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공(奉公) 제3조 예제(禮際) 3
연명(延命)의 예를 감영(監營)에 나아가서 행하는 것은 옛 예가 아니다.
(延命之赴營行禮 非古也)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3조인 예제(禮際)는 ‘예의 있게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연명(延命) : 원래 감사나 수령이 부임할 때 전패(殿牌) 앞에서 왕명을 받드는 의식인데, 새로 부임한 감사에게 관하의 수령들이 처음 가서 뵙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여기서는 후자를 가리키는바 그것은 고례가 아니라고 보았다.
연명이란 지방을 맡은 신하가 자기 임지에 있을 때, 선화(宣化)의 임무를 띤 신하가 순행하여 본읍에 도착하면, 지방을 맡은 신하는 패전(牌殿)의 뜰에서 교서(敎書)를 공손히 받들고 첨하(瞻賀)의 예를 행하는 것이다.
대개 조정의 조유(詔諭)는 수령[土臣]이 공손히 받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행(巡行)이 본읍에 도착하지 않으면 수령은 끝내 연명하지 않는 것이 옛날의 도(道)이다.
▶선화(宣化)의 임무를 띤 신하 : ‘선화(宣化)’는 임금의 명을 받든다는 의미로 선화하는 신하는 곧 감사를 가리킨다. ▶조유(詔諭) : 임금이 내리는 글. |
영종(英宗) 초년에는 오히려 옛 도를 썼는데, 세상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사대부(士大夫)의 기풍과 절개가 더욱 쇠퇴해져서, 상관을 아첨으로 섬기며 오직 미움이나 사지 않을까 걱정하여, 감사가 도임하면 열흘 안에 수령은 급히 감영으로 달려가서 연명의 예를 행하니, 이는 연명이 아니라 참알(參謁)인 것이며, 조정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관에게 아첨하는 것으로 다 폐속(弊俗)인 것이다. 감사로서 예법을 모르는 자는 수령이 즉시 연명의 예를 행하지 않는 것을 보면 허물을 책하려 드니, 이 또한 잘못이 아니겠는가.
요즈음 습속이 이미 이루어졌으므로 옛 습속에 사로잡힐 수 없으나, 급급히 감영으로 달려가서 식자들의 웃음거리를 살 것까지는 없고, 수십 일을 기다렸다가 애써 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 연명(延命)의 예는 사신이 친히 조유(詔諭)를 선포해야 하는 것이니, 수령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의 명을 존경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신들은 망령되이 높은 체하여 반드시 비장(裨將)을 시켜 대신 선포하게 하고, 대신 선포하는 것을 대수(代受)라 하니 예가 아니다. 대체로 사신이 임금의 명을 선포하는 까닭에 수령이 왕의 명을 맞이하는 것이니, 본래의 뜻은 이러한데, 요즈음은 연명을 참알로 인정하기 때문에 이를 대수(代受)라 하는 것이다. 곧 받을 수(受) 한 자에서 본래의 뜻이 잘못된 것을 알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병마사(兵馬使)ㆍ수군사(水軍使)는 똑같은 사신인데도 비장을 시켜 대수(代受)하게 하니 크게 예가 아니다.
옛날 당나라 이소(李愬)가 회서(淮西)에 출정하자, 상신(相臣) 배도(裵度)가 현지에 가서 선무(宣撫)하게 되었다. 이에 이소가 활집과 화살통을 차고서 길가에서 배도를 맞이하여, 채(蔡) 땅 사람들로 하여금 조정의 존엄을 알게 하였다. 이는 장수된 신하가 연명(延命)한 옛 일인 것이다. 요즈음 절도사(節度使)는 곧 옛날의 이소요, 요즈음 순찰사(巡察使)는 곧 옛날의 배도이니, 만일 배도로 하여금 비장을 시켜 대수(代受)하게 하였더라면, 이소가 활집과 화살통을 차고서 연명하려 하였겠는가?
전에 내가 서도(西道)에 있을 때 순찰사와 병마사가 이 연명(延命) 문제로 서로 고집하기에 내가 배도와 이소 두 사람의 일을 들어 깨우쳐 주었더니 친히 받았다.
▶이소(李愬) : 당나라 때 오원제(吳元濟)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소는 절도사(節度使)로서 그를 토벌하여 회서(淮西)를 평정하고 그 공으로 양국공(凉國公)에 봉해졌다. ▶배도(裵度) : 당나라 때의 인물로 인품이 위대하고 지조가 굳었으며, 진사 출신으로 벼슬이 중서시랑(中書侍郞)ㆍ동평장사(同平章事)에 이르렀고, 회서의 세력을 평정하고 오원제(吳元濟)를 사로잡은 공으로 진국공(晉國公)에 봉해졌다. ▶선무(宣撫) : 지방(地方)에 파견(派遣)되어 어수선한 민심(民心)을 수습하는 일. |
오늘날 대수가 이미 습속이 되었으니 수령 또한 이 습속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잘못이 윗사람에게 있으니 내가 어떻게 관여하겠는가. 그러나 병마사나 수군사 같은 수신(帥臣)에게는 비록 파출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굴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신(帥臣) :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통틀어 이르는 말. |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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