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112 - 읍례가 사리에 맞지 않으면 고쳐서 지키면 된다.

從心所欲 2022. 2. 15. 12:25

[경직도(耕織圖) 8폭 병풍 中, 지본채색, 국립민속박물관]

 

●봉공(奉公) 제2조 수법(守法) 5
읍례(邑例)란 한 고을의 법이다. 그것이 사리에 맞지 않을 때에는 수정하여 이를 지켜야 한다.
(邑例者 一邑之法也 其不中理者 修而守之)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2조인 수법(守法)은 ‘법을 지키는 것’이다.
▶읍례(邑例) : 군읍(郡邑)의 관례.

 

각 고을의 여러 창고에는 모두 예로부터 내려오는 관례가 있으니, 이름하여 절목(節目)이라 한다. 처음 절목을 정할 때에도 잘되지 못한 점이 많았는데, 뒤에 온 수령들이 마음대로 더하고 빼고 고치면서 온통 사사로운 생각으로 자기에게만 이롭고 백성들을 착취하게 만들었으니, 거칠고 잡되고 구차하고 고루하여 그대로 시행할 수가 없다. 이를 핑계로 절목을 폐지하고 임의로 새로운 영(令)을 시행하는데, 무릇 백성을 착취하는 조목은 해마다 불어나고 달마다 늘어나기 마련이다. 백성들이 편히 살 수 없는 것은 주로 이 때문이다.

 

취임한 지 몇 달이 지났거든 여러 창고의 절목들을 가져다놓고 조목조목 조사하고 물어서 그 이롭고 해로움을 알아내어, 그중에서 사리에 맞는 것은 표시하여 드러내고, 사리에 어긋나는 것은 고쳐야 한다. 물건 값이 예전에는 쌌으나 이제 와서 오른 것은 의논하여 값을 올려주고, 예전에는 비쌌으나 이제 와서 내린 것은 그대로 후하게 해주며, 민호(民戶)가 예전에는 번성했으나 이제 와서 쇠잔해진 경우에는 의논하여 그 부담을 덜어주며, 예전에는 적었으나 이제는 많아진 경우에는 옮겨서 고르게 해야 한다【그 부세의 부담을 옮겨준다는 뜻이다】.

 

사리에 맞지 않으면서 수령만 이롭게 하는 것은 고쳐 없애고, 법에 없는데도 여러 가지로 거두는 것은 한도를 정해야 한다. 정밀히 생각하고 살피며 널리 물어서 용단을 내리되, 뒷날의 폐단을 고려해서 막아버리고, 뭇사람의 뜻을 좇아 법을 확고하게 세우고 공평하게 지키면, 명령을 내리고 시행할 때 자신의 마음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내가 떠나간 후에 뒷사람이 지키는지 여부는 비록 알 수 없으나, 내가 재임하는 동안에는 살펴서 행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

옛 절목과 옛 식례(式例)【이름하여 등록(謄錄)이라 한다】는 마땅히 낱낱이 거두어다가 불사르고 없애서 영구히 그 근본을 끊어버려야 할 것이다. 만일 한 장이라도 남아 있게 되면, 뒤에 오는 자들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례라고 빙자하여 폐단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등록(謄錄) : 전례(前例)를 적은 기록.

 

무릇 일용의 물건에는 마땅히 식(式)은 있으되 기(記)는 없어야 할 것이다【하기(下記)가 없다는 말이다】. 시험 삼아 포진(舖陳)【왕골자리 등속을 포진이라 한다】 한 가지를 들어보자.

▶식(式)과 하기(下記) : 금전 지출의 요목(要目)을 적은 것이 식이요, 그 세목(細目)을 일일이 적은 것을 하기라 한다.

 

3전 백석(白席) 1장 값

1전 용수초(龍鬚草) 염색【청 · 적 · 황 · 흑으로 물들임】 값

1전 기화(起花)【색초로 수놓는 것을 기화라 한다】의 공임

2전은 겹과(袷裹) 초석(草席)【이름하여 목홍(木紅)이라 한다】값

3전 장식용 명주 석 자 값

2전 장식용 베 석 자 값

1전 장식용 명주에 붉은색으로 물들이는 값

1전 장식용 베에 푸른색으로 물들이는 값

5푼 장식 테두리 바느질삯

5푼 겹석(袷席)을 꿰매는 노끈 값

2전 공인(工人) 양식 값

1전 기화 때의 등유(燈油) 값

▶목홍(木紅) : 다목을 끓여서 우려낸 붉은 물.

