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옛날이야기 26 - 성수패설(醒睡稗說) 2

從心所欲 2020. 8. 8. 09:20

 

[최재순, <겨울이야기> 최재순은 2009년, 49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강릉출신 한국화가다. 여백을 중시한 동양화의 전통을 현대적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남겼다. 대한민국미술대전과 MBC미술대전 등에서 입상하였다.]

 

 

☞진가난분(眞假難分)

 

행상을 다니는 장사치가 산골 좁은 길에 들어섰는데 날이 저물고 말았다. 겨우 한 집을 발견하고 들어가 주인을 부르자 한 여인이 나왔다. 장사치는 그 여인에게 말했다.

“나는 행상을 다니며 장사하는 것을 업으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마침 여기까지 왔는데, 날이 저물어 머물 곳이 없어서 그러니 하룻밤만 재워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집에는 남정네가 없어서 머물러 잘 수가 없겠네요.”

“비록 사내가 없다 할지라도, 문간에 재워주는 것이야 뭐 꺼릴 게 있겠습니까?”

“그거는 알아서 하세요.”

상인은 문간에 짐 보따리를 풀어놓고 앉아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대나무를 엮어 만든 울타리 사이로 인적이 있는 듯했다. 상인이 눈을 부비고 자세히 보니 관(冠)을 쓴 어떤 사람이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상인은 몰래 뒤따라 들어가 그의 동정을 살폈다.

그 사람은 마당에 관을 떨어뜨리고 갔는데, 상인은 그 관을 주워 쓰고 우두커니 서서 방안의 동정을 엿보았다. 방안에서는 쾌감을 나누는 소리가 간간이 새어나왔다.

잠시 후, 대나무 울타리 사이로 또 인기척이 있었다. 돌아보니 한 여인이 바쁜 걸음으로 와서는 앞뒤 따지지도 않고 곧바로 상인의 옷을 잡아끌고 가는 것이었다. 상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인이 잡아끄는 대로 따라갔다. 여인은 상인을 이끌고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그를 꾸짖으며 말했다.

“그년의 축축한 거시기는 금테를 둘렀답니까? 은테를 둘렀답니까? 그 집 김가 놈이 없다는 말을 듣더니 매일 밤 거기 가서 잠자리를 갖는 것은 또 무슨 이유입니까? 빨리 옷이나 벗고 누워 주무세요. 만약 김가 놈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반드시 망신을 당할 겁니다.”

상인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옷을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여인도 옷을 모두 벗고 알몸으로 이불 속에 들어왔다. 상인은 곧바로 여인 위로 올라타서 그것을 찔러댔다. 그런데 그 방법이 여인의 남편과 너무 달랐다. 그러자 여인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나를 끌고 올 때, 누군지도 모르고 끌고 왔소?”

“누구세요? 만약 남편이 온다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거예요.”

“그러면 빼오리까?”

“이미 집어넣은 물건을 어찌 뺀단 말이오? 그저 빨리빨리 하란 말이지.”

“그나저나 맛은 어떻소?”

“특별하네요. 남편이 새벽까지 오지 않았으면 싶을 정도로...”

일을 마치자 여인이 말했다.

“어서 가시오.”

“처음에는 무슨 마음으로 나를 끌고 왔고, 나중에는 무슨 마음으로 나를 쫓아내시오? 공연히 이 사람을 이끌고 와서 밤새도록 힘을 쓰게 해놓고 빈손으로 쫓아내는 것은 무슨 짓이오? 가지 않으리다!”

여인은 몹시 초조하고 민망하여 상자에서 베 한 필을 꺼내 상인에게 주며 말했다.

“빨리 가시오.”

“베 한 필이 어떻게 밤새도록 노력한 대가가 되겠소? 가지 않겠소.”

여인은 또 베 한 필을 꺼내주며 말했다.

“어서 가시오. 내 사랑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일이 초조하고 긴박하기에 이러는 것이오.”

상인은 결국 베 두 필을 가지고 돌아왔다. 썼던 관은 본래 있던 자리에 두고, 베는 짐 보따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문간에 앉아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관을 흘리고 간 사람은 그것을 주워 쓰고 떠났다. 여주인도 창을 열고 상인에게 물었다.

