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록(閑情錄)」은 허균이 중국 서적에 나오는 ‘은거(隱居)’에 대한 글들을 16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한 글이다. 섭생(攝生)은 16번째 마지막 주제로 허균은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 사농공상(士農工商) 사민(四民)의 생업 중에서 농업(農業)이 근본으로 한거자(閑居者)가 해야 할 사업(事業)이다. 그러므로 제16 ‘치농(治農)’으로 한다.”
● 택지(擇地)
생활의 방도를 세우는 데는 반드시 먼저 지리(地理)를 선택해야 하는데, 지리는 수륙(水陸)이 서로 잘 통하는 곳을 제일로 치기 때문에 산(山)을 등지고 호수(湖水)를 바라보는 곳이라야 가장 좋다. 그러나 반드시 지역이 관대(寬大)하여야 하며, 또한 긴속(緊束)한 곳을 필요로 하니, 대개 지역이 관대하면 재리(財利)를 많이 생산할 수 있고, 지역이 긴속하면 재리를 모아들일 수 있다.
● 자본(資本)
모든 경영(經營)이 다 근본이 없으면 정립(定立)될 수 없고, 재물(財物)이 아니면 이룩할 수 없다. 동류(同類)는 이미 얻었다 하더라도 자본이 넉넉하지 못하면 또한 성공(成功)할 수 없기 때문에 장차 경영을 하려면 먼저 재물을 축적해야 한다. 그렇다면 창업(創業)한 자는 탐(貪)하지 않고 차서에 따라 하여도 자연히 이익이 있다. 그러므로 자본이 없어서는 안 되겠지만 꼭 부(富)까지 이룰 필요는 없다.
● 정거(定居)
거처(居處)와 음식(飮食)은 인도(人道)의 대단(大端)이 되는 것이니, 지리(地利)는 이미 얻었다 하더라도 거처할 곳이 없으면 이 몸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어떤 땅을 경리(經理)하려 할 때 또 집 짓는 일까지 하다보면 시기를 잃어서 일을 망치게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산업(産業)을 제정하는 데 있어 이미 완성된 가옥(家屋) 등을 사는 것이 옳다. 그러나 또한 너무 크지 않은 것으로 해야 한다.
● 곡식을 심음[種穀]
거처를 옮기는 데는 먹을 것이 넉넉한 것을 근본으로 삼고, 먹을 것을 넉넉하게 하는 것은 농사(農事)로 우선을 삼는다. 그러므로 한번 거처를 정하면 모든 복종(僕從)에게 즉시 각기 그 산업(産業)을 맡도록 해야 한다. 이를테면 주(主)와 종(從)이 모두 10인(人)이라면 60석(石)이 아니고서는 연간 생활을 영위할 수 없으므로, 전지(田地)의 다과(多寡)를 보아서 편의(便宜)할 대로 처리해야 한다. 만일 전지 1백 묘(畝)가 있다면 복종(僕從)에게 스스로 30묘를 경작(耕作)하도록 하고 그 나머지는 전인(佃人 소작인(小作人))에게 경작시키는 것이 옳다.
● 채소를 심음[種蔬]
곡식이 익지 않은 것을 기(饑)라 하고 채소가 익지 않은 것을 근(饉)이라 하는 것이니, 오곡(五穀) 이외의 채소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살고 있는 집의 좌우(左右)에 즉시 땅을 일구어서 심되, 김매고 물주기에 편리하도록 둑을 쳐서 파종한다.
● 나무를 심음[樹植]
이미 거처할 곳이 정해졌으면 모름지기 그 근방의 산장(山場)을 호미로 두루 파 보아서 그 토지의 적성에 따라 재목(材木)을 심고 과일나무도 심어 가꾸어서 재화(財貨)와 기용(器用)의 자본으로 만들어야 한다.
● 누에를 쳐 고치를 켬[蠶繅]
《예기(禮記)》 월령(月令 제의(祭儀)의 착오인 듯함)에 이르기를,
“천자(天子)와 제후(諸侯)는 반드시 공상(公桑)과 잠실(蠶室)을 두었다.”
하였는데, 하물며 사대부(士大夫)와 서인(庶人)의 집이겠는가. 일단 거주할 곳을 정했으면 집 주위에다 뽕나무를 널리 심고, 또 미리 곡(曲)ㆍ식(植)ㆍ거(籧)ㆍ광(筐) 등의 잠구(蠶具)를 구해 놓는다면, 누에를 기를 때에 누에를 먹일 뽕이 결핍될 걱정이 없을 것이며 잠구도 따라서 결핍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 가축을 기름[牧養]
생활을 영위하는 방도는, 일정한 거처가 있고 일정한 산업(産業)이 있는데다 가축(家畜)을 기르면 이(利)가 일어날 것이다. 도주공(陶朱公 춘추 시대 범려(笵蠡)의 변명(變名)이 의돈씨(猗頓氏 춘추 시대 노(魯)의 대부호(大富豪))에게 고(告)하기를,
“그대가 치부(致富)를 하려면 마땅히 오자(五牸 다섯 종류의 암짐승)를 기르라.”
하고, 또 이르기를,
“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이 5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수축(水畜 물고기)이 제일이다.”
하였으니, 가축 기르는 일을 서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 때를 따름[順時]
천하(天下)의 일을 성취시키는 데는 시기를 따르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다. 그러므로 씨앗을 뿌리거나 나무를 심는 데도 각기 알맞는 시기가 있으니, 그 시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옛 성인(聖人)이 촌음(寸陰)도 아꼈던 것은 진실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 농사(農事)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이 이를 생각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애써 부지런히 일함[務勤]
전(傳)에 이르기를,
“일생(一生)의 계책은 부지런한 데에 있다.”
