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옛날이야기 27 - 성수패설(醒睡稗說) 3

從心所欲 2020. 8. 9. 16:57

☞호용문자(好用文字)

 

부인이 문자를 조금 이해하여, 어떤 단어를 들으면 나중에라도 반드시 써먹었다.

하루는 아들이 들어와 아뢰었다.

“오늘 밤에는 아무개와 아무개가 와서 모임을 가질 것입니다. 무료히 보낼 수가 없으니 간소하게라도 술과 안주를 마련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어머니는 그 말에 따라 음식을 갖추어 내보냈다. 마침 어머니가 창밖에 있을 때 아들과 친구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날, 어머니는 아들에게 물었다.

“내가 어제 창밖에 있다가 여러 사람들이 문자 쓰는 것을 들었는데, 모두가 유식한 말이어서 들을 만하더구나. 그런데 용두질, 비역질, 요분질과 같은 문자는 알지 못하겠더구나. 그 단어는 어디에 쓰는 게냐?”

아들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저 둘러대는 말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용두질과 비역질은 친구들 간에 담배를 태우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라는 의미로 쓰고, 요분질은 여인들이 바느질하는 재주를 가리킬 때 쓴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그 후, 딸을 시집보낸 후에 사위가 장모를 찾아왔다. 장모는 진수성찬으로 잘 대잡하고 나서 사위에게 말했다.

“사랑에 나가서 처남들과 함께 용두질과 비역질을 하면서 종일 놀다 가시게. 딸내미는 비록 임사(任姒)의 덕은 없다 할지라도 요분질은 잘 할 것이네.”

사위가 듣고는 몹시 해괴망측해하며 한마디 말도 못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그의 아내를 내쫓았다. 쫓겨난 여인의 집에서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들이 어머니에게 물었다.

“아까 매부가 왔을 때 어머니께서는 매부와 어떤 말씀을 주고받으셨는지요?”

“여차여차했을 뿐이고, 다른 말은 없었는데...”

아들이 그 말을 들으니 일이 몹시 해괴망측한지라 곧바로 사돈집에 가서 매부에게 말했다.

“이 일은 본래 여차여차한 것이네. 이는 모두 내 잘못이고, 어머니의 잘못은 아니네. 그러니 조금도 미워하거나 꺼리지 마시게.”

매부가 듣고 몹시 웃었다. 그리고 즉시 가마를 보내 아내를 다시 데려왔다.

▶임사(任姒) : 주 문왕(周文王)의 어머니인 태임(太任)과 주 무왕(周武王)의 어머니인 태사(太姒). 모두 현모(賢母)였다.

 

[최재순 <정선>]

 

☞학불입방(學不入方)

 

주막을 하는 놈팡이의 아내는 음모가 무성하면서도 매우 길었다. 매일 밤, 일을 치를 때마다 음모가 음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때문에 놈팡이는 항상 걱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생원이 손님으로 주막에 들었다. 그 수염을 보니, 윗수염이 무성하고도 길어 입모양도 볼 수가 없었다. 주막집 놈팡이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처럼 수염이 무성하니 먹고 마시는 것도 어렵지 않을까?’

그러면서 음식상을 가지고 갔다. 생원은 이내 주머니에서 갓끈에 고정하는 종이 고리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양쪽으로 두 개의 고리에 나눈 수염을 하나씩 고정한 다음 갓끈에 매고 밥을 먹는데, 한 올의 수염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놈팡이는 곁에서 자세히 보고 외쳤다.

“맞아, 맞아!”

그러자 생원이 말했다.

“무엇이 맞단 말이오?”

“제 처의 음모는 무성하면서도 몹시 깁니다. 그래서 매일 밤일을 할 때마다 음모가 음호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불편했습지요. 그런데 지금 비로소 빨려 들어가지 않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실묘공물(失妙貢物)

 

약국(藥局)에 속한 여러 친구들이 술과 안주를 챙겨 남산에 올라가 탁족(濯足)을 할 때였다.

