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기(律己) 제6조 낙시(樂施) 4
관에서 받는 녹봉을 절약하여 그 지방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자기 농토의 수입으로 친척들을 돌보아 주면 원망이 없을 것이다.
(節其官俸 以還土民 散其家穡 以贍親戚 則無怨矣)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율기(律己)의 제6조인 ‘낙시(樂施)’는 은혜 베풀기를 즐기는 일이다.
사람들이 항상 말하기를,
“벼슬살이가 왜 즐거운가. 남는 것은 집안 살림이다.”
하는데, 벼슬사는 동안 전장(田莊)에서 수확되는 것은 집으로 가져가지 않고 저축하기도 하고 팔기도 하니, 이것이 남는 것으로 토지를 더욱 늘릴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병법(兵法)에,
“군량은 적에게서 마련하고 우리의 식량은 소비하지 않는다.”
하였는데, 이는 벼슬하는 자의 마음이 백성을 적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계산하는 것이다. 전장의 수입은 종족들에게 나누어 주고 관가의 재물은 소비하지 않는 것이 더욱 사리에 맞는 일이다.
이집(李?) - 율곡(栗谷)의 종손(從孫)이다. - 이 여러 차례 수령을 지냈는데 벼슬살이할 때는 서동생 구(?)에게 자기 대신 집안일을 맡도록 하였다. 흉년이 들면 이집은 편지를 보내어,
“집안에 저축된 것은 반드시 먼저 친족들에게 나누어 주고 여유가 있거든 종들이나 이웃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하였다. 어떤 사람이 기회를 타서 전택(田宅)을 더 늘리라고 권고하니, 이집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차마 저들을 굶주리게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하양(河陽)에서 돌아와서는 집 종이 올리는 장리(長利) 놓은 문서를 불살라 버리고 그 종을 매 때렸다.
이관(李慣)이 수령으로 있을 때마다 말하기를,
“온 가족이 녹봉으로 사는 것도 만족하다.”
하고, 녹봉으로는 아침저녁의 끼니를 마련하고 그 밖의 자신의 의복 등은 모두 자기 집에서 마련하게 하였다. 친척이나 친구 중에서 가난하여 도움을 청하면 이관은,
“내가 관에서 밥을 먹어 집에 곡식이 남았으니 이것 또한 벼슬살이로 말미암아 얻은 것이다.”
하고 필요에 따라 가져가도록 하였다.
▶이관(李慣) : 조선 문신(? ~ 1692). 본관은 연안(延安). |
고려 이무방(李茂方)은 공민왕(恭愍王) 초에 순창군(淳昌郡)의 수령이 되었는데, 그 지방 토산물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차고 있던 붓집이나 띠를 아전에게 주면서,
“친구의 사사로운 청을 공물(公物)로 응할 수 없으니 이것으로 그가 구하는 물건과 바꾸어 주라.”
하니, 청했던 사람이 부끄러워하며 가버렸다.
유관현(柳觀鉉)이 경성 판관(鏡城判官)으로 있을 적에 을해년(1755, 영조20)의 기근을 당하여 지성으로 백성들을 돌보아 구제해서 온 경내가 이에 힘입어 모두 살아나게 되었다. 하루는 진휼(賑恤)을 감독하는 사람이 청하기를,
“남도(南道)의 기근도 관북(關北)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성주(城主)께서는 이미 녹봉으로 백성들을 살리셨으니 은덕이 친족에게 미쳐야 합니다. 이미 진휼청(賑恤廳)에서 약간 따로 저축해 놓은 것이 있으니 급히 보내도록 하십시오.”
하니, 공이,
“녹봉도 백성들에게서 나온 것인데, 어찌 이것을 사재(私財)처럼 생각하고 먼저 가족을 돌보겠는가.”
하고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진휼청(賑恤廳) : 흉년에 곤궁한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 |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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