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옛날이야기 24 - 어수신화(禦睡新話) 4

從心所欲 2020. 6. 30. 10:22

 [1904년의 한양 성벽, George Rose 사진]

 

☞맹환수린(盲鰥搜隣)   

 

홀아비로 사는 맹인이 일하는 아이까지 내보내고 무료하게 앉아 있었다. 홀로 앉아 있던 맹인은 무료함에 지쳐 그 물건을 꺼내놓고 손으로 장난을 쳤다.

그때, 이웃에 사는 상놈의 아내가 마침 맹인의 집에 왔다가 그 광경을 보았다. 여인은 맹인이 홀아비로 사는 것이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물건이 몹시 큰 것을 보고 탐욕이 생겼다. 그래서 여인은 곧바로 맹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맹인을 껴안고 자신의 음문에 모자 씌우듯이 그것을 맞추었다. 그렇게 한바탕 즐거움을 나눈 뒤 그녀는 방을 나가버렸다. 맹인은 마음속으로 몹시 고마웠지만, 끝내 그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음날, 맹인은 이웃집을 하나하나 돌며 사례를 하였다.

“어제의 일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웃집 아낙은 이 말을 듣고 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감사하다는 거죠?”

그러면 맹인은 다시 “아닙니다.”라고 하며 그 집을 나갔다. 그리고 다시 옆집에 가서 앞에서 한 것처럼 반복하였다. 그 다음 집에서도 또 그렇게 하였다. 이렇게 서너 집을 다녔지만, 끝내 응답하는 여인이 없었다.

마침내 한 집에 이르러, 맹인이 또 전처럼 말했다. 그러자 그 집 행랑채에 사는 여인이 나오며 말했다.

“조용히 하고 그만두세요. 내게 감사할 것이 뭐 있다고! 주인집에서 마침 점을 칠 일이 있다고 하니 내 오후에 찾아가리다.”

어제 고마웠던 여인은 바로 그 여인이었다. 맹인은 비로소 그것을 알아내어 궁금증을 풀었다.

 

 

☞녹하위랑(鹿何爲郞)

 

한 노인이 젊은 첩과 함께 자리에 앉아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힘이 없는 물건으로 억지로 한 차례 일을 치르고 난 뒤, 그 첩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너 또한 좋더냐?”

첩은 냉소하며 대답했다.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물어서 뭐 하시게요?”

“다행히 수태라도 하면 네가 말년에 의탁할 곳이 생기지 않겠느냐?”

“그렇다고 천한 몸으로 난 것이 거기에서 벗어날 수나 있겠습니까?”

“너는 비록 종년이지만, 나는 양반이 아니더냐? 네 배에서 난 자식일지언정 녹봉을 받으면서 스스로 살아갈 방도가 어찌 없겠느냐? 팔도의 비장(裨將), 병방(兵房), 예방(禮房), 호창감관(好倉監官)이 되면 어찌 그 어미를 받들지 않겠느냐? 능마낭청(能磨郎廳), 오위장(五衛將)이 되면 어찌 그 어미를 받들지 않겠느냐?”

▶병방(兵房), 예방(禮房) :조선시대 지방 관청 소속의 육방(六房) 중 하나.

▶호창감관(好倉監官) : 호조의 창고에서 일하는 구실아치

▶능마낭청(能磨郎廳) : 무관에게 병법을 가르치고 시험을 쳐 그 성적을 평가하는 관청의 관리

▶오위장(五衛將) : 종2품 ~ 정3품의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으뜸 벼슬.

 

“자식을 낳고 잘 길러 내 몸을 의탁할 수만 있다면야 좋죠. 그러나 사슴을 낳을 터인데, 사슴이 어떻게 비장이 되고 낭청이 된답니까?”

“나는 사람이고, 너도 사람이지 않느냐? 사슴을 낳는다는 말이 무슨 망발이냐?”

“사슴 가죽 같은 좆으로 일을 치렀으니 반드시 사슴을 낳겠지요.”

