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동양화 화론(畵論) 10 - 임천고치와 삼원법 2

從心所欲 2018. 8. 14. 14:25

곽희의 산수화론은 정형화된 투시원근법에 비해 화가에게 많은 선택의 여지를 남긴다. 다양한 시점과 환경에서

관조한 상을 모아 한 장의 그림 속에 구성해내는 것은 전적으로 화가의 주관과 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고원의 색은 맑고 밝으며, 그 형세는 우뚝 솟아 있다. 심원의 색은 무겁고 어두우며, 그 의취는 겹겹이 쌓임에

있다. 평원의 색은 밝고 어두운 곳에 있으며, 그 의취는 화창하게 트여 아득하게 뻗어나감에 있다. 산을 높게

하고자 하면 산을 다 드러내지 말고, 안개와 아지랑이로 산허리를 가려야 하고 물을 멀게 하고자 하면 물을 다

드러내지 말고, 가리고 비쳐 그 물결을 끊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기교가 보태지는 것 또한 화가의 역량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곽희는 ‘포유어간(飽遊飫看)’, 곧 여러 산을 많이 보고 산천의 여러 가지 자태를 익숙히 알며

여러 가지 산수 임천을 느끼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화결(畵訣)>부분에서는 단순히 시각적인 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집의 입지를 정할 때 수해(水害)의 위험성을

따지고 나무의 크기를 정할 때 흙의 깊이를 따지는 등 풍경의 현실적 문제까지 고려하는데, 이는 결국 <산수훈>에서

제시된 ‘경치의 경지를 벗어난 뜻(景外之意)’을 포착해 감상자가 그러한 산수 속에 자신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더불어 장차 그곳에 나가고자 하는 ‘뜻의 경지를 벗어난 묘(意外之妙)’를 얻기 위함인 것이다. 곽희의 화론은

화가가 체험한 자연을 그림을 통해 감상자에게 다시 체험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양화의 일점투시에서는

풍경은 ‘나’ 밖에 있는 세계에 불과하다. 그곳은 소요(逍遙)하고 유람(遊覽)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보고 있는’

세계일 뿐이다. 반면 산수화는 곽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감상자가 화면 안으로 들어가 거닐고 노닐며 하나 되는

공간인 것이다.

 

[이인문(1745 ~ 1821?)  <단발령망금강(斷髮嶺望金剛)1> 지본담채 45 × 23cm, 개인소장]

 

 

곽희의 <산수훈>은 다시 또 이렇게 이어진다.

 

【실제 산수의 계곡은 멀리서 바라보고 그 세(勢)를 취하고, 가까이 보아서 그 질(質)을 취해야 할 것이다.

실제 산수의 구름기운은 네 계절이 같지 않다. 봄에는 수증기가 위로 오르게 보이고, 여름에는 자욱하고

왕성하게, 가을에는 성글고 얇게, 겨울에는 어두컴컴하고 담담해 보인다. 그림에서는 그 대체적인 형상을

나타내되, 새겨놓은 듯이 명확한 형태를 그리지 않아야 구름기운의 모습이 생동하게 된다.

 

실제 산수의 안개 낀 모양도 네 계절이 같지 않다. 봄 산은 담담하고 예쁘면서 미소 짓는 듯하고, 여름 산은

무르녹게 푸르러 흠씬 젖은 듯하며, 가을 산은 해맑고 깨끗해서 단장한 듯하고, 겨울 산은 참담하여 잠자는 

하다. 그림에서 그 큰 뜻을 나타내고 각획한 것 같은 필적을 보이지 않으면, 안개 낀 경치의 형상은 바로 되는 것이다.

 

또 실제 산수의 비바람은 멀리 바라보면 알 수 있으나 가까이에서는 잘 보아 익혔더라도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일

어나고 그치는 형세를 다 규명해낼 수는 없다. 또 실제 산수의 흐리고 갬도 멀리서 바라보면 다 알게 되지만,

가까이에서는 좁은 시야 안의 물상에만 사로잡혀 명암과 나타났다 숨었다 하는 자취를 분명히 파악할 수 없다.

