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옛날이야기 25 - 성수패설(醒睡稗說) 1

從心所欲 2020. 7. 22. 14:02

「성수패설(醒睡稗說)」은 1830년경 조선 말기에 편찬된 한문 패설집이다. 취은(醉隱)이란 사람이 1826년에 편찬했다는 설도 있지만 취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 책 제목은 ‘잠을 깨우는 패설’이란 의미다. 단편적 소화(笑話)뿐만 아니라 일반 민담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으며, 중국 고사(古事)를 다수 실었다는 점에서 다른 패설집과 차이를 보인다. 책에는 총 80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고, 그 가운데 성에 관련된 이야기는 24편이다. 「성수패설(醒睡稗說)」은 현재 민속학자료간행회에서 1958년에 간행한 『고금소총』과 발행처는 따로 없이 ‘설향노부(雪香老夫)’라는 이름의 편찬자가 등사본으로 펴낸  『민속자료소림집설(民俗資料笑林集說)』에 각각 실려 전한다.

 

[ 엘리자베스 키스 <함흥 여인들의 아침 수다> 다색목판, 38 x 25 cm 1921년 (개인소장)]

 

☞이수문답(以手問答)

부부가 함께 사는데, 남편은 소경이고 아내는 어눌하여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소경이 아내에게 물었더니, 아내는 남편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두 젖가슴 사이에 사람 인(人)자를 그렸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사람 인(人)자 양쪽 가장자리에 점이 있으니 불[火]이 났다는 말이군. 그렇다면 그 불은 어디에서 났는고?”

아내는 다시 남편의 손을 이끌어 자기의 음문을 어루만지게 하였다.

남편이 또 말했다.

“음문은 본래 습한 곳이니, 이동(泥洞)이란 말이군. 그렇다면 이동 누구 집인고?”

아내는 곧바로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입 위에 도 입이 있으니 여(呂)서방 집이로군. 그렇다면 얼마나 불에 탔는고?”

아내는 손으로 남편의 양물을 어루만져서 단단하게 세웠다. 이에 남편이 말했다.

“단단한 양물이 우뚝 섰으니, 남은 건 기둥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탔구나!”

이때 문밖에 어떤 사람이 와서 불렀다. 남편이 아내에게 물었다.

“누군고?”

아내는 손으로 남편의 양물의 밑동을 잡았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위에는 관(冠)이 있고, 아래에는 두 개의 고환이 있으니 반드시 송(宋)서방이 왔겠구나!”

▶이동(泥洞) : 니(泥)자는 ‘진흙 니’로 진창의 뜻도 있다.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

며느리가 건넛집 김총각과 즐겁게 이야기 하는 것을 시어머니가 보았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꾸짖어 말했다.

“너는 무슨 일로 김총각과 즐겁게 농담을 주고받았더냐? 내 마땅히 네 남편에게 전하여 네 죄를 묻겠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끝내 아들에게 그 일을 이야기하지 않고 대신 날마다 그 일을 들먹이며 꾸짖었다. 며느리는 고통을 참아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는 또 며느리를 불러 꾸짖고는 밖으로 나갔다. 며느리는 얼굴에 온통 수심이 가득하여 홀로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마침 아웃 마을에 사는 한 노파가 찾아왔다. 노파는 며느리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을 보고 물었다.

“이 집 며느리는 무슨 일로 이토록 우수에 가득 차 있을까?”

“제가 어느 날 김총각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시어머니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는 날마다 꾸짖네요. 그 괴로움은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랍니다. 그래서 우울해요.”

“네 시어머니는 무슨 아름다운 일이 있어서 너를 꾸짖는단 말이냐? 그 사람이 젊었을 때에는 재 너머 김풍헌(風憲)과 밤낮으로 미쳐 있다가, 그 간악한 일이 드러났지. 그래서 큰북을 짊어지고 동네를 세 바퀴나 돌았지. 그 일을 지금도 기억하는데, 제가 어떻게 남의 일을 책망할 수가 있담? 만약 또 자네를 꾸짖는다면 이 사실을 말하게.”

