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리편(心氣理篇)》은 <심난기(心難氣)>, <기난심(氣難心)>, <이유심기(理諭心氣)> 3편(篇)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난기(心難氣)는 마음[心]이 기[氣]를 비난한 것이고, 기난심(氣難心)은 기가 마음을 비난한 것이며, 이유심기(理諭心氣)는 이(理)가 마음과 기의 잘못을 깨우쳐 준 것이다. 여기서 심(心), 기(氣), 이(理)는 각각 불교, 도교, 성리학을 상징한다. 역시나 정도전의 글에 권근이 주를 달았다.
세편의 글을 통하여 정도전이 개진하는 바는 “인간의 의미는 이(理)가 실현하는 가치 혹은 도덕성에 있으며, 그 가치의 중심은 인(仁)이라는 인간성과 의(義)로 대변되는 사회성이다. 그런데 불교와 노장은 이 핵심가치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것이다, 노장의 기(氣)는 신체의 자연성을 숭상하고 생명의 연장을 꾀할 뿐이고, 불교의 마음[心]은 사물의 압도적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외부의 통로를 닫고, 자기 속에 유폐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理)가 살아있어야 진정 마음[心]이 고요와 밝음을 유지할 것이고, 이(理)를 길러야 기(氣)가 넓고 큰 기상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심난기(心難氣)>는 불교의 입장에서 도교를 비판한 글이다.
【이 편(篇)은 주로 석씨(釋氏)의 마음 닦는 취지를 말하여 노씨(老氏)를 비난한 것이다. 그러므로 편(篇) 가운데 석씨(釋氏)의 말을 많이 썼다. 심(心)은 이(理)와 기(氣)를 합하여 신명(神明)의 집이 된 것이니, 주자(朱子)의 이른바,
“허령(虛靈)하여 어둡지 않아 모든 이치가 갖추어져 만 가지 일에 응한다.”
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오직 허(虛)함으로 모든 이치가 갖추어져 있으며, 오직 영(靈)하기 때문에 만 가지 일에 응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이치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그 허(虛)한 것은 막연하게 비어 있을 따름이며, 그 영(靈)한 것은 분잡(紛雜)하게 유주(流注)할 뿐이요, 비록 만 가지 일에 응(應)한다 하더라도 옳고 그른 것이 착란(錯亂)될 것이니 어찌 족히 신명의 집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심(心)을 말하면서 이(理)를 말하지 않으면, 이는 그 집만 알고 그 주인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석씨(釋氏) : 석가모니의 불가(佛家).
▶노씨(老氏) : 노자(老子)의 도가(道家).
온갖 색상(色相)들은 그 종류가 매우 많으나, 오직 내[我]가 가장 영(靈)하여 그 가운데에 홀로 서 있도다.
【온갖 색상[凡所有相]이라는 말은 《금강경(金剛經)》을 인용한 것이다. 분총(紛總)이란 많은 모양이요, 나[我]란 마음이 스스로 자기를 가리킨 것이요, 영(靈)이란 즉 이른바 허령(虛靈)이라는 것이다. 이 두 구절(句節)은 곧 혜능(慧能)의 이른바, ‘한 물건이 있으니 길이 신령스러워 한 장령(長靈)의 물건이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었다.’는 것이니, 구담(瞿曇)의 이른바, ‘천상천하에 오직 내[我 심(心)]가 홀로 높다.’는 뜻이다.
이는 심(心)이 스스로 말하기를,
“무릇 모든 소리와 빛과 형상이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이 그 종류가 매우 많으나, 오직 내가 가장 신령하여 온갖 유가 많은 가운데에 독특하게 서 있다.”
한 것이다.】
▶혜능(慧能) : 중국 선종(禪宗)의 제6조(祖)이자 남종선(南宗禪)의 시조인 육조대사(六祖大師).
▶장령(長靈) : 가장 뛰어나 영묘한 능력을 지닌 것.
▶구담(瞿曇) : 성도(成道)하기 전의 석가.
나[我]의 체(體)가 고요하여 거울이 빈 것과 같으니, 인연을 따르면서도 변하지 않고, 변화에 응하여 다함이 없도다.
【심(心)의 본체가 적연(寂然)하여 조짐[朕]이 없어 그 신령한 지혜가 어둡지 않다. 비유컨대 거울의 성품이 본래 비어 있으나 그 밝음은 비추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대개 인연을 따른다는 것은 심(心)에는 신령[靈]이요, 거울에는 밝음이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心)에는 고요함이요, 거울에는 빈[空]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변(萬變)이 감응하여도 다함이 없는 것이니, 곧 《금강경》의 이른바, ‘감응함이 머무르는 바가 없으되 마음은 그대로 있다.’는 뜻이다.
