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실화가 4

이경윤 산수인물화첩 2

최립이 첫 번에 지은 다섯 수의 시 가운데 마지막은 의 화제다. 偉然而皓者兮 호호백발 노인네들 어쩌면 저리도 비범한고. 乍同而乍異 언뜻 보면 똑같다가 다시 보면 다르구나. 吾方諦視其三人兮 내가 지금 세 사람을 뚫어지게 보노라니 俄若與之爲四 어느새 나를 합쳐 사호(四皓)로 변하는 듯. 최립이 ‘사호(四皓)’라고 한 것은 진(秦)나라 말기에 폭정(暴政)을 피해 상산(商山)에 숨어 살았던 네 명의 노인, 즉 상산사호(商山四皓)를 일컫는 것이다. ‘皓’는 ‘흴 호’자인데 그들의 눈썹과 머리카락이 모두 흰데서 붙여진 명칭이다. 상산사호는 후세에 나이 많고 덕도 높은 은사(隱士)나 산 속에 은거하는 덕망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에는 화제가 둘이나 적혀있다. 『간이집(簡易集)』에 실린 글에서 최립은 “가..

우리 옛 그림 2021.10.07

종실(宗室)화가 - 이경윤 이징 3

조선이라는 이미지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이처럼 화려해 보이는 산수화도 있었다. 이금산수화(泥金山水畵)이다. 이금 또는 니금(泥金)은 고운 금박가루인 금분(金粉)을 아교풀에 개어 만든 안료로, 자색(紫色)이나 감색(紺色), 흑색(黑色)으로 염색한 그림 바탕에 보색관계인 이금으로 그림을 그려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 이금화(泥金畵)이다. 금은 삼국시대부터 장신구는 물론 불상, 불화 등에 사용되었고, 고려시대의 불화에는 인물의 신체나 옷감 등을 이금으로 장식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금은 값이 비싸고 귀한 재료라, 금으로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 행위다. 이금 화는 불화에 쓰이던 이금이란 안료를 감상용 회화에 사용함으로써 그 안료가 지닌 권위와 상징성을 시각화한 것이다. 16세..

우리 옛 그림 2020.11.14

종실(宗室)화가 - 이경윤 이징 2

탁족(濯足)은 전통적인 선비들의 피서법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더워도 선비가 옷을 벗고 물에 뛰어드는 경망한 짓은 할 수 없으니 물에 발을 담그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탁족(濯足)에는 철학적인 의미도 있다. 중국 초(楚)나라 때의 충신 굴원(屈原)과 그 유파를 다룬 중국의 고전 「초사(楚辭)」 에는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세상과 타협할 수 없었던 굴원(屈原)에게 늙은 어부가 던진 말이다. 이로 인하여 발을 씻는다[濯足]는 것은 혼탁한 세상을 피하여 숨어사는 은일자(隱逸者)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이 그림을 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같은 이름의 가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있다. 같은 화재(畵材)에, 그려진 인물의..

우리 옛 그림 2020.11.13

종실(宗室)화가 - 이경윤 이징 1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강희안(姜希顔, 1417 ~ 1464)은 동생 강희맹(姜希孟)과 더불어 일찍부터 시서화에 뛰어난 재주를 보여, 세종 때 안견(安堅), 최경(崔涇)과 더불어 삼절(三絶)이라 불렸던 인물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글씨와 그림은 천한 재주이니 단지 후세에 흘러 전하여서 이름을 욕되게 할 따름이다[書畵賤技 祗流傳後世 以辱名耳]“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100여년 뒤에 왕실 종친 집안이 갑자기 글과 그림으로 이름을 얻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경윤(李慶胤, 1545 ~ 1611)은 성종의 8남(男)인 익양군(益陽君) 이회(李褱)의 종증손(從曾孫)이다. 종친(宗親)이라는 신분 때문에 벼슬은 하지 않았고, 왕실 왕자군(王子君)의 증손에게 내려지는 학림수(鶴林守)를 제수 받았으며..

우리 옛 그림 2020.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