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풍류와 가락 2 - 삭대엽과 가곡

從心所欲 2019. 4. 6. 22:45

 

현재 전하는 가곡의 역사는 세조 때 음악을 집대성한 『대악후보(大樂後譜)』에 실려 있는 만대엽(慢大葉)에

뿌리를 두고, 그 만대엽의 모체는 고려 의종 때 정서(鄭敍)가 지은 "정과정"(鄭瓜亭)의 삼기곡(三機曲)이라

한다. 즉 삼기곡에 만기(慢機), 중기(中機), 급기(急機)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만(慢)대엽, 중(中)대엽,

삭(數)대엽이 파생되었다는 것이다. 조선 전기에 유행하던 만대엽은 선조 무렵부터는 거문고 독주용으로

바뀌어 연주되었다. 그러나 숙종 때부터 중대엽(中大葉)이 유행하면서 차츰 자취를 감추다가, 삭대엽이

유행하던 영조 무렵에는 아주 사라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년 ~ 1763)의 평소 글을 모아 놓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우리나라 가사에는

대엽조(大葉調)가 있다. 그러나 대게 장단의 구분이 없다. 그 가운데 또 만(慢), 중(中), 삭(數)의 세 가지

조(調)가 있는데 이것은 본래 심방곡(心方曲)1이라 한다. 만은 극히 느려서 사람들이 싫어하여 없어진지

오래고, 중은 조금 빠르나 역시 좋아하는 이가 적고, 지금 통용되고 있는 것은 삭대엽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삭(數)’은 ‘자주’, ‘촘촘하다’, ‘빠르다’ 등의 의미가 있어 ‘삭대엽’을 순수한 우리말로는 ‘자진한잎’이라고도 부른다.

만(慢), 중(中), 삭(數) 셋 중에는 가장 빠른 곡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전하고 있는 가곡들은 모두 이 삭대엽에서

파생된 것인데도 그 빠르기가 ♩= 20 ~ 40 사이이니 만(慢)과 중(中)의 느림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조차 힘들다.

 

 

[김홍도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2, 27.8×37cm, 지본 수묵담채, 삼성미술관 리움]

 

삭대엽에서는 다시 초수(初數)대엽, 이수(二數)대엽, 삼수(三數)대엽에 이어 농(弄)·낙(樂)·편(扁)과 같은

파생곡이 생겨나고, 이수대엽(二數大葉)에서 중거(中擧)·평거(平擧)·두거(頭擧)가 파생됨으로써 조선시대

말기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방대한 가곡의 한 바탕이 형성되었다.

 

가곡에는 우조(羽調)와 계면조(界面調)의 두 가지 선법이 사용된다. 옛 글에 의하면 가곡 우조의 음악적 특징은

청장격려(淸壯激勵) 또는 청철장려(淸澈壯勵)라 하여 곧 맑은 소리의 굳세고 씩씩한 남성적인 느낌으로

묘사되어 있다. 반면 계면조는 애원격렬(哀怨激烈) 또는 애연처장(哀然悽帳)이라 하여 슬프게 원망하는 듯한

소리, 처량하고 구슬픈 여성적인 슬픔의 느낌으로 표현하였다. 오늘날 전통 음악인들이 우조는 씩씩한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데 반해 계면조는 여성적인 슬픈 가락이라고 표현하듯이, 우조는 서양음악의 장조(長調)에, 그리고

 계면조는 단조(短調)에 가깝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가곡에서는 만대엽이나 중대엽에서는 없던 남창 가곡과 여창 가곡의 구별도 생겼고,

이전에는 독립적으로 불리던 각각의 곡들을 선율적으로 관계가 있는 여러 곡들이 하나의 노래 모음곡을 이루어

연창(連唱)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의 연가곡(連歌曲)의 전통이 마련되었다.

현재 전하는 가곡의 종류와 남창, 여창, 남녀병창을 모음곡으로 부를 때의 순서는 아래 표와 같다.

 

조(調) 곡명 남창
순서
여창
순서
남녀창
순서 곡명
우조
(羽調)
  초수대엽(初數大葉) 1   1    남창 우조 초수대엽
  이수대엽(二數大葉) 2 1 2    여창 우조 이수대엽
  중거(中擧) 3 2 3    남창 우조 중거
  평거(平擧) 4 3 4    여창 우조 중거
  두거(頭擧) 5 4 5    남창 우조 평거
  삼수대엽(三數大葉) 6   6    여창 우조 평거
  소용(騷聳) 7   7    남창 우조 삼수대엽
반우반계
(半羽半界)3
  반엽(半葉) 8 5 8    여창 우조 두거
계면조
(界面調)
  초수대엽(初數大葉) 9   9    남창 우조 소용
  이수대엽(二數大葉) 10 6 10    여창 반엽
  중거(中擧) 11 7 11    남창 계면조 초수대엽
  평거(平擧) 12 8 12    여창 계면조 이수대엽
  두거(頭擧) 13 9 13    남창 계면조 중거
  삼수대엽(三數大葉) 14   14    여창 계면조 중거
  소용(騷聳) 15   15    남창 계면조 평거
  언롱(言弄) 16   16    여창 계면조 평거
  평롱(平弄) 17 10 17    남창 계면조 삼수대엽
  계락(界樂) 18 13 18    여창 계면조 두거
우조
(羽調)
  우락(羽樂) 19 11 19    남창 언롱
  언락(言樂) 20   20    여창 평롱
반우반계
(半羽半界)
  편락(編樂) 21   21    남창 계락
  환계락(還界樂)   12 22    여창 계락
계면조
(界面調)
  편수대엽(編數大葉) 22 14 23    남창 언락
  언편(言編) 23   24    여창 우락
  태평가(太平歌) 24 15 25    남창 편락
        26    여창 편수대엽
        27    남녀 병창 태평가