“나그네는 주무시오?”

“혹시라도 김서방이 올까봐 밤새도록 여기서 지켜보느라고 눈을 붙이지 못했소.”

“어떻게 김서방을 아시오?”

“나와 김서방은 평소 친분이 있소. 아까 관을 쓴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 몹시 화가 나서 두드려 패서 쫓아내려 했지만, 아주머니의 낯을 봐서 참았소. 비록 그를 쫓아내지는 않았지만, 김서방을 만나면 이 말은 꼭 할 것이오.”

“이게 무슨 말이오? 일단 방으로 들어와 내 말을 들어보시구려.”

상인은 짐 보따리를 집어들고 들어갔다. 그러자 여인이 말했다.

“아까 왔던 이생원은 동네에서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으로 김서방이 있을 때도 종종 와서 놀았어요.”

“오늘 밤 와서 놀았던 것은 곧 뱃놀이였구려! 내가 밖에서 자세히 들었소. 두 사람이 한 짓을 아는데, 어찌 나를 속이려 든단 말이오?”

“......그나저나 당신의 성은 뭐요?”

“내 성은 내가요.”

“내서방은 가까이 와서 내 말을 들어보시구려. 사람이 서로 사랑했던 일을 말해 무슨 이득을 보시려구요?”

“나야 뭐 그저 딱히 사랑할 일이 없으니...”

“내서방도 그 일을 싫어하지는 않겠지요?”

이에 두 사람은 더불어 즐거움을 나누었다. 날이 밝은 후에는 밥을 지어 잘 대접하였다. 그리고 베 한 필을 선물로 주며 말했다.

“비록 약소하지만 이로써 정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상인도 짐 보따리를 열어 거울, 빗, 색실 등을 꺼내 여인에게 주었다. 여인은 보따리 안에 있는 베 두 필을 보고 들어 올리며 물었다.

“이 베는 어디서 났수?”

“품을 팔아 받은 거요.”

여인은 상인의 소매를 잡고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느냐고 묻더라.

 

[최재순 <섬이야기> 45 x 70cm]

 

☞승천인지(昇天人地)

 

어떤 부부가 낮에 무료하게 있다가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곁에는 일곱 살과 여덟 살이 된 아들과 딸이 있는데, 한낮에 그 곁에서 하기가 멋쩍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이 광주리를 가지고 앞산에 있는 도랑에 가서 잔고기들을 잡아오거라. 저녁에 탕이나 끓여 먹자꾸나.”

아이들은 광주리를 가지고 나가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에게 광주리를 주며 내쫓은 것은 틀림없이 우리 몰래 무언가를 먹으려고 그러는 걸 거야.”

“그러면 몰래 숨어서 볼까?”

아이들은 창밖에서 방안을 가만히 엿보았다.

부부는 방안에서 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아내에게 물었다.

“어떻소?”

“땅속으로 꺼지는 듯하네요.”

아내도 남편에게 물었다.

“어때요?”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소.”

일을 마치자 아이들이 광주리를 가지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빈 광주리를 본 아버지가 물었다.

“왜 물고기를 잡지 않았느냐?”

“아버지는 하늘로 올라가고 어머니는 땅속으로 들어갔는데, 누구랑 같이 먹으라고요?”

 

 

☞흉악해상(凶惡醢商)

 

한 놈팡이가 자기 집에서 해가 중천에 걸릴 때까지 이불을 껴안고 누워 있었다. 마침 조개젓을 파는 여자가 그 집에 들어와 물었다.

“조개젓 사시려우?”

그놈이 창으로 잠깐 엿보니, 젓갈장수의 용모가 꽤 쓸 만했다. 그래서 거짓으로 신음 소리를 내며 젓갈장수에게 말했다.

“내가 병으로 누워 일어날 수가 없어서 그러는데, 꺼리지 말고 잠깐 방으로 들어와 이 그릇에다가 두 푼어치만 두고 가시구려.”

젓갈장수는 아무 의심 없이 그 말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놈은 벌거벗은 채로 양물을 크게 일으키더니, 젓갈장수를 껴안고 이불속으로 끌어들여 맹렬하게 그 짓을 했다. 이에 젓갈장수가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흉악하구나, 흉악해.”