하고, 또 이르기를,
“거름[糞]이 많고 부지런히 일하는 집이 상농(上農)이다.”
하였으니, 반드시 밤이면 생각하고 낮이면 일을 하며, 용기 있게 앞으로 전진하고 과감하게 결단하여 적당한 시기를 놓치는 허물만 저지르지 않으면 이(利)가 갑절 오를 것이다.
● 검소함을 익힘[習儉]
씨앗을 뿌리고 누에를 쳐 고치를 켜는 데서 곡백(穀帛)의 근원이 벌써 열리고, 나무를 심어 가꾸고 가축을 기르는 데서 재화(財貨)의 밑천이 벌써 갖추어진다. 하지만 진실로 그 재물을 절제 없이 써 버린다면 몸만 수고로울 뿐 재용(財用)은 더욱 부족해질 것이다. 구 내공(寇萊公 송(宋) 구준(寇準)의 봉호)의 육회명(六悔銘)에 이르기를,
“부자로 살 때에 재용을 절약하지 않는다면 가난해진 때에 뉘우치게 된다.”
하였다. 농서(農書)를 상고해 보니,
“곡식은 모두 메기장[黍]ㆍ차기장[稷]ㆍ차조[秫]ㆍ벼[稻]ㆍ참깨[麻]ㆍ보리[大麥]ㆍ밀[小麥]ㆍ콩[大豆]ㆍ팥[小豆] 등 아홉 가지 곡식이 있는데, 모든 곡식의 씨앗을 축축하게 젖은 습기 있는 땅에 심으면 씨앗이 잘 나지를 않고 나더라도 또한 곧 죽어버린다. 대체로 씨앗이 잡(雜)된 것은 움이 터서 나올 때 어느 것은 빨리 나오고 어느 것은 늦게 나와서 서로 고르지 못하며, 방아 찧을 때도 다시 이리저리 축나고 밥을 해도 잘 익지 않는다. 그러니 마땅히 마음을 써서 잘 간선(揀選)하여 이삭[穗]이 좋고 색깔이 순수한 것을 꼭 저장해 놓았다가 하종(下種)하기 20일 전에 꺼내어 햇볕에 널어 바짝 말린 다음, 말[馬]을 끌고 이삭을 쌓아놓은 곳으로 가서 두어 차례 먹도록 해서 그 말이 마구 밟고 지나간 것을 종자로 삼으면 자방(虸蚄) 등의 충해(蟲害)가 없어진다. 그리고 씨앗이 혹 습기에 젖어 상(傷)했을 경우는 충(蟲)이 생기는 것이니, 설즙(雪汁)에 담가야 한다. 설즙이란 곧 오곡(五穀)의 정기[精]로서 농작물을 한재(旱災)에 잘 견디게 하는 것이다. 보리 종자는 마땅히 창이자(蒼耳子 도꼬마리씨) 나 혹은 쑥[艾]을 가늘게 부순 다음 여기에 보리를 섞어 더운 날 쨍쨍한 햇볕 아래 바짝 말려서 와기(瓦器)에 잘 담아 놓았다가 시기에 맞춰 심으면 무성하게 성장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였다.
무릇 그해에 가장 적합한 곡식을 알려면, 베주머니[布囊]에다 여러 가지 씨앗을 모두 똑같은 양(量)으로 담아 동짓날[冬至日] 음지(陰地)에 묻어 놓았다가 동지 후 50일 만에 파서 저울로 달아보았을 때 가장 많이 불어난 것이 그해에 제일 적합한 곡식이다.
또 사광(師曠 춘추 시대 음악가(音樂家)로서 음악 소리를 듣고 길흉을 점쳤음)의 점술(占術)에 이르기를,
“오목(五木 매(梅)ㆍ도(桃)ㆍ유(柳)ㆍ상(桑)ㆍ삼(杉) 등 다섯 종류의 나무를 말함.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설(說)이 있다)은 오곡(五穀)의 먼저이니, 오곡을 알려면 먼저 오목 중에 올해 어느 나무가 가장 성(盛)했는가를 보아 그 나무에 해당한 곡식을 선택하여 내년(來年)에 많이 심는다면 만에 하나도 틀림없이 잘될 것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음양서(陰陽書)에 이르기를,
“벼[禾]는 대추나무[棗]나 혹은 버드나무[楊]에서 생겨나고, 보리[大麥]는 살구나무[杏]에서 생겨나고, 밀[小麥]은 복숭아나무[桃]에서 생겨나고, 벼[稻]는 유[柳]나 혹은 양(楊)에서 생겨나고, 메기장[黍]은 느릅나무[楡]에서 생겨나고, 콩[大豆]은 홰나무[槐]에서 생겨나고, 팥[小豆]은 오얏나무[李]에서 생겨나고, 참깨[麻]는 버드나무[楊]나 혹은 모형나무[荊]에서 생겨난다.”
하였다.
