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재앙을 이기기 위하여 왕이 힘써야 할 10가지 - 4

從心所欲 2022. 4. 3. 15:02

9목의 네 번째 항목은 <제사불가불근(祭祀不可不謹)>이다.

 

제사를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역경(易經)》 췌괘(萃卦)에 이르기를 ‘임금이 사당을 두었다.’ 하였습니다. 제사하여 보답하는 것은 인심에 근본하는 것입니다. 성인이 의례를 제정하여 덕(德)을 이룸으로써, 사람은 매우 많으나 마음이 향하여 우러르는 데를 하나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심이 향하는 데를 몰라도 성경(誠敬)을 다할 수는 있고, 귀신을 헤아릴 수는 없어도 귀신이 오게 할 수는 있습니다. 인심을 모아 합치고 중지(衆志)를 모아 거느리는 도리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지극히 큰 것으로는 종묘(宗廟)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죽은 이를 살아 있을 때처럼 섬기고 없는 이를 있는 것처럼 섬기는 것이 지극한 효성입니다.
사직(社稷)에 제사하는 것은 만물이 땅에서 살며 곡식을 먹기 때문이고 석전(釋奠)·석채(釋菜)는 선성(先聖)·선사(先師)가 백성을 위하여 가르침을 세웠기 때문이며, 산천의 여러 신에게 제사하는 것은 재앙을 막고 환난을 물리쳐 백성에게 공이 있기 때문이며, 성황(城隍) ·여단(厲壇)은 발원하는 곳이기 때문에 제사가 없습니다.
▶석전(釋奠)·석채(釋菜) : 향교나 서원과 같은 학교에서 선성(先聖)·선사(先師)와 산천(山川)·묘사(廟社)에 올리는 제례(祭禮). 석전과 석채의 차이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많으나, 대개 석전에는 소·양 등 희생을 쓰고 풍악을 합주하며, 석채는 석전보다 가벼운 의례로 희생과 합주가 없다.
▶선성(先聖)·선사(先師) : 옛 성인과 성인을 도와 덕업(德業)을 성취한 사람. 예전에는 학교를 세우면 선성·선사에게 석전(釋奠)하였다. 주대(周代)에는 순(舜)·우(禹)·탕(湯)·문왕(文王)을 선성으로 하고 이들을 도운 이를 선사로 하였고, 후한(後漢)의 명제(明帝) 때부터는 주공(周公)을 선성, 공자(孔子)를 선사라 하였으며, 삼국 때의 위(魏) 이후로는 공자를 선성으로, 당대(唐代)에는 주공을 선성으로 하기도 하고 공자를 선성으로 하기도 하다가 고종(高宗) 이후 공자가 선성으로 고정되었다. 선사로는 안자(顔子) 외에 자사(子思)·증자(曾子)·맹자(孟子) 등 수가 증가되었으며, 명 세종(明世宗) 때에는 선성·선사를 합하여 공자 한 사람으로 하여 주향(主享)하고 나머지는 배향(配享)하였다.
▶성황(城隍) : 도성(都城)을 지키는 신. 본디 지방 풍속에서 일어난 것이라 시대와 지방에 따라 제사하는 신과 시기가 다르다.
▶여단(厲壇) : 횡사(橫死)하거나 후사(後嗣)가 없는 귀신을 제사하는 단.

그러므로 나라의 큰 일은 제사하는 데 있고 신명을 섬기는 도리는 또 성경(誠敬)에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사전(祀典)이 갖추어져 있고 전하의 효성도 지극합니다. 그러나 재실(齋室)이 누추하고 제사가 정갈하지 못함이 지금보다 더한 때가 없으니 몸을 깨끗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며 정성을 더하고 공경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서울도 그러한데, 더구나 궁벽한 고을이겠습니까. 신(神)을 업신 여김이 너무 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사(有司)의 죄입니다. 공자가 이르기를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대개 정성이 있으면 신명이 있고 정성이 없으면 신명이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옛 성인이 제사는 반드시 참여하여야 신명이 있는 듯이 여기는 정성을 다할 수 있기 때문에 말한 것입니다.
근래 종묘의 대향(大享)을 으레 섭행(攝行)하는데 그 섭행도 대신(大臣)이 하지 않으니, 선조를 받들고 신을 공경하는 도리에 극진하지 못한 점이 있을 듯합니다. 전하께서 날이 밝기 전에 옷을 입고 해가 진 뒤에 저녁을 드시며 정사에 근심하고 힘쓰신 30여 년 동안에 어찌 성궁(聖躬)이 편찮으신 적이 없었겠습니까. 심한 추위와 더위 그리고 비가 내릴 때에는 친히 거행하시기가 참으로 어렵겠으나, 그 밖의 날씨가 온화하여 알맞고 기체가 강녕하실 때에는 큰 사고만 없다면, 친히 제사하시는 의례를 빠뜨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대향(大享) : 국가에서 지내는 큰 제사. 곧 대사(大祀). 조선시대 국가의 제사는 대사·중사(中祀)·소사(小祀)로 나누는데, 종묘(宗廟)·사직(社稷) 등의 제사를 대사, 선농(先農)·선잠(先蠶) 등의 제사를 중사, 그 밖의 것을 소사로 했다.
▶섭행(攝行) : 일을 대신하여 행함.

