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대원군, 부원군

從心所欲 2022. 4. 18. 17:41

대원군(大院君)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고종의 아버지였던 흥선(興宣) 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다. 흥선 대원군이 너무도 유명하고 다른 대원군에 대하여 들어볼 일도 거의 없기 때문에 자칫 대원군은 이하응을 가리키는 대명사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조선에는 이하응 말고도 3명의 대원군이 더 있었다. 다만 그들은 모두 사후에 대원군에 봉해져 대원군으로서의 활동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특별히 거론될 일이 없었을 뿐이다.

 

조선시대의 왕위 계승은 자식이 우선순위이지만 자식이 없을 경우에는 형제가 그 다음 순위였다. 경종의 이복동생으로 왕위에 오른 영조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물론 정조처럼 손자가 왕위에 오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조선의 왕들 가운데는 자손이나 형제 같은 대를 이을 후사(後嗣) 없이 죽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종친 가운데 인물을 골라 왕위를 계승케 하였다. 24대 왕인 헌종의 뒤를 이은 철종과 철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고종과 같은 경우다. 이런 특수한 경우에 새로 왕이 된 인물의 생부(生父)에게 주던 존호(尊號)가 바로 대원군이다.

 

대원군은 명종이 후사 없이 서거한 뒤 선조가 즉위하면서 선조의 생부인 덕흥군(德興君)을 덕흥대원군으로 추존(追尊)한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이후에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출(廢黜)되고 선조의 5남으로 인빈김씨(仁嬪金氏) 소생인 정원군(定遠君)의 아들 능양군(綾陽君)이 왕으로 옹립되어 인조가 되자, 정원군은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으로 추존되었다. 이후에 인조는 자신의 아버지 정원대원군을 원종(元宗)으로 추존하여 왕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헌종도 후사가 없이 죽자 순조의 비() 순원왕후(純元王后)의 명에 따라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원군(恩彦君)의 아들 전계군(全溪君)의 아들 덕완군(德完君)이 왕위에 올라 철종이 되었고 전계군을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으로 추존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죽으면서 흥선군(興宣君) 이하응(李昰應)의 둘째 아들이 왕위에 올라 고종이 되었고, 이하응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 봉하여졌다.

 

[이하응초상 금관조복본(李昰應 肖像 金冠朝服本), 견본채색, 132.1 x 67.6cm, 국립중앙박물관]

 

대원군과 유사하게 들리는 부원군(府院君)은 임금의 장인, 즉 국구(國舅)에게 주어진 작호(爵號)이다. 일반적으로 왕비로 선발된 여인이 궁중에 들어와 정실 왕후가 되면, 왕비의 부친은 자동적으로 부원군이 되었다. 부원군이란 작호는 임금의 장인 외에 정1품 공신(功臣)들에게도 내려졌다.

부원군은 통상 받는 사람의 본관(本貫) 읍호(邑號)지명(地名)을 앞에 붙인다. 태종의 장인이었던 민제(閔霽)는 여흥(驪興) 민씨라 여흥부원군(驪興院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