농서(農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곡식의 씨앗을 심는 일은 각기 차례가 있으니, 시기의 적합함을 잘 알아서 선후(先後)의 차례를 어기지 않는다면, 서로 이어서 생장하고 서로 힘입어 유리하게 사용될 것인데, 곡식이 어찌 결핍되는 일이 있겠는가. 1월(月)에는 삼[麻枲]을 심고, 2월에는 조[粟]를 심고, 참깨 중에는 조종(早種)과 만종(晩種) 두 종류가 있으니, 3월에는 이른 지마를 심고, 4월에는 콩을 심고, 5월 중순(中旬)에는 늦참깨를 심으며, 칠석(七夕) 후에는 무ㆍ배추 등을 심는다. 8월에는 추사(秋社 가을의 사일(社日) 즉 입추(立秋) 후 다섯 번째의 무일(戊日)) 이전에 즉시 보리를 심는데, 두 사일(社日 춘사와 추사. 춘사는 입춘(立春) 후 다섯 번째의 무일)을 경과하면 곧 수확이 배(倍)나 나고 보리알이 여물어서 단단하고 좋다. 이와 같이 곡식을 심는 데에 모두 차례가 있으니, 이는 천시(天時)를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릇 오곡은, 상순(上旬)에 심는 것은 온전한 수확을 거둘 수 있고, 중순(中旬)에 심는 것은 절반의 수확을 거둘 수 있고, 하순에 심는 것은 가장 수확량이 낮다. 또 지세(地勢)는 좋고 메마른 것이 있고, 산(山)과 늪[澤]은 적당하고 부적당한 것이 있으므로, 좋은 토지에는 만종(晩種)이 적합하고 메마른 토지에는 조종(早種)이 적합하다. 좋은 토지에는 만종만 적합할 뿐 아니라 조종도 또한 해(害)가 없지만, 메마른 토지에 만종을 하게 하면 반드시 결실(結實)을 하지 못한다.
산전(山田)에는 마땅히 내성이 강한 묘종을 심어 바람과 서리를 피해야 하고, 택전(澤田)에는 내성이 약한 묘종을 심어서 화실(華實)을 구해야 한다. 《효경원신계(孝經援神契)》에 이르기를 ‘황백토(黃白土)’에는 벼[禾]가 적합하고, 흑토(黑土)에는 보리가 적합하고, 적토(赤土)에는 조[粟]가 적합하고, 무논[汚泉]에는 도(稻)가 적합하다.’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토지의 적합한 곳을 따르는 것이다.
남방(南方)의 수도(水稻)는 그 이름이 일정하지 않는데 대강 세 종류가 있다. 일찍 익되 쌀알이 단단하고 자잘한 것은 선(秈)이라 하고, 늦게 익되 향기가 나고 윤기(潤氣)가 흐르는 것은 갱(粳)이라 하며, 조만(早晩)이 아주 알맞고 쌀알이 희면서 차진 것은 나(稬)라고 한다. 이 세 가지는 다 동시(同時)에 포종(布種)하는데, 해마다 종자(種子)를 거둘 때에 벼알이 잘 익어서 아주 단단하고 쭉정이도 없으며 여러 가지 종자가 뒤섞이지 않은 것을 취(取)하여 햇볕에 바짝 말린 다음 햇볕이 들지 않도록 그릇에 잘 저장해서 높고 시원한 다락 같은 데에 둔다. 그리하여 청명절(淸明節 24절기(節氣)의 하나로 양력 4월 5~6일경이다)에 이르면 그것을 꺼내어 동이[盆盎]에 물을 붓고 거기에 담가 놓는다. 그런 다음 3일 만에 건져내서 바구니 같은 데에 담아 놓았다가 날씨가 갤 때면 햇볕에 내서 바짝 말린 다음 하루에 세 번씩 물로 추겨 주고, 날씨가 음한(陰寒)할 때를 당하면 더운 물로 추기곤 하여 하얀 싹이 가지런히 터져나올 때를 기다려서 하종(下種)한다. 하종할 때는 반드시 먼저 비옥한 좋은 토지를 선택하여 논을 잘 갈아서 흙이 아주 부드러워지고 물이 맑아진 다음에 이미 싹이 튼 씨앗을 너무 조밀하거나 성글지 않게 정도에 맞도록 슬슬 뿌려 놓았다가, 모[秧]가 나서 자라면 소만(小滿 24절기의 하나)ㆍ망종(芒種) 무렵에 그 모를 쪄서 이종(移種)한다.
무릇 하종하는 법은, 만종(漫種)ㆍ누종(䅹種)ㆍ호종(瓠種)ㆍ구종(區種)의 구별이 있다. 만종이란, 말[斗]에다 곡식의 씨앗을 담아가지고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서 오른손으로 적당히 집어서 뿌리는데, 뿌리면서 걸어가곤 하여 약 3보(步)쯤 가서는 즉시 또 손으로 씨앗을 집어 뿌리곤 하되, 반드시 씨앗 배치(排置)를 골고루 해 놓으면 싹이 날 때에 드물고 총총한 것이 정도에 잘 맞게 될 것이다.
남방(南方)에는 참깨ㆍ보리ㆍ조ㆍ콩을 심을 때 점종(點種 하나씩 하나씩 호미로 파고 심는 것)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것은 호미로 김을 매기에 편리하게 하기 위함이다. 땅이 넓고 토지가 비옥한 데는 모름지기 만종(漫種)을 사용하여야 한다. 북방(北方)에는 누종(䅹種)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 법이 매우 자상하게 갖추어졌다. 《제민요술(齊民要術)》에 이르기를 ‘무릇 곡식을 심을 때는, 소[牛]를 아주 천천히 몰고 씨앗을 심는 사람은 소 뒤에 바삐 따라가면서 심되 두 발로는 두둑 밑을 밟아서 씨앗을 덮으니, 이는 흙이 충실하게 덮어져서 씨앗이 잘 나게 하려는 것이다.’ 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돈차(砘車)를 만들어 쟁기를 따라가면서 씨앗을 심은 다음 두둑을 따라 갈고 넘어가서, 근토(根土)가 서로 잘 부합되어 공력(功力)을 매우 빠르게 한다.
