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풍속화가, 풍속화, 풍속 19

從心所欲 2019. 3. 2. 21:17

상황에서 춘의를 느끼게 그려진 것이 조선 춘화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사실 조선 춘화에서 성기가 노출되었냐 아니냐는 오히려 큰 의미가 없을 듯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傳) 신윤복 <기다림>이라는 그림은 어느 춘화보다도 춘의가 넘쳐나는 그림이라 할만하다.

 

[전(傳) 신윤복 <기다림>]

 

여인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가체로 얹은머리를 한 여인은 여염집 아낙이다. 얹은머리는 쪽진머리와 함께 혼인한 부녀자의 대표적인 머리형태다. 이 여인을 기생으로 소개하는 글들이 상당히 많은데 앞치마 두른 여인을 기생과 연결하는 그 창의력이 놀랍다. 누군가를, 그것도 이성을 만나길 기다린다면 둘렀던 앞치마도 벗고 한껏 치장을 해도 시원찮을 여자의 마음일 텐데 화가가 그것도 못 헤아려 앞치마를 입혔을까?  화가 역시 혹시라도 보는 이가 기생으로 오해할까봐 굳이 앞치마까지 입혀 ‘여염집 여자‘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림의 크기와 소장처를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하다 보니 이 그림에 대해 아무말대잔치를 벌인 글들이 무수히 많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드라마를 실제와 혼동하여 이 여인이 정순왕후라느니, 조선의 그림 중에 여자가 화폭 중앙에 있는 그림은 이 그림이 처음이라느니 하는 모르는 소리부터, 버드나무를 노류장화(路柳牆花)와 연결하여 기생임을 논리화하는  글도 있다. 한술 더 떠, 수양버들 아래에 앉아 있거나 버들가지를 들고 있었다는 불화(佛畵)속의 관음보살까지 동원하여 버드나무가 스님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는 유식한 소리도 있다. 더 황당한 것은 초등학생이 숙제를 위해 이 그림의 우수한 점을 묻는 질문도 있었다. 교사가 이 그림을 어떤 그림으로 알고 숙제를 내줬는지, 혹시라도 학생이 열심히 조사를 해 “스님과 불륜에 얽힌 유부녀의 춘의(春意)를 탁월한 은유로 표현한 점”이라고 숙제를 해갔다면 선생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어쨌거나 그림의 크기와 소장처는 끝까지 확인하지 못 했다. 간송미술관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개인 소장이란 설도 있다. 

 

사실 앞치마가 없더라도 여인의 자태는 전혀 기생을 연상시키지 않는다. 이렇게 다소곳하고 차분한 분위기에 수줍음까지 보이는 기생의 모습이 어느 그림에 있는가? 여인은 담장에 살짝 몸을 기댄 채 목을 빼고 담장 밖을 내다보고 있다.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분명하다. 담장에 살짝 엉덩이를 대고 기댄 모습과 앞꿈치가 들린 왼쪽 발이 조금은 무료해 보인다. 기다린 시간이 꽤 됐음을 표현해낸 화가의 솜씨다. 뒤로 모은 여인의 두 손에는 승립(僧笠)이 들려있다. 승립은 스님들이 외출할 때 머리에 쓰던 입자(笠子)이다. 앞에 본 김홍도의 《운우도첩(雲雨圖帖)》그림에도 나온다.

 

[전 김홍도 《운우도첩》 中 ]

 

따라서 이 여인이 기다리고 있는 그 누군가는 스님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가 있다. 무슨 연유로 여염집 아녀자가 스님을 기다릴까?

무당이 굿을 하면서 구연하는 사설이나 노래를 무가(巫歌)라고 하는데, 그 무가에 ‘당금애기’라는 것이 있다. 서역에서 불도를 닦은 스님이 당금애기를 찾아와 시주를 빙자하여 관계를 맺고 사라졌고, 그 후 당금애기가 잉태하여 세쌍둥이를 낳았고 그들이 제석신(帝釋神)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당금애기’에서 파생된 서사 민요로 ‘중타령’이 있다. 서사민요는 주로 여인네들이 일을 하면서 부르던 노래로 ‘중타령’은 주로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구전되었고 여러 버전이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모두 여염집 여인과 시주승의 비정상적 결합 과정을 노래한 것이다. 조동일의 『서사민요연구』1에 수록된 중타령은 이렇다.

