 씀씀이를 아끼는 일이다.
안식구들이 도착하면 관주(官廚)에서는 날마다 쓰는 물건을 바치되 시행한 지 10일 만에 모든 물건을 합계하고 이에 그 총수를 가지고 3곱하여 - 한 달이 3순(旬)이므로 3곱한다. - 그 3곱한 수를 초하룻날 전부 납품한다.
가령, 10일 동안에 소비된 쌀이 10말, 찹쌀 3되, 팥 4되, 밀가루 - 진말(眞末)이다. - 2되, 녹두가루 1되, 깨 - 속명(俗名)은 참깨[眞荏]이다. - 1되, 민어[鮸魚] - 곧 민어(民魚)이다. - 2마리, 추어(鰌魚) - 곧 석어(石魚)이다. - 2속(束), 알젓 1되, 새우젓 3되, 계란 40개, 꿀 1되, 향유(香油) 1되, 간장 5되, 초 6홉, 대추 1되, 생강 1냥, 미역[海苔] - 속명은 감곽[甘藿]이다. - 2속, 김[海衣] - 곧 자채(紫菜)이다. - 5톳, 다시마[昆布] 1속, 소금 5되, 누룩 2덩이라면, 그 총수를 가지고 3곱을 하여 초하룻날 납품하는 법식으로 정한다.
관부(官府)의 정령은 맑고 간략해야 한다. 사소한 쌀이나 소금을 찾느라고 하루에도 열 번씩 내노(內奴)는 시노(侍奴)를 부르고 시노는 문졸(門卒)을 부르며, 문졸은 주노(廚奴)를 부르고 주노는 주리(廚吏)에게 고하여, 늦다느니 안 가져온다느니, 있다느니 없다느니, 많다느니 적다느니 하면서 시끄럽게 떠들어대어 온 성안이 요란하다.
▶내노(內奴) : 원래는 내수사(內需司)에 딸린 노비(奴婢)를 뜻하나, 여기서는 내아(內衙)에 달린 노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 ▶문졸(門卒) : 조례(皁隷). 칠반천역(七般賤役)의 하나로, 관아에서 부리던 하인을 말한다. 여기서는 사령(使令)을 가리킨다. |
이튿날 장부 - 곧 하기(下記) - 를 조사하는데, 책객(册客)이 자리를 벌이고 앉아서 종을 부르고 아전을 대질하여 허실(虛實)을 다시 묻고 빠진 것은 보충하고 남용한 것은 깎아낸다. 1작(勺) 정도 미세한 것을 먹으로 그어 원한을 사기도 하며 반수(半銖)정도의 경한 것을 붉게 그어 정력을 낭비한다.
회계하는 날 - 다음 달 초하룻날 회계한다. - 또다시 타산하면서 하나는 부르고 하나는 대답하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니 의심과 비방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생각이 맑지 못하여 혹은 책객과 아전이 끼고 부정하지 않았나 의심하고 혹은 주리(廚吏)가 책객과 짜고 속여 빼돌리지나 않았나 의심하여, 마구 성내고 꾸짖고 하다가 조소와 비난을 많이 사게 된다. 천하에 이처럼 지혜롭지 못한 일은 없을 것이다.
▶반수(半銖) : 수(銖)는 무게의 단위로 24수(銖)가 1냥. 여기서 반수(半銖)는 극히 작은 것을 가리키는 의미. |
아내가 집에 있을 때에는 병과 항아리는 텅텅 비고 상자와 농짝도 휑하니 비어 있어, 비녀를 팔고 옷을 잡혀 구루(溝樓) - 경성(京城)에는 아파(牙婆)가 지저분한 저자거리에 앉아있는데 이것을 구루라 한다. - 에서 고(薧) - 말린 생선이다. - 를 사먹으면서도 오히려 즐겁게 살았는데, 이제 크고 넓은 집에 살면서 매월 초하루에 포인(庖人)과 늠인(廩人)이 일용의 온갖 물건을 굽실거리며 바치니 하루아침에 얻은 부귀가 무슨 불만이 있기에 꼭 시시각각 주노(廚奴)를 불러서 요구한단 말인가. 이 법은 불가불 고쳐야 할 것이다.