호종(瓠種)이란, 바가지[瓠]에 구멍을 뚫고 씨앗을 담아가지고 걸어가면서 씨앗을 총총하거나 드물지 않도록 골고루 뿌려 놓으면 쟁기가 따라서 거기에 흙을 덮고 넘어가니, 덮어진 흙이 깊으므로 비록 폭우(暴雨)가 쏟아진다 하더라도 흙이 밀리거나 패어나갈 염려가 없고, 아무리 더운 여름철에도 가뭄을 견디게 되며 호미질하기에도 편리하다. 구종(區種)의 법은, 무릇 산릉(山陵)의 근읍(近邑)으로서 매우 가파르게 경사진 언덕배기에 모두 이 구전의 법을 사용하여 거름을 주고 씨앗을 심은 다음 물을 주어 한재(旱災)에 대비한다.
오곡(五穀) 이외에 소채(蔬菜)도 또한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릇 소채를 심는 데는 반드시 먼저 그 씨앗을 햇볕에 잘 말려야 한다. 땅은 비옥한 것이 좋으니 땅이 메마르면 거름을 주고, 호미질은 자주 하는 것이 좋다. 가뭄이 들면 물을 대주며, 힘을 많이 들여놓으면 수확이 반드시 배나 될 것이다.
대저 소(蔬)는 휴종(畦種 두둑에 심는 것)이 적합하고, 나(蓏 초실(草實)의 총칭으로서오이 등을 가리킨다)는 구종(區種 밭고랑에 심는 것)이 적합하다. 휴지(畦地)는 길이가 1장(丈)쯤, 너비를 3척(尺)쯤으로 만드는데, 씨앗을 심기 수일 전에 묵은 흙을 괭이로 찍어 일으켜서 거기에 짚 태운 재[灰]를 섞어 태워서 충류(蟲類)를 제거함과 동시에 아울러 그것을 거름으로 사용하고, 심을 때 임박해서 다시 다른 거름을 더 넣어 둑[畦]을 만들어 심는다. 구종(區種)은 마치 구전(區田)의 법과 같이 하되, 고랑의 깊이와 너비를 1척(尺)쯤 파 놓았다가 심을 때에 임박해서는 잘 익은 거름을 흙에 골고루 섞어서 여기에 씨앗을 파묻는다. 그리하여 싹이 나오는 것을 기다려 그 싹이 드물고 총총한 것을 보아서 둘만한 것은 그대로 두고 버릴 것은 뽑아 버린다.
또 아종(芽種 싹으로 옮겨 심는 종자)이 있으니, 무릇 종자(種子)를 먼저 깨끗이 씻어서 바가지 안에 담고 젖은 수건으로 덮어 놓았다가, 3일 후에 싹이 나서 손가락 길이쯤 자라난 뒤에야 하종(下種)하는데, 먼저 만든 둑[畦] 안에 물을 축축하게 준 다음 아종(芽種)을 손에 쥐고 골고루 심는다. 그리고 다시 아주 세밀한 체[篩]에다 분토(糞土)를 쳐서 그것으로 위를 덮어 주어 쨍쨍한 햇볕을 방어한다. 이 법을 쓰면 채소가 나서 서로 가지런하게 생장하고 잡초도 나지 못하게 된다. 모든 채소에 벌레가 있을 때는 고삼근(苦參根)에다 석회수(石灰水)를 타서 뿌려주면 충이 즉시 다 죽는다. 진실로 이상과 같은 방법에 의하여 모종을 한다면 한 집안만 먹기에 넉넉할 뿐이 아니라 또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도 보탬이 될 것이다.
씨앗 심는 법을 계속하여 이 다음에도 열거하였으니, 이것을 업(業)으로 삼는 자는 각기 그 땅의 적합한 바에 따라서 심어야 한다. 무릇 오랫동안 묵은 전지(田地)를 일구었을 때는 거기에 있는 야초(野草)를 모두 태워 버리고 쟁기로 간 다음, 맨 첫해에 지마(芝麻)를 심어서 초목(草木)의 뿌리를 썩어 문드러지게 한 뒤에 오곡(五穀)을 심으면 황초(荒草)의 해(害)가 없게 된다. 대개 지마는 초목(草木)에 대해서 마치 주석[錫]과 오금(五金 금(金)ㆍ은(銀)ㆍ동(銅)ㆍ철(鐵)ㆍ석(錫))과의 사이에 있는 것 같아서 성질이 서로 제압하는 것이다.
춘경(春耕)은 늦게 한 것이 좋고, 추경(秋耕)은빨리 한 것이 좋다. 늦게 한 것이 좋다는 것은 봄 얼음이 점점 풀리고 지기(地氣)가 비로소 통하여 비록 단단하게 굳은 강토(强土)라도 쟁기질이나 호미질을 할 수 있기 때문이고, 빨리 한 것이 좋다는 것은 천기(天氣)가 차지 않을 때를 타서 따뜻한 기운을 땅 속에 집어 넣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세말(歲末)에 개간(開墾)을 하되 물이 언 때를 기다려서 하면 토맥(土脈)이 봄이 되면 쉽게 편평해지고 또 잡초도 나지 않는다. 토맥이 편평해진 뒤에는 반드시 햇볕에 바짝 말려 가지고 거기에 물을 넣어서 맑게 한 다음이라야 바야흐로 씨앗을 뿌릴 수 있으니, 이렇게 하면 씨앗이 흙 속에 깊이 빠져들지 않고 쉽게 난다. 하니(河泥)나 당니(塘泥)와 혹은 마병(麻餠 참깨묵)이나 두병(豆餠 콩깨 묵)을 한 이랑[畝]마다 30근(斤)을 넣어 재거름[灰糞]과 섞고, 혹은 면화자병(綿花子餠)을 한 이랑마다 2백 근씩을 넣되, 모심기 하루 전에 면병(綿餠)을 가지고 논에 골고루 흩어서 쟁기로 간 뒤에 모내기를 한다. 재거름은 각각 토질(土質)의 적성에 따라서 한다.