며느리는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였다.

그 다음 날, 시어머니는 또 며느리를 꾸짖었다. 그러자 며느리가 말했다.

“어머님은 무슨 아름다운 일이 있으시기에 이처럼 저를 꾸짖으시나요?”

“내게 무슨 아름다운 일이 있단 말이냐?”

“김풍헌과 밤낮으로 미쳐 지내다가 큰북을 지고 동네를 세 바퀴나 도셨다면서요?”

“누가 네게 그렇게 말하더냐? 다른 사람의 일에 공연히 말들을 보태기는..... 누가 큰북을 졌다더냐? 작은북을 졌지. 그리고 누가 동네를 세 바퀴나 돌았다더냐? 두 바퀴 반을 돌다가 그쳤구먼.”

▶풍헌(風憲) : 조선 시대에 유향소에서 면(面)이나 이(里)의 일을 맡아보던 사람.

 

[김준근 <죄인회술레>, 회술레는 목을 벨 죄인을 처형하기 전에 얼굴에 회칠을 한 후 사람들 앞에 내돌리는 공식적인 형벌집행인 반면, 조리돌림은 고을에서 향약을 어긴 사람에게 수치심을 주기 위한 마을 공동채의 자체 징벌 성격이다] 

 

 

☞유명무실(有名無實)

귀가 멀고 눈도 침침해진 아주 늙은 재상이 있었다.

달 밝은 여름밤, 밤은 깊은데 잠이 오지 않아, 재상은 지팡이를 짚고 사방을 거닐다가 여인들이 거처하는 안채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그곳에 한 어린 계집종이 대나무 평상 위에 벌거벗은 채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재상은 가만히 계집종의 아랫도리를 살펴보았는데, 참으로 천하일색이었다.

갑자기 음욕이 크게 일어난 재상은 계집종의 다리를 들어 자기의 양물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계집종은 아직까지 다른

남자를 겪어보지 못했고, 재상의 양물은 힘이 없으니 어찌 술술 들어갈 리가 있겠는가? 재상의 양물은 축 늘어져 그만

평상의 대나무 틈해로 빠져버렸다.

그때 마침 대나무 평상 밑에는 아직 이도 나지 않은 강아지가 있었다. 강아지는 늘어진 그것을 어미의 젖으로 생각하고 곧바로 빨아댔다. 재상은 몹시 즐거웠다. 그러나 계집종은 아무것도 알 지 못했다. 이 계집종은 손자며느리의

교전비(轎前婢)였다.

다음 날, 재상이 다시 이 계집종을 보더니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애틋하여 차마 잊지 못하고 계집종을 생각하는

재상의 마음이 겉으로도 드러나 보일 정도였다. 며칠 동안을 계속 그러했는데, 이른바 ‘혼자 사랑하며 혼자 즐거워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 상의하였다.

“아버님은 항상 아무 계집종을 보면 이처럼 귀여워하고 사랑하시네요. 그러니 그 계집종한테 하룻밤 수청을 들게 하여 아버님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자식이 효도하는 도리에 맞겠습니다.”

모인 사람의 의견이 모두 그러하여 계집종을 불러 말했다.

“오늘 저녁에는 대감님을 모시고 수청을 들도록 하여라.”

그래서 계집종은 몸을 깨끗이 씻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들과 손자는 재상이 늙고 정신도 흐린 것을 걱정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창밖에 무리 지어 방 안의 동정을 엿보았다.

재상이 계집종에게 물었다.

“들어갔느냐?”

“아니요.”

재상이 다시 물었다.“들어갔느냐?”

“아니요.”

이렇게 반복되는 동안 시간이 한참 흘렀다. 아들과 손자는 재상이 낑낑대는 것이 민망하여 나지막이 계집종에게 일렀다.

“들어간 것처럼 아뢰도록 하거라.”

재상이 다시 물었다.

“들어갔느냐?”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재상이 외쳤다.

“좋을시고, 좋을시고!”