노인은 무안하여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몸을 돌려 누우며 말했다.

“내 정액이 있는 듯 없는 듯하니, 사슴을 낳는 것은 가망이 있으려나?.”

 

 

☞체모합산(髢毛盍散)

 

전라감사 대부인(大夫人)의 환갑날, 관아에서는 잔치를 열어 많은 사람을 초청하였다. 인근 지역 수령의 아내와 경향(京鄕) 각지 친척집의 부인들도 모두 모였다. 그런데 전주 판관(判官)의 아내만 늦도록 오지 않았다. 그래서 관아의 안채에서는 어린 계집종을 보내 전주판관의 아내에게 빨리 오라는 말을 전하게 했다.

▶체모(髢毛) : 다리. 예전에 여자들이 머리숱이 많아 보이라고 덧 넣었던 딴 머리.

▶대부인(大夫人) : 남의 어머니의 경칭(敬稱). 모당(母堂)

▶판관(判官) : 조선 시대 주요 주(州), 부(府)의 소재지에서 지방 장관의 속관으로 민정(民政)의 보좌 역할을 담당하던 종5품 벼슬.

 

계집종이 전주 관아에 갔더니, 관아는 조용하여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방문도 잠겨 있었다. 그래서 계집종이 창틈으로 방 안을 엿보았더니 판관 부부가 막 일을 벌이고 있었다. 계집종은 웃음을 참고 물러나, 관아의 안채를 돌보는 다른 종에게 말만 전하고 돌아왔다.

다시 잔치가 벌어지는 곳으로 돌아온 계집종은 땅에 엎드려 보고를 하다가 그만 엎드린 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리에 있던 부인들이 모두 그 연유를 캐묻자, 계집종이 이렇게 말했다.

“판관 사또 마나님이 손으로는 머리에 얹은 다리[髢]를 잡으시고, 두 눈은 감긴 듯이 정신을 잃어 의식이 없는 상태로 판관 사또의 배 아래에 계셔서 직접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모든 부인들이 웃느라 관아는 한바탕 시끄러웠다. 다만 대부인은 본래 귀가 어두워 사람의 말을 명확히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 대부인이 사람들에게 물었다.

“자네들은 무슨 특별한 일이 있어서 그렇게 웃으시나? 이 늙은이에게도 즐거움을 나누어주면 좋겠네.”

모든 부인들은 입을 막고 말했다.

“우리 젊은 아낙들은 그저 저 계집종이 하는 말을 듣고 이처럼 웃사옵니다. 그러나 어르신의 안전(案前)에 우러러 아뢸 수는 없사옵니다.”

그렇게만 말할 뿐, 그 사연을 자세히 아뢰지 않았다. 대부인은 몹시 화가 나서 말했다.

“자네들은 나를 위한 잔치를 열고, 새 저고리를 주며 입으라 하고, 새추마를 주며 두르라 하면서도 실은 서로가 손가락질하며 나를 비웃고 있었네그려. 자네들은 내가 솜을 많이 넣은 비단옷이나 입고 앉아서 술동이를 껴안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가보구먼. 내가 자네들에게 그런 비웃음이나 받을 바에는 차라리 오늘 잔치를 열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듯하네.”

모든 부인들은 황공함을 이기지 못해 앞으로 나아가 사실대로 아뢰었다.

“전주판관 부인이 판관과 더불어 어떠한 일을 했다고 합니다.”

대부인은 귀가 어두워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자네는 무슨 말을 하는가?”

이에 그 부인이 큰 소리로 두 번 아뢰고, 다시 세 번 아뢰고 있을 때였다. 전주판관 부인의 행차가 이미 도착하여, 판관 부인이 가마에서 내려 문 바깥쪽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문득 방 안에서 자기에 대해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판관 부인은 얼굴이 붉어지는 것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화끈거려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었다. 겨우겨우 대부인 앞에 나아가 얼굴을 뵙고 인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대부인은 웃음을 머금고 위로한답시고 이렇게 말했다.