조도(早稻)는 청명(淸明) 이전에 씨앗을 뿌리고, 만도(晩稻)는 곡우(穀雨) 이전에 씨앗을 뿌리되, 종자를 싸가지고 하수(河水)에 옮겨다 놓고서 낮이면 물에 담가 두고 밤이면 건져내곤 하면 싹이 쉽게 난다. 그래도 만일 싹이 나지 않으면 풀을 두껍게 덮어 두었다가 싹이 2~3푼(分)쯤 자란 뒤에 열어서 풀을 걷어내고 뿌리의 잔털을 제거한 다음 무논에 뿌리는데, 이것을 뿌릴 때 틀림없이 청명(淸明) 절기이면 묘(苗)가 쉽게 튼튼해진다. 또한 반드시 아침 기후를 잘 보아서 하되, 청명 2~3일 후에 볏짚재[稻灰]를 위에 덮어주면 혹 뿌리에서 잡초가 나기 쉬우니, 반드시 시기를 타서 견분(犬糞 개똥)을 뿌려 주거나 혹은 재거름[灰糞]을 넣어서 북돋아 주어야 한다. 볍씨를 물에 담그는 일[浸稻種]
소만(小滿)과 망종(芒種) 절기를 전후하여 모내기를 하는데, 맨 처음 모를 뽑아 가지고 물로 뿌리를 깨끗이 씻어 진흙을 버리고 피[稗]가 있으면 즉시 가려낸 다음 조그맣게 한 묶음씩 묶는다. 이 모를 심을 때는 논을 써레로 잘 고른 다음, 대략 모 여섯 줄기를 한 포기로 하고 여섯 포기를 한 줄[行]로 삼아 심되, 포기와 줄을 마땅히 곧게 해서 김을 매기에 편리하도록 한다. 모를 얕게 꽂으면 발육(發育)이 쉽게 된다. 모내기[揷秧]
벼[稻]가 막 발근(發根)할 때에 벼 포기 사이로 쇠스랑질을 하여 가래 등의 잡초를 제거해 버리면 뒤에 논매기가 쉽고, 벼 뿌리의 잔털을 찾아서 잘라 주면 벼가 쉽게 왕성해지며, 벼의 곁뿌리를 절단해 주면 원뿌리가 곧장 밑으로 향하게 된다. 뿌리를 잘라 주는 일[揚稻]
벼의 뿌리를 잘라준 뒤에는 재거름이나 혹은 참깨묵ㆍ콩깨묵 가루를 논에 뿌려 넣고 잡초를 말끔히 매서 없앤다. 가을이 가까워졌을 때는 물을 쭉 빼내고서 논바닥이 빛이 나게 하는 것을 고도(槁稻 논을 말림)라고 하며, 논바닥의 흙이 말라서 갈라질 때를 기다려 다시 물을 넣어 적시는 것을 환수(還水)라고 하는데, 벼가 완전히 익은 다음에 물을 빼야 한다. 논을 매는 것[耘稻]
추수(秋收)할 때에 뒤섞이지 않은 좋은 이삭[穗]을 가려 뽑아서 바짝 말린 다음 체[篩]로 쳐서 피나 쭉정이를 깨끗이 제거하고 오쟁이에다 담되, 오쟁이마다 25근(斤), 혹은 3두(斗)씩을 담아 들보에 높이 달아 놓아서 쥐가 먹는 것을 방지한다.
이른벼를 베어내고는 반드시 논을 갈아서 호미로 둑을 짓고 사방으로 봇도랑[溝洫]을 내서 물을 빼고 하종(下種)한다. 하종한 다음에는 재거름으로 덮어주는데 속담(俗談)에 이르기를,
“재[灰] 없이는 보리를 심을 수 없다.”
하였으니, 반드시 재거름을 골고루 주는 것을 제일로 친다. 보리씨를 다룰 때는 모름지기 작맥(爵麥 귀리)이나 풀씨[草子] 같은 것을 잘 가려내고 쭉정이나 싸라기 같은 것을 까불어버린 다음 9월에 하종(下種)을 하는데, 하종하는 법은 대맥(大麥)과 똑같다. 만일 하종이 너무 늦어질 경우에는 까마귀가 날아들어서 쪼아먹을까 염려되는데, 까마귀가 쪼아먹어 버리면 씨가 드물어진다. 벼의 종자와 대맥ㆍ소맥의 종자를 말한 것. [稻種大麥小麥]
보리가 누렇게 익었을 때는 좋은 날씨를 포착하여 긴급하게 베어서 거두어야 한다. 대개 5월에 가장 바쁜 농사는 누에 치는 일과 보리 수확하는 일을 덮을 것이 없다. 속담에 이르기를,
“보리 수확하기를 마치 불을 끄듯이 하라.”
하였으니, 이 일이 더디게 되면 수재(水災)를 당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보리를 수확하는일[收麥]
삼복(三伏) 날씨에 바짝 잘 말려서 보리알이 뜨끈뜨끈한 채로 거두어 담되, 먼저 볏짚재를 항아리 밑에 깔고 보리를 담은 다음 다시 볏짚재로 덮어주면 좀벌레가 일지 않는다. 보리를 저장하는 일[藏麥]
입추(立秋)를 전후하여 혹 만종(漫種)하거나, 혹은 점종(點種)하거나, 혹은 구종(區種)으로 심되, 싹이 나온 즉시 드물거나 총총한 것을 정도에 알맞게 호미로 잘 골라 주고 또 거름을 준다. 싹이 이미 자랐을 때 호미로 풀을 말끔히 매주면 무성하게 잘 자라며, 종자가 총총하면 결실도 많다.
