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

정도전 1 - 심문(心問)

從心所欲 2021. 12. 12. 08:09

정도전은 고려 말의 유학자 중에 가장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였던 인물이다. 그는 『주례』를 바탕으로 하는 국가 체제를 확립하고 성리학적 이념으로 정치를 운영하는 새로운 왕조 건설을 꿈꿨다. 성리학을 통하여 고려 내내 지속되어온 사회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정도전은 고려의 국가 이념이라 할 불교의 폐단과 허황됨을 지적하고 비판하였다.

 

정도전의 글 가운데 흔히 <심문천답(心問天答)>, <심기리편(心氣理篇)>, 『불씨잡변(佛氏雜辨)』은 정도전의 대표적인 불교비판 저술로 꼽히고 있다. 그 가운데 <심문천답(心問天答篇)>은 정도전이 고려 우왕 때인 1375년 나주의 회진(會津)에 유배가 있을 때 지은 것이다. <심문천답(心問天答)>은 마음이 묻는다는 ‘심문(心問)’과 그에 대한 하늘의 대답인 ‘천답(天答)’으로 나뉜 두 개의 글이다.

 

정도전은 오늘날 현대인들도 늘 궁금해 하는 하늘의 부조리함, 즉 “왜 착한 사람에게 화가 오고 악한 사람에게 복이 오는가?”에 대하여 질문했고 이어서 그에 대한 하늘의 대답을 적었다.

정도전의 글에 불교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은 없다. 정작 이 글을 불교 비판으로 보게 만든 것은 오히려 훨씬 뒤인 1394년에 권근(權近)이 이 글에 단 주석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편(篇)은 마음[心]이 하늘[天]에게 물은 말을 서술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의 이치[理]는 바로 상제(上帝)의 명(命)한 바이나, 그 의리(義理)의 공변된 것이 혹은 물욕(物欲)의 가린 바가 되고, 그 선악(善惡)의 보응(報應)이 또한 전도된 것이 있어 선하여도 혹 화(禍)를 얻고 악(惡)하여도 혹 복(福)을 얻어, 선을 복주고 악을 벌주는 이치가 분명하지 못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착한 것을 좇고 악한 것을 버릴 줄 알지 못하고 오직 공리(功利)에 나가기만 힘쓸 뿐이니, 이는 사람이 하늘에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마음의 주재(主宰)에 의탁하여 상제(上帝)에게 물어 질정(質正)하는 것이다.

을묘년(乙卯年) 늦겨울 14일[기망(幾望)] 저녁에 하늘은 맑고 밝은데 온갖 동물들은 휴식에 들어갔다.
【늦겨울은 음(陰)이 다하여 심한 추위로 기승을 부리고 봄 양기(陽氣)가 생기려는 때요, 기망(幾望)은 달빛이 점점 가득하여 밝은 것이 다시 둥글게 되는 날이니, 인욕(人欲)이 어둡게 가린 가운데 천리(天理)가 다시 싹트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하늘은 맑고 달은 밝은데 온갖 동물이 휴식에 들어갔다는 것은 인욕이 깨끗이 없어지고 천리가 유행하여 방촌(方寸) 사이가 형철(瑩澈) 광명(光明)하여 바깥 물건이 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을묘년(乙卯年) : 1375년, 고려 우왕1년
▶방촌(方寸) : 사방 한 치의 넓이. 사람의 마음을 말할 때 쓰임.
▶형철(瑩澈) : 환하게 내다보이도록 맑음.

한 물건이 있어 상청(上淸)에 조회하여 옥제(玉帝)의 뜰에 서서 신(臣)이라 일컬으며 다음과 같이 고하였다. ‘신(臣)이 천제(天帝)의 명령[命]을 받아 사람의 영(靈)이 되었습니다.’ 하였다.
【한 물건이란 마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요, 상청(上淸)이란 상제(上帝)가 거처하는 곳이요, 옥제(玉帝)란 곧 상제(上帝)이니 귀중하게 받드는 칭호이다. 칭신(稱臣)은 마음이 스스로 자기를 일컬은 것이요, 신(臣)이 상제의 명령을 받아 사람의 영(靈)이 되었다는 것은 마음이 스스로 상제의 명한 바 이치를 받아 사람의 주재(主宰)가 되어 만물 가운데에서 가장 신령[靈]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 장(章)은 가설적(假設的)으로 내 마음의 주재하는 영(靈)이 상제의 뜰에 조회하여 신이라 칭하고 물은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 조회라는 것은, 어찌 따로 한 물건이 있어 제(帝)가 되고 또 한 물건이 있어 조회를 하였겠는가? 방촌(方寸) 사이에 사욕(私欲)이 깨끗이 없어지면 내 마음의 이치는 곧 하늘에 있는 이치요, 하늘에 있는 이치는 곧 내 마음의 이치로서 서로 꼭 합하여 간격이 없는 것이다. 그 조회라고 한 것은 가설적(假設的)으로 말하여 밝힌 것이다.】