▶아파(牙婆) : 여자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팔러 다니던 행상. 방물장수. ▶포인(庖人) : 고기를 맡아서 바치는 사람 ▶늠인(廩人) : 채소와 과일을 맡아서 바치는 사람 |
오직 푸줏간 고기는 초하루에 다 바칠 수가 없다. 먼저 매일 바치는 수량을 정해 놓고 소 잡는 날에 날짜를 따져서 바치도록 해야 한다. 가령 하루에 2근이 일정한 수량이라면 소 잡는 날에 20근을 바치고 10일 후에 다시 잡아서 그 일정한 수량을 채우도록 하면 될 것이다.
생선을 초하루에 바칠 수 없으니 매양 장날이 되면 - 읍내 장은 모두 한 달에 여섯 번 선다. - 생선 몇 근씩을 바치는 것으로 일정한 법식을 삼는다.
무릇 초하루에 바치는 일정한 법식 외에 특별히 쓰게 된 것은 일부(日簿)에 적어 둔다. 적은 것이 간단하니 속임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여러 달 시행하는 동안에 혹 남는 것이 생기면 초하루에 바칠 때에 빼어서 제한다. - 바치지 말게 한다. - 매양 부족할까 걱정되는 것은 일정한 법식보다 그 수량을 늘리되 정도에 알맞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하기(下記)를 살필 필요가 없고 회계도 따질 것이 없을 것이다. 정사는 맑아지고 일은 간소해져서 상하가 모두 편리하게 되니 이는 바꿀 수 없는 좋은 법이다.
현사(縣司)에 바쳐야 할 땔나무ㆍ숯ㆍ꼴짚 등속도 이상과 같은 방법에 비추어 정례(定例)로 삼고, 빈객(賓客) 대접 - 손님 접대를 말한다. - 을 위하여 쓰게 된 물건도 일정한 법식에 비추어 따로 장부 하나를 만들어야 한다.
다산(茶山) 목대흠(睦大欽)은 총명하고 기억력이 뛰어났다. 연안 부사(延安府使)로 있을 적에 날마다 쓰는 모든 물건들을 장부에 기록하지 않고서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으니 아전들이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 한번은 큰 항아리 속에 게 수백 마리를 절여두고서 아침저녁으로 바치게 하였다. 하루는 주리(廚吏)가 게가 떨어졌다고 알리니 공은,
“아직도 두 마리가 있을 것이다.”
하였다. 주리가 황공해서 물러가 항아리 속을 뒤져보니 과연 작은 게 두 마리가 젓국 속에 들어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는 공사간(公私間)에 털끝만큼도 장부를 숨기는 일이 없어졌다.
▶목대흠(睦大欽) : 광해군과 인조 때의 문신. 호가 정약용과 같은 다산(茶山)이었다. |
이모(李某)가 강진 현감(康津縣監)으로 있을 적에 무슨 일로 서울로 잡혀갔다가 보방(保放)되어 옥(獄) 밖에서 9일 동안 있었는데, 매양 식사 후에는 복숭아를 먹었다. 아전이 1전(錢)으로 2개를 사서 드리는데 한 개는 크고 한 개는 작았다. 수령은 큰 것을 차지하고 작은 것을 남기니 시동(侍童) - 곧 통인(通引)이다. - 이 먹었다.
다시 강진현으로 돌아와서 아전이 장부에 9전을 기록하니, 그는,
“어찌된 것이냐? 나는 그 반을 먹었고 남은 것은 나는 모르겠다.”
하고 5전으로 깎아버렸다. 아전이 시동더러,
“네가 반을 먹었으니 네가 4전을 물어야 한다.”
하니, 시동은,
“억울하다. 이럴 줄 미리 알았으면 누가 그것을 먹었겠는가?”
하였다. 아전이,
“원망하지 말라. 법으로는 고르게 나누어야 한다. 관에서 그 5전을 내어 네게 5문(文)을 덜 내게 해주었으니 네가 이익을 본 셈이다.”
하니, 시동이,
“억울하다. 나는 그중 작은 것을 먹었으니 그 모자라는 것을 모아 계산하면 어찌 문(文) 어치만 되겠는가.”
하고 제 주머니 속에서 4전을 내어 침을 뱉으면서 던져버렸다.
생각건대, 이와 같은 절용(節用)은 낭비하는 것만도 못한 것이다.
▶문(文) : 돈의 단위로 푼(分)과 같은 의미. 10푼이 1전, 10전이 1냥이다. |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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