예전에 생쥐가 교우(郊牛)의 뿔을 갉아먹은 일을 《춘추(春秋)》에서 경계하여 보였는데, 더구나 이제 삼생(三牲)이 재앙을 당하여 날로 다 죽어 가니, 신명의 꾸짖음이 준엄하고도 절박하다 하겠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임금이 사당을 두는 의리와 신명이 있는 듯이 하는 정성을 다하고, 몸소 솔선하여 경건하게 신하들을 거느리소서. 그러면 일에 분주한 반열(班列)에 있는 백관(百官)과 집사(執事) 모두가 명령하지 않아도 공경하고, 말하지 않아도 성신(誠信)하며, 성내지 않아도 부월(鈇鉞)보다 위엄이 높아 앞에서 말한 재실(齋室)·제복(祭服) 같은 것을 절로 삼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교사(郊社)의 의례와 체상(禘嘗)의 의리에 밝으면,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는 손바닥을 보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하였습니다. 인효(仁孝)와 성경(誠敬)이 지극하고 성신을 따라 행하여 순리에 통달하는 것이 극진하면 하늘과 사람이 서로 부합하고 귀신이 복을 내려서 재변이 있다 하더라도 재변다운 화를 입지 않을 것입니다.
▶교우(郊牛) : 임금이 교외에서 하늘과 땅을 제사하는 교사(郊社)에 희생으로 쓰는 소. 교(郊)는 동지(冬至)에 하늘을 제사하는 것이고, 사(社)는 하지(夏至)에 땅을 제사하는 것이다.
▶부월(鈇鉞) : 도끼와 큰 도끼. 여기서는 다 사형(死刑)에 쓰는 제구.
▶체상(禘嘗) : 임금이 종묘(宗廟)에 지내는 제사. 봄에 지내는 것을 약(礿), 여름에 지내는 것을 체, 가을에 지내는 것을 상, 겨울에 지내는 것을 증(烝)이라 하는데, 이 가운데에서 둘을 따서 이른 말이다.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 <김윤식 자작> ㅣ 김윤식(金允植, 1835 ~ 1922)은 구한말에 외무아문대신(外務衙門大臣)을 지낸 인물로, 일제의 한반도 강점 후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다. 애초 본인은 거절하였으나 고종과 순종의 권유로 결국 받아들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을 요구하는「대일본장서(對日本長書)」를 제출하였고 이후 일제는 김윤식의 자작 작위를 박탈하였다. ]

 

9목의 다섯 번째 항목은 <민은불가불휼(民隱不可不恤)>이다.

 

백성의 고통을 돌보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어야 나라가 편안하다.’ 하고, 전(傳)에 이르기를 ‘백성은 나라에 의지하고 나라는 백성에게 의지하니, 백성을 아끼지 않고서 그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자는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선왕(先王)이 백성을 자식처럼 아끼고 자식처럼 보호하여, 가렵고 아픈 것을 모두 내 몸보다 절실하게 여기고 환과고독(鰥寡孤獨)을 반드시 먼저 어루만져 기르며, 그 전리(田里)를 제정하고 농사와 가축 기르는 것을 가르쳐, 위로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 처자를 기르되 풍년에는 일년 내내 배부르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임금의 정사의 근본입니다.
▶환과고독(鰥寡孤獨) :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

