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는 삼척(三陟)에서 죽서루와 능파대, 두타산의 소금강이라는 무릉계를 그렸다. 죽서루(竹西樓)는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던 곳으로 삼척시의 서편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자리 잡고 있다. 죽서루는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어 관동팔경에 세워진 정자와 누대 중 가장
오래 되었고 건물 규모도 가장 크다. 또한 유일하게 바다에 접하지 않고 내륙에 들어와 있는 것도 색다른 점이다.
<죽서루>
김홍도가 그렸던 삼척의 능파대는 현재 동해시 추암동 바닷가에 있는 바위로 고성의 능파대와는 다른 곳이다.
애국가 영상에 동해의 일출 광경과 함께 나오는 곳으로 지금은 추암(湫岩) 촛대바위로 불리고 있다. 예전에
능파대(凌波臺)로 불렸을 때는 일대의 산과 바위들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원래 용추(龍湫)라 했던 곳인데,
1463년(세조 9)에 한명회가 이곳의 경치를 관상하고 능파대라 했다고 전해진다. 능파대 앞에 높이 5~6길쯤
되는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데, 그 모양이 촛대처럼 생겼다 해서 촛대바위라 한다.
<능파대>
무릉계(武陵溪)는 호암소에서 용추폭포에 이르는 약 4㎞에 달하는 계곡을 가리킨다.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이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지며 신선이 노닐었다는 전설에 따라 '무릉도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두타산
(頭陀山)과 청옥산(靑玉山)을 배경으로 하는 이 계곡은 기암괴석과 많은 시인 묵객들의 기념각명(刻名)이
새겨진 무릉반석(盤石), 푸른 못 등으로 유명하다.
<무릉계>
이어 김홍도는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며 울진의 성류굴, 망양정, 평해 월송정을 그렸다. 성류굴(聖留窟)은
경상북도 울진군의 근남면에 위치한 선유산(仙遊山)에 있는 굴로, 산 밑에 성류사(聖留寺)가 있어서
성류굴이라고 불렀다는 설과 함께 사방의 경치가 아름다워 선유굴(仙遊窟)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옛날 이름은
탱천굴(橕天窟)이었다.. 주 굴은 길이가 약 470미터이고, 전체 길이는 약 800미터다. 입구는 선유산(仙遊山)
절벽 밑 왕피천(王避川)가에 있는 좁은 바위구멍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서 깊은 동굴의 하나로, 고려
말의 학자 이곡의 『관동유기』에는 이 성류굴에 대한 기술이 있는데 국내 최초의 동굴 탐사기인 셈이다.
선유산은 19세기 중엽까지는 백련산(白蓮山)으로 불렸다.
<성류굴>
망양정(望洋亭)은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에 있는 정자(亭子)로 망양해수욕장 남쪽의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동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이라 하여
숙종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하였고 정철(鄭澈, 1536~1593)도 〈관동별곡〉에서
망양정의 절경을 노래하였다.
<망양정>
평해 월송정은 조선시대에는 강원도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관동 8경의 최남단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평해군이 울진군으로 편입되고 1964년에는 울진군이 경상북도로 편입되었다. 현재의 월송정 위치는 원래의
위치와는 다른 곳이다. 월송정은 원래 조선시대 수군 병영인 월성포진(越松浦鎭)의 성문으로 성벽 문루(門樓)
형태였다. 일제 때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 이래로 짓고 허물고를 반복하다가 현재의 월송정은 1980년도에
지은 것이다. 위치나 건물이 모두 옛 것이 아니다. 1555년에 돌로 축성된 성벽은 1970년대까지 유지되다가
이 지역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대부분 유실되었다.
<월송정>
김홍도는 여기서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 강릉을 지나 양양으로 가서 낙산사(洛山寺)와 관음굴을 그렸다.