▶교전비(轎前婢) : 조선 시대 양반이나 부유층에서 혼례(婚禮)를 치른 신부가 시집가면서 함께 데리고 갔던 여자종.

 

[전(傳) 신윤복 건곤일회첩(乾坤一會帖) 中]

 

☞선제선소(善啼善笑)

홀아비가 홀로 사랑방에 거처하였다. 그의 아들은 매일 밖으로 나돌아 다니며 집에 있지를 않아 안방에는 며느리 홀로 지냈다. 며느리는 늘 계집종에게 강보에 싸인 어린아리를 업고 바깥마당에서 놀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드문드문 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랑방에서 들려왔다. 며느리는 이상하여 살며시 사랑방을 엿보았다.

그랬더니 아이는 방바닥에 놓여 있고, 시아버지와 계집종이 일을 벌이고 있었다. 며느리는 부끄럽기도 하고 또한

괴상하여 다시 안방으로 돌아왔다.

그 후에 , 어느 땐가는 사랑방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며느리가 그 까닭을 알지 못해 나아가서

살며시 엿보았다. 그랬더니 시아버지는 아이를 업은 계집종과 음탕한 일을 질탕하게 벌이고 있었다. 며느리는 괴상하고 또한 우스워 다시 안방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자기와 놀아주는 줄 알고 드문드문 웃었던 것이다.

 

 

☞일거양득(一擧兩得)

한 사람이 산속 좁은 길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지고, 주막은 아직 멀어 어찌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겨우 한 집을 찾아 들어가 주인을 부르니, 한 노인이 나왔다. 나그네는 주인에게 말했다.

“나는 서울에 사는 사람으로 어디를 가던 중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니, 날은 이미 저물고 주막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왔던 길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 하룻밤만 재워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집은 안방뿐이어서 나그네를 재울 방이 없습니다. 그러니 머물러 자고 갈 수가 없습니다.”

“산세가 매우 험하고, 호랑이와 표범이 날뛰며, 날까지 어두워졌습니다. 지금 거절하신다면 이는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도 당겨주지 않는 꼴입니다. 날씨가 그다지 춥지 않으니 봉당에라도 재줘만 주신다면 무엇을 꺼리겠습니까?”

주인은 부득이 나그네를 맞이하여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오자 나그네가 말을 꺼냈다.

“혹시 저녁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

“그야 무에 어렵겠소?”

주인은 바로 저녁을 준비해 올리도록 했다. 방을 내올 때 나그네는 주인의 식솔을 헤아려보았다. 그 집에는 노인, 노파, 어린 며느리, 그리고 시집가지 않은 처녀가 있었다. 나그네가 확인차 물었다.

“어르신은 자녀를 몇이나 두셨는지요?”

“아들과 딸을 두었소. 아들은 결혼을 했고, 딸은 아직 시집을 가지 아니하였소.”

“아드님은 어찌하여 집에 없는지요?”

“며칠 전에 밖에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소.”

밥을 먹은 후, 주인을 발을 내려 방의 경계를 짓고 나그네에게 말했다.

“초저녁에는 춥지 않겠지만 밤이 깊어지면 바깥쪽은 추울 게요.”

“몹시 불안해지는데요.”

나그네는 곧바로 발 바깥쪽에 가서 누웠다.

이날 밤에는 달이 떠서 방 안을 희미하게 비췄다. 발 틈으로 안쪽의 동정을 살필 수 있을 정도였다. 노인은 아랫목에 누웠고, 그 옆에는 노파, 그 옆에는 며느리, 그 옆에는 딸이 누워 있었다. 딸이 누운 곳과 나그네가 누운 곳 사이에는 겨우 발 하나뿐이었다.

나그네는 발 틈으로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엿보았다. 노인이 아랫목에 누워 가끔 머리를 들어 건너편을 바라본다는 것도 알았다.

나그네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반드시 나를 의심하여 저러고 있겠지?”