대개 밖으로는 비록 변화에 응하는 자취가 있으나 안으로는 막연히 한 가지 생각의 움직임도 없는 것이니 이는 석씨(釋氏) 학문의 제일가는 의리이다.】
▶적연(寂然) : 마음이 고요하고 맑은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열반의 상태.
너[爾]의 사대(四大)가 서로 합하여 형체를 이룸으로 말미암아 눈이 있어 빛을 보고자 하며 귀가 있어 소리를 듣고자 하는지라, 선악(善惡)의 환멸(幻滅)이 그림자를 인연(因緣)하여 생겨서, 나[我, 심(心)을 말함.]를 공격하고 나를 해롭게 하니 내가 편안함을 얻지 못하도다.
【너[爾]는 기(氣)를 가리켜 말한 것이요, 사대(四大)는 또한 석씨(釋氏)의 말을 쓴 것이니, 이른바 흙ㆍ물ㆍ불ㆍ바람이다. 《원각경(圓覺經)》에 이르기를,
“나의 지금 이 몸은 사대(四大)가 화합한 것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육진(六塵)이 그림자를 인연하여 스스로 심성(心性)이 되었다.”
고 하였다.
이는 앞의 장(章)을 이어 말한 것이니, 마음의 본체(本體)가 원래 적연(寂然)할 뿐인데, 다만 너[爾, 기(氣)를 말함.]의 사대(四大)의 기(氣)가 가탁(假托)하여 엉기어 합하여 형상이 있는 형체를 이룸으로 말미암아 이에 눈이 있어 아름다운 빛을 보고자 하고 귀가 있어 좋은 소리를 듣고자 하며, 코와 혀[舌]와 몸과 뜻이 또한 각각 욕심이 있어, 순하면 착한 것이 되고 거스르면 악한 것이 되니, 이것이 모두 환(幻)에서 나온 것으로 진실한 것이 아니요, 곧 외부의 그림자를 인연하여 서로 이어 생긴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我]의 고요한 본체를 해쳐서 분요(紛擾)하고 착란(錯亂)하여 나로 하여금 편치 못하게 하는 것이다.】
▶육진(六塵) : 심성을 더럽히는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여섯 가지 경계[六境]. 육경(六境)이 육근(六根)을 통하여 몸속에 들어가서 사람의 정심(淨心)을 더럽히고, 진성(眞性)을 덮어 흐리게 하므로 진(塵)이라 한다.
상(相)을 끊고 체(體)에서 떠나, 생각도 없고 정(情)도 잊어버려, 밝으면서 항상 고요하고 고요하면서 항상 깨달으면, 네[爾]가 비록 동(動)하려 하나 어찌 나의 밝은 것을 가릴 수 있으랴!
【《금강경》에 이르기를, “온갖 색상(色相)은 모두 허망(虛妄)한 것이다.”
하였고, 혜능은 말하기를,
“일체의 선악을 모두 생각지 말고 그 후에 무념(無念)과 망정(忘情)과 식망(息妄)과 임성(任性)의 4종(宗)으로 나눌 것이다.”
하였으니, 이것은 마음 닦는 공부를 말한 것이다.
상(相)은 그 형상(形相)을 말한 것이요, 체(體)는 그 이체(理體)를 말한 것이다.
모든 형상(形相)은 형상이 아니니 마땅히 끊어 버릴 것이요, 이 체(體)도 체가 아니니 마땅히 떠나 버려야 될 것이다. 내[我]가 만일 항상 스스로 고요하여 한 가지 생각도 동함이 없고, 항시 그 일어나고 사라지는 정(情)을 잊어버리게 되면, 망령된 인연이 이미 끊어지고 진공(眞空)이 자연 나타나 비록 감동되어 비추어도 본체는 항상 고요할 것이요, 비록 고요하여도 안으로 항상 깨달을 것이다.
대개 비추면서 항상 고요하다는 것은 어지러운 생각이 아니며, 고요하면서 항상 깨달으면 혼미(昏迷)한 것이 아니니, 능히 이와 같이 되면 사대(四大)의 기(氣)와 육진(六塵)의 욕심이 비록 틈을 타서 나[我]를 요동하려 한들 어찌 내[我] 본체의 밝은 것을 가리어 덮을 수 있으랴.
이 장(章)은 마음 닦는 요점을 말한 것이니 간략하고도 곡진하다.】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1977, 조준하 역)
'우리 선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도전 5 - 심기리편 이유심기 (0) | 2021.12.26 |
---|---|
정도전 4 - 심기리편 기난심 (0) | 2021.12.22 |
정도전 2 - 천답(天答) (0) | 2021.12.13 |
정도전 1 - 심문(心問) (0) | 2021.12.12 |
허균 49 - 장산인전(張山人傳) (0) | 2021.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