흥이 무르익었을 때도 젓갈장수의 입에서는 ‘흉악하다’는 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일이 끝난 후에도 ‘흉악하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을 마치자, 젓갈장수는 젓갈 통을 머리에 이고 문을 나섰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쳤다.

“흉악한 젓갈 사시우!”

 

[최재순 <가을풍경>]

☞패이물(佩異物)

 

각좆을 파는 것으로 생업을 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아내가 물었다.

“이것은 무슨 물건인가요?”

“여인들이 차고 다니는 물건이라오.”

그녀는 그런 줄 알고 있었다.

그 후, 친척의 혼사가 있어서 그녀도 참석해야 했다. 그렇지만 찰 만한 노리개가 없는 까닭에 각좆 중에서 색이 고운 것 하나를 골라 옷고름에 매고 갔다. 그랬더니 자리에 앉은 부인들 중 어떤 사람은 그것을 외면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보고도 못 본 척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부인이 다가와 물었다.

“이것은 무슨 물건인가요? 이상하게도 생겼네.”

그러자 곁에 있던 다른 부인이 얼굴을 가리고 웃음을 머금은 채 돌아앉으며 말했다.

“흉악하고도 망측해라! 이것은 각좆인데, 어찌하여 차고 오셨단 말이오? 애지중지해서 잠시도 놓을 수가 없던가요?”

대개 그것을 차고 온 여인과 그것이 무엇인지를 물은 부인은 현숙한 부인이라 하겠다. 각좆을 알고 있는 부인은 이것으로 미루어 어떠한 여인인지 알지라.

▶각좆(角좆) : 뿔 따위로 남자의 생식기처럼 만든 장난감.

 

 

☞일배대취(一盃大醉)

 

한 놈팡이는 아내와 둘이서만 살고 있었다. 그는 항상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사람이 있든 없든 아내를 이끌고 방으로 들어가 그 짓을 한 판 벌였다. 아내는 다른 사람이 있을 때도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민망하여 남편에게 말했다.

“만약 사람이 있을 때에는 내게 ‘술 한 잔 하자’고 말씀하세요. 그러면 내가 작은방으로 들어갈게요. 당신은 조금 뒤에 뒤따라 들어오세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그저 둘이서 술을 마시나보다 생각하겠죠. 어떻게 그 일을 하는지 알겠어요?”

“그 생각이 좋네.”

그러던 어느 날, 장인이 마침 그 집을 찾아왔다. 그놈은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장인에게 몇 마디 인사만 드린 후 아내에게 말했다.

“술 한 잔 하지 않겠소?”

아내는 즉시 작은방으로 들어갔고 그놈도 뒤따라 들어갔다. 한참 뒤에 그 방에서 나온 두 사람 모두의 얼굴에는 붉은 빛이 맴돌았다.

집으로 돌아온 장인은 장모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딸자식은 되레 남만도 못하네. 할멈도 앞으론 그 집에 가지 마오.”

“무슨 까닭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것은 딸년도 익히 아는 바요. 그런데 오늘 그 집에 갔더니 작은방에 술을 빚어두고 저희 둘이서만 마시고 내게는 한 잔도 권하지 않더군. 내가 어쩌다 세상천지에 이렇게 인정머리 없는 딸년을 두었단 말인가? 절대로 그년의 집에는 가지 마오. 내 만약 할멈이 그년의 집에 간 것을 알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아시오.”

장모는 이 말을 듣고, 장인이 없는 틈을 타 딸의 집에 가서 물었다.

“네 아비가 몹시 화가 났더구나. 몹시 화가 났어.”

“무슨 이류로 그렇게 화가 나셨대요?”

“아무 날, 네 아비가 왔을 때 너희 내외가 작은방에 들어가 둘이서만 술을 마시고 네 아비에게는 한 잔도 권하지 않았다면서...그 일로 몹시 화가 났더구나.”

“아버님께서 깊이 생각하지 않으셨나보네요. 이 일은 여차여차한 것으로, 사실 술은 없었어요. 만약 술이 있었다면 어찌하여 아버님께 올리지 않았겠어요? 아버님께 이 일을 잘 말씀드려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도록 해주세요.”

