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

정도전 2 - 천답(天答)

從心所欲 2021. 12. 13. 06:49

이 편(篇)은 하늘이 마음[心]에게 대답한 말을 서술한 것이다.

하늘이 이치를 사람에게 부여할 수는 있으나,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착한 일을 하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이니, 사람이 하는 바가 그 도(道)를 잃는 일이 많이 있어 천지의 화기(和氣)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앙과 상서가 그 이치의 바른 것을 얻지 못하는 일이 있으니, 이것이 어찌 하늘의 상도(常道)이겠는가?

하늘은 곧 이(理)요 사람은 기(氣)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니, 이(理)는 본래 하는 것이 없고, 기(氣)가 용사(用事)하는 것이다. 하는 것이 없는 자는 고요하므로 그 도(道)가 더디고 항상[常]하나, 용사(用事)하는 자는 움직이므로 그 응(應)함이 빠르고 변하니, 재앙과 상서의 바르지 못한 것은 모두 기(氣)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다. 이(理)는 그 기수(氣數)의 변하는 것이 비록 그 이치의 항상[常]한 것을 이기나 이것은 특히 하늘이 정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기(氣)는 쇠하고 성함이 있으나 이(理)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오래 되어 하늘이 정함에 미쳐서는 이치가 반드시 그 항상함을 얻게 되고 기(氣)도 따라 바루어지는 것이니, 선을 복주고 악을 벌주는 이치가 어찌 민멸(泯滅)되겠는가?

▶민멸(泯滅) : 형적(形跡)이 아주 없어짐.

 

제(帝)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아! 나[予]의 명령을 너[汝]는 들을지어다. 내[予]가 너[汝]에게 덕(德)을 주어 만물 중에서 가장 영(靈)하며, 나와 더불어 함께 서서 삼재(三才)의 명칭을 얻었도다.

【제(帝)는 상제(上帝)요, 희희(噫嘻)는 탄식하는 소리이며, 나[予]는 상제(上帝)가 자기를 가리킨 것이요, 너[汝]는 마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덕(德)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이니 하늘이 명한 바이며 사람이 얻은 바요, 삼재(三才)는 천ㆍ지ㆍ인(天地人)이다.

이 장(章)은 가설적으로 상제(上帝)가 마음[心]에게 대답한 말이다.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予]가 명하는 바가 있으니 오직 너[汝]는 들을지어다. 내[予]가 이미 너[汝]에게 건순(健順)과 오상(五常)의 이치를 주었으니 네[汝]가 얻어 덕(德)으로 삼아 방촌(方寸) 사이가 허령(虛靈)하고 어둡지 않아서 온갖 이치를 갖추어 만 가지 일에 응하므로 만물에 있어 가장 영(靈)한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능히 나와 땅과 아울러 서서 삼재(三才)의 명칭을 얻은 것이다.”

하였다.】

 

또한 일용(日用)의 사이에 있어 양양(洋洋)히 개도(開導)하고 이끌어 너[爾]로 하여금 그 갈 바에 어둡지 않게 하였으니, 내[予]가 너[汝]에게 덕(德)되게 한 바가 한 가지뿐이 아닌데 너[汝]는 이를 생각지 않고 스스로 명을 저버리는도다.

【양양(洋洋)은 유동(流動)하여 충만한 뜻이요, 너[爾]는 역시 마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는 위를 이어 말한 것이다. ‘인륜(人倫)의 일용(日用) 사이에 천명(天命)이 유행(流行)하여 나타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네[汝]가 부자(父子)에 있어서는 마땅히 친할 것이고, 군신(君臣)에 있어서는 마땅히 공경할 것이며, 한 가지 일, 한 물건의 작은 것이나 일동일정(一動一靜)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기 마땅히 행할 도리가 있어 유동충만(流動充滿)하여 조금도 결함됨이 없으니 이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가? 모두 상제(上帝)가 이 만민을 개도(開導)하고 이끌어 선으로 나가고 악을 피하여 그 따라갈 바에 어둡지 않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상제가 너에게 덕(德)되게 한 바가 한둘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인데, 너[爾]는 한 번도 생각지 않고 선을 배반하며 악을 좇아 스스로 명을 끊어버리는가?’ 하였다.】

 

풍우(風雨)와 한서(寒暑)는 나[吾]의 기(氣)요, 해와 달은 나[吾]의 눈이다. 네[汝]가 한 번이라도 조그마한 실수가 있으면 나[吾]의 기(氣)가 어그러지고 나의 눈이 가려지는 것이니, 네가 나를 병되게 한 것이 또한 많았는데, 어찌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문득 나를 책망하는가.

【나[吾]는 또한 상제가 스스로 자기를 가리킨 것이다.

풍우와 한서는 하늘의 기(氣)가 되고, 해와 달은 하늘의 눈이 되며,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하는 일이 한 번 조금이라도 그 바른 도리를 잃으면 하늘의 풍우와 한서가 반드시 어그러지게 되고, 해와 달이 반드시 가려지는 데 이를 것이니, 이는 사람이 천지를 병들게 하는 바가 또한 많다고 할 것이다.

대개 천지만물이 본래 동일체(同一體)이므로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도 바르고, 사람의 기(氣)가 순(順)하면 천지의 기도 또한 순하니, 이는 천지에 재앙과 상서(祥瑞)가 진실로 인사(人事)의 잘하고 잘못하는 데 말미암은 것이다.