 

『해동가요』4의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에는 이세춘(李世春)을 포함하여 당시의 선가(善歌), 곧 유명한

가객 56명의 이름을 기록했는데 모두 남자다. 가곡은 원래 조선시대 선비들이 시조시를 얹어 즐겨 부르던

대표적인 노래였던 것이다. 가곡은 풍류를 즐겼던 양반과 선비들 사이에서 어떤 장르의 예술보다 중시되던

문화 활동이었다는 글도 있다.

 

[김홍도 <단원도(檀園圖)> 135.0×78.5㎝, 지본담채, 개인소장]

 

[<단원도> 세부]

 

위 그림 <단원도>의 무대는 김홍도의 집이다. 화면 윗부분의 글에 의하면 김홍도의 나이 37세 때인 1781년 청화절(淸和節)5에 세 사람이 단원의 집 사랑방 마루에서 질박한 술자리를 가졌다. 김홍도는 거문고를 연주하고, 무릎을 세운 채 부채질을 하던 담졸 강희언은 술잔을 권하고, 창해(滄海) 정란(鄭瀾)은 거문고 가락에 맞춰 시를 읊었다.

강희언은 중인가문 출신으로, 늦은 나이에 음양과에 급제하여 관상감(觀象監) 소속의 관리가 되었다. 겸재 정선에게 그림을 배워 그림도 잘 그렸다 한다. 정란은 시인이자 여행가였다. 그는 일찍이 벼슬에 뜻을 버리고 조선 천지를 돌아다니며 시인묵객들과 어울리던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김홍도보다 20 ~ 30년 나이가 위였다.

김홍도가 이 ‘단원도’를 그린 때는 실제 모임을 열고 3년이 지난 1784년 겨울이었다. 서울을 떠나 지방에 머물고 있던 김홍도를 뜻밖에 정란이 찾아왔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음악과 술로 흥건하게 회포를 푼 후 각각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지었다. 3년 전의 만남 이후 세 사람의 삶은 많이 변해 있었다. 김홍도는 안동의 찰방(察訪)을 지냈지만 생활은 몹시 궁핍했었으며, 강희언은 그 사이 세상을 떠났다. 정란은 세상풍파에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변했다. ‘다섯 밤낮으로 실컷 술을 마시고 원 없이 이야기를 하면서 단원에서 예전에 놀던 것처럼 하였더니, 슬픈 느낌이 뒤따르는지라, 끝으로 ‘단원도’ 한 폭을 그려 선생(정란)에게 드린다‘고 적었다.

 

김홍도의 스승 강세황은 <단원기(檀園記)>에 ’김홍도의 성품이 거문고와 대금의 전아(典雅)한 음악을 좋아하여 매번 꽃피고 달 밝은 저녁이면 때때로 한 두 곡조를 희롱하여 스스로 즐겼다’고 적었다.

 

아래 남창가곡 평조 초수대엽 ‘동창이’는 남창가곡 중 첫 번째 곡이다. 평조(平調)는 우조의 다른 이름이다,

초수대엽은 삭대엽에서 파생된 곡 중에서 첫 번째로 파생된 노래라는 뜻이다. 원래 초수대엽은 초삭대엽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한다. 빠를 삭(數)자를 쓴 삭대엽에서 파생된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수대엽,

삼수대엽도 모두 이삭대엽, 삼삭대엽으로 불러야 하나 실상은 ‘삭’대신 ‘수’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동창이’는

사설로 쓰인 남구만(南九萬)의 시조 첫머리이다. 남성가곡 우조 초수대협에는 ‘동창이’말고도 김명원의 시조

‘남훈전...’이 사설로 된 곡이 있기 때문에 구별하기 위하여 밝히는 것이다.

곡을 부른 김경배 경북대 명예교수는 김월하 선생의 양자이자 제자로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희놈은 상긔 아니 일었느냐
재 넘어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참조 : 한겨레음악대사전(송방송, 2012. 도서출판 보고사), 창악집성(하응백. 2011. 휴먼앤북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류무형문화유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김월하정가전집(정인봉).

송혜진(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과 황정연(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의 글.

 

  1. 1610년(광해군 2), 양덕수(梁德壽)가 지은 거문고 악보인 ‘양금신보(梁琴新譜)’의 중대엽(中大葉)에 붙은 다른 이름이나 ‘심방곡’의 원뜻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본문으로]
  2. 화제는 綺窓土壁終身布衣嘯詠其中(종이로 만든 창과 흙벽으로 된 집에서, 평생 벼슬하지 않고 시가나 읊으며 살겠다) [본문으로]
  3. 앞부분은 우조로 연주되다 후반에 계면조로 변조 [본문으로]
  4. 해동가요(海東歌謠)는 흔히 ‘청구영언’·‘가곡원류’와 더불어 3대 시조집으로 일컬어지나 실상은 가집(歌集)이다. 풍부한 작품의 수록은 물론, 악곡의 풍격과 특징을 제시하여 시조 음악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영조 때 김수장(金壽長)이 편찬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본문으로]
  5. 음력 4월을 달리 이르는 말. 간혹 4월 초하루를 일컫기도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