사람은 이목(耳目)이 있어 빛을 보고자 하고 소리를 듣고자 하며, 동(動)하고 정(靜)하고 말하고[語] 침묵[默]하고, 손으로 잡고 발로 걷는 등, 신(臣)의 병(病)을 만드는 것들이 날마다 신(臣)과 더불어 다투는 것입니다.
【이 장(章)은 물욕(物欲)이 내 마음의 천리(天理)를 해롭게 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대개 온갖 소리와 빛과 형상(形相) 등 천지 사이에 가득한 것이 모두 물건으로, 날마다 사람의 몸과 더불어 서로 접촉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 눈이 있어 빛을 보고자 하지 않음이 없고, 귀가 있어 소리를 듣고자 하지 않음이 없으며, 사지백해(四肢百骸)에 이르기까지 안일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천리(天理)는 비록 내 마음의 고유한 하늘에 근본 되었으나 그 끝[端]이 은미하고, 인욕(人欲)은 비록 물건과 내가 접촉된 후에 생겼으나 그 발하는 것을 제어하기 어려우니, 이는 그 일상 행하고 말하는 데 있어서 이치에 순하기는 어렵고 욕심을 좇기는 쉬운 때문이다.
《서(書)》에 이르기를,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미묘(微妙)하다.”
하였으니, 이를 말한 때문이다.
또 사람의 이 몸은 하루도 물건을 떠나 홀로 살 수 없어 조금이라도 삼가지 않으면 온갖 바깥 물건이 틈을 타 침입하여 이 마음을 해롭게 하는 일이 심히 많으니 이것이 천리의 병이 되는 것이다.】
▶인심(人心) ; 사욕(私欲)의 마음.
▶도심(道心) : 의리(義理)에서 나온 본연(本然)의 마음.

지(志)는 나[吾]의 장수[帥]요, 기(氣)는 나의 도졸(徒卒)인데도, 모두 굳게 지키지 못하여 신(臣)을 버리고 적(敵)을 좇으니, 신(臣)의 미약함으로 고립(孤立)ㆍ단박(單薄)에 이르렀습니다.
【지(志)란 마음의 가는 바요, 나[吾]란 마음이 스스로 자기를 일컫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무릇 지(志)는 기(氣)의 장수요, 기(氣)는 체(體)의 충만[充]된 것이다.”
하였다. 그 주(註)에 이르기를,
“지(志)는 진실로 마음의 가는 바이며 기(氣)의 장수이고, 기(氣)는 또 사람의 몸에 충만(充滿)한 것이며 지(志)의 졸도(卒徒)가 되는 것이다.”
하였으니, 마음이 천군(天君)이 되어 지(志)로써 기(氣)를 통솔하여 물욕을 제어하는 것이, 임금이 장수에게 명하여 졸도를 이끌고 적을 방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지(志)는 나의 장수요 기(氣)는 나의 도졸(徒卒)이다.” 한 것이다.
그러나 뜻[志]이 진실로 정해지지 않으면 물욕에게 빼앗기게 되어 이치가 사(私)를 이기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장수가 된 지(志)와 졸도가 된 기(氣)가 모두 그 바른 것을 굳게 지키지 못하고 도리어 내 마음을 버리고 물욕을 좇아간다. 따라서 나의 이 마음이 비록 한 몸의 주(主)가 되었다고 하나, 마침내 고립(孤立)하는 데 이르러 단약(單弱)하고 박렬(薄劣)하게 되는 것이다.】
▶단약(單弱) : 외롭고 약함.
▶박렬(薄劣) : 척박하여 미치지 못하다.