“늙은이가 여기에 있다가 아까 이 고을 마마께서 한바탕 좋은 일을 벌였다는 말을 들었네. 그런데도 마마의 다리[髢]는 아직 헝클어지지 않았으니 이상하도다. 예전에 전라감사 부친의 생신 때였지. 그분 역시 이런 일을 좋아해서, 그때마다 내가 그 욕을 받았지. 그때는 다리가 항상 흩어져서 말이야.”

이 말을 들은 부인들은 모두 입을 막고 웃음을 참지 않을 수 없었다.

 

[ 해남윤씨 종가에서 보관하고 있는 작자미상의 <미인도> 부분. 다리를 넣어 머리 모양을 풍성하게 가체(加髢)한 얹은머리, 기생은 머리에 얹은 가체가 비대칭 형태이고 여염집이나 궁중에서는 아래처럼 대칭 형태였다고 한다.] 

 

[황원삼을 입고 다리를 넣어 가체를 올린 어여머리의 왕후 모습, 권오창화백]

 

 

☞오신대납(吾腎代納)

 

나이 많은 능관(陵官)이 잡일을 하는 수복(守僕)을 불러 말했다.

▶능관(陵官) : 왕이나 왕족의 무덤인 능(陵)을 관리하는 말단 벼슬아치

▶수복(守僕) : 단(壇)·묘(廟)·원(園)·능침(陵寢) 등에서 청소하는 일을 담당하던 잡직(雜職)

 

“나는 이도 없고 해서 단단한 음식은 씹을 수가 없구나. 그러니 내일 반찬은 연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올리도록 해라. 익히지 않은 꿩고기나 송이버섯 같은 것이 내 식성에 맞을 듯하구나.”

수복이 엎드려 명령을 받고 문을 나서며 혼잣말을 했다.

“구하는 꼴하고는...꿩이야 닭과 비슷하니 그렇다 치고. 송이는 어떤 물건이 비슷하려나? 내 좆이라도 대신 들일까나?”

구하기 어려운 것을 분에 넘치게 요구한 능관의 말도 무리가 있지만, 아랫사람의 모질고 완고한 세태가 어찌 이다지 심하단 말인가?

 

 

☞초불상구(初不相求)

 

큰 비가 오고 천둥이 칠 때였다. 두세 사람이 길을 가다가 비를 피해 어떤 사람의 집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침 비를 피하러 온 사람 중에는 얼굴이 예쁘면서도 옷을 잘 차려입은 평민 여인도 있었다. 무섭게 천둥과 번개가 칠 무렵, 곁에 있던 한 사람이 말을 꺼냈다.

“이런 때 좋은 물건을 숨겨두고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 사람은 벼락이나 맞았으면 내 마음이 상쾌하겠구먼.”

그러자 곁에 있던 여인이 벌벌 떨며 대답하였다.

“여보시오! 손님! 일찍이 빌려달라고 했는데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험한 말을 해도 괜찮겠지만, 애당초 요구하지도 않고 공갈부터 치는 법이 어디 있나요?”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선치학질(善治瘧疾)

 

한 향촌에 상놈의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지아비를 잃었지만, 집안이 부유한 탓에 개가도 하지 않고 수절하며 홀로 살았다. 그녀가 못 생기지도 않았던지라 동네에 사는 한 놈팡이가 그녀를 마음속으로 어떻게 해보고자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마침 학질에 걸렸다. 여러 번 치료를 했지만 차도가 없어 여인은 몹시 고통스러워하였다. 그 때 놈팡이가 와서 병의 증세를 살피더니 이내 이렇게 말했다.

“내게 학질을 뗄 수 있는 묘한 방법이 있소. 여러 차례 시험하여 봤는데, 지금껏 효험을 보지 않은 적이 없소.”

“어떤 방법인데요?”