 

이처럼 자질구레하게 늘어놓으면 12줄이나 되는데, 이것이 겹석의 하기이다. 면석(面席)【자리 두 개를 서로 이어 붙인 것을 면석이라 한다】의 하기는 8~9줄이 될 것이요, 단석(單席)【이어 붙이지 않은 것을 단석이라 한다】의 하기도 8~9줄이며, 방석(方席)【작은 자리로 네모반듯한 것을 방석이라 한다】의 하기는 12줄이나 될 것이다. 지의(地衣)의 하기는 6~7줄, 은낭(隱囊)【속명은 안석(按席)이다】의 하기는 8~9줄이 될 것이다. 포진 1부만 하더라도 그 하기가 50~60줄이 된다. 물가는 때에 따라 오르고 내리며 물건은 갑자기 많았다 적었다 하니, 수령이 이를 어찌 다 살필 수 있으며 백성들이 어떻게 다 알 수 있을 것인가.

▶지의(地衣) : 가장자리를 헝겊으로 꾸미고 폭을 이어서, 크게 만든 자리.
▶안석(按席) : 앉을 때 몸을 기대는 방석.

 

이제 마땅히 정밀하게 물어보고 세세히 살펴서 그 법식을 정하되 “겹석 1장은 본전이 1냥 6전【앞에 열기한 것은 1냥 8전이다】, 면석 1장은 본전이 1냥, 단석 1장은 본전이 6전, 방석 1장은 본전이 8전, 지의 4간(間)은 본전이 4냥, 은낭 1개는 본전이 1냥이니, 합계하면 포진 1부는 전 9냥”이라고 기록할 것이다.

이에 절목에 올리기를, “돈 9냥은 감사의 봄 순행 때의 포진 1부 값이요, 돈 9냥은 동지사(冬至使) 행차 때의 포진 1부 값”이라고 한다. 자질구레하게 조목조목 나열하는 것을 없애버리면 수령은 살피기 쉽고 아전은 농간할 여지가 없으니, 또한 좋지 않은가. 응당 모든 물건에 다 이와 같이 하면 좋을 것이다【모두 먼저 식례를 고안하여 총수를 기록한다는 뜻이다】.

 

여러 창고의 물자를 쓰는 데에는 두 가지 명목이 있는데, 첫째는 응하(應下)이고 둘째는 별하(別下)이다. 응하라는 것은 해마다 반드시 써야 되는 것이니, 더할 것도 감할 것도 없어서 항전(恒典)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별하라는 것은 해마다 같지 아니하여 때로는 있다가 때로는 없으니 항전으로 삼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령 동지사의 구청(求請), 동지사 접대, 정조(正朝)의 진상(進上)과 임금 생신 때의 진상 및 경사(京司, 서울에 있는 관청)에 보내는 연례 납부, 영문(營門)으로부터 연례 징수, 수령의 연례의 소용 등은 모두 응하의 물자들이다. 별사(別使)의 구청과 별사 접대, 진하(陳賀) 때의 진상, 경례(慶禮) 때의 진상 및 경사로부터의 별도의 구청, 영문에서의 별도의 복정(卜定)【나누어 징수하는 것[分徵(분징)]을 이름하여 복정이라 한다】, 수령이 교체될 때의 소용 같은 것은 모두가 별하의 물자들이다. 응하의 물자들은 그 식례를 명백히 하여 절목에 올리고 그 끝에 쓰기를 “이상 1년 응하의 도합이 2345냥 6전 7푼”【예로 든 수치】이라 하여, 절목에 따라 차하(上下)【출급(出給)과 같은 말】하되 하기도 없고 회계도 없다【해마다 같기 때문이다】.

