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 35 - 강상시절 2

從心所欲 2018. 7. 27. 14:00

추사의 글씨가 강상시절에 점점 더 파격적으로 대담해지고 있음은 그가 생질서(甥姪壻)1인 이당(怡堂) 조면호에게

써준 대련 <청리내금첩 靑李來禽帖>을 보면 더 잘 나타나 있다. <靑李來禽帖>은 첩(帖)의 이름이고

'천지석벽도(天池石璧圖)'는 원(元)나라 화가인 황공망이 그린 명화의 제목으로, 파격적이고 어지러운 획이

많지만 글씨의 리듬과 강약의 변화가 있는 작품이다.

 

[김정희  <靑李來禽帖>, 각폭 95.5 x 28.0 cm, 간송미술관 소장]

 

 

'학위유종(學爲儒宗)'은 '학문은 유학을 으뜸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추사는 고급 냉금지2에 고급 먹으로 글씨를 썼다. 서체가 예사롭지 않고 괴이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글씨는 획법(劃法)과 자법(字法)에서 나무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괴이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김정희 <學爲儒宗>, 131.5 x 35.0cm, 호암미술관]

 

그런데 이 작품에는 추사의 도서낙관이 없다. 다만 중국의 왕기한 이라는 사람이 이 작품이 중국에 까지 오게 된

연유와 원래 4폭이던 것을 두 폭을 잃어버려 남은 두 폭만  감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잃어버렸다는 두 폭에

추사의 관지가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는 "추사 선생의 필력을 보니 힘찬 모습은 진(晉), 당(唐)의 예법(隸法)과

규칙이 있다"고 배관기3에 적었다.

 

이렇게 자기 멋대로 글씨를 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강상시절의 추사였다. 청명 선생의 지적대로 추사의 이런

글씨에는 세상의 이치와 인생이라는 것에 대한 허망 속에서 나오는 조롱 같은 것이 서려 있다. 인생을 순탄하게

살아온 선비나 법도를 정확하게 지키는 모범생은 절대로 쓸 수 없는 글씨들이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중국인 왕기한이 말한 대로 이렇게 변화가 많은 글씨이면서도 예서법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추사가 이처럼 글자의 형태를 기굴하게 변형시키면서 파격을 추구한 것은 단순한 파격이 아니라 글자의 의미를

형상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었다. 그 좋은 예가 <검가劍家>라는 작품이다.

 

[김정희 <劍家>, 26.0 x 62.5cm]

 

아마도 무인(武人) 집안의 것이라 생각되는 이 현판 글씨를 보면 劍자에서는 수염을 휘날리는 장수의 모습이

연상되고 家자에서는 육칸대청의 큰 기와집의 위용이 느껴진다. 이런 글씨는 자칫 잘못하면 우습게 되거나

촌스러울 수 있는 소지가 많은데 추사는 힘찬 예서법에 근거하여 기백 넘치는 서예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낙관이

없는 이 작품은 위창 오세창 선생이 추사의 작품이라고 고증을 하면서 "장군 집안의 당당함과 나라를 일으키는

의지가 있다"고 평하였다.

 

추사 작품에 대한 위작 논란은 끝이 없고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별연구원이라는 이동천2013년 한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 작품은 추사의 것이 아니라 위창의 위작이라고 주장하였다. 위창의 다른작품들과

비교하며 필획의 끝부분에 나타나는 위창의 독특한 필치를 그 근거로 제시하였다. 또한 오세창이 작품 끝부분에

‘완당선생필(阮堂先生筆)’이라고 썼기에 김정희 작품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창이 '阮堂先生筆'이라고 쓴 것은

자신이 고증한 결과를 밝힌 것이고 위창의 필획 끝부분이 이와 닮은 것은 위창이 추사의 글씨를 사모하여 평소 임모한 결과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강상시절 추사의 글씨가 이처럼 기굴하게만 흘러간 것은 아니였다. 종이 현판으로 남아있는 <일금십연재一琴十硏齋>는

얌전한 글씨라도 참으로 명작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만한 작품이다.


 

[김정희 <一琴十硏齋>, 30.3 x 125.5cm, 일암관]


'거문고 하나에 벼루 열 개가 있는 서재'라는 뜻에 걸맞게 단아하면서도 멋스럽다. 변화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변화가 있고, 필획의 뻗고 내려그은 힘이 그대로 살아 있다. 더욱이 한 일(一)자를 위쪽에 바짝 붙이는 대담한구성미에서 현대적 세련미조차 느껴진다. 추사가 정식으로 쓰자면 이처럼 쓸 수 있었기에 앞서 본 <學爲儒宗>같은 변화를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반향초茶半香初>도 강상시절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 "차가 익어 비로소 첫 향기를 내다"라는 뜻의

이 현판은 해서에 행서법을 곁들인 단정한 작품이다.

 

[김정희 <茶半香初>, 규격 소장처 미상]

 

 

유홍준 박사는 이 작품을 추사가 초의스님에게 써줬을 것으로 추정했다. '茶半香初'는 다음과 같은 대구에서

나온 것으로 함께 차를 끓이고 마시면서 일어난 조용한 감흥이 서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靜坐處 茶半香初 妙用時 水流花開

  고요히 앉아 있는 것은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과 같고

  오묘하게 행동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과 같네

 

<법해도화法海道化>라는 작품은 글자의 구성에서는 분명 예서체의 방정함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획의

구사에서는 행서의 자유스러움이 곁들여 있어 예서의 규율이나 정직성이 여유롭게 풀어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글씨에서 준경함과 신운이 동시에 감돈다.

 

[김정희 <法海道化>, 부산박물관]

 

 

'불법(佛法)이 무한하고, 부처님 깨달음의 세계(佛道)가 온 천지에 퍼진다'는 뜻의 이 글씨에는 예서, 해서,

행서의 필법이 모두 서려 있다. 칠십이구초당이라는 낙관이 들어있는 작품이다.

<토위단전 吐爲丹篆>은 예서와 전서의 필법이 흔연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현판 작품이다. 단전(丹篆)은

전서를 뜻하는 것으로 '예스러운 글씨를 위해 온힘을 쏟아낸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전서의 획과 구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예서의 방필(方筆)로 마무리되어 글자가 각이 지면서 멋과 힘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정희 <吐爲丹篆>, 32.5 x 119.8cm 개인소장]

 

 

단전(丹篆)은 전서를 뜻하는 것으로 '예스러운 글씨를 위해 온 힘을 쏟아낸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이 글씨는

전서의 획과 구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서의 원전(圓轉0이 예서의 방필(方筆)로

마무리되어 글자가 각이 지면서 멋과 힘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글은, 도서출판 학고재에서 2002년 출간한 유홍준著 『완당평전』을 발췌, 요약하면서 다른 자료를

참조하여 임의 가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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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중국 수입 종이로 금분이나 은분으로 장식 [본문으로]
  3. 배관(拜觀) : 배견(拜見). 남의 글, 편지, 작품, 소중한 물건 따위를 공경하는 뜻을 가지고 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