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대군, 군, 공주, 옹주

從心所欲 2022. 3. 18. 13:27

조선시대의 왕실 자녀들에 대한 호칭을 보면 대군(大君)이 있는가 하면 군(君)이 있고, 공주(公主)가 있는가 하면 옹주(翁主)도 있다.

3대 왕인 태종에게는 양녕대군, 효령대군, 그리고 나중에 세종이 된 충녕대군 같은 아들들과 함께 경녕군, 함녕군, 온녕군 처럼 군(君)으로 불리는 아들들도 있었다. 또 정순공주, 경정공주, 경안공주가 있었는가 하면 정신옹주, 정정옹주, 숙정옹주 등도 있었다.

이런 호칭의 차이는 무엇일까?

 

대군은 왕자 가운데 정비(正妃)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주어지던 작호(爵號)이다. 왕비 외에 후궁들에게서 태어난 아들들은 군(君)이다. 공주도 마찬가지다. 왕비에게서 태어난 딸은 공주, 후궁에게서 난 딸은 옹주의 작호가 주어졌다.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과 정선공주, 경정공주, 경안공주 등은 모두 태종의 정비였던 원경왕후 민씨의 소생이었고, 경녕군과 정신옹주 등은 후궁인 효빈 김씨와 신빈 신씨의 소생이었던 것이다. 태종은 12남 17녀로 모두 29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가운데 대군과 공주는 각각 4명씩이었다.

 

대군, 군, 공주, 옹주는 자칫 단순한 호칭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으나 이는 중국의 주나라나 중세 유럽과 같은 봉건국가의 주요한 통치제도였던 봉작제(封爵制) 또는 봉군제(封君制)에 뿌리를 둔 작위(爵位)이다. 작위란 사회적 신분이나 계층을 나타내는 벼슬이자 지위이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왕의 적자인 대군이나 서자인 군은 무품(無品)의 작위이다. 무품은 품계가 없다는 뜻이지만 신분이 낮다는 의미가 아니라 품계를 따질 대상이 아니라 품계를 초월한 존재라는 말이다. 왕비와 세자의 처인 세자빈은 내명부 무품이고 공주와 옹주도 외명부의 무품이다.

무품의 대군과 군 아래로는 정1품부터 종2품까지의 세 분류의 군(君)이 있다. 왕의 서자에게 붙여지는 군(君)과 같은 한자를 쓰지만 품계는 엄연히 다르다.

먼저 1품의 군은 대군의 적장자에게 주어지는 칭호다. 곧 왕의 정실(正室)에게서 난 아들이 다시 정실(正室)부인을 맞았을 때 그 사이에서 난 첫째 아들에게 주어지는 품계다.

이어 정2품 군은 왕세자의 아들과 대군의 적장손, 그리고 모든 왕자들의 적장자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종2품 군은 왕세자의 손자, 적장자를 제외한 대군의 아들과 대군의 적장증손이다.

그러니까 조선시대의 ‘군(君)’에는 무품부터 종2품까지 여러 품계의 군(君)이 있었던 것이다.

 

반면 외명부에서는 무품의 공주와 옹주 밑으로 정1품은 부부인(府夫人)이다. 부부인은 왕비의 어머니와 대군의 처에게 내리는 작호이다.

외명부의 정2품은 군주(郡主)이다. 군주(郡主)는 왕세자의 적실녀이다. 왕세자의 딸이라도 적실녀가 아닌 서녀(庶女)는 현주(縣主)라 하여 정3품이었다. 군주와 현주는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각기 공주와 옹주로 승격하게 된다.

 

왕의 자녀들은 어렸을 때는 왕이 있는 궁궐에 살았지만 성장하면 세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궁궐 밖으로 나와야 했다. 왕자와 공주들이 궁궐에서 나와 각기 분가하여 독립한 궁가(宮家)를 궁방(宮房)이라 하는데 왕의 자녀 숫자가 많으면 그만큼 궁방의 숫자도 늘어났다. 궁방은 왕자나 공주가 궁궐에서 나오기 전에 새로 마련되어 왕이 하사한 궁방전(宮房田) 등을 통하여 자체적으로 생활재원을 충당하고, 해당 궁방의 주인공이 사망하면 제사를 지내는 곳이 되며, 4대(四代)까지의 제사를 올리는 기한이 끝나면 이후 축소 또는 폐지되거나 다른 궁방에 병합되기도 했다.

 

세자(世子)는 왕자들 가운데 차기 왕위 계승권자를 가리키는 칭호다. 통상적으로 왕의 적장자가 우선적 자격을 얻게 되는데 이는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를 통해 규범화된 원칙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왕의 적실 맏아들이라 해서 바로 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부왕의 재위 기간 중에 책립되거나 책봉(冊封)의식을 거쳐 결정된다. 왕의 맏아들로서 아직 왕세자에 책봉되지 아니한 때에는 원자(元子)로 불린다.

동궁(東宮)은 경복궁에 있는 세자의 거처가 궁궐 동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다. 원래는 세자가 거하는 궁(宮)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이후 사극에 등장하는 ‘동궁마마’라는 호칭에서도 나타나듯 세자에 대한 호칭으로도 쓰였다. 세자의 존칭어는 ‘저하(邸下)’였다.

 

[<왕세자탄강진하도(王世子 誕降 陳賀圖)> 병풍 부분, 병풍크기 각폭 101.2 x 41.5cm, 국립중앙박물관 ㅣ 이 병풍은 1874년에 창덕궁 관물헌에서 후에 순종이 되는 고종과 명성왕후의 둘째 아들이 탄생했을 때 산실청에 종사했던 관원들이 기념으로 제작한 계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