장모는 집으로 돌아와 장인에게 말했다.

“오늘 딸네 집에 갔다 왔어요.”

그러자 장인은 다짜고짜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딸년 집에는 가지 말라고 누차 이야기하지 않았소? 그런데 어쩌자고 그 집에 갔단 말이오?“

“노여워하지 말고 내 말부터 들어보세요. 그 일은 본래 여차여차한 것으로, 실을 술이 없었답니다. ‘만약 술이 있었다면 어찌하여 아버님께 올리지 않았겠냐’고까지 합디다.”

“그 일이 그러한 줄을 내 미처 깨닫지 못했구려. 그나저나 그 방법이 몹시 묘하구려. 그렇다면 우리도 한 잔 해볼까?”

“좋지요.”

두 사람은 곧장 한 잔 술을 마셨다. 일이 끝나자, 장모가 말했다.

“한 잔 더 하시려우?”

“이 늙은이는 한 잔에도 몹시 취하는구먼!”

 

[최재순 <가을풍경>]

 

☞전신(典腎)

 

한 놈팡이의 아내는 한번 베틀을 돌리면 항상 베 한 필을 짜냈다. 그렇게 짠 베는 남편에게 맡겨 팔아오게 했는데, 남편은 베 판 돈을 모두 술 마시는데 써버리고 남겨 오는 법이 없었다. 아내는 매번 이 일로 남편을 책망하였다.

그후, 아내는 또 베 한 필을 짜서 남편에게 주며 말했다.

“오늘은 제발 술 마시지 말고, 이 베만 팔고 곱게 들어오세요. 매일 같이 이러면 어떻게 살겠어요? 제발 술 마시지 마세요!”

그놈은 베를 가지고 시장에 가서 잘 팔고는 술집에 가서 외상으로 술을 마셨다. 그후, 그는 돈을 허리에 찼다. 그런 다음, 새끼줄로 자신의 양물을 둘둘 감은 후, 그 끈을 목에 걸어 겉으로는 양물이 보이지 않게 하고 집으로 돌아왓다.

그놈은 비록 술에 취하지 않았지만, 거짓으로 몹시 취한 척했다. 허투루 딸꾹질도 하고, 걸음도 비틀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내가 그 모습을 보고 책망하며 말했다.

“오늘도 취해 돌아오셨구려. 반드시 베 판 돈으로 술을 마셨을 터이니, 남은 돈도 없겠구려.”

그러자 그놈은 허리에서 베 판 돈을 내놓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어떤 놈이 베 판 돈으로 술을 마셨대? 베 판 돈은 꽁꽁 잘 묶어서 가지고 왔네.”

“그렇다면 무슨 돈으로 이렇게 취했어요?”

“술을 보니 마시고 싶은 생각이 잔뜩 일어나더구먼. 허나 돈은 쓸 수가 없고, 그래서 좆을 뽑아 전당 잡히고서 마셨지, 뭐.”

“그게 무슨 말인가요? 급히 그것을 꺼내보시구려.”

바지춤을 풀고 그것을 보이니, 과연 양물이 없었다. 아내는 깜짝 놀라 말했다.

“이 무슨 변고인가요? 그나저나 그것을 얼마에 전당 잡혔는데요?”

“두 냥에...”

“이 두 냥을 가지고 속히 가서 되찾아오세요!”

그놈은 두 냥을 가지고 술집에 가서 외상을 도로 갚았다. 그리고 술 몇 잔을 더 마신 후에 소나무 태운 재를 자신의 양물에 검게 칠하고 돌아왔다. 아내는 급히 물었다.

“찾아왔어요?”

“도로 찾아오긴 했네만, 술집 아낙네가 부지갱이로 사용했는지 검게 그을렸네.”

“어서 꺼내보세요.”

그것을 보니, 과연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러자 아내는 치마폭으로 그것을 닦으며 말했다.

“이게 무슨 꼴인고?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야? 물건을 전당 잡았으면 잘 보관했다가 돌려주는 것이 옳거늘, 어찌하여 이 꼴로 만들었단 말이냐?”

 

 


번역본 출처 : 조선후기 성소화선집(김준형 옮김, 2010,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