인사(人事)가 옳으면 재앙과 상서가 그 항상한[常] 것을 따를 것이요, 인사에 실수가 있으면 재앙과 상서가 그 바른 것을 잃는 것이다. 어찌 이것으로써 스스로 그 몸을 반성하여 너[汝]의 당연히 할 바를 닦지 않고 문득 하늘을 책망하는가?】

 

또 나[吾]의 큼으로써 덮어 주기는 하나 싣지는 못하고, 낳기는 하나 성장(成長)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한서(寒暑)와 재상(災祥)이 오히려 인정에 한(恨)됨이 있거든 난들 그에 대하여 어찌하겠는가? 너는 그 바른 것을 지켜서 나[吾]의 정하는 때를 기다릴지어다.

【대저, 하늘의 체(體)가 지극히 커서 덮지 않는 바가 없으나 싣지는 못하고, 낳지 않는 바가 없으나 성장시키지는 못하는 것이다. 하늘은 덮는 것을 맡고 땅은 싣는 것을 맡았으며, 하늘은 낳는 것을 주로 하고 땅은 성장시키는 것을 주로 하였으니 천지도 진실로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 추워야 하는데 덥고 당연히 더워야 하는데 추우며, 재앙이나 상서를 내리는 데에도 그 바른 것을 얻지 못함이 있으니, 이는 인정(人情)이 천지에 대하여 오히려 한(恨)을 두는 것이다.

대개 천지가 만물에 대하여 아무 생각 없이 화(化)하여 이루어져 그 이치의 자연한 것을 베풀 뿐이요, 그 기(氣)의 혹 어긋나는 것을 이기지는 못하는 것이니, 사람의 하는 바가 저 같음에야 비록 하늘인들 어찌할 수 있으랴!

하늘이 마음을 두어 하는 바가 있는 것은 아니니, 너[汝]는 마땅히 그 이치의 바른 것을 굳게 지켜 하늘의 정하는 것을 기다릴 따름이니, 이른바 ‘요수(夭壽)에 의심치 아니하여 몸을 닦아 기다린다.’는 것이다.

신포서(申包胥)가 말하기를,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고 하늘이 정하면 또 능히 사람을 이긴다.”

하였으니, 하늘과 사람이 비록 서로 이길 수 있으나, 사람이 하늘을 이기는 것은 잠시의 일이요 항상(恒常)한 일은 아니며, 하늘이 사람을 이기는 것은 오래 될수록 더욱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란한 자는 반드시 그 나중을 보존하지 못하고 착한 자는 반드시 후일에 경사가 있는 것이다.

대개 한때의 영욕(榮辱)과 화복(禍福)이 밖으로부터 이르는 것은 모두 근심할 것이 없고 마땅히 착한 일 하는 데에 힘써 하늘에 죄를 얻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서(序)

도(道)가 밝지 못한 것은 이단(異端)이 해롭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유자(儒者)가 선현(先賢)의 유훈(遺訓)에 힘입어 이단의 폐막(弊瘼)을 알고 있으나, 이따금 그 도를 굳게 지키지 못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또 공리(功利)의 사(私)에 이끌린 까닭이다. 그러므로 고원(高遠)해서 허공에 빠지지 않으면 비천(卑淺)에 흐르게 되니, 이는 도(道)가 항상 밝지 못하고 행하여지지 못하는 까닭이며, 이단의 무리들이 또한 비근하다고 지적하여 배척하는 것이다.

또 그 선악의 보응에 있어서도 또한 참치(參差)하여 가지런하지 않은 것이 많으므로 착한 자는 게을러지고 악한 자는 방사(放肆)하여 온 세상이 무무(貿貿)하게 이해의 가운데에 빠져 의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석씨(釋氏)의 무리가 또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설을 퍼뜨려 사람들이 더욱 유혹된 것이다.

 

아아! 도(道)의 밝지 못함이 오래 되었으니, 사람들이 유혹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기는 어려운 일이다. 삼봉(三峯) 선생이 일찍이 말하기를,

“노불(老佛)의 간특한 해로움을 분변하여 백세(百世)토록 어두웠던 도학(道學)을 열며, 시속(時俗)의 공리설(功利說)을 꺾어 도의(道誼)의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한다.”

하였다.

그 심기리(心氣理) 3편(篇)은 우리의 도(道)와 이단(異端)의 바르고 편벽됨을 거의 남김없이 논하였는데, 내가 이미 그 뜻을 훈석(訓釋)하였다.

선생이 또 일찍이 심문(心問)ㆍ천답(天答) 2편(篇)을 지어 하늘과 사람의 선악ㆍ보응의 더디고 빠른 이치를 밝혀 사람에게 바른 도리를 지킬 것을 권면(勸勉)하였다. 그 말이 지극히 정밀하고 절실하여 공리(功利)에 골몰한 자가 볼 것 같으면 그 유혹된 것을 제거하여 그 병에 약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또 훈석을 가하여 3편 끝에 붙인다.

대저 이단을 물리친 후에 우리의 도(道)를 밝힐 수 있는 것이며, 공리를 버린 뒤에 우리의 도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니, 이는 선생께서 지은 작품이 세교(世敎)에 관련이 되는바 매우 중하고 내가 오늘 편차(編次)하는 뜻인 것이니, 이 글을 보는 자는 소홀함이 없기 바란다.

갑술년(甲戌年) 6월 양촌(陽村) 권근(權近)은 서(序)한다.

▶갑술년(甲戌年) : 1394년, 태조3년.

 

 

[<필자미상 불화(筆者未詳佛畵)> 中 확탕지옥(鑊湯地獄), 견본채색. 156.1 x 113cm, 국립중앙박물관]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1977, 조준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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