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

정도전 4 - 심기리편 기난심

從心所欲 2021. 12. 22. 07:21

기난심(氣難心)은 기(氣)가 심(心)을 비난한 것이다.

태고 이전부터 존재한 기(氣)는 만물을 낳고 계절을 운행시키는 존재로서 마음에 앞서 있어왔던 존재다. 따라서 기가 있었기 때문에 마음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불완전한 지식으로 마음에 개입하면서 마음이 망동(妄動)하여 고요함과 평안함을 잃게 되었으니 망령됨을 그치고 도(道)의 온전함에 머무르라는 내용이다.

 

【이 편(篇)은 주로 노씨(老氏)의 양기(養氣)하는 법을 말하여 석씨(釋氏)를 비난한 것이다. 그러므로 편(篇) 가운데 노씨(老氏)의 말을 많이 썼다.
기(氣)라는 것은 하늘이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으로써 만물을 화생(化生)함에 사람도 이를 얻어 생긴 것이다. 그러나 기(氣)는 형이하(形而下)인 것으로, 반드시 형이상(形而上)의 이(理)가 있은 후에 이 기(氣)가 있는 것이니, 기(氣)를 말하면서 이(理)를 말하지 아니하면, 이는 그 끝만 알고 그 근본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내[予]가 수고(邃古)로부터 있어 요요(窈窈) 명명(冥冥)한지라, 천진(天眞)하고 자연(自然)하여 무엇으로 이름할 수 없도다.
【나[予]라는 것은 기(氣)가 스스로 자기를 가리킨 것이요, 수고는 상고(上古)를 말한 것이다.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혼연(渾然)히 이룬 물건이 있어 천지(天地)에 앞서 생겼다.”
하고, 또 말하기를,
“요(窈)하고 명(冥)함이여! 그 가운데 정기(精氣)가 있으니, 그 정기가 매우 참되도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하늘은 도(道)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았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내 그 이름은 알지 못하고 자(字)를 도(道)라 하였다.”
하였으니, 노자의 말은 모두 기(氣)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章)에 이를 근본 하여 말하기를, 기(氣)가 천지만물보다 앞서 있어서, 요명(窈冥)하고 황홀(恍惚)하며 자연스럽고 천진(天眞)하여 무엇이라 이름 할 수 없는 것이다.】
▶수고(邃古) : 아득한 옛날.
▶요요(窈窈) 명명(冥冥) : 깊고 고요하며 드러나지 않음.

만물의 시초에 무엇을 자뢰(資賴)하여 생겼던가? 내가 엉기고 내가 모여 형상이 되고 정기가 되었으니, 내가 만약 없었다면 심(心)이 어찌 홀로 영(靈)할 수 있으랴!
【장자(莊子)가 말하기를,
“사람이 생긴 것은 기(氣)가 모인 것이다.”
하였다. 이를 근본 하여 말하기를, 만물(萬物)이 생기는 그 시초(始初)에 무슨 물건을 자뢰하여 생성(生成)하였을까? 그 자뢰하여 생기는 바는 기(氣)가 아니냐?
오직 기가 묘하게 합하고 엉겨 모인 후에 그 형체가 이루어지고 그 정기(精氣)가 생기는 것이니, 만약 기가 모이지 않으면 마음이 비록 지극히 영(靈)하다 하여도 또한 장차 어느 곳에 붙어 있으랴!】
▶자뢰(資賴) : 밑천을 삼음.

슬프다! 너[爾]의 앎이 있는 것이 모든 재앙의 싹이다. 미치지 못할 바를 생각하고 이루지 못할 바를 도모하여 이익을 꾀하고 손해를 계교하며, 욕됨을 근심하고 영화(榮華)를 흠모하여 얼음같이 차고 불같이 뜨거워 주야(晝夜)로 분주하니, 정기(精氣)가 날로 흔들려 신(神)이 편안함을 얻을 수 없도다.
【슬프다[嗟]는 것은 탄식함이요, 너[爾]는 심(心)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 장(章)은 심(心)이 기(氣)를 해치는 일을 말한 것이다. 탄식하여 말하기를,
“심(心)이 지각(知覺)이 있는 것이 이에 모든 재앙의 싹이 되는 것이다.
그 미치지 못할 바를 생각하고 그 이루지 못할 바를 생각하며, 그 이익을 꾀하여 얻고자 하고 그 손해를 계교하여 피하고자 하며, 그 욕됨을 근심하여 빠질까 두려워하고 그 영화를 흠모하여 요행을 바라, 두려워함에는 얼음같이 차고 노여워함에는 불같이 뜨거워, 천만 가지 실마리가 가슴 가운데 엇갈린지라, 낮과 밤에 쉬지 않고 분주하여 그 정신(精神)이 날로 흔들리고 점차 소모되어 편안함을 얻지 못하게 한다.”
하였다.】

내[我]가 망령되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內]이 이에 고요하고 전일(專一)하여, 나무가 마른 것 같고 재[灰]가 타지 않는 것 같아, 생각하는 것도 없고 하는 일도 없어 도(道)의 온전함을 본받을 것이니, 너[爾]의 지각이 아무리 천착(穿鑿)한들 나[我]의 하늘을 어찌 해롭게 할 수 있으랴!
▶천착(穿鑿) : 학문을 깊이 연구함.
【이것은 양기(養氣)하는 공(功)을 말한 것이다.
장자(莊子)가 말하기를,
“형체[形]는 진실로 마른 나무와 같아야 하며, 마음은 진실로 죽은 재와 같아야 한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생각함이 없고 꾀함이 없어야 비로소 도(道)를 안다.”
하였다.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도는 항상 하는 바가 없으면서도 하지 않음이 없다.”
하였으니, 이 장(章)은 이것을 근본 하여 말한 것이다.
앞 장(章)을 이어 말하되,
“마음의 이욕(利欲)이 아무리 분잡(紛雜)하여도 기(氣)가 그 기르는 바를 얻어 망령되이 움직이지 아니하여 밖에서 제어하면, 그 안도 또한 안정하고 전일하여 나무가 말라 다시 꽃피지 않는 것과 같고, 재가 죽어 다시 불붙지 않는 것과 같이 마음이 생각하는 바가 없고 몸이 경영하는 바가 없어, 그 도의 충막(沖漠)하고 순전(純全)한 묘리(妙理)를 본받으니, 마음의 지각이 비록 천착한다 하나 나[我]의 자연의 하늘을 어찌 해롭게 할 것인가?”
하니, 여기의 이른바 도(道)는 기(氣)를 가리켜 말한 것이요, 무려무위 체도지전(無慮無爲體道之全)이라는 여덟 글자는 또한 노자의 학문에 가장 긴요한 뜻이다.】
▶무려무위 체도지전(無慮無爲體道之全) : 생각함이 없고 꾀함이 없어야 도를 온전히 체득할 수 있다.

 

[<필자미상 불화(筆者未詳佛畵)> 中 도산지옥((刀山地獄), 견본채색. 156.1 x 113cm, 국립중앙박물관]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1977, 조준하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