그러나 밤이 깊어지자, 노인은 코를 골며 잠이 들고 말았다. 그래서 나그네는 발 밑으로 손을 내밀어 딸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딸도 그에 응대하며 나그네를 희롱하는 것이었다.

나그네는 곧바로 발을 올리고 들어가 딸과 함께 서로 즐거움을 나누었다.

그 순간 잡이 깬 노인이 깜짝 놀라 머리를 들어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이미 나그네는 자기 딸과 관계를 맺어 한창 일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노인은 큰 소리를 질러 그를 쫓아낼 생각도 했지만, 혹시나 며느리가 알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저 조용히, 그리고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나그네는 오랫동안 건장하게 일을 계속했다. 딸은 탕정(蕩情)을 이기지 못해 신음 소리를 내고, 사지를 심하게 흔들며 움직여댔다. 관계 맺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질펀하게 들려왔다.

 

버선발 움직이며 먼지를 일으키니 넋이 나가 물결치듯 출렁이네.

(布襪生塵魂蕩漾)

주석 비녀 베개 위에 떨어지니 곱게 빗은 머리 헝클어져 늘어진다오.

(錫釵隨枕鬢鬖髿)

 

곁에 있던 며느리도 어느새 잠이 깨 그 건장한 몸놀림을 보며 몹시 부끄러워했다. 그러다 끝내 음욕을 참지 못해 딸과 나그네의 일이 끝난 후 은근히 나그네를 끌어당겼다. 나그네는 그 자리에서 즉시 며느리와 관계를 맺었다.

노인은 그 해괴망측한 행동을 보고 가만히 그의 아내를 흔들었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자기에게 딴 생각이 있는 줄 알고 은근히 노인에게 귀를 갖다 붙였다. 그러자 노인이 그 귀에다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저 나그네가 차례로 그 짓을 하고 있네. 그러니 당신의 축축한 음호나 손으로 단단히 막아두시게.”

▶봉당(封堂) : 주택 내부에 있으면서 마루나 온돌을 놓지 않고 바닥면을 흙이나 강회, 백토 등을 깔아 만든 공간을 뜻하지만 대청 앞이나 방 앞 기단부분을 가리키기도 한다.

 

 

☞모욕탐색(冒辱貪色)

이웃 마을 상놈의 아내는 스무 살 남짓이었는데, 얼굴이 자못 예뻤다. 그녀는 물을 길러 갈 때마다 양반집 사랑방 앞을 지나쳐야 했다. 그 집 양반은 그녀를 어떻게 해보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언제나 주위에 보고 듣는 사람이 많아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물동이를 이고 오는데 마침 주변이 조용하였다. 양반은 맨발로 마루 아래로 내려가 그녀의 두 귀를 잡고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큰 소리를 치며 발악하였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가 나와 욕설을 퍼부으며 꾸짖더니, 이윽고 그녀의 남편까지 나와 욕설을 퍼부었다. 양반은 이미 지은 죄가 있는지라 듣는 중 마는 둥 하며 몸을 숨겨 달아났다.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기세등등하여 관아에까지 가서 하소연했다. 이에 고을 원은 양반과 상놈을 모두 테려와 마주 앉게 한 다음 문책하였다.

“너는 비록 양반이나, 지아비가 있는 여자에게 거리낌 없이 입맞춤을 했으렷다! 이게 무슨 양반의 도리란 말이냐?”

“입을 맞춘 이 몸의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저놈의 모자(母子)는 양반에게 끝도 없이 욕을 퍼부어대서 이웃 사람들까지 모두 알게 됐습니다. 그 죄는 어찌하여 다스리지 않으시는지요?”

“법전이 있으니 마땅히 법에 의거하여 시행하겠노라.”

그리고는 형리에게 분부하였다.

“대전통편(大典通編)을 가져오라.”

형리가 대전통편을 가지고 오자, 고을 원은 형리에게 물었다.

“양반이 상놈 아내의 두 귀를 잡고 입을 맞춘 것은 무슨 죄라고 쓰여 있느냐?”

“그러한 법 조항은 없는 듯하옵니다.”

