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건축물

우리 옛 건축물 17 - 단청

從心所欲 2018. 6. 11. 07:42


[경복궁]


가구 구조만으로도 장식성이 뛰어난 우리 옛 건축물의 공포에 색을 입히면 그 화려함과 황홀함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단청(丹靑)은 각가지 염료를 목재표면에 바르는 칠 작업 자체를 이르거나 또는 그 결과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단청은 안료를 만드는 광물질인 ‘단사(丹砂)’1와 ‘청확(靑臒)’의 합성어이다. 단청은 단확(丹臒), 단벽(丹碧),

단록(丹綠), 진채(眞彩), 당채(唐彩), 오채(五彩), 화채(畫彩), 단칠(丹漆) 등등의 여러 이름으로도 불린다.

단청에는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목재의 단점을 보강하여 건물의 수명을 늘리는 실용적 의미다.

즉 우리나라 전통건축에서 주재료로 사용된 소나무는 목질이 강한 반면에 표면이 거칠고, 건조되었을 때 표면의

갈라짐이 크며, 해충과 부식의 피해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단점을 보강해주는 방법으로 단청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건축물을 한층 아름답고 장엄하게 보이게 하고 품격을 높여 주는 외장적 의미이다. 우리 옛 건축은

정치적, 종교적, 신분적 위계질서에 따라 건물 규모와 장엄의 정도가 구별되었고 건물의 성격에 걸맞은 외형상의

치장도 필요했다. 따라서 건물의 격과 용도에 따라 무늬와 색상 및 화려함의 정도도 다르다. 셋째로는, 단청에

각종 문양이 사용되는데 이는 단순한 장식 요소뿐 아니라 화재와 잡귀를 막아준다는 상징적 의미도 담고 있다.


단청은 오행사상에 따라 기본적으로 청, 적, 황, 흑, 백의 오방색을 기본색으로 배합해 사용한다. 단청의 원료인

안료는 원래 진채(眞彩) 또는 암채(岩彩)라 하여 광물질(무기염류) 색감을 사용하였다. 안료 대부분은 중국에서

생산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가격도 비싸고 공급을 받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단청은 광택이 나지 않기 때문에

역광(逆光)에서도 제 빛깔을 발하는 효과를 낸다. 조선시대초까지는 천연안료만을 사용했으나 근래에 와서는

화학안료를 쓰는 바람에 색이 차분하지 못하고 현란한 느낌을 주며, 화학반응을 일으켜 색이 퇴색되거나

수분에 의해 박리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단청을 하는 방법과 순서는 먼저 종이에 사용할 문양의 초안을 잡는 출초(出草)를 한다. 다음으로는 모사된

문양에 따라 바늘로 구멍을 내어 단청할 부재에 대고 흰 분가루가 든 주머니로 살살 때려 밑그림을 만드는데

이를 타분(打粉)이라고 한다. 이어서 분가루로 그려진 밑그림을 따라 색을 칠하는 시채(施彩)과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채색된 윤곽을 따라 검은색인 먹과 흰색인 분으로 외곽선을 그려서 색조가 또렷이 강조되도록 하는

먹기화(墨起畵)작업으로 마무리한다. 먹기화는 세련된 마무리 선을 그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경험이 많고 숙련된 단청장이 한다.



[타분 상태의 부재]


단청은 크게 가칠단청, 긋기단청, 모로(모루)단청, 금단청 등으로 구분하는데 일반 사가는 단청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을 백골집이라고 불렀다. 백골집은 색이 들어간 단청을 하지 않는 대신 생콩의

기름을 발라 단청의 기본적 목적인 나무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했다.


[백골집]


고려 때만 해도 민가(民家)에까지 단청이 성행했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검약정신의 강조로 사찰의 화려한

 단청은 점차 줄어들었다. 세종이 사찰의 화려한 단청을 금하는 조치를 내리고 중종실록에 권신 김안로의 집이

지나치게 화려한 단청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사가(私家)에서도 한동안 단청이 시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명종 때에 사가에 단청을 한 것에 대해 대사헌에서 탄핵했다는 것을 보면 중종 ~ 명종 사이의

시기에 사가의 단청이 금지된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궁궐단청과 왕실발원의 사찰단청은 계속 되었다.

단청 중에 가장 기본적인 단청이 가칠(假漆)단청인데 별도의 무늬 없이 단색으로 칠한 단청을 뜻한다. 주로

수직부재인 기둥에는 붉은색 석간주(石間褓)를 칠하고 나머지 창방이나 보, 서까래, 문짝 등에는 뇌록(磊綠)

으로만 칠하는 단청을 말한다.



[가칠단청]


석간주는 흙에서 채취한 검붉은 색 안료이고 뇌록은 돌가루로 만드는 녹색 안료로, 기둥과 난간에는 석간주나

적색계통으로 채색하고 추녀와 처마, 공포부분에는 녹, 청색을 주로 사용하는 상록하단(上綠下丹)의 자연색

대비 연출이 바로 우리나라 단청의 특징이다. 이런 상록하단 단청의 특징에 대하여 기둥의 붉은색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노송(老松) 등걸의 색을 따르고 처마 밑에 칠해진 색은 소나무 잎의 녹색을 연상시켜 자연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우리나라 상록하단의 원칙은 멀게는 고구려 고분벽화부터 유래를 찾는 경우도 있고 가깝게는 고려 후반 13~14

세기 이후로 보는 경우도 있다. 가칠단청은 화려한 의장성 보다는 목재를 보호하는 방부 본래 목적에 충실한

단청이라고 할 수 있다. 무늬가 들어가는 모로단청이나 금단청을 할 때도 석간주와 뇌록을 우선 칠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보아 가칠은 말 뜻 그대로 방부의 성격을 지닌 바탕칠 형태로 볼 수 있다.

사찰에서 승려들의 거주 건물인 요사채, 궁전과 능(陵)의 협문(夾門) 등에 주로 사용된다.종묘를 꼽을 수 있다.





[종묘]


종묘는 다른 가칠단청 건물에 비하여 기둥 상단부에도 뇌록보다는 석간주가 더 많이 보이는데 이는 아마도

종묘의 성격을 감안해 장엄을 더 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원래 석간주의 색은 채도가 높은

붉은 색이었는데 점차 적송(赤松)과 유사하게 착색되었다는 것으로 봐서 예전에는 멀리서 봐도 붉은 기운이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었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이 글은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2007.동녘), 한국고전용어사전(200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두산백과

등을 참조, 인용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1. 안료로 쓰이는 붉은 빛깔의 흙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