호미로 둑을 짓고 심은 자리를 발로 밟아가며 하종하는데, 이른 것은 3월에 하종했다가 4월에 먹을 수 있으니, 이를 매두(梅豆)라고 한다. 그 나머지는 모두 3~4월에 심는데, 토지가 너무 비옥한 것은 좋지 못하다. 잡초가 나면 제거해야 한다. [교맥(蕎麥)과 대두(大豆)]
3~4월에 심고서 호미로 잡초를 말끔히 제거한다. 이 콩은 장(醬)을 담글 수 있고 두부(豆腐)를 만들 수 있으며, 그 껍데기는 말[馬]을 먹이기에 좋다. [대두(大豆)]
4월에 심었다가 6월에 수확하고, 이때 씨를 재차 심어서 8월에 또 수확한다. 이는 1년에 두 번씩 익는 콩으로 두분(豆粉) 및 두아채(豆芽菜 콩나물)를 만들 수 있다. [녹두(菉豆)]
모든 콩들 가운데 오직 이 콩만이 오래 묵어도 좀먹지 않고 또 수확량도 많고 일찍 익는다. 이 콩 껍데기는 또한 팔 수도 있다. 8월 경에 혹 참깨와 섞어서 함께 심었다가 함께 거두기도 한다. [완두(豌豆)]
8월 초경에 심되 땅이 비옥하면 더욱 좋지 않다. 강남(江南)에서 이 콩을 많이 심는데 옹전(壅田) 및 논에 심는 것으로 홍두(紅豆)와 백두(白豆) 두 종류가 있다. 곡우(穀雨) 뒤에 심어서 6월에 씨앗을 거두고 재차 심어서 8월에 또 씨앗을 거둔다. 잠두(蠶豆)와 백두(白豆)
3월에 심어서 6월에 따는데, 더딘 것은 4월에 심는다. 이상의 종법(種法)은 모두 대두(大豆)와 같다. 잡초가 나면 반드시 자주 제거해 주고 드물거나 총총한 것을 정도에 알맞게 해 주어야 한다. 너무 빽빽하면 결실(結實)을 하지 못한다. [적두(赤豆)]
일명(一名)은 연리두(沿籬豆)라고 하는데, 청명일(淸明日)에 하종(下種)하고 재[灰]로 덮어주되, 싹잎[芽] 위에까지 덮어서는 안 된다. 여기저기 나누어 심고 시렁을 매어 덩굴을 끌어올린다. 열매를 수확하면 팔 수가 있는데, 백편두(白扁豆) 2분(分)에 밀가루 1승(升)을 섞으면 국수의 자료로도 좋다. [백편두(白扁豆)]
비옥한 토지가 제일 좋은데 심는 시기는 3월이 가장 좋다. 흑(黑)ㆍ백(白)ㆍ황(黃) 세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 흰 것이 기름이 많이 난다. 상반월(上半月 선보름)에 심으면 깍지[莢]가 많이 달린다. 4~5월에 심어도 좋은데, 밭이 걸어야 열매가 잘 익는다. 참깨[芝麻]
마땅히 비옥한 땅을 깊이 갈아서 3월에 심는데, 심고 나서는 잠사(蠶沙 누에 똥)나 혹은 두엄[腐草]ㆍ재거름[灰糞]ㆍ쇠똥[牛糞] 등으로 덮어주고, 둑마다 3척(尺) 너비로 지어서 물을 주기에 편리하도록 한다. 싹이 터져 나온 뒤에는 또 썩은 생강(生姜)을 걷어내버리고 시렁을 만들어 햇빛이 들지 않도록 거적으로 가리며, 자주 쇠똥을 주고 물을 준다. 8월에 뿌리를 수확하는데, 9~10월에는 마땅히 움[窖]을 깊이 파고 왕겨[糖粃]와 함께 따스한 곳에 묻어서 종자(種子)로 삼아야 한다. 화각(火閣)에 두어도 좋다. 생강을 심는 일[種姜]
그 종자(種子)는, 둥글면서 길고 끝이 흰 것을 가려서 남쪽 처마 밑에 구덩이를 판 다음 왕겨를 구덩이 바닥에 깔고서 종자를 거기에 넣고는 풀로 덮는다. 그랬다가 3월 경에 꺼내서 비옥한 땅에 묻어두었다가 싹이 서너 잎씩 터져나올 때를 기다려, 5월 경에 물과 가까운 비옥한 땅을 가려서 옮겨 심는다. 그 포기와 줄[行]은 벼를 심는 것과 똑같이 한다. 혹은 하니(河泥)를 쓰거나, 혹은 재거름ㆍ썩은 풀 등으로 두텁게 북돋아 주고 날이 가물면 물을 주며 김은 자주 매줄수록 좋다.
