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 24 - 떠나는 사람

從心所欲 2018. 6. 15. 18:17

양자를 들이고 며느리를 맞이하고 조상의 영모암도 수리하면서 유배 중에서도 나름대로 누리던 집안의 평안은

잠깐이었다. 1842년 11월 15이, 남달리 금실이 좋았던 추사의 아내 예안 이씨가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렇지만 아내가 죽은 것을 모른 추사는 11월 18일자 편지에 이렇게 아내의 병을

걱정하고 있었다.

 

"전번 편지 부친 것이 인편에 한 가지로 갈 듯합니다 .............이 사이 연하여 병환을 떼지 못하시고 일야진퇴

(日夜進退)하시나 봅니다.......우록정을 자시나 보오니 그 약이 쾌히 동정(動靜)이 계시올지, 멀리 밖에서 심려

초절하옵기 형용 못하겠습니다."   (김일근, 『인간의 연구1, 제21신)

 

그러나 그 우록정도 별 효험이 없었던지 아내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 달도 넘게 지나 뒤늦게 부음을

전해들은 추사는 '위패를 설치하여 곡을 하고 생리(生離)와 사별(死別)을 비참히 여기며' 눈물의 애서문

(哀逝文)을 지어 보냈다. 

 

"어허! 어허! 나는 형틀(刑楊)이 앞에 있고 큰 고개와 큰 바다(嶺海)가 뒤를 따를 적에도 일찍이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는데 지금 부인의 상을 당해서는 놀라고 울렁거리고 얼이 빠지고 혼이 달아나서 아무리 마음을

붙들어매자 해도 갈아 없으니 이는 어인 까닭인지요.

어허! 어허! ............................지금 끝내 부인이 먼저 죽고 말았으니 먼저 죽어가는 것이 무엇이 유쾌하고

만족스러워서 나로 하여금 두 눈만 뻔히 뜨고 홀로 살게 한단 말이오. 푸른 바다와 같이, 긴 하늘과 같이 나의

한은 다함이 없을 따름이외다."

 

아내를 사별하고 나서 추사는 그 심사가 더욱 쓸쓸해지는 것을 어찌할 줄 몰라 망연자실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 허망은 곧 인생의 허망으로 이어지는 것을 추사의 편지와 시문 곳곳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왕년에 기고만장하던 추사는 점점 인생의 무상함을 그렇게 느끼며 삶을 관조하게 되었다. 추사는 어느 날 아내의

죽음에 부치는 시를 한 수 지었다. 제목은 '아내의 죽음을 애도함(悼亡)'이었다.

 

       '어떻게 월로에 호소를 하여                                         

       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  

       천리 밖에서 내가 죽고 그대는 살아                         

       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                                      

       那將月姥訟冥司

       來世夫妻易地爲

       我死君生千里外

       使君知我此心悲

 

 

추사는 아내의 죽음을 그렇게 애통해 했다. 그리고 2년 뒤 아내의 대상을 지내게 됐을 때는 양아들 상무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어느덧 새해가 이르러서 대상이 언뜻 지나고 보니 너희들은 몹시 애통하고 허전하겠거니와 나 또한 여기에서

한 번 곡하고는 (눈물에 젖어) 상복을 벗었다 ......." (「완당선생전집」2권2, 상무에게, 제2신)

 

 

[<답상무(答商懋)> 병오년(1846) 3월 2일 양아들 상무에게 보낸 편지]

 

1843년 봄, 아내를 잃고 더욱 외로움에 빠져 있던 추사에게 더없이 반가운 벗이 찾아왔다. 초의선사가 바다를

건너온 것이다. 초의가 추사를 찾아온 사실은 추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초의가 쓴 「완당김공제문(祭文)」에는

나와 있지만 『완당선생전집』에는 추사가 초의와 함께 지낸 흔적이 글로 남아있는 것은 없다.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우사가 연등을 밝히다(芋社煙燈)>라는 시룰 써 준 일이 있다. 초의선사가 책상에서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시이다. 우사는 초의선사의 별호이다. 이 시는 『완당선생전집』에도 실려 있지만

작품이 남아 있어 그 필치로 연대를 짐작컨대 제주도 시절의 글씨로 판단된다. 글씨도 아름답거니와 시상도

참으로 은은하다.

 

 

[추사, <우사가 연등을 밝히다>]

 

 艸衣老衲墨參禪

 燈影心心墨影圓

 不剪燈花留一轉

 天然擎出火中蓮

초의 노스님이 글씨로 참선하고 있으니  

등잔 그림자는 스스로 재미있는 듯, 붓끝이 멋지게 돌아간다     

등 불꽃 지지 않도록 내버려두니 

불 가운데 연꽃이 살살 밀고 나온다 

 

추사의 외로운 유배생활은 초의스님이 곁에 있어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초의스님이 마냥 제주에 머물 수는

없는 일이라 초의가 제주에 온 지 6개월이 되었을 때 그만 일지암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추사가 "산중에 무슨

급한 일이 있겠느냐"고 초의를 붙잡았지만 스님은 기어코 떠나고 말았다. 그러다 육지로 돌아간 초의스님이

말을 잘못 타 살이 벗겨졌다는 소식을 듣자 추사가 위로 겸 처방을 내려준 편지를 썼다.

 

"얼마 전에 들으니 안마(鞍馬)3를 이기지 못하여 볼기살이 벗겨져나가는 쓰라림을 겪고 있다 하니 자못

염려가 되네. 크게 상처를 입지는 않았는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망행(妄行), 망동(妄動)을 하였으니 어찌 그에

대한 앙갚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

사슴가죽을 아주 엷게 조각을 내어 그 상처의 대소를 헤아려서 적당하게 만들어 내어 쌀밥풀로 되게 이겨

붙이면 제일 좋다고 하네. 이는 중의 가죽이 사슴가죽과 통하는 데가 있다는 것일세. 그 가죽을 붙이고서 곧장

몸을 일으켜 꼭 돌아와야만 되네." (『완당선생전집』 권5, 초의에게, 제18신)

 

 

 

이 글은, 도서출판 학고재에서 2002년 출간한

유홍준著 『완당평전』을 발췌, 요약하면서

다른 자료를 참조하여 임의 가필, 재구성한 것입니다.

 

 

  1. 건국대 김일근 박사가 발굴한 추사의 편지 40통을 소개한 책(건국대 출판부, 초판 1986) [본문으로]
  2. 추사의 시문집. 활자본. 10권 5책. 1868년(고종 5)에 문인 남병길(南秉吉) 등이 편집 간행한 완당집(阮堂集), 완당척독(阮堂尺牘) 및 담연재시집(覃揅齋詩集) 등을 현손인 익환(翊煥)이 유실된 것을 수습하고 중복된 것을 산정, 합편하여 1934년 서울 영생당(永生堂)에서 간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두산백과) [본문으로]
  3. 안장을 얹은 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