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114 - 왕명을 받은 관인을 대하는 예의.

從心所欲 2022. 2. 24. 22:43

[경직도(耕織圖) 8폭 병풍 中 1폭, 각폭 35 x 115cm, 삼척시립박물관]

 

●봉공(奉公) 제3조 예제(禮際) 2
외관(外官)이 사신(使臣)과 서로 보는 데는 그 예의가 국가의 법전에 갖추어져 있다.
(外官之與使臣相見 具有禮儀 見於邦典)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3조인 예제(禮際)는 ‘예의 있게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외관(外官) :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관원. 목사(牧使)와 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는 정3품으로 당상관과 당하관이 있으며, 도호부사(都護府使)는 종3품, 군수는 종4품, 현령은 종5품, 현감은 종6품이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 경외관상견조(京外官相見條)에는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

“외관 당상관(外官堂上官)은, 당상사신(堂上使臣) - 감사ㆍ병사(兵使)ㆍ수사(水使)ㆍ동지사(冬至使) 등 - 에 대해서는 서쪽 문으로 들어와서 앞에 나아가 재배(再拜)하면 사신이 답배(答拜)하고, 당하사신(堂下使臣) - 어사(御史)ㆍ경시관(京試官)ㆍ서상관(書狀官) 등 - 에 대해서는 손은 동쪽, 주인은 서쪽에서 서로 마주 재배한다.”

▶감사 …… 동지사(冬至使) :  감사는 문관직(文官職)으로 종2품(從二品), 병사는 무관직으로 종2품, 수사는 무관직으로 정3품(正三品), 동지사는 동짓달에 중국으로 보내던 사신으로서 정사(正使)와 부사는 모두 3품 이상의 당상관이었다.
▶어사(御史)ㆍ경시관(京試官)ㆍ서장관(書狀官) : 어사는 종3품인 집의(執義)가 될 경우도 있고 정4품인 장령(掌令)이 될 경우도 있고 정5품인 지평(持平) 급이 될 경우도 있고 정6품인 감찰(監察)이 될 경우도 있다. 경시관은 3년마다 각 도에서 과거를 보일 때에 서울에서 파견하는 시험관인데, 4품 이하 당하관에서 일시적으로 임명하였고, 서장관은 외국에 보내는 사신(使臣)을 따라 보내던 임시 벼슬인데, 보통 정5품에서 임명되었다.

 

“당하관은 당상관 사신에 대하여는 몸소 나아가 알현(謁見)을 청하고, - 섬돌 위로 나아가 알현을 청한다. - 당하관 사신에 대해서는 사람을 시켜 알현을 청하되, 서쪽 문으로 들어와서 앞에 나아가 재배하면, 사신이 수령과 차등(差等) - 가선(嘉善 : 종2품 당상관의 품계)과 통정(通政 : 정3품 당상관의 품계)은 차등이 되고 통정과 통훈(通訓 : 정3품 당하관의 품계)과도 차등이 된다. - 의 사이면 답배하지 않는다.”

▶사람을 시켜 알현을 청하되 : 다른 사람을 시켜 뵙는 것을 은신(隱身)이라 하고, 직접 나아가 뵙는 것을 현신(現身)이라고 했다.

 

“참하관(參下官) - 7품 이하를 말한다. - 이하는 참상관 사신(參上官使臣)에 대해서는 몸소 나아가 알현을 청하고, 참하관 사신에 대해서는 사람을 시켜 알현을 청하되, 두 경우 다 앞에 나아가 재배한다.”

▶참하관(參下官) : 정3품 당하관에서 6품까지를 참상관, 7품 이하를 참하관이라고 불렀다.

 

살피건대, 《속대전(續大典)》이나 《통편(通編)》에서 이 법은 고쳐진 적이 없는데, 요즈음 감사들은 목사나 수령들에게 동등ㆍ차등을 막론하고 모두 앉아서 읍으로 답하고, 오직 통정감사(通政監司)만은 가선수령(嘉善守令)에게 일어나서 답배를 하면서 격등(隔等)인 때문에 답배한다고 말한다. 이는 어떤 것이 격등인지를 모르고, 차등을 격등으로 잘못 알아서 답배하지 않을 자리에 답배를 하는 것이다.