 

중 중 중 나려온다/ 대사가 나려온다/

저 중아 거동 바라/ 저 중아 호사 바라/

굴갓 씨고 장삼 입고/ 염주는 목에 걸고/

단주 팔에 걸고/ 백세포 장삼에 진홍빛 띠고/

소연당사 미륵관자는/ 귀 우에대 딱 붙이고/

그리 백통 반화장도/ 고름에다 늦이 차고/

구절죽장 손에 들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철철 철철거리고 나려온다/ (······) /

에라 이 중아 물러앉거라/ 어어 저 중 행패마오/

귀 우에만 중이지/ 귀밑에도 중인가/

좋은 말로 허락하면/ 백 년 동락 어떠한가/

당글맞고 빼골이 터져도/ 딘중거리고 들거간다/

얻었구나 얻었구나/ 평생 소원을 얻었구나/

마쳤도다 마쳤도다/ 평생 소원을 마쳤도다/

중놈이 좋아라고/ 장삼자락이 훨훨/

너울거리고 춤을 춘다/

파탈하자 파랑하자/ 중노릇을 피탈하자/

 

또 다른 ‘중타령’도 있다.

 

동냥 왔네 동냥 왔네/ 산골 중이 동냥 왔데/

동냥은 있네마는 줄이 없어 몬 주겠네/

울 어매는 장에 가고/ 울아부지 들에 가고/

우리 올캐 친정 가고/ 우리 오빠 처가 가고/ (······) /

청 우에라 섰던 중이/ 달라든가 달라든가/

 못방으로 달라듬서/

우리 둘이 이러다가 아가 배면 우쩌겄네······2

 

 

노래 가사를 따라가다 보면 위 김홍도의 《운우도첩》그림이 전혀 낯설지가 않다. 중과 여인이 정사를 벌이고 있는 곳은 절간이 아니라 여인이 사는 곳이다. 중이 벗어놓은 옷가지와 승립, 지팡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중과 여인의 관계는 처음이 아니다. 왼 팔로 중을 껴안고 두 다리로 중의 허리를 감은 여인의 적극적 자세가 그것을 말해준다. 땋은 머리를 보고 여인이 처녀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여인의 옷차림을 감안하면 처녀가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아마도 다리를 넣어 땋아 머리에 얹었던 머리가 즐거움에 방해가 될까 풀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왔던 동자승은 스님이 여인과 방에 들어가 안 나오니 무슨 일인가 하고 발을 제치고 방안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스님의 경력이 화려했다면 동자승도 이미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훔쳐보기를 즐기는 중일 수도 있다.

 

<기다림>속의 여인이 스님을 기다리는 사연은 화가가 적어놓지 않았으니 보는 이가 저마다의 짐작과 상상으로 유추를 해야 한다. 그것이 이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이고 또 화가가 의도했던 바였을 것이다. 여인도 시주승과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스님이 시주받으러 나왔다가 승립을 벗을 일과 벗은 승립을 놓고 갈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자기 볼일 끝낸 중이 부리나케 자리를 뜨느라 승립 챙기는 것도 잊었던 모양이다. ‘도를 아십니까?’에 말려들었는지, ‘보시 중에 육보시(肉布施)가 제일’이라는 꼬임에 넘어갔는지. 아니면 ‘시주 쌀 쏟고 자고 가기’의 거래가 성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됐든 <기다림> 속의 여인은 중과 나눴던 운우지락(雲雨之樂)을 잊지 못해 승립을 들고 나선 것이다. 중과 다시 만날 약속을 한 것은 아니다. 약속을 했다면 굳이 승립을 챙겨 집밖으로 나와 기다릴 이유가 없다. 어쩌면 집안에 있는 여인의 귀에 어디선가 시주를 받으러 다니는 스님의 목탁 소리가 들려왔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스님을 애타게 기다렸는지 아니면 목탁소리에 갑자기 스님과 있었던 일이 생각났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여인은 지난 일을 떠올리며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을 참고 있다가 문득 스님이 자신의 집에 들르지 않고 그냥 가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민하던 여인은 승립을 돌려준다는 좋은 핑계거리를 발견하고 승립을 들고 스님을 만나러 밖으로 나왔다. 그렇긴 해도 대놓고 스님과 마주치기는 부끄러워서 스님이 올 방향으로 등을 돌리고 담 끝에 반쯤 몸을 숨겼다. 골목 사이로 간간이 들려오는 스님의 목탁소리를 들으며 스님이 나타나길 기다리는데 스님은 좀처럼 오질 않는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리다 지친 여인은 담 밖으로 고개를 돌려 골목을 내다본다.

 

화가는 이런 이야기를 이 그림에 담으려했던 것이 아닐까? 이런 상상이 화가가 의도했던 것과 얼마나 닮았는지는 모르지만 이 그림을 관통하는 핵심은 여인의 음심(淫心)이다. 즉 스님과 다시 또 정을 나누고 싶어 하는 여인의 마음인 것이다. 《건곤일회첩》 그림 중에 춘화를 보는 과부 그림 역시 주제는 여인의 음심이다. 그 그림이 직설적인 반면 <기다림>은 단지 승립 하나로 그것을 표현해냈다. 이렇게 품격 있는 춘화를 그려낼 화가가 조선시대에 혜원 신윤복 말고 누가 또 있을지 궁금하다.

