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121 - 예와 의가 모두 도리에 맞아야 군자라 할 수 있다.

從心所欲 2022. 4. 4. 15:46

 

[경직도(耕織圖) 8폭 병풍 中 8폭, 각폭 115 x 35cm, 삼척시립박물관]

 

●봉공(奉公) 제3조 예제(禮際) 9
예(禮)는 공손하게 하지 않을 수 없고, 의(義)는 결백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예와 의가 아울러 온전하여 온화한 태도로 도(道)에 알맞아야 이를 군자(君子)라 한다.
(禮不可不恭 義不可不潔 禮義兩全 雍容中道 斯之謂君子也)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3조인 예제(禮際)는 ‘예의 있게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사대부(士大夫)로서 벼슬살이하는 법은 마땅히 버릴 ‘기(棄)’자 한 자를 벽에 써 붙여 놓고 아침저녁으로 눈여겨보아, 행동에 장애가 있으면 벼슬을 버리며, 마음에 거리끼면 벼슬을 버리며, 상사가 무례하면 벼슬을 버리며, 내 뜻이 행해지지 않으면 벼슬을 버리어, 감사는 내가 벼슬을 가벼이 버릴 수 있는 사람으로 알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사람으로 여긴 뒤에야 수령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부들부들 떨면서 행여나 자리를 잃을까 염려하여 황송하고 두려운 말씨와 얼굴빛이 표정에 나타나 보이면, 상관이 나를 업신여겨 독촉과 꾸중이 잇달을 것이니, 참으로 그 직책에 오래 있을 수 없는 것은 필연의 이치인 것이다. 그러나 상관과 하관의 예절이 본디 엄한 것이니, 비록 논보(論報)하고 사직서[辭狀]를 내며 끝내는 사직을 하고 돌아가는 경우에 이르더라도, 그 말씨와 태도만은 온순하고 겸손하여 털끝만큼이라도 울분을 터뜨리는 기미가 없어야 예에 알맞다고 할 수 있다.

 

변연지(卞延之)가 상우령(上虞令)으로 있을 적에 회계 태수(會稽太守) 맹기(孟覬)가 영장(令長)으로서 그를 제재하여 오래도록 그에게 용납되지 않으므로 변연지는 감투를 벗어서 땅에 던지면서,

“내가 당신에게 굽히는 것은 다만 이 감투 때문이오. 당신은 대대로 내려오는 공신의 집안이라고 해서 천하의 국사(國士)에게 오만하게 구시오.”

하고, 옷깃을 떨치고 떠나 버렸다.

▶변연지(卞延之) : 남조(南朝) 송(宋)의 관리.
▶영장(令長) : 지방장관. 현령(縣令)과 현장(縣長). 만호 이상의 현의 관리는 영(令)이라 하고, 만호 미만 현의 관리는 장(長)이라 불렀다.

 

유벽(柳璧)이 계관판관(桂管判官)으로 있을 적에 군정(軍政)이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유벽이 간곡히 말해도 듣지 않으므로 옷깃을 떨치고 떠나 버렸다. 계부(桂府)는 얼마 되지 않아서 어지럽게 되었다.

▶유벽(柳璧) : 당나라 때의 관리.

 

장구성(張九成)이 진동(鎭東)의 첨판(簽判)으로 있을 적에, 군민(軍民)이 사염(私鹽)의 금령을 범하여 일이 이웃 고을까지 번지게 되었다. 장구성이,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사람은 몇 사람뿐이요, 그 나머지는 모두 양민입니다.”

하니, 감사가 성낸 빛을 얼굴에 띠며 거친 말씨로 장구성을 나무라므로 장구성은,

“일을 행할 수 없는데 어찌 구차하게 따르랴.”

하고는, 임명장을 던지고 떠나 버렸다.

▶장구성(張九成) : 송나라 때의 관리.

 

장구성(張九成)이 무주통판(婺州通判)으로 있을 때, 절동제형(浙東提刑) 장종신(張宗臣)이 무주의 백성 수십 명을 체포하여 말하기를,

“이 일은 좌상(左相)이 일부러 사람을 보내서 잡아 올리라 하는 것인데 아는가?”

하니, 장구성은,

“다만 성지(聖旨)가 있음을 알 따름이요 재상이 있는 것은 모릅니다.”

하고, 임명장을 던지고 떠나 버렸다.

 

서구사(徐九思)가 구용지현(句容知縣)으로 있을 때, 공부상서(工部尙書) 조문화(趙文華)가 동남도(東南道) 하수(河水) 가에서 군대를 사열하였다. 서구사는 마중 나가지 않고 한 이속을 보내어 통첩을 가지고 알현하도록 하였는데, 조문화는 마구 꾸짖어 돌려보냈다. 조문화가 서울로 돌아가서 이부상서(吏部尙書) 오붕(吳鵬)과 모의하여 그를 죄에 얽어서 드디어 죄를 입어 벼슬이 떨어졌다.

살피건대, 외관으로서 임금의 사신이 경내에 이르게 되면 성심으로 공경하며 마중 나가야 하는데, 서공(徐公)의 일은 잘못이 있다.

▶서구사(徐九思) : 명나라 때의 관리.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