한 사람이 홀연 양기가 발동하여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은근한 곳을 찾아들어가 막 양물을 쥐고 있을 즈음, 마침 금송군(禁松軍)이 그의 뒤에 있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약국(藥局) : 시중에서 약을 파는 곳 또는 약국으로 불렸던 궁중에서 의약을 맡아보던 관아인 내의원(內醫院).

▶금송군(禁松軍) : 조선 시대 국가 소유의 금송(禁松)지역 내 송림(松林)을 맡아 관리하고 벌목을 감시하던 군사

 

“이 양반아! 남산처럼 종요로운 곳에서 이게 무슨 짓이오?”

그 사람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금송군이 뒤에 서 있었다. 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금송군의 소매를 잡아당겨 가까이 앉히며 말했다.

“내가 이 일을 벌였다고 떠들지 말아주게.”

“남산처럼 종요로운 곳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은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둘 수 없으니 마땅히 잡아가야겠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간청하며 말했다.

“노형께서 이 무슨 말씀입니까? 속설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죽을병에도 살릴 수 있는 약은 있다고...이 동생이 저지른 한때의 무안한 행동을 우리 형님께서 어찌 너그러이 용서해주지 않으십니까?”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금송군에게 주며 말했다.

“약소하지만 술이나 한잔 사서 마시고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조만간 이 아우를 찾아오시면 후히 대접하겠습니다.”

“형씨 댁이 어딘데?”

“아우의 집은 구리재에 있는 몇 번째 집입니다.”

“남산은 안산(案山)으로 중요한 곳이오. 이런 짓을 한 사람을 잡으며 모두 죄를 주어서 다스리지요. 하지만 형씨가 하도 간절하게 비니 잡아가지는 않겠소. 그러니 나중에라도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마시오.‘

“감사하고 감사하옵니다.”

금송군은 돈을 받고 마음속으로 몹시 웃었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뒷날, 금송군이 지나가다 그 집에 들렸다. 주인은 방에 있다가 금송군이 온 것을 보고 돈을 움켜쥐고 바삐 나가서 그에게 주었다. 금송군은 그것을 받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며칠이 지난 후, 금송군은 다시 그 집 앞을 지나가다 들렸다. 그랬더니 주인은 그전처럼 돈을 움켜쥐고 나가 그에게 주었다. 그렇게 네댓 번이나 주고 나자, 영문을 모르는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다. 주인은 숨기기만 할 뿐, 즐겨 말하지 않았다.

그 후, 다시 이런 일이 있자, 곁에 있던 사람이 간절히 그 연유를 물었다. 주인은 그제야 그에게 귓속말로 소곤소곤 말했다.

“내가 어느 날 남산에 갔다가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네. 그런데 저놈이 너그럽게도 그것을 용서해주었네. 그런 까닭에 그 은혜에 감사하여 이러는 것이라네.”

그 사람은 이 말을 듣고 몹시 우스워 주인을 책망하며 말했다.

“남자가 좆을 쥐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네. 남산이 아니라 궁궐 안에서 그 짓을 했더라도 누가 능히 그것을 금한단 말인가? 나중에라도 또 그놈이 오면 책망이나 해서 보내게.”

그 후에 금송군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주인이 그를 꾸짖었다.

“내가 좆을 쥔 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그러자 금송군이 대답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말했다면 누가 찾아왔겠소?”

그리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달아나버렸다.

 

[최재순 <정선가는 길>]

 

☞양노봉욕(兩老逢辱)

 

여든 살 노인이 젊은 첩과 더불어 밤일을 할 때였다. 첩이 말했다.

“이 일을 하고 만약에 아이를 갖게 된다면 반드시 사슴을 낳겠네요.”

“어찌하여 사슴을 낳는단 말이냐?”

“사슴 가죽으로 일을 하셨으니 사슴을 낳지 않을 수 있겠어요?”

다음 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노인이 말했다.

“내가 어젯밤에 큰 욕을 보았네.”

“어떤 욕인가?”