“그렇다면 상놈이 양반을 모욕한 죄는 무엇이라 쓰여 있느냐?”

“세 차례 형장(刑杖)으로 때려 먼 곳으로 유배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이왕에 입을 맞춘 죄는 없다 하니 양반은 보내주어라. 그러나 양반을 모욕한 죄는 법전에 쓰여 있으니, 우선 저놈에게 한 차례 형장을 시행하고 옥에 가두도록 해라.”

양반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상놈의 어머니는 양반을 찾아가 애걸하며 말했다.

“무식한 놈이 양반의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처럼 죄를 범했사오니 바라옵건대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멀리

유배 가는 것만 면하게 해주시기를 천번만번 바라옵니다.”

그러자 양반이 말했다.

“너희 모자는 예전부터 무엄하여 양반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다. 그러한 놈은 그냥 둘 수 없으니 마땅히 법에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니 다시 여러 말 말고 물러가라.”

상놈의 어미는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며느리에게 말했다.

“내가 비록 온갖 방법으로 간청했지만 끝내 들어주지 않는구나. 반드시 유배를 갈 듯하니 이를 어찌할꼬? 네가 가서

잘 빌어보아라.”

며느리는 수치를 무릅쓰고 양반집에 갔다. 그리고 마루 아래에 서서 애걸하였다.

“쇤네의 지아비는 본래 술을 못합니다. 그러나 우연히 한 잔을 마시고는 몹시 취했나봅니다. 취중에 미친 말과 망령된

말을 하였을 뿐, 양반을 욕한 것은 아니오니 바라옵건대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네가 마루 아래에서 건성으로 용서를 비는데 내가 쉽게 용서하겠느냐? 비록 방에 들어와 애걸해도 끝내 어떻게 할지

알 수 없거늘, 하물며 마루 아래에서랴.”

그녀는 수치를 무릅쓰고 부득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양반은 그녀의 손을 잡아 가까이 앉히더니, 이윽고 그녀의

머리를 이끌어 입을 맞추며 말했다.

“네가 와서 이처럼 간절하고 애틋하게 비니, 내 마땅히 너그러이 용서하마.”

그리고 곧바로 즐거움을 나누었다. 그녀는 조금도 싫어하는 기색 없이 말했다.

“어찌하여 우리가 이렇게 늦게 만났을까요?”

그리고는 기뻐하며 나갔다. 양반은 관아에 들어가 고을 원을 뵙고 말했다.

“저놈의 죄에 대해 이미 한 차례 형장을 행했습니다. 그것으로 족히 그 죄를 다스렸다고 할 수 있으니,

이제는 놓아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고을 원이 말했다.

“이제 그 일을 이루었나보구먼....”

양반은 웃음을 머금었고, 상놈은 곧바로 풀려났다.

▶대전통편(大典通編) : 조선시대 법전은 『경국대전』과 『속대전』외에도 『오례의(五禮儀)』등, 법전과 같은 효력이 있는 전서들이 여럿 있어 법제 운용에 불편이 많았다. 그래서 정조가 1785년에 모든 법령을 통합해 편찬한 통일 법전이 『대전통편(大典通編)』이다.

 

☞구타가장(毆打家長)

생원(生員)이 사는 마을에 산포수가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자못 예뻤다. 생원은 항상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그 지아비가 집에 있어서 틈을 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생원이 포수에게 말했다.

“자네는 어찌하여 사냥을 하지 않나?”

“노자가 없어서 떠나지를 못합니다.”

“노비가 얼마나 되면 떠나겠나?”

“많을수록 좋지요. 그렇지만 적어도 십 민(緡) 정도는 있어야 됩니다.”

“어찌 그다지 많이 드느냐?”

“길을 가는 데 쓸 뿐만 아니라, 산에 제사도 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십 민도 많지 않습니다.”

“내가 마련해주겠네. 그러니 자네는 모름지기 많이많이 잡아오게. 그래서 나와 반씩 나눠 가지면 좋겠지.”