이 법이 유행하여 물들어서 병마사(兵馬使)나 수군사(水軍使)들도 다시 흉내를 내며, 어사(御史)나 서장관(書狀官)은 당하관 사신으로서 당상관 수령에게 또한 앉아서 읍을 하니, 조정의 예법이 문란하기가 이처럼 심한 일이 없다.

듣건대, 영종 초년에 거만하고 자존심이 심한 어떤 사람이 감사가 되어 처음으로 차등(差等)과 동등의 수령에게 앉아서 읍하는 관례를 만들어 내었는데, 하관은 감사의 미움을 사서 관직을 잃게 될까 걱정하여 고개를 숙여 이를 달게 받아들이니, 이것이 그대로 전해 내려오면서 습속으로 젖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관례가 행하여진 지 이미 백 년이 가까와져서 드디어 바꿀 수 없는 법이 되어 버렸다. 대신이 조정에 건의하여 조정의 명령으로 신칙하지 않으면 아래 있는 사람으로서는 풍속에 따를 뿐이니, 잘못이 그에게 있지 내게야 무슨 상관이 있으랴.

 

고례(古禮)에, 서북(西北)은 존엄하고 동남(東南)은 낮은 까닭에 손은 서북에 앉히고 주인은 동남에 앉는다. 그러므로 《역례(易例)》에도,

“건(乾)은 손이 되고 손(巽)은 주인이 된다.”

하였으니, 이는 손을 존대하고 자신을 낮추는 까닭이다.

▶건(乾)은 …… 된다 : 위치상으로 건방(乾方)은 높은 자리가 되고 손방(巽方)은 낮은 자리가 된다는 뜻이다. 건방은 정서(正西)와 정북(正北)의 사이 즉 서북쪽이고, 손방은 정동(正東)과 정남(正南) 사이로 동남쪽이다.

 

손은 동쪽이요, 주인은 서쪽으로 한 것은 옛 뜻과는 어긋나는 것이니, 당시에 예(禮)를 제정한 신하들이 이 점을 깊이 상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두 번 절하던 것이 오늘날은 한 번 절하는 것이 되고 옛날에는 몸소 나아가 알현을 청하던 것이 오늘날은 사람을 시켜서 알현을 청하는 것으로 되었으니, 이는 옛날에는 공손했고 요즈음은 간략한 것이다.

 

《경국대전》 예전(禮典) 경외관회좌조(京外官會坐條)에는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

“우후(虞候)가 여러 고을을 순행(巡行)할 때 우후는 동쪽에 앉고 당상관 수령은 서쪽에 앉고 - 모두 교의(交椅), 즉 의자에 앉는다. - 당하관 수령은 남쪽에 앉는다.”

“당상관 수령이 없으면 우후는 북쪽에 앉고, 당하관 수령은 서쪽에 앉는다.”

“도사(都事)와 평사(評事)도 같다.”

▶우후(虞候) :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다음가는 무관직이다. 병마우후(兵馬虞候)는 종3품이고 수군우후(水軍虞候)는 정4품.
▶도사(都事)와 평사(評事) : 여기서의 도사는 감영(監營)에 딸린 종3품 벼슬이고, 평사는 병영(兵營)에 딸린 정6품의 무관직이다.

 

살피건대, 요즈음 풍속에 우후에게는 평등으로 대우하고, 도사ㆍ평사에게는 사신과 같이 대우하는데, - 도사ㆍ평사는 보좌하는 관직이요, 봉명사신(奉命使臣)이 아니다. - 저 우후는 무인인 까닭에 그들에 대한 대우는 국가의 법전보다 낮게 하고, 이 도사ㆍ평사들은 문신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대우는 국가의 법전보다 지나치니 다 폐속(弊俗)이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