‘지난밤에 첩과 관계를 맺는데, 첩의 말이 이러하였네. 그러니 어찌 욕이 아니겠는가?“

“그 욕은 대수로울 것이 없네. 내가 맛본 욕은 입에 담을 수도 없을 정도네.”

“말이나 해보게.”

“내가 며칠 전에 첩과 더불어 밤일을 할 때였지. 첩이 자기 것을 가리키며 ‘이곳은 돌아가신 분들을 모셔둔 무덤 곁인가 봐요’라고 하더군. 내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첩이 ‘시체를 이끌고 장례를 치르는 곳이니 무덤 곁이 아니라면 무슨 까닭으로 어려움 없이 장례가 치러지겠어요?’ 라고 하더군. 이는 차라리 귀로 들을지언정 입으로는 차마 말할 수가 없네.”

 

 

☞구아효인사(狗兒斅人事)

 

몹시 어리석은 사람이 손님을 맞이하는 인사치례를 알지 못했다. 아내는 그것을 민망히 여겨 남편에게 말했다.

“사람이라면 손님을 대접하는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데?”

“무릇 손님을 대접하는 도리는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평안한가를 묻고, 다음에는 자리에 앉으라고 청하고, 다음에는 담배 태우기를 청하고, 다음에는 술을 마실 것을 청합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을 불러 술을 가져오라고 하여 술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손님을 대접하는 도리라 하겠습니다.”

“알기는 하겠는데, 그러다가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오?”

“내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새끼줄로 당신의 고환을 묶고 한쪽 끝을 쥐구멍으로 내보낸 다음, 손님이 올때면 내가 그것을 잡아당길게요. 한 번 잡아당기면 평안한가를 묻고, 두 번 당기면 자리에 앉기를 청하고, 세 번 잡아당기면 담배 태우기를 청하고, 네 번 잡아당기면 술 마시기를 청하고 다섯 번 잡아당기면 술을 가져오라고 하세요. 내 마땅히 그에 맞춰 시행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차례를 삼으면 될 것입니다.”

“그 계책이 몹시 절묘하구려.”

그 후, 그 사람은 몇 번씩 그 방법을 익혀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그를 방문하였다. 그의 아내는 새끼줄을 한 번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을 꺼냈다.

“평안하신가?”

또 한 번 잡아당기니 자리에 앉기를 청했고, 다시 한 번 잡아당기니 담배 태우기를 청하고 다시 한 번 잡아당기니 술을 마기겠냐고 했다. 또 한 번 잡아당기니 사람을 불러 술을 가져오라고 했다. 친구는 괴이하여 물었다.

“자네가 평소에는 인사를 차리는 절차를 알지 못하더니, 오늘은 어찌하여 이처럼 크게 깨달았는가?”

“나 혼자서만 인사를 모르겠는가?”

마침 그의 아내는 음식 차리는 것을 감독하러 새끼줄 끝단에 소뼈를 묵어 문틈에 끼워두고 부엌으로 갔다. 그런데 강아지가 그 뼈를 탐내어 어떻게든 먹어보려고 했다. 새끼줄은 여전히 그 사람의 고환에 묶여 있어 강아지가 입으로 뼈를 잡아당기니 새끼줄도 자연히 움직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손님과 더불어 앉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갑자기 새끼줄이 움직이자 친구에게 다시 말했다.

“평안하신가?”

답을 하기도 전에 다시 새끼줄이 움직였다. 그러자 다시 말했다.

“자리에 앉으시게.”

새끼줄이 잇따라 움직이면 잇따라 질문을 하는 등, 움직일 때마다 계속 질문을 던졌다. 이에 손님은 웃으며 나가버렸다. 객은 이미 떠났지만, 강아지는 여전히 새끼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방에 혼자 앉아 계속 “평안하신가? 앉으시게. 담배를 태우시게. 술을 마시려나? 술을 가져오라”를 계속 읊조렸다. 이소리가 하루 종일 입에서 끊이지 않았다.

 

[최재순 <겨울이야기>,  42 x 102cm]

 

 

번역본 출처 : 조선후기 성소화선집(김준형 옮김, 2010,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