 

그림을 감상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지만 많은 글에서 삼회장으로 소개되고 있는 여인의 저고리는 반회장이다. 깃, 고름. 끝동에만 다른 색 천을 댄 것을 반회장이라 하고 겨드랑이 부분의 곁마기까지 다른 색 천을 댄 것을 삼회장이라 한다. 스님의 쓰개 또한 송낙이 아니다. 송낙은 위가 뾰족한 삼각형으로 정수리 부분은 뚫려 있고 아래는 송라(松蘿)를 엮지 않고 그대로 두는 형태다.

 

[저고리, Basic 중학생을 위한 기술·가정 용어사전 사진] 

 

[송낙,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진]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의 과부가 봄을 탐한다는 <이부탐춘(嫠婦耽春)3>은 춘의(春意)를 해학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신윤복 「혜원전신첩」中 <이부탐춘>, 지본담채, 28.2 x 35.6cm 간송미술관]

 

교미하는 개들과 짝짓기 하는 참새들을 소복 입은 여인과 대비시키며 자연 만물의 이치를 보여주려고 했을까?

과부 옆의 처녀는 몸종일 텐데 과부의 허벅지를 꼬집고 있다. 아마도 친정에서부터 같이 지내다 시집오면서

데려온 몸종이니까 이렇게 서로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처녀가 과부를 꼬집는 것은 과부의 높아진

숨소리 때문일까? 아니면 처녀가 끓어오르는 춘흥(春興)에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 탓일까?

두 여인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신윤복 「혜원전신첩」中 <소년전홍>, 28.2 x 35.2㎝, 간송미술관]

 

<소년전홍(少年剪紅)>의 전홍(剪紅)이란 말은 제시에서 따온 것으로, 제시는 密葉濃堆綠 繁枝碎剪紅

(빼곡한 잎엔 푸른빛 쌓여 농염하고, 무성한 가지는 붉음을 부수고 자르네)이다. ‘전홍(剪紅)’은 ‘붉은 꽃을

꺾는다’는 의미로 쓰인 것 같다.

사방관을 쓴 젊은 양반이 여인의 팔을 잡고 끌어당기는 모습이다. 머리 모양으로 보아 여인은 유부녀다.

집에서 부리는 종의 아내인지 같은 마을의 신분 낮은 집의 여인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팔목을 잡힌 여인은

부끄러움에 몸을 사리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싫지는 않은 기색이다. 상황으로 보아 다음에 벌어질 일은 꽃을 꺾는

일만 남아있을 듯싶다. 왼쪽에 서있는 기괴한 모습의 바위에 대해 해설이 분분하나 그것은 보는 이가 저마다

알아서 느낄 일이다.

 

[신윤복 「혜원전신첩」中 <기방무사(妓房無事)>, 28.2 x 35.2㎝, 간송미술관]

 

기생방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제목이 해학적이다. 녹음도 무성하고 방문을 활짝 열어놓을 정도의 날씨인데

문간에 기대앉은 남자의 아랫도리에는 이불이 덮여있다. 남자와 한 방에 있는 처녀는 동기(童妓)인지 종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엎드려있는 자세나 위치가 묘하다. 남자는 기생의 기둥서방 보다는 돈보따리 들고 기방에 찾아와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손님이 아닐까? 외출했던 기녀가 돌아오자 두 사람 모두 놀라고 당황한 표정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은 아마도 두 사람이 기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신윤복 「혜원전신첩」中 <춘색만원(春色滿園)>, 28.2 x 35.2㎝, 간송미술관]

 

역시나 양반이 신분이 낮은 집 아낙을 찝쩍대는 상황이다. 나물을 캐러 나왔으니 봄이다. 나물바구니를 잡으며

수작을 거는 남자의 의도는 그림에서도 분명하다. 한데 여인의 태도는 그림으로는 아리송하다. 남자에게 캔

나물바구니 속을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손이 잡힐까 피하는 척 내숭을 떠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답은 화제에 있는 것 같다. 春色滿園中 花開爛漫紅. ‘봄기운은 뜰에 가득하고 꽃은 피어 탐스럽게 붉다’ 로

해석해도 어느 정도 의미는 짐작할 수 있겠지만 신윤복이 꽃(花)을 수식한 한자들을 보면 의미가 더 분명해질

듯도 하다. ‘열 개(開)는 ’피다‘, ’열리다‘의 뜻이고, 빛날 난(爛)자는 ‘무르익다’, ‘문드러지다’의 뜻도 있다.

‘흩어질 만(漫)은 ’질펀하다(질거나 젖어있다)‘의 뜻이 있고 紅은 ’붉을 홍‘이면서 ’여물다‘의 뜻도 있다.

신윤복이 각 자(字)를 그런 의미로 골라 쓴 것이라고 장담할 수야 없지만 어쨌거나 여인의 상태를 짐작하기에는

충분하다.

 

 

  1. 서사민요 연구(조동일, 1970, 계명대학교출판부) [본문으로]
  2.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문학사전(민요 편) [본문으로]
  3. 嫠자는 ‘과부 리’자 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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