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104 - 나라의 기일에는 공무도 중지하고 삼간다.

從心所欲 2022. 1. 15. 10:13

[경직도(耕織圖) 中 7, 지본담채, 조선민화박물관]

 

●봉공(奉公) 제1조 선화(宣化) 6
나라의 기일(忌日)에는 공무를 보지 않고 형벌도 집행하지 않고 음악도 베풀지 않기를 모두 법례대로 해야 한다.
(國忌廢事 不用刑 不用樂 皆如法例)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1조인 선화(宣化)는 ‘임금의 교화를 편다’는 의미이다.

 

나라의 기일 하루 앞날에 좌재(坐齋)하고, 태형(笞刑)은 쓰되 장형(杖刑)은 쓰지 않는다. - 요즈음 풍속에는 장형(杖刑) 쓰는 것을 형(刑)을 쓴다고 한다. - 삼문(三門)을 열고 닫을 때에도 군악을 쓰지 않는다.

그 이튿날 파재(罷齋)하고서는 태형과 장형을 쓴다.

▶좌재(坐齋) : 제사 전날부터 부정한 일을 그만두고 몸을 깨끗이 함.
▶삼문(三門) : 대궐이나 관아 앞에 있는 세 개의 문. 정문(正門)과 왼쪽의 동협문(東夾門), 오른쪽의 서협문(西夾門).
▶파재(罷齋) : 제사에 따른 의식을 다 마침.

 

요즈음 수령들은 나라의 기일에도 연회를 베풀고 풍악을 울려서, 아전과 백성이 예에 어긋남을 비방하는 소리가 경내(境內)에 떠들썩하건만, 수령만은 듣지 못한 척하니, 이는 삼가야 할 일이다.

내가 섬겼던 부왕(父王)이나 조왕(祖王)의 기일에는 엄숙히 재계하고 추모의 정을 다하되, 술도 끊고 고기도 먹지 않기를, 친기(親忌)나 다름없이 하는 것이 예에 알맞은 것이다.

▶친기(親忌) : 부모의 제사.

 

정만화(鄭萬和)가 감사(監司)로 있을 때, 반드시 조복(朝服)으로 아전과 백성을 대하면서 말하기를,

“왕명을 받고 지방으로 나올 적에 몸소 교서(敎書)를 받들었는데, 평복으로 스스로 편안하게 하는 것은 군부(君父)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초하루와 보름에 요배(遙拜)하는데 반드시 목욕재계하고 공경을 다하되 임금의 뜰 앞에 있는 것 같이 하였다. 데리고 있는 보좌관은 반드시 사대부(士大夫)의 자제를 쓰고 말하기를,

“시정배들은 이익만을 중히 여기기 때문에 가까이할 수 없다.”

하였다.

▶정만화(鄭萬和) : 예조 참판ㆍ평안도 관찰사 등을 지낸 문신(1614 ~ 1669). 호는 익암(益庵), 본관은 동래(東萊).
▶요배(遙拜) : 멀리 바라보고 하는 절.

 

조극선(趙克善)이 온양 군수(溫陽郡守)로 있을 적의 일이다. 인조대왕(仁祖大王)의 상을 당하자, 조공(趙公)은 죽을 마시고 거적자리 위에서 자면서 조석으로 슬퍼하고 곡하였다. 내외 주방의 술과 고기를 거두어 버리니, 부녀자나 어린이도 감히 고기를 먹는 자가 없었다. 또 군의 경내에 통첩을 내어 말하기를,

“《예기》에 이른바 방상(方喪)이란 말은 친상(親喪)에 견주어 보아 비등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제 마을에서는 술 마시며 잔치하거나, 시집보내고 장가가며, 춤추고 노래하거나, 고기 잡고 사냥하는 따위는 하지 말아서 혹시라도 예율(禮律)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니, 이에 대소의 백성들이 의리에 복종하여 각자 조심하고 힘써서, 시정에서는 술을 팔지 않고 들에서는 농가(農歌)를 부르는 자가 없었다.

▶조극선(趙克善) : 1595 ~ 1658. 호는 야곡(冶谷), 본관은 한양(漢陽).
▶방상(方喪) : 신하가 임금의 상을 당했을 때 부모의 상에 준하여 거상하는 것.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