성경(誠敬)으로 갑주(甲胄)를 삼고 의용(義勇)으로 모극(矛戟)을 삼아 사명(辭命)을 받들어 저희 죄를 성토하여 한편으로 싸우고 한편으로 항복시키니, 나에게 순종하는 자는 선한 자이고 나를 배반하는 자는 악한 자이며,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는 따르고, 어리석고 불초한 자는 거역하매, 패(敗)함을 인하여 공(功)을 이루고 거의 잃은 뒤에 얻게 되었습니다.
【갑주(甲胄)는 몸을 보호하는 기구요, 모극(矛戟)은 적을 제어하는 물건이다.
이는 윗장(章)의 끝을 이어 말한 것이다.
내 한 마음의 미묘(微妙)함을 가지고 온갖 물욕의 침공을 받게 되어, 비록 심히 미약하고 박렬(薄劣)하나, 진실로 성경(誠敬)으로 갑주(甲胄)를 삼아 스스로 지킬 수 있다면 그 잡은 바가 견고하여 뜻을 빼앗지 못할 것이요, 의용(義勇)으로 모극(矛戟)을 삼아 스스로 보호하면 그 제재(制裁)하는 바가 엄중하여 물욕이 침입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안팎으로 사귀어 기르는 도(道)이다.
제(帝)의 명(命)을 받들어 이치에 어기지 못할 것을 알게 하며, 저[彼]의 죄악을 성토하여 욕심에 따르지 못할 것을 알게 하였다. 강한 자는 싸워서 이기고 약한 자는 항복하였으니, 그 내 명령에 순종하는 자는 이치에 합하여 선한 것이 되고, 내 명령을 배반하는 자는 의리에 어긋나 악한 것이 되며, 선을 알아 복종하는 자는 어질고 지혜로운 자가 되고, 알지 못하여 거역하는 자는 어리석고 불초한 자가 되는 것이다.
저들이 비록 순종하지 않더라도 나는 더욱 이 마음을 권면하였다. 거의 물욕이란 적에게 패한 바 되어 복멸(覆滅)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이 마음의 이치가 끝내 민멸(泯滅)되지 않았으므로 항상 스스로가 다듬어 마침내 얻은 바가 있었다. 이는 면강(勉强)하여 행하는 자로 그 성공함에 미쳐서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성경(誠敬) : 정성(精誠)을 다하여 공경(恭敬)함.

그 급기야 보응(報應)에 이르러서는 일의 반복됨이 많았다. 배반한 자는 장수하고 순(順)한 자는 요절(夭折)하며, 좇는 자는 빈궁하고, 거역하는 자는 부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신(臣)의 하는 일을 허물하여 신의 명령을 좇지 않고 오직 적을 따를 뿐입니다.
【보(報)는 선악(善惡)의 응효(應效)를 이른 것이니, 사람이 하는 바가 있으면 하늘이 보응하는 것이다. 우(尤)는 허물하며 책망하는 것이다.
사람이 착한 일을 하면 하늘이 복(福)으로써 갚고 악한 일을 하면 하늘이 재앙으로써 갚는 것이, 신하가 전공(戰功)을 세우면 임금이 작록(爵祿)으로써 상을 주고 패전하면 임금이 형륙(刑戮)을 가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이치의 떳떳한 것이다.
이제 마음이 상제(上帝)의 명을 받들어 물욕(物欲)의 적과 더불어 싸워, 적이 이기지 못하여 마음의 명을 순종하게 되었으면 이는 하늘에 공이 있는지라, 마땅히 부귀와 장수를 누려 선한 복을 받아야 할 것인데도 도리어 빈궁(貧窮)하고 요절(夭折)하는 데 이르며, 적이 이미 이겨 이 마음의 명을 배반하였으면 마땅히 빈천하고 요절하여 악한 화를 받아야 할 것인데 도리어 부귀와 장수를 누리고 있다.
하늘의 보응(報應)이 이같이 반복되고 어그러지므로 사람의 하는 바가 차라리 저 적의 이해(利害)로 유혹하는 데는 따를지언정, 그 주인[主]의 의리(義理)의 명을 좇지 않으니, 사람이 의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글에 하늘을 부르며 물은 것이다.】

“황(皇)한 상제(上帝)가 진실로 하민(下民)을 주재(主宰)하시는데 시(始)와 종(終)이 어찌하여 어긋나며, 주고 빼앗는 것이 어찌하여 편벽됩니까? 신(臣)이 비록 비루하고 어리석으나 의혹하는 바입니다.”
【황(皇)은 큰 것이니 존칭(尊稱)하는 말이다.
이는 상제(上帝)를 부르며 고하는 말이니,
“크도다. 상제여! 실로 위에 있어 하토(下土)의 사람을 주재(主宰)하시니 선을 복주고 악을 벌주는 그 이치[理]의 상도(常道)입니다. 처음에 명(命)을 부여할 때에 반드시 사람에게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으로써 주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 성품을 따라 선을 하게 하고자 한 것인데, 마침내 보응(報應)이 나타남에 이르러서는 선악의 효응이 반대됨이 이와 같으니, 이 어찌 시종(始終)의 명(命)이 어그러지는 것입니까? 저 명(命)을 배반하며 거역하고도 장수[壽考]와 영달(榮達)을 얻는 자는 하늘이 무엇을 사랑하여 후하게 대한 것이며, 명을 순종하고도 요절과 빈천을 얻은 자는 하늘이 무엇을 미워하여 박하게 한 것입니까? 그 한 번 주고 빼앗는 것도 또한 어찌 편벽되고 공변되지 못함이 이와 같습니까? 신(臣)의 마음이 비록 심히 비루하나 이에 의혹 있는 바입니다.”
한 것이다.】

 

[<필자미상 불화(筆者未詳佛畵)> 中 검수(劍樹)지옥, 견본채색. 156.1 x 113cm, 국립중앙박물관]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1977, 조준하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