 

또 산속의 인물은 길이 있다는 표시이고, 산의 누각과 도관(道觀)은 뛰어난 경치라는 표시이며, 숲의 나무를

분명하게 하거나 가리우게 배치한 것은 원근을 구분함이요, 산의 계곡을 끊었다 이었다 한 것은 지세의 깊고

얕음을 구분한 것이다.

 

물에 나루터와 다리가 마련됨은 인간의 생활사를 나타내는 데 족하고, 물에 고깃배와 낚싯대가 보임은 인간의

의도를 나타내기에 족하다. 큰 산은 당당하게 뭇 산의 주인이 된다. 그러므로 주위에 산등성이와 언덕, 숲과

골짜기 등을 순차적으로 분포함으로써 원근과 대소의 수령이 된다. 그 형상은 마치 천자가 빛나게 남쪽으로

향하고 있고 모든 제후들이 조회하기에 분주하지만, 조금도 (천자가) 거만하거나 (제후가) 배반하는 듯한

기세가 없는 것과 같다.

 

커다란 소나무는 꿋꿋하게 뭇 나무들의 지표가 된다.  고로 주위에 온갖 덩굴과 초목들을 차례로 분포함으로써

이끌리고 의탁하는 자들의 장수가 된다. 그 기세는 마치 군자가 뜻대로 때를 만나 모든 소인들을 불러 일을

시키지만 (군자가) 세력을 믿고 능멸하거나 (소인이) 걱정하며 낙망하는 듯한 태도가 없는 것과 같다.

 

산은 가까이서 볼 때 모습이 있고, 멀리 몇 리를 벗어나서 보면 또 다른 모습이고, 수십 리를 벗어나서 보면 

다른 모습으로, 멀어질수록 매번 다르게 변하니, 이른바 ‘산의 모습이 걸음마다 옮겨 간다(山形步步移)’

것이다. 산은 정면에서 볼 때와 측면에서 볼 때의 모습이 다르고, 뒷면에서 보면 또 다른 모습이라, 볼 때마다

매번 달라지니, 이른바 ‘산의 형상이 면면히 보인다(山形面面看)’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산에 수십,

수백 가지 산의 형상이 갖추어져 있으니 속속들이 파고들어 깊게 살펴보지(窮究)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산은 봄여름에 보는 모습과 가을겨울에 보는 모습이 달라 이른바 '사철의 경치가 같지 않다'고 한다. 또 산의

아침 모습, 저녁 모습, 흐린 때와 개인 때의 모습이 다 다르니, 이른바 '아침저녁의 변하는 모습이 같지 않다'고

한다. 이와 같이 되면 산은 하나이면서 수십 수백의 산의 뜻과 모습을 겸한 셈이니, 이를 터득하지 못하면

궁구(窮究)하지 못하는 것이다!

 

봄 산은 안개와 구름이 끊이지 않고 감돌아 사람의 마음이 즐겁고, 여름 산은 좋은 나무들이 번성하여 그늘이

짙으므로 사람의 마음이 넓고 편안해지며, 가을 산은 해맑으나 낙엽이 흔들리고 떨어져 사람의 마음이 엄숙한

느낌을 갖게 되고, 겨울 산은 어둡고도 흐리고 눈비바람에 흙비로 (길과 골짜기가) 막혀 있어 사람의 마음이

적적해진다.】

 

종합하면 곽희가 산수화에서 중점을 둔 6가지는 첫째가 그림 공간을 광대한 세계, 무한한 공간으로 보는 것이고

둘째가 산의 전경이며 이어서 산과 물의 관계, 산과 숲의 관계, 산과 다른 세부적 요소들(인물, 건물 등)과의 관계

그리고 여섯째로 안개와 구름의 역할이다. 결과적으로 곽희의 삼원법은 산수화가로 하여금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력을 발휘하여 산수풍경을 묘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곽희의 '조춘도(早春圖)'와 '과석평원도(窠石平遠圖) '는 그의 산수화론을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곽희는 그보다 앞선

시대인 오대(五代) 때 이성(919-967)과 함께 '이곽파'로 불린다. 두 사람의 공통된 화풍은 스케일 큰 시각으로

표현한 거대한 산세 표현이 특징이다. 이를 대관(大觀) 산수라고도 부르는데 ‘조춘도’는 그런 대관산수의 전형으로

꼽힌다.