낙산사는 강원 양양군 낙산(오봉산)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시대인 671년(신라 문무왕 11) 화엄종의
개조(開祖)로 불리는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다. 낙산사가 위치하고 있는 낙산의 동쪽은 수직의 절벽을
이루며 동해와 접해 있는데, 해안의 단애(斷崖) 위에 의상대가 있다. 의상대는 의상대사가 좌선하였다는
해안의 암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정자다. 의상대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바닷가 절벽 위에
건립된 홍련암(紅蓮庵)이 나온다. 의상대사가 홍련(紅蓮) 속의 관음보살을 친견하여 창건한 낙산사의 부속
암자로, 일명 ‘관음굴(觀音窟)’이라고도 한다. 낙산사 의상대와 관음굴 역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이다
<낙산사>
<관음굴>
낙산사를 떠난 김홍도는 설악산으로 들어가 토왕폭, 계조굴, 와선대를 그렸다. 토왕폭(土旺瀑)의 지금 이름은
토왕성(土王城)폭포이고 신광폭포(神光瀑布)라는 이름도 있다. 외설악의 칠성봉(七星峰:1077m) 북쪽 계곡에
있다. 설악산 신흥사 동남쪽으로 석가봉, 문주봉, 보현봉, 문필봉, 노적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싼 암벽 가운데로
3단을 이루며 떨어지는 연폭(連瀑)으로 설악산을 대표하는 3대 폭포 가운데 하나다.
<토왕폭>
계조굴(繼祖窟)은 울산바위와 그 아래에 목탁바위를 뚫고 석굴사원으로 지은 절인 계조암(繼祖庵)을 그린
것이다. 신라 때인 652년(진덕여왕 6)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신흥사의 산내 암자이다.
목탁바위라 불리는 바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다른 절에서 10년 걸릴 공부도 5년이면 끝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계조굴>
와선대(臥仙臺)는 외설악 지구의 천불동계곡 들머리에 있는 너럭바위이다. 명칭은 옛날에 마고선(麻姑仙)
이라는 신선이 여러 신선들과 함께 이 바위에 앉아서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즐기다가 누워서 산수 경관을
즐겼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였다 한다.
<와선대>
김홍도는 속초를 지나 간성(고성군 토성면)의 청간정을 그렸다. 『연려실기술』1 「지리전고」편에는
청간정(淸澗亭)에 대하여 “간성의 청간정은 군(郡)의 남쪽 40리에 있다. 석봉이 우뚝 솟았는데 층층마다
대와 같고 높이가 수십 길이나 된다. 위에는 용틀임을 한 소나무 몇 그루가 있다. 대의 동쪽에 만경루가
있으며, 대의 아래쪽에는 돌들이 어지럽게 불쑥불쑥 바다에 꽂혀 있다. 놀란 파도가 함부로 물을 때리니
물방울이 눈처럼 날아 사방에 흩어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청간정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정자다. 남한 땅의 관동팔경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하며, 설악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청간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하구 언저리에 있다.
<청간정>
김홍도는 계속 북상하여 해금강에 이르러 감호와 영랑호를 그렸다는데 감호 그림은 아예 금강사군첩 목록에
들어있지 않다. 감호(鑑湖)는 해금강 구선봉(九仙峰) 못미처에 있는 호수다. 구선봉은 금강산의 제일 동쪽에
위치하여 금강산 1만 2천봉의 마지막 봉우리로 일컬어진다.
[바다로 나와 있는 작은 섬이 송도이고 그 뒤에 보이는 산이 구선봉이다. 감호는 송도와 구선봉 사이 해변
안쪽에 위치해 있다.]
영랑호 그림은 유실되었다. 김홍도가 그린 영랑호(永郞湖)는 속초 영랑호가 아니라 구선봉 뒤쪽 해금강에
있는 호수다. 해금강은 외금강 동쪽 동해안 지역으로, 삼일포와 남강 하류에서 북쪽으로는 금란굴, 총석정
일대와 남쪽으로는 영랑호, 감호, 화진포에 이르는 약 30㎞ 구간이다. 김홍도는 계속 해안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며 대호정, 해산정, 해금강, 삼일포(三日浦)를 그렸다. 대호정, 해산정은 감호와 영랑호 일대의 정자로
알려져 있다.
<대호정>
<해산정>
참고 :한국지명유래집(2008. 국토지리정보원), 대한민국 구석구석(한국관광공사),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2012, 다음생각), ohyh45님의 네이버블로그 ‘송풍수월’,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그림 사진 : 나무위키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李肯翊:1736~1806)이 지은 조선시대 사서(史書). (두산백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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