별하의 물자는 그 식례에 따라 절목에 올리고【응하하는 것과 마찬가지】 쓰임을 따라 기록하되【하기가 있어야 함】 그 총수를 기록하여【가령 포진 1부를 별사 행차 시에 나누어주는 경우와 같다】 연말에 가서 회계하면 그 실제 숫자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항전(恒典) : 항상 적용되는 법.
▶정조(正朝) : 음력 정월 초하루를 기해 임금이 문무백관과 함께 거행하는 조회의식(朝會儀式)으로 각 고을에서 으뜸가는 향리가 상경하여 참석하였다.
▶영문(營門) : 감사의 감영, 병사(兵使)의 병영, 수사(水使)의 수영을 통칭하는 말.
▶별사(別使) : 중국에 매년 정례에 따라 보내는 사신 이외에 별도로 파견하는 사신. 원주(原註)에는 “하정사(賀正使)가 아니면 모두 별사라고 일컫는다.”라고 나와 있다. 하정사는 신년을 축하하기 위해 중국에 보내던 사신으로 동지사와 하정사는 임무를 겸해서 수행했다.
▶진하(陳賀) : 왕실에 경사가 있을 때에 각 고을에서 사람을 보내어 축하드리는 일.
▶차하(上下) : 지급한다는 뜻의 이두어. ‘上下(상하)’라고 쓰고 ‘차하’라고 읽는다.

 

전에 내가 곡산부에 있을 때에 민고(民庫)의 절목을 이와 같이 만들었더니, 아전과 백성이 다 좋아했다. 그래서 이 법례를 전국에 통용시키고자 하였다. 뒤에 병조(兵曹)의 일군색(一軍色) · 이군색(二軍色)의 절목을 상고해보니,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가 만들어 정한 것도 이와 같았다. 이 법이 크고 작은 일에 통용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기를 조목조목 늘어놓는다는 것은 여러 간계가 일어날 수 있는 구멍이며 온갖 농간질이 모여들 수 있는 소굴이다. 반드시 고칠 일이요, 그대로 따라서는 안 된다.

▶일군색(一軍色) · 이군색(二軍色) : 일군색은 금군보(禁軍保)ㆍ호련대보(扈輦隊保)ㆍ내취보(內吹保) 등으로부터 군포(軍布)를 거두어 장교(將校)ㆍ군병(軍兵) 등의 월료(月料)를 지급하는 일을 맡고, 이군색은 기병(騎兵)과 보병(保兵)의 번상(番上)하지 않는 자들로부터 군포를 거두어 각사(各司) 원역(員役)의 월료를 지급하는 일을 맡았다.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 : 갖가지 구전설화가 전해지는 전설 속 암행어사의 주인공으로 영조 때에 영남 암행어사(嶺南暗行御史)와 호서어사(湖西御史)로 임명되었었으며, 병조판서와 참찬(右參贊) 등을 지내고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졌다. 특히 군정(軍政)과 세정(稅政)에 밝았다.

 

여러 창고에는 반드시 감(監)이 있고 서(胥)가 있다【곧 이른바 감색(監色)이다】. 매달 급료로 주는 돈이 곧 응하인데, 만약 윤달을 만나면 이는 별하가 된다. 창고에 들어오는 것이 일정하여 남는 것이 전혀 없으니, 윤달이 있는 해에는 12절기【입추, 경칩 등】로 나누어 지급하면 무방할 것이다.

▶감색(監色) : 궁가(宮家)나 관아에서 전곡(錢穀)을 간수ㆍ출납하는 일을 맡아보는 관리.

 

무릇 절목을 만들 때에는 마땅히 튼튼하고 두터운 백추지(自硾紙)를 쓰고 검은 실로 꿰매며, 해자(楷字)로 또박또박 써서 엄정하게 만들 것이요, 모든 창고의 절목을 합쳐서 한 책을 만들고 가지런히 재단하여 책상 위에 비치해놓고 지키기를 국전과 같이 할 것이다.

또한 부본(副本)을 만들어 각 방(坊)【우리말로 면(面)이라 한다】에 나누어주어 각기 엄히 지키도록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백성들에게 이로운 것은 뒷사람이 비록 고치고자 할지라도 백성들이 반드시 다투어서 쉽게 폐기되지 않을 것이다.

▶백추지(自硾紙) : 희고 두꺼운 한지의 일종.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