 

[곽희 <조춘도(早春圖)> 견본수묵채색, 158.3×108.1㎝ 북송(1072년) 대북고궁박물원 소장]

 

"<조춘도>는 이른 봄 산 계곡에 새벽안개 낀 경치를 담담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구름으로 둘러싸인 산수, 수목을 화면 속에서 조화롭게 표현해 통일감을 느끼게 한다. 주산과 객산의 유기적인 관계와 구름의 표현,

한 걸음마다 달라지는 산의 모습, 나무, 바위, 구름의 표현방법과 필묵의 사용이 다채롭다. 여기에 동양회화의 원근법과

투시도법의 총결을 의미하는 삼원법으로 변화무쌍하고 깊이 있는 회화공간을 구성하고 있다."2 

서로 다른시점이 한 평면에 병렬되는 데서 오는 모순은 화가의 오랜 경험과 탁월한 기량에 의해 자연스럽게 사라져

하나로 연결되는데, 이러한 화면구성은 서양에서는 팔백 년 이상이 흘러 입체주의가 등장한 후에야 가능했다는 것이다.

 

[곽희 <과석평원도(窠石平遠圖)> 11세기 워싱턴D.C. 프라이미술관 소장]

 

"<과석평원도(窠石平遠圖)>는 곽희가 80년 고령의 나이에 그린 것으로 그가 가장 늦게 낙관하여 세상에 남긴

작품이다. 과석한림을 그린 것이며 붓놀림이 창고하여 붓의 휘두름이 풍부하다.

곽희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기법은 삼원중 평원인데, <과석평원도>에서 그의 진가를 볼 수 있다. 삼원 기법을 정립한

곽희가 평원을 중시한 것은 이 기법이야말로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삼원을 인물에 대입하면,

고원은 명료한 사람이고, 심원은 자질구레한 사람이고, 평원은 맑고 깨끗한 사람이다. 그가 한림(寒林)을 즐겨 그린

것도 그가 추구한 정신을 반영한다. 늦가을 정취를 그린 <과석평원도>는 바로 곽희가 추구한 모습이다."3

 

 

 

이 글은 AustE's InterMeDiatE WorlD님의 <임천고지의 공간관> (auste.egloos.com), 박혜영님의 <임천

(林泉)을 ‘그리다’> (경희대학교 대학원보), 雪松 김순구님의 <林泉高致> , 오민석작가의 한국화 읽기(BIZart),

두산백과, 세계미술용어사전 (월간미술) 등의 내용을 참조, 인용, 발췌하여 작성하였습니다.

 

  1. 이인문(1745 ~ 1821?)은 조선후기에 김홍도와 쌍벽을 이뤘다고 평가받는 화가다. 도화서 화원으로 특히 산수화에 능했으며 남북 양종을 절충했다고 한다. 단발령망금강 (斷髮嶺望金剛)은 화면 오른쪽 아래에 세 명의 인물이 단발령을 오르고 있고 그들 앞에 안개에 휘감긴 금강산의 자태가 펼쳐지는 그림이다. 그러나 '단발령망금강'은 이 세 사람이 금강산을 바라보는(望) 풍경을 그린 그림이 아니고 단발령 고개에 있는 세 사람의 입장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는(望) 관점으로 그림을 보라는 의미의 그림이다. 이것이 바로 곽희가 말하는 감상자가 화면 안으로 들어가 거닐고 노닐며 하나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김상엽, 들어가서 보는 그림 동양화) [본문으로]
  2. 오민수작가의 한국화 읽기, BIZart, 2016, 11 [본문으로]
  3. 오민수작가의 한국화 읽기, BIZart, 2016, 1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