“술과 과일과 종이와 초를 정성껏 준비하고, 환자는 새 옷을 입어야하오. 그 상태로 해뜨는 이른 아침에 아무개 산 성황당에 혼자 가야 하오. 성황당에서 주문을 외며 기도를 들면 차도가 있을 것이오.”

“주문은 누가 읽는데요?”

“내가 아니면 그것을 할 사람이 없소. 그런 까닭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가기를 청했던 거요.”

여인은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기쁘게 그를 믿었다. 그리고 기도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해둘 테니 새벽녘에 와달라고 부탁하였다. 놈팡이는 한 자쯤 되는 말뚝 네 개를 깎고 다섯 묶음의 새끼를 꼬았다. 그리고 준비한 제물과 함께 그것을 등에 지고, 여인과 더불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조용하고 깊은 산속에 이르자, 놈팡이는 술과 과일을 전설하고, 네 귀퉁이에 말뚝도 박았다. 말뚝을 박자, 그는 여인에게 말뚝 안쪽에 들어가 하늘을 보고 눕도록 하였다. 여인이 시키는 대로 하자, 그는 새끼줄로 여인의 사지를 묵고, 각각 사방에 박아놓은 말뚝에다 그 줄을 묶었다.

여인을 완전히 말뚝에 매어놓고, 놈팡이는 정해놓은 법식에 맞춰 여인을 겁간하였다. 여인은 비록 놀랍고 화도 났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부득이 일을 마쳐야만 했다. 일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니, 요행히 학질은 떨어졌다.

그 후로 그 놈팡이가 학질을 잘 뗀다는 명성이 온 마을에 퍼졌다.

생원을 지낸 늙은 양반도 학질에 걸려 고생하였다. 그의 아들이 몹시 걱정하여 그 놈팡이를 데리고 와서 학질을 뗄 방법을 물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행했던 방법대로 말했다.

그리하여 술과 과일과 종이와 초 등의 물건과 말뚝과 새끼줄을 가지고 생원과 놈팡이는 산속 조용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술과 과일을 진설한 뒤,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생원에게 말뚝 안에 들어가 엎드리도록 했다. 생원이 들어가 엎드리자, 놈팡이는 새끼줄로 사지를 묶고, 각각 사방으로 박은 말뚝에다 묶어놓았다. 그리고 바지를 벗겨 엉덩이가 드러나게 했다. 생원은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마음속으로 몹시 의아해했다.

놈팡이는 곧장 자신의 물건을 크게 세운 후 비역질을 했다. 생원은 한편으로는 호통을 치며 꾸짖고, 한편으로는 고통을 호소하였다. 하지만 영웅호걸이라 하더라도 무기를 쓸 수 없는 처지라, 그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번에도 요행히 학질은 떨어졌다.

비역질을 당한 모욕은 분통했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면 도리어 부끄러움만 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일은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생원의 아내도 학질에 걸려 고통을 호소하였다. 그의 아들은 또 그 놈팡이에게 부탁하여 학질을 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생원은 깜짝 놀라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절대 그리해서는 안 된다. 결코 그리해서는 안 돼! 비록 십년 동안 학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놈의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 그 방법은 절대 쓰면 안 된다.”

 

 

☞계역추행(鷄亦楸行)

 

한 사람이 성묫길을 떠나야 하므로 새벽에 밥을 먹겠다고 계집종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안방에서 잤다.

계집종은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짓고, 상전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동방이 점점 밝아오는데도 상전은 기척도 없었다. 그래서 계집종이 안방 창틈으로 몰래 엿보았더니 상전은 방 안에서 그 일을 벌이고 있었다. 계집종은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잠도 못 자고 일찍 일어나 앉아 있던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웠다.

날은 이미 밝았다. 홰를 치던 닭도 마당으로 내려왔다. 그러더니 암탉과 교미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계집종은 주름진 입술을 씰룩이며 말했다.

“닭아. 너도 산소에 가느냐?”

상전 부부는 서로 돌아보며 부끄러워하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번역본 출처 : 조선후기 성소화선집(김준형 옮김, 2010,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