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 5

從心所欲 2019. 1. 26. 14:29

외금강을 벗어나 남강(南江) 줄기를 따라 10여리를 동쪽으로 가면 고성읍(高城邑)이 나오고 거기서 다시

10리 바깥쪽에 동해바다가 있다. 옛 고성읍의 관아 서쪽 언덕 위에 해산정이 있었는데 서쪽으로는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동쪽으로는 동해의 푸른 물결이 한눈에 들어와 해산정(海山亭)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풍악도첩」中 <해산정> 견본담채, 26.8 × 37.3㎝, 국립중앙박물관]

 

 

해산정에서 서쪽으로 10리 바깥의 금강산 봉우리, 그리고 다시 남강 줄기를 따라 남쪽의 적벽, 그리고 동쪽 10리

바깥의 동해바다까지 해산정에서 보이는 주변 풍경을 모두 담아야 된다는 부담 때문인지 정선은 가로 폭이 긴

화포(畫布)에다 그림을 그렸다. 그 안에 고을의 민가와 누문(樓門)없는 성문, 남강기슭의 체호정(滯湖亭)까지 그려

넣었지만 그래도 구도는 조밀한 느낌이 없다. 반면 「해악전신첩」에서는 화포를 세로로 세우고도 이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해악전신첩」中 <해산정> 견본담채, 33.5 × 25.4㎝, 간송미술관]

 

 

옆으로 늘어져 있던 것을 세로로 묶어 경물 간의 거리감은 사라졌지만 그림의 구도는 더욱 긴밀해졌다.

원경에 담묵으로 처리한 장엄한 기세의 금강산 암봉들이 발묵과 파묵, 대혼점(大混點)으로 짙게 처리한

소나무들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토산에 둘러싸인 중경의 고을은 더 없이 포근해 보인다.

김창흡은 이 그림에 이런 시를 붙였다.

“봉래산으로 병풍을 삼고, 해 뜨는 곳의 나무로 난간 삼아, 정자로 끌어들인 천상의 기운을 삼라만상

위로 떠오르게 하는 것을 여기서 홀로 보고 있노라니 동쪽 나라에 태어난 것에 한이 없음은 이 정자 

때문이리라.” 1

 

그림의 왼쪽 구석에 보이는 칠성암을 정선은 「해악전신첩」에 색다른 필치로 따로 그렸다.

 

[「해악전신첩」中 <칠성암> 견본담채, 31.9 × 17.3㎝, 간송미술관]

 

 

「풍악도첩」과「해악전신첩」의 화재가 겹치는 것은 여기까지다. 「풍악도첩」에는 이외에 <옹천>,

<백천교>, <보덕굴> 그림이 있다.

 

[「풍악도첩」中 <보덕굴> 견본담채, 36.3 × 35.9㎝, 국립중앙박물관]

 

 

이 그림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은 좀 박하다. “좁은 화면에 여러 경물(景物)을 그려 넣으면서도 봉우리의

높이감을 표현하는데 치중하느라 전체적으로 답답한 구도가 되었다”는 평이다. 또한 금강천(金剛川) 긴

물줄기를 하나도 빼어 놓지 않고 모두 표현해 보려고 화면의 중앙에 이를 굽이굽이 모두 다 그려 놓는 바람에

물줄기가 조금도 장원유심(長遠幽深)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 북송 때의 화가 곽희(郭熙)가

「임원고치(林泉高致)」에서 “물이 멀고자 하는데 곧 그것을 다 나타내면 멀지 않고, 가리고 드러남이 그 물결을

끊어 놓으면 멀어진다. 물을 다 나타내면 서리고 꺾여서 생기는 먼 느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렁이를 그려

놓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라고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의 전체적 격이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풍악도첩」을 그릴 때만해도 후일의 정선에 비하면 미흡한 점도 있었다는 말이다.

 

「해악전신첩」의 남은 그림으로는, <정양사>, <만폭동>, <용공동구>, <정자연>, <화강백전> 등이 있다.

 <사인암>과 <당포관어>가 더 있지만 이 두 그림은 금강산 여행 때의 그림이 아니고 이병연이 갖고 있던

그림을 화첩을 만들면서 같이 집어넣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악전신첩」中 <정양사(正陽寺> 견본담채, 31.2 × 24.2㎝, 간송미술관]

 

 

[「해악전신첩」中 <만폭동(萬瀑洞)> 견본담채, 32.0 × 24.8㎝, 간송미술관]

 

 

 

[「해악전신첩」中 <용공동구(龍貢洞口)2> 견본담채, 32.2 × 25.8㎝, 간송미술관]

 

 

[「해악전신첩」中 <정자연(亭子淵)3> 견본담채, 32.2 × 25.8㎝, 간송미술관]

 

 

[「해악전신첩」中 <화강백전(花江佰田)4> 견본담채, 32.2 × 25.8㎝, 간송미술관]

 

 

 

이 글의 그림에 대한 평은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 (최완수, 1999, (주)대원사),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전통회화의 감상과 흐름 [이동주, 1996, 시공아트), 옛 그림의 수장과 감정 (2008, 한국고미술협회) 등을

참조하였고 지리에 대한 내용은 북한지리정보(2004., CNC 북한학술정보)에 따른 것입니다.

 

  1. (최완수 역) [본문으로]
  2. 강원도 회양과 통천을 나누는 추지령고개 동쪽 계곡에 있는 용공사라는 절로 들어가는 입구 [본문으로]
  3. 강원도 철원군 갈마읍 인근의 정자가 있는 연못이라는 이름의 소(沼) [본문으로]
  4. 강원도 금화읍 남쪽에 있는 병자호란 때의 전장터. 화강(花江)은 금화의 다른 이름이고 백전(佰田)은 잣나무 밭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