보건대 전하께서 백성을 아끼는 정성이 지극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백성을 중하게 여기는 정사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근래에 수재와 한재로 기근이 거듭 이르므로, 농사에 힘쓰는 백성이 한 해가 다하도록 부지런히 일하여도 하루아침에 굶어 죽는 목숨을 건지지 못하여, 중등 가는 재산을 가진 집도 열 집 중에서 아홉 집은 비었으니, 떠도는 백성이 어떻게 의지하여 살겠습니까. 그렇다면 돌보아 구제하고 곡식을 대여하는 방도를 마치 불 속에서 구제하고 물에 빠진 자를 건지듯이 급급하게 하여야 할 것인데, 지금 백성을 다스리는 벼슬아치 가운데에는 자상하고 정성스러운 무리가 적고, 한없이 탐욕하고 포학한 무리가 많습니다.
납세를 급하게 독촉하여 일을 잘 처리한다는 명성을 얻으려고 생각하고, 처첩이 입고 먹는 것을 지극히 풍부하게 하려고 생각하며, 제가 섬기는 권세 있고 높은 자가 뇌물을 좋아하면 그 욕망을 채워 주려고 생각하고, 제가 아는 가난한 자가 구제하여 주는 것을 은덕으로 여기면 그의 마음을 얻으려고 생각하여, 공교하게 명색을 만들어 위축된 백성을 침탈하니, 관가의 창고에는 곡식이 어지러이 많으나 민간에는 텅 비어 베도 없습니다. 그 밖에 변방의 장수가 잔학하고 여러 관사(官司)가 침탈하는 것도, 이와 같은 무리는 있는 곳마다 그러하여, 전하의 어린 백성이 재변에 한 번 괴롭고 가혹한 정사에 다시 괴로움을 당하므로, 그 시름하는 소리가 높으나 호소할 데가 없습니다.
이뿐이 아니라, 보병(步兵)·수군(水軍)은 토목일에 지치고 【왕자, 왕녀의 집을 지을 때에 튼튼하고 크게 하여 전보다 낫게 하려고 힘쓰므로, 서울에 올라온 보병과 경기의 수군이 늘 그 일에 이바지하느라 몹시 고달팠다.】 선상(選上)된 조례(皂隷)는 무거운 부과에 괴롭습니다. 재산을 기울이고 논밭을 죄다 팔아서 그 신역(身役)에 응하고는, 집에 돌아와 생업을 이을 수 없으면 서로 이끌고 타향으로 떠나는데, 그 폐해가 친척과 이웃에 미치므로, 원한의 기운이 하늘에 사무칩니다. 이러한데도 화기(和氣)가 감응하여 제때에 비가 오고 개는 고른 날씨를 바란다면 어찌 아득하지 않겠습니까.
▶선상(選上) : 서울의 각사[京各司]에서 부리기 위하여 각 고을에서 노비(奴婢)를 뽑아 올리는 것.

예전에 한 선제(漢宣帝)가 ‘백성이 그 전리(田里)에 안정하여 탄식하고 시름하는 소리가 없는 것은 정사가 공평하고 송사가 다스려지기 때문이니, 나와 이 일을 함께 할 자는 오직 양이천석(良二千石)이라야겠다.’ 하였습니다. 대저 백성을 다스리는 벼슬 중에서 수령(守令)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니, 그 선임(選任)을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임금이 이 백성의 부모가 된 마음으로 어린 자식의 목숨을 자상한 관리에게 맡기지 않고 범과 이리의 입에 맡기는 것이 어찌 차마 할 일이겠습니까.
▶양이천석(良二千石) : 선량한 태수(太守)라는 뜻. 한대(漢代) 태수의 녹질(祿秩)이 이천 석(二千石)이었다.

조종(祖宗) 때의 천거하던 법은 그 생각이 매우 깊고 조정(朝廷)이 이를 거행한 것은 그 뜻이 매우 아름다운 것인데, 경대부(卿大夫)가 성심(聖心)을 몸받지 않고 사정에 따라 공사를 해치며 용렬한 자를 마구 천거하여 먼저 좋은 법을 무너뜨립니다. 대저 천거하는 자가 이런 사람을 천거하는 것은 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기가 이롭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군민(軍民)을 침탈하는 것은 수령(守令)이나 변장(邊將)의 소행이 아니라 바로 조정의 소행입니다. 조정이란 시방의 근본인데, 근본을 비루지 않고서 그 말단을 다스릴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조정에 염치가 있어서 침탈하는 폐단을 없애고, 좋은 법에 장애되는 것이 없어서 선임(選任)의 공정을 얻는다면, 아마도 참다운 혜택이 아래에 미쳐 백성이 소생해서 화기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중종실록》 중종 36년(1541년) 4월 2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