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재앙을 이기기 위하여 왕이 힘써야 할 10가지 - 3

從心所欲 2022. 4. 2. 10:02

9목의 세 번째 항목은 <인재불가불변(人才不可不辨)>이다.

 

인재를 가려 쓰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은 뭇 관원에게 달려 있으니, 관직은 사사로이 친근한 사람에게 주지 말고 오직 재능 있는 사람에게 주며, 관작은 악덕(惡德)한 사람에게 주지 말고 오직 어진 사람에게 주소서.’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재를 가려 쓰는 것은 나라를 가진 이가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군자는 본디 스스로 군자라 생각하고 소인을 소인으로 여기지만, 소인 또한 스스로 군자라 생각하고 군자를 소인으로 여기니, 각각 자기가 옳다 하여 서로 배척하면, 임금은 그 간사함과 바름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경방(京房)이 원제(元帝)에게 묻기를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은 어찌하여 위태로워졌겠습니까?’ 하니 ‘임용한 신하가 간사하게 아첨하였기 때문이다.’ 하였고 ‘간사한 줄 알고서도 썼겠습니까?’ 하니 ‘어질게 여겼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질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하니 ‘그 시대가 어지러워져 임금이 위태로웠기 때문에 안다.’ 하므로 ‘어진 사람에게 맡기면 반드시 다스려지고 변변치 못한 사람에게 맡기면 반드시 어지러워지는 것은 필연의 이치인데, 어찌하여 유왕과 여왕은 깨달아서 다시 어진 사람을 찾지 않고 끝내 변변치 못한 사람에게 맡겨서 그 지경이 되었겠습니까?’ 하니 ‘위란(危亂)을 당하는 임금은 각각 제 신하를 어질게 여기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또 듣건대, 이덕유(李德裕)가 문종(文宗)에게 말하기를 ‘다스려지게 하는 요체는 뭇 신하의 간사함과 바름을 가리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였다 합니다.
▶경방(京房) : 중국 전한(前漢) 때의 사상가. 역학(易學)에 밝아 원제(元帝)의 총애를 받았다. 
▶원제(元帝) : 중국 한(漢)나라의 제8대 임금.
▶유왕(幽王)과 여왕(厲王) : 주(周)나라 제12대와 제10대의 임금. 여왕은 이(利)를 좋아하고 포학하였으므로, 제후(諸侯)가 조회하러 오지 않고 백성이 임금을 비방하였는데, 비방하는 사람을 가두고 죽였다. 이에 반란이 일어나 체(彘)로 달아났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유왕은 포사(褒姒)를 총애하여 왕후와 태자를 폐하고서 포사를 왕후로 삼고 포사의 소생을 태자로 삼았다. 웃음이 없는 포사를 웃게 하기 위하여 유왕이 봉화를 올리게 하여 제후를 모으니 포사가 이를 보고 웃었는데, 그 뒤에 견융(犬戎)이 침공할 때에는 봉화를 올렸으나 제후가 오지 않았으므로 견융에게 쫓겨 여산(驪山) 아래서 잡혀 죽었다. 이 두 사람을 유(幽)·려(厲)라 합칭하여 ‘포학한 임금’ 또는 ‘나라를 망친 임금’의 뜻으로 쓴다.
▶문종(文宗) : 당(唐)나라의 14대 임금.

간사함과 바름은 형세가 서로 용납하지 못하므로, 바른 사람은 간사한 사람을 가리켜 간사하다 하고 간사한 사람도 바른 사람을 가리켜 간사하다 하니, 임금이 가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성패(成敗)의 자취가 예전에 밝혀졌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다들 그 선함과 악함을 알겠으나, 마음 쓰는 것이 미처 드러나지 않으면 슬기로운 사람이라도 그 간사함과 바름을 가리지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그 사람이 권세를 쥐고 있고 세력을 잡고 있다면, 사람들이 알더라도 감히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심은 속이기 어렵고 공론은 막기 어려운 것입니다. 속이는 자취가 혹 한 사람의 판단을 가리울 수는 있으나, 속마음이 드러나는 것은 여러 사람이 보는 것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맹자가 이르기를 ‘좌우가 다 어질다 하여도 아직 쓰지 말고 여러 대부(大夫)들이 다 어질다 하여도 아직 쓰지 말며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어질다 한 다음에 써야 한다. 좌우가 다 쓸 만하지 않다 하여도 듣지 말고 여러 대부들이 다 쓸 만하지 않다 하여도 듣지 말며,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쓸 만하지 않다 한 다음에 물리쳐야 한다.’ 하였습니다.

