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94 - 관가의 재물로 남을 돕는 것은 옳지 않다.

從心所欲 2021. 12. 7. 04:46

[경직도 12폭 병풍(耕織圖 十二幅屛風) 中 9폭, 면본채색, 병풍전체크기 137.2 x 406.8cm, 국립민속박물관]

 

● 율기(律己) 제6조 낙시(樂施) 3
내 녹봉에 남는 것이 있어야 남에게 베풀 수 있다. 관가의 재물을 빼내어 사인(私人)을 돌보아 주는 것은 예(禮)가 아니다.
(我廩有餘 方可施人 竊公貨以賙私人 非禮也)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율기(律己)의 제6조인 ‘낙시(樂施)’는 은혜 베풀기를 즐기는 일이다.

 

만약 공채(公債)가 실지로 많이 있으면 그 실정을 친척과 친구들에게 두루 알려,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와서 요구하게 해야 한다. 기분을 함부로 내다가 관고(官庫)를 탕진하여 아전들은 목을 매고 종들은 도망가며 그 해독이 온 경내에 미치게 되면 은혜 베푸는 일을 덕으로 삼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의 벗 윤외심(尹畏心)의 아우가 해남(海南)의 수령으로 있을 때 공채(公債)가 많았는데도 형에게 제수(祭需)를 보내 왔다. 윤외심은 보내 온 제수를 받지 않고 물리치며,

“아래로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아다가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일은 내가 차마 할 수 없다.”

하였으니, 이는 격언(格言)이다. 제사도 오히려 이러한데 하물며 다른 경우이랴.

▶윤외심(尹畏心) :조선 후기 문신인 윤영희(尹永僖, 1761 ~ ?). 외심(畏心)은 그의 자이다. 정조 때 문과에 급제했고, 경학(經學)에 조예가 깊었다.
▶제수(祭需) : 제사에 쓰이는 물품.

 

유구(劉球)는 형을 아주 극진히 섬겨 한집에서 같이 생활하였다. 그의 종제(從弟) 유빈(劉玭)이 보전지현(莆田知縣)이 되어 하포(夏布) 한 필을 보내오자 그날로 돌려보내면서 편지로 경계하였다.

“청백함을 지켜 조상을 빛내야 할 것이요, 이는 현제(賢弟)에게 바라는 바가 아니다.”

▶유구(劉球) : 명(明)나라 때의 관리.
▶하포(夏布) : 여름옷을 짓는데 쓰는 수삼의 실로 짠 모시 베.

 

광야(鄺埜)는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는데 섬서안찰부사(陝西按察副使)가 되어 명성이 있었다. 그 아버지의 가정교훈이 매우 엄하였다. 일찍이 녹봉으로 붉은 모포(毛布)를 사서 보내었더니 그 아버지가 크게 노하여,

“네가 한 지방의 형정(刑政)을 맡아보면서 원한을 씻어 주며 혜택을 남에게 끼치지는 못하고 이런 의롭지 못한 물건으로 나를 더럽히느냐?”

하고는 곧 봉하여 되돌려 보내며 글로 아들을 책망하였다.

▶광야(鄺埜) : 명(明)나라 때의 관리.

 

정선(鄭瑄)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유가 있은 뒤에 남을 구제하려 한다면 반드시 남을 구제할 날이 없을 것이며, 여가가 있은 뒤에 책을 읽으려 한다면 결코 책 읽을 기회가 없을 것이다.”

절용하는 것이 본래 원칙이기는 하지만, 만일 눈앞에 불쌍한 것을 보고 급히 구원해 주고 싶은 경우에는 또한 여유가 있고 없는 것을 헤아려서는 안 된다.

 

근래에 붕당(朋黨)에서 나온 한 가지 폐단 되는 습속이 있다. 무릇 당색(黨色)이 같은 자에게는 친면이 있거나 없거나 또는 그들이 달라거나 않거나를 불문하고 통틀어 같이 호수(戶數)를 계산하여 물건을 보내준다. 이것은 옛날에는 들어 보지 못한 일이요 또한 남촌(南村)에만 있는 일인데 이제는 이미 습속이 되었으니 마땅히 내 녹봉의 여력을 헤아려서 형편에 따라 해야 한다.

▶남촌(南村) : 조선시대의 청계천과 남산 사이. 소론 인물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보인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