수우(水芋)와 한우(旱芋) 두 종류가 있는데, 수우는 극히 비옥한 땅에 심어야 하고, 한우는 마땅히 구종(區種 골을 치고 심는 것)해야 한다. 고랑은 마땅히 깊고 넓게 치고 콩대[豆萁]를 가져다 고랑 가운데 넣고서 발로 밟은 다음 종자를 그 위에 놓고는 다시 실하게 밟는다. 그리고는 자주 물을 준다. 토란을 심는 일[種芋]
다달이 심을 수도 있고, 다달이 먹을 수도 있는데, 땅은 비옥해야 하고, 흙은 거칠어야 하며, 물은 자주 주어야 하고, 종자는 드물게 심어야 하며, 종자가 빽빽하면 솎아내야 한다. 소채(蔬菜) 가운데 오직 이것이 가장 좋다. 무[蘿葍]
마땅히 삼복(三伏) 안에 땅을 갈아서 둑을 짓고 하나씩 손으로 쥐고 심어야 하는데, 땅이 비옥하면 뿌려서 심으며 물을 자주 주어야 한다. 호무[胡蘿葍]
7~8월 경에 하종(下種)했다가 9월에 둑을 짓고 나누어 심은 다음 자주 거름물[糞水]을 준다. 서풍(西風)이 부는 날이나 고초일(枯焦日)에는 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 갓[芥菜]ㆍ배추[白菜]ㆍ단무[甜菜]ㆍ오송채(烏松菜)ㆍ함채(葴菜)
녹두(菉豆)를 좋은 것으로 가려 이틀 밤을 물에 담가 불을 때를 기다려서 새 물로 일어서 말린 다음, 갈자리[蘆席]에 물을 뿌려 적셔서 땅에 깔고는 그 위에 이 녹두를 가져다 놓고서 젖은 거적으로 덮어두면 그 싹이 저절로 자란다. 콩나물[豆芽菜]
8월에 하종(下種)하여 싹이 자라기를 기다려서 둑을 치고 나누어 심고 내년(來年)에 잎을 따먹되, 수시로 물을 주면 중심(中心) 부분이 비대(肥大)해지면서 즉시 와순(萵筍 상추의 순)이 난다. 상추[萵苣]
2월에 하종하여 싹이 1치[寸]쯤 자랐을 때 호미로 구멍을 파고 나누어 심되, 한 구멍에 한 덩굴씩 심는다. 그리고는 매일 아침 일찍 맑은 거름물을 주되, 날이 가물면 아침저녁으로 거름물을 주며, 덩굴이 길게 뻗을 때에는 시렁을 만들어서 덩굴을 끌어올린다. 쥐참외[王瓜]
먼저 젖은 볏짚재[稻草灰]를 부드러운 진흙과 뒤섞어 땅 위에 깔고 호미로 둑을 짓고서 3월에 하종하되, 그 씨앗의 거리는 서로 1치쯤 떨어지게 심은 다음 젖은 재[灰]를 체로 쳐서 덮어주고는 물을 주고 또 거름물을 주기도 한다. 언제나 마르면 또 물을 주며 싹이 난 뒤에는 한낮에 재를 뿌려 주고 또 재를 가지고 뿌리의 곁을 북돋아 주고 맑은 거름물을 준다. 그리하여 3월 하순(下旬)에 둑을 치고 호미로 구멍을 파고 심되, 서로의 거리는 1척(尺) 2촌(寸)의 간격으로 하고, 한 구멍마다 반드시 짙은 거름물을 준다. 덩굴이 길게 뻗으면 시렁을 매어 끌어올린다. 이는 오이 심는 법과 모두 같다. [동과(東瓜)ㆍ남과(南瓜)]
먼저 종자를 가지고 네댓 조각으로 쪼갠 다음에 7월 그믐 날이 저문 뒤에 심되, 심을 때는 마땅히 습기(濕氣) 있는 땅에 심어야 한다. 심은 다음 재로 잘 덮어주고 물을 주면 잘 자란다. [호유(葫荽)]
8월 하순(下旬)에 뿌리의 잔털을 깨끗이 떼어 버리고 줄[行]은 듬성하게 하되 총총하게 심고 돼지똥과 오리똥을 왕겨에 섞어서 북돋아 준다. 또 사계총(四季蔥 네 계절마다 심는 파)이 있어 이는 아무 때나 심을 수 있는데, 이도 반드시 잔털을 떼어버리고 햇볕에 약간 말린 다음 심는 방법은 위와 같다. 파[蔥]
8월 초순(初旬)에 비옥한 땅에다 고랑을 치고는 2치[寸] 간격으로 한 포기씩 심고는 거름물을 준다. 혹은 우초혜(牛草鞋 외양간에 넣어 소에게 밟힌 짚신. 거름의 일종)를 오줌에 담가 씨앗을 그 안에 싸서 넣고 썩은 흙을 끼어서 심고는 그 위에 똥을 두껍게 덮어주면 마치 주발[碗]만큼 크게 자란다. 마늘[蒜]
2월 하순(下旬)에 종자를 뿌렸다가 9월에 나누어 심는다. 10월에는 볏짚재[稻草灰]를 3촌(寸)쯤 덮어주고 또 그 위에 흙으로 얇게 덮어주면 바람이 불어도 재가 날리지 않는다. 입춘(立春) 후에 싹이 재 위로 올라오면 싹을 베어 먹을 수 있다. 일기가 만일 따스할 경우는 2월 말경이면 싹이 자라서 어엿한 채소가 되므로 차례로 베어 먹는다. 이리하여 싹만 베어 먹고 뿌리는 그대로 남겨두면 그 뿌리로 나누어 심을 수 있으므로 다시는 씨앗으로 심을 필요가 없다. 부추[韭]
아무 때나 심을 수 있는데, 혹은 마늘과 같이 심기도 한다. 염교[薤]
청명(淸明) 때에 볍씨[稻種]와 함께 물에 담가 놓았다가 둑을 치고 심은 뒤 싹이 나서 2~3촌쯤 자란 다음에 옮겨 심되 마땅히 드물게 심고 거름물을 자주 준다. 혹은 포기마다 뿌리 밑에 유황(硫黃)을 조금씩 넣고 심으면 그 가지가 길고도 크고 맛이 달다. 가지[茄]
먼저 비옥한 땅에다 호미로 구덩이를 파고서, 산약(山藥) 맨 위에 흰 가시[芒刺]가 있는 것을 골라 죽도(竹刀)로 끊어서 약 2촌쯤 되게 하여 서로 밀쳐 뉘어서 심고 5치의 두께로 흙을 덮어주고 가물면 물을 준다. 재거름이나 참깨묵으로 북돋아 주어야 하고 인분(人糞)은 절대 금한다. 싹이 나면 대나무로 시렁을 매준다. 상강(霜降) 후에 종자를 수확하며, 또한 입동(立冬) 후에 수확하기도 하는데, 뿌리의 사방 주위를 넓고 깊게 파서 취하면 부서지지 않는다. 일명(一名) 황독(黃獨)이라고도 하는데 그 맛이 산약(山藥)과 같다. 녹두(菉豆)의 껍질, 참깨묵이나 혹은 소변(小便)에 담근 초혜(草鞋 짚신)에다 싸서 심고 사방 주위에 재를 뿌려 놓으면 충해(蟲害)가 없다.