예전에 제 위왕(齊威王)이 아대부(阿大夫)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아(阿)를 다스리고부터 칭찬하는 말이 날마다 들리니, 이것은 내 좌우를 잘 섬겼기 때문이다.’하고 즉묵 대부(卽墨大夫)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즉묵을 다스리고부터 헐뜯는 말이 날마다 들리니, 이것은 내 좌우를 잘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송 인종(宋仁宗)이 왕소(王素)에게 재상이 될 만한 사람을 물으니 ‘환관·궁첩이 그의 성명을 모르면 그 사람은 그 선거에 들 만합니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좌우에서 늘 가까이 모시는 사람의 말은 본디 믿을 것이 못되고, 반드시 여러 대부들의 말이라야 비로소 믿을 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멀리 전대(前代)에서 찾을 것 없이 우선 눈과 귀로 보고 들은 일을 말하자면, 지난 20년 동안 조정과 사림이 늘 붕당(朋黨)을 나누어 권세에 따라 서로 이기고 지곤 하였는데, 이긴 자는 군자가 되고 진 자는 소인이 되며, 자기에게 붙는 자는 옳게 여기고 자기와 뜻을 달리하는 자는 그르게 여깁니다.
일단 군자라 하면 여러 대부들도 다 같이 옳게 여기고, 소인이라 하면 여러 대부들도 다 같이 그르게 여기니, 이들이 어찌 모두 어리석어 분별을 못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모두 화를 두려워하여 권세에 아부하는 것입니다. 논집(論執)할 것이 있으면 대신(大臣)은 육조(六曹)를 거느리는 한편 언관(言官)은 양사(兩司)가 합동하는데, 이렇게 되면 전하께서 어찌 물정이 그들의 의논과 같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여러 대부들의 말은 이처럼 혹 믿을 수 없는 것이 있으므로 온 나라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한 다음에야 그 논의가 공정한 것입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모책(謀策)이 중론을 따르면 천심(天心)에 맞는다.’ 하였습니다. 임금으로서는 본디 언로(言路)를 크게 열어서 대소 귀천(大小貴賤)을 가릴 것 없이 나라 사람들이 다들 진언할 수 있게 하여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저촉되는 것이 있더라도 죄주지 않아야 공론을 비로소 들을 수 있을 것이며, 물정을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맹자가 또 말하기를 ‘나라 사람들이 다 어질다 하거든 살펴서 어진 것을 보고 난 뒤에 쓰고, 나라 사람들이 다 쓸 만하지 않다 하거든 살펴서 쓸 만하지 않은 것을 보고 난 뒤에 물리쳐야 한다.’ 하였습니다. 반드시 자신이 살펴서 그 어질고 어질지 못한 실정을 보고 난 뒤에 비로소 쓰고 물리칠 것을 결정한다면, 어진 사람을 깊이 알아서 중하게 쓰므로 재주 없는 사람이 요행히 쓰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경》에 이르기를 ‘모든 말이 같거든 시행하라.’ 하였고, 공자가 이르기를 ‘뭇사람이 좋아하여도 반드시 살피고, 뭇사람이 미워하여도 반드시 살피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학문이 고명하고 심덕(心德)이 밝아 마치 깨끗한 거울이나 맑은 물과 같아야만 인심의 사정(邪正)과 곡직(曲直)이 털끝만큼도 숨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밝고 맑지 못하면서 문득 뭇사람의 말 밖에서 살피려 한다면, 혹 편견으로 마땅함을 잃게 되어, 도리어 흔히 들어맞는 중론만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자세히 비추어 보기도 하고 남의 말을 널리 받아들이기도 해서 안팎이 함께 맑고 권형(權衡)이 마땅해야만, 실속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현사(賢邪)가 조금 가려져서 조정이 조금 안정되었으니, 이로 말미암아서 잘 지켜야 할 것인데, 어찌 다시 이설(異說)을 일으키겠습니까. 다만 인심이 지키고 버리는 것이 무상하고 세도(世道)가 반복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더욱더 살펴서 사사로운 편당을 끊고 공정한 진퇴(進退)를 지키면,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해서 하늘과 사람이 함께 기뻐하여 재변이 재변으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릴리언 메이 밀러(Lilian May Miller)의 <Gateway>와 <Gateway by Moon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