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재앙을 이기기 위하여 왕이 힘써야 할 10가지 - 5

從心所欲 2022. 4. 6. 07:52

9목의 여섯 번째 항목은 <교화불가불명(敎化不可不明)>이다.

 

교화(敎化)를 밝히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에 두 가지가 있는데, 형정(刑政)과 교화(敎化)뿐입니다. 형정은 밖에서 제재하는 방도이고 교화는 마음에서 느끼게 하는 방도인데, 형정으로 제재하면 백성이 면하되 염치가 없게 되고 교화하여 느끼게 하면 염치가 있고도 바루어지는 것입니다. 대저 교화하는 방도는, 그 사람의 마음에 없는 것을 굳이 행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도(常道)를 지키는 덕(德)은 각각 스스로 넉넉히 갖추었으므로, 그 사람이 본디부터 가진 것에 말미암아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소 행하여 이끌어 주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것이 없어서 떨쳐 일어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근년 이래로 교화가 밝지 않아서 사습(士習)이 바르지 않으므로, 절의(節儀)와 염치가 땅을 쓴 듯이 죄다 없어졌습니다. 인심이 날로 투박하여져서, 명절(名節)과 행검(行檢)이 귀한 줄을 모르고, 오직 아첨하고 유연하게 처세하며 앞 다투어 이록(利祿)을 구하여 세력에 붙는 것을 힘쓸 뿐입니다. 권세가 있는 곳이면 멀리서 바라보고도 쏠리듯 하고, 세력이 있는 곳이면 기미를 보고 먼저 달려가서, 위를 속이고 아래에 붙는 풍습이 일어나고, 공도(公道)를 저버리고 사리(私利)를 꾀하는 폐단이 일어났는데, 저번에 있었던 일이 대개 이미 이를 증험한 것입니다.
▶사습(士習) : 선비의 풍습(風習).
▶명절(名節) : 명분(名分)과 절의(節義).
▶행검(行檢) : 점잖고 바른 몸가짐.

사습이 어그러지자 풍속도 따라서 무너지고 삼강(三綱)이 땅에 떨어져 인륜의 변고가 잇달아 일어나서,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종이 상전을 죽이고 아내가 지아비를 죽이니, 그 변고는 하늘의 재변보다 심한 것입니다. 이에 이르러 천리(天理)가 무너지고 인도(人道)가 죄다 없어졌으니, 앞으로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대개 인심이 바르지 않은 것은 교화(敎化)가 밝지 않은 데에서 말미암고, 교화가 밝지 않은 것은 이끄는 것이 도리에 어그러진 데에서 말미암습니다.
삼대(三代)의 학문은 다 인륜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륜이 위에서 밝혀지면 백성이 아래에서 새로워지는데, 이것은 다 임금이 몸소 행하는 데에 근본하여 마음에서 얻는 것이고, 밖에서 빌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학교의 정사가 인륜에 근본하지 않고 있으며 권려(勸勵)하는 방도는 사장(詞章)을 외는 말단에 있을 뿐인데 사장을 외는 것도 폐기할 수는 없으나, 백성을 교화하여 풍속을 이루는 근본은 참으로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자신에서 반성하여 그 근원을 밝혀 인륜의 도리를 다하고 교화의 근본을 세우소서. 그러면 감화(感化)가 풀이 바람에 쓸리는 것과 같이 빨라서, 사습이 절로 바루어지고 민덕(民德)이 절로 두터워질 것이니, 화기를 가져오고 재변을 그치게 하는 도리로서 무엇이 이보다 낫겠습니까.
▶사장(詞章) : 문장(文章)과 시가(詩歌).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 <서당풍경>]

 

9목의 일곱 번째 항목은<형옥불가불신(刑獄不可不愼)>이다.

 

형옥(刑獄)은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하늘이 만물에 비와 이슬을 내려서 살리고 서리와 눈을 내려서 죽이는 것은 모두가 인애(仁愛)하는 것이고, 성인(聖人)이 백성들을 덕례(德禮)로 기르고 형벌로 위엄을 보이는 것은 모두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백성은 혹 이욕(利欲)에 움직이기도 하고 과오에 빠지기도 하고 속임수에 걸려들기도 하고 연체(連逮)되기도 하는데, 일의 정상이 천 가지로 변하고 실정과 거짓이 만 가지 꼬투리이므로, 지극히 밝지 않으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 없고, 지극히 공정하지 않으면 그 마음을 복종시킬 수 없습니다. 죽은 자는 다시 살릴 수 없고 끊어진 것은 다시 이을 수 없으니,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전하께서는 천지의 인애를 몸받고 생물의 마음을 미루어 죄 없는 자를 불쌍히 여기고 옥사(獄辭)를 친히 보시어 사수(死囚)를 삼복(三覆) 하시니 삼가고 돌보는 뜻이 지극하시나, 옥송(獄訟)을 들어서 결단하는 관리는 사정을 써서 공정하지 않기도 하고 재능이 모자라서 밝지도 못하여, 백성의 살갗을 다치게 하고 백성의 목숨을 해칩니다. 그래서 조리가 바른 자가 그 실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정상이 가벼운 자가 흔히 무거운 죄에 빠지니, 가슴 속에 쌓인 원통함을 어찌 차마 말하겠습니까. 조옥(詔獄)을 설치하여 추고하는 것은 임금이 친히 추고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니, 이것은 억울한 일을 잘 살피기 위한 것인데, 지금은 조옥에 들어간 자가 스스로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으레 고분고분 승복하여 성상의 인자함으로 특별히 용서받기를 바라니 참으로 애처롭습니다.
▶삼복(三覆) : 세 번의 복심(覆審). 사형에 해당하는 죄수는 죄를 정한 뒤에 신중히 하기 위하여 세 번 다시 심리하는데, 그때마다 임금에게 아뢴다.
수십 년 이래로 사림(士林)의 화가 반복하여 여러 번 일어나 형벌에 숨진 사대부가 얼마였는지 모르는데, 그 죄진 것이 중대한 데에 관계되고 정상이 명백하여 왕법(王法)이 용서할 수 없다면 그만이겠으나, 그 사이에 어찌 그 죄가 아닌데 무거운 벌을 받고 죽어서 어두운 지하에서 원통한 마음을 품은 자가 없겠습니까.
【이를테면, 기묘년(1514년, 중종14년)에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기준(奇遵)과 유생(儒生) 홍순복(洪順福) 등이 다 무함당하여 죽었는데 이는 남곤(南衮)·심정(沈貞)·이항(李沆)이 한 짓이며, 임진년(1532년, 중종 27년) 에 생원(生員) 이종익(李宗翼)은 상소하여 여러 가지를 아뢰었기 때문에, 을미년(1535년, 중종 30년) 에 진사(進士) 진우(陳宇)는 항간에서 의논하였기 때문에 참형 당하였는데 이는 김안로(金安老)가 무함한 것이었다.】 
원기(冤氣)가 맺혀서 흩어지지 않는 것이 많으면 반드시 이로 말미암아 화기를 상하여 재변을 부르는 것입니다. 임금이 인애하고 돌보는 법은 사생(死生)에 차별 없이 거듭 살펴서 옥사를 너그럽게 결단하고 원통함을 풀어 주어야 하는 것이니, 이것도 재변을 그치게 하는 한 방도입니다.

출처 : 《중종실록》 중종 36년(1541년) 4월 2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