이상의 소라(蔬蓏 : 채소와 풀열매)의 종류는 방법대로만 잘 심으면 유염(油鹽)의 용도에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산약(山藥)]
1월(月)에 뿌리를 옮겨다 다시 심고서, 5월에 두저(頭苧 맨처음 베어낸 모시)를 베어내고 7월에 이저(二苧)를 베어내고 9월에 삼저(三苧)를 베어내되 그 뿌리는 항상 그대로 두고 재거름으로 북돋아 주고 풀과 흙으로 덮어준다. 혹은 가지를 눌러 놓으면 내년(來年)에 모시가 되기도 한다. 혹은 다달이 심을 수 있다고 한다. [모시(苧麻)]
곡우(穀雨)를 전후하여, 먼저 종자(種子)를 물에 담가 놓았다가 적당한 시기에 걸러내어 거기에 재[灰]를 골고루 섞은 다음 매양 1척(尺) 거리에 구덩이 하나씩을 파고 종자 5~7개씩을 심는다. 그리고 싹이 나올 때를 기다려서 빽빽하여 대가 약한 것은 뽑아버리고 실하게 생긴 것 두세 포기만 남겨두고서 호미질을 자주 해주는 것이 좋다. 반드시 인분(人糞)을 주어야 하며, 혹 동유(桐油)를 거름물에 타서 주기도 한다. 그리고 항상 뾰족하게 올라가는 싹을 잘라버려서 위로 높이 치솟지 못하게 해야 한다. 싹이 높이 자라면 결실을 하지 못한다. [면화(綿花)]
8월 중에 호미로 둑을 치고 구덩이를 파서 하종(下種)하는데, 혹 재거름이나 혹은 닭똥으로 덮어주고 물을 주되 농분(濃糞)을 주어서는 안 된다. 다음해에 꽃이 피면 맑은 새벽에 그 꽃을 따서 약간 두드려서 황즙(黃汁)을 버리고는 맑은 물에 담가 하룻밤을 지낸 다음 바짝 비틀어 짜서 얄따란 떡을 만들어 가지고 햇볕에 말려서 수용(收用)하되, 습기 있는 장벽(墻壁)에는 가까이 두지 말아야 한다. [홍화(紅花)]
1월 중에 포대(布袋)에다 종자를 물에 담갔다가 싹이 나오면 땅에 뿌리고 재거름으로 덮어주고서 잎이 터져나올 때를 기다려서 거름물을 준다. 2치쯤 자라나면 줄[行]을 잡아 나누어 심고 이어 거름물을 주어 살린다.
5~6월이 되기 전에 거름물을 가져다가 잎사귀 위에 5~6차례 뿌리고 잎이 두꺼워지기를 기다려서 땅 위로 3치쯤을 베어낸다. 그리하여 그 경엽(梗葉 굳센 잎)을 항아리 안에 담그고 항아리의 대소(大小)를 보아서 청색(靑色)의 광회(礦灰)를 가져다가 다과(多寡)를 헤아려서 넣는다. 그리고는 반드시 일주야(一晝夜)를 담근 다음에 깨끗이 걸러서 광회를 빼고 나무로 두드려서 청색(靑色)이 나오는 것으로 기준을 삼아 말끔히 물을 빼내 버리면 이것이 두전(頭靛)이 된다. 그 땅에 그대로 남아 있는 원근(原根)에 재차 거름물을 뿌려주고 마치 앞에서의 방법과 같이 거두어 베어내서 항아리에 담갔다가 꺼내어 두드리면 이를 이전(二靛)이라 하는데, 또한 삼전(三靛)까지도 취할 수 있다. 그 걸러낸 찌꺼기는 밭에 넣어도 좋다. 지금 사람들은 복전(福靛)을 많이 심는데, 보리를 거둔 뒤에 그 땅에 심되, 큰비가 내려서 땅이 다져져서 씨앗이 나지 못할까 염려되면 소맥(小麥)의 까끄라기[芒]를 거름에 섞어서 덮어준다. 그 거름물을 뿌려주는 일은 또한 반드시 자주 해야 하며, 담갔다가 두드리는 것은 마치 앞에서의 방법과 같이 한다. [전(靛)]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1984, 김주희 정태현 이동희 임정기 이재수 정기태 공역)
'우리 선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균 45 - 엄처사전(嚴處士傳) (0) | 2021.11.24 |
---|---|
허균 44 - 한정록(閑情錄) 치농(治農) 2 (0) | 2021.11.20 |
허균 42 - 한정록(閑情錄) 섭생(攝生) 2 (0) | 2021.11.17 |
허균 41 - 한정록(閑情錄) 섭생(攝生) 1 (0) | 2021.11.13 |
허균 40 - 한정록(閑情錄) 청공(淸供) 2 (0) | 2021.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