그리고는 곧바로 포수에게 십 민을 주었다.

포수는 이미 생원이 자기 아내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돈을 받은 후에 포수는 아내와 약속하였다.

“내 마땅히 이리이리하리니, 당신은 여차여차하구려.”

그리고 생원에게 하직 인사를 하였다.

“소인이 떠나면 집에 아내 혼자만 남게 됩니다. 생원님께서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마시고 종종 돌봐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 일은 자네가 부탁을 하지 않아도 내가 어찌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나? 조금도 걱정하지 말게.”

그날 저녁을 먹은 뒤 생원은 긴 담뱃대를 뻗쳐 물고 뒷짐을 지고 와서 말했다.

“오늘은 이 집 주인이 없으니 독수공방하는 게 어렵지 않느냐?”

“생원님 같은 분께서 오시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생원은 곧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생원이 말로 여인을 희롱하면 여인은 아낌없이 대답하고, 손으로 여인을 희롱하면

여인은 거침없이 응대했다. 생원은 마음속으로 자못 기뻐하며 여인과 정분을 쌓고자 하였다. 그러자 여인이 말했다.

“생원님께서 저와 관계를 맺겠다는 마음이 있으시면 저것을 꺼내 얼굴에 쓰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따르지 않으렵니다.”

“저 물건은 무엇인고? 내어서 보여주기나 하게.”

여인은 곧바로 사랑에서 꼭두각시 가면을 꺼내 생원의 얼굴에 씌워 뒤에서 묶고자 하였다. 그러자 생원이 말했다.

“이 물건을 얼굴에 쓰면 어떤 점이 좋은가?”

‘제가 남편과 동침할 때 항상 이 가면을 쓰고 하면 좋았어요. 안 그러면 좋지 않았고요.“

“네 말이 그렇다면 마땅히 그것을 묶어보아라.”

여인은 이내 가면을 생원의 얼굴에 씌우고, 뒤에 매달린 가죽 끈으로 가면이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고정하였다.

이렇게 장난하고 있을 즈음, 뒤뜰에서 포수가 몽둥이를 가지고 나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어떠한 도적놈이기에 남의 집 안방에 들어와 남의 아내를 겁탈하려 하느냐? 이러한 놈은 반드시 찔러 죽이리라!”

그리고는 몽둥이로 허투루 벽도 치고 장도 쳐대며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것처럼 공갈을 쳤다. 덜컥 겁이 난 생원은

가면을 벗고자 하였지만, 가죽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어 쉽게 벗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생원은 가면을 쓴 채로

달아났다. 포수가 쫓아가며 큰 소리를 질렀다.

“저 도적놈이 생원님 댁에 들어가네. 저 도적놈이 생원님 댁에 들어간다구!”

이 말을 들은 생원의 집에서는 깜짝 놀라 밖으로 나와 보았다. 과연 어떤 괴상한 물건이 안마당으로 돌입하고 있었다.

집안사람들은 몽둥이로 무수히 때리며 그를 쫓아내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온 마을이 시끌벅적해졌다.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몽둥이 하나씩을 가지고 와서 그를 난타하였다. 생원은 외쳤다.

“나야! 나라고!”

그러나 가면 안에서 말하는 소리를 어느 누가 판별하여 알아듣겠는가? 사람들은 한결같이 생원을 두들겨댔다. 생원은

겨우겨우 가면을 벗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가면을 쓴 사람이 생원임을 알았다. 집안사람들도 깜짝 놀라 말했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그리고는 곧바로 생원을 방 안으로 떠밀었다. 그제야 동네 사람들도 흩어졌다. 그후로 생원은 머리를 들고 문밖에

나설 수가 없었다. 또한 산포수에게 꿔준 돈도 달라고 하지 못했다.

▶산포수 : 산속에서의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산행포수(山行砲手)
▶민(緡) : 1,000문(文)의 동전 꾸러미. 100문이 1냥이므로 1민은 10냥.

 

 

번역본 출처 : 조선후기 성소화선집(김준형 옮김, 2010,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