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

정조 14 - 함양공부

從心所欲 2020. 7. 7. 07:39

【함양공부(涵養工夫)가 가장 어렵다. 나는 함양 공부가 부족해서 언제나 느닷없이 화를 내는 병통이 많다.】

▶함양공부(涵養工夫) : 사물과 맞닥치기 전, 희노애락 감정이 발동하지 않은 상태인 평상시의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 주자학에서는 거경공부(居敬工夫)를 가리키는데, 거경(居敬)은 내적(內的) 수양법으로서 항상 몸과 마음을 삼가서 바르게 가지는 것을 의미.

 

 

【함양(涵養)은 바로 휴식을 취할 때의 공부이고 성찰(省察)은 바로 행동할 때의 공부이다. 그러나 본체가 확립된 뒤에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므로 학자의 공부는 당연히 함양을 우선으로 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함양만 중요한 줄 알고 성찰에 힘쓰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러기에 덕성을 존중하고 학문을 하는 것 중 어느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된다.】

 

 

【사람이 하기 쉽고 억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성내는 것이 가장 심하다. 가령 성질이 날 때에 사리를 살피지 않고 성질을 부리고 나면 화가 더욱 치밀어 일을 도리어 그르치니 성질이 가라앉은 뒤에는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비록 수양하는 공부는 없지만 언제나 나는 이런 점을 경계하고 있다. 어쩌다가 화가 나는 일을 만나면 반드시 화를 가라앉히고 사리를 살필 방도를 생각하여 하룻밤을 지낸 뒤에야 일을 처리하니,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오래도록 마음속에 담아두어서는 안 된다."는 정자(程子)의 이 말은 실로 절실하다.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참으로 어렵지만, 지난날의 잘못을 다스려서 다시 잘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면 된다. 만일 잘못한 일에 대한 후회를 오래도록 마음속에 담아둔다면 본심이 쇠하여 사라져 진취적이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대학(大學)」 정심장(正心章)에 분명히 말한 네 가지 병통인 것이다.】

 

 

【"칠정(七情)1) 가운데 무엇이 제어하기 어려운가?" 하자, 누군가 대답하기를, "옛 유학자가 '노여움(怒)'을 제어하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그 말이 참으로 맞다. 그러나 칠정 중의 욕심(欲)은 오성(五性) 중의 믿음(信)과 같아서 없는 곳이 없다. 기쁨(喜)·노여움(怒)·슬픔(哀)·즐거움(樂)·사랑(愛)·미움(惡)이 나타나 절도에 맞지 못하는 것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욕(欲)', 이 한 글자를 잘 제어하여 한결같이 천리의 공정함을 따르면 희·노·애·락·애·오가 나타나 모두 절도에 맞게 되어 자연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잘못이 없게 된다. 나는 욕심을 제어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였다.】

▶칠정(七情) : 인간의 기본적인 일곱 가지 정. 유학에서는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반면 ≪예기≫에서는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 불교에서는 희노우구애증욕(喜怒憂懼愛憎欲)을 가리킨다. 懼는 두려워할 구, 憂는 근심 우, 憎은 미울 증.

▶오성(五性) : 유교(儒敎)의 덕목(德目)으로 인간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성질(性質). 곧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사람의 마음은 마땅히 광명하고 투명하여 겉과 속이 차이가 없어야 하니, 하늘에 비유하건대 구름이 걷히고 해가 밝아 만물이 다 드러나 보이면 어찌 아름다운 광경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하늘에 구름이 끼어 흙비가 내리고 먼지기운이 서려 흐려지면 곧 자연히 아름답지 못하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나는 평일에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어 가식으로 꾸미지 않는다. 훌륭한 명성이 없는 것은 대부분 이로 말미암아서이니, 타고난 성품이 이와 같은 것을 어찌하겠는가. 자기의 사욕을 이겨 다스려서 변화하는 공부는 자못 여백공(呂伯恭)에게 부끄럽다.】

▶여백공(呂伯恭) : 중국 남송(南宋)의 학자인 여조겸(呂祖謙). 백공(伯恭)은 자. 일명 동래선생(東萊先生)이라고도 한다. 주희(朱熹), 장식(張栻)과 더불어 동남삼현(東南三賢)으로 불렸으며 주희와 함께 북송(北宋) 도학자의 어록(語錄)을 모은 《근사록(近思錄)》을 편찬하였다.

 

 

【나는 태양증(太陽證)이 있어서 부딪치는 곳마다 드러난다. 교묘하게 아첨하고 비위 맞추는 사람을 보기라도 하면 그를 매우 혐오하여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를 못한다. 참으로 정직하고 성실하며 용감하게 간언하는 선비가 있다면, 어찌 그 사람을 아름답게 여기지 않으며 그 말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태양증(太陽證) :  사상(四象) 가운데 양괘(陽卦)가 겹친 것. 양 중의 양을 이른다.

 

 

【나는 공사(公事)에 대해 큰지 작은지, 긴급한지 한가한지를 막론하고 며칠씩 지체시킨 적이 없었다. 성품이 번잡한 것은 참을 수 있어도 한가한 것은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규모(規模)는 구습(舊習)을 그대로 따르는 데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을 편안히 여겨 부득이 크게 고쳐야 할 부분이 있어도 번번이 저 네 글자에 꺾여버리곤 한다. 반드시 먼저 이 병통을 극복해야만 일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네 글자 : 安於故常(안어고상) 예전 관습을 편안하게 여김.

 

 

【강론(講論)할 때 "이미 깨달은 의리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이 많다. 혼자서 가만히 점검해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처음에는 과감하게 실천할 뜻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너무 성급하게 하면 도리어 일에 해가 될까 염려하여 차일피일 시일만 넘기고 말았다라고 한 것은 ‘잊지도 말고 조장(助長)하지도 말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조장(助長) : (풀이) 자라나도록 돕다. 조급히 키우려고 무리하게 힘을 들여 오히려 망친다는 경계의 뜻이 있다.

 

 

【"일은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말은 다 하려고 하지 말라."고 한 이 구절은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이다. 벽에다 써 붙여서 날마다 살피는 자료로 이용해야 하겠다.】

 

 

【일은 크거나 작거나 간에 신중하게 하여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작은 일을 함부로 하게 되면 큰일도 함부로 하게 된다. 큰일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작은 일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정자(程子)의 문인이 "문장에 나타나는 기품이란 언어(言語)에 힘을 쓰는 것이 아닐는지요?" 하고 묻자, 정자가 "내면을 기르면 자연히 언어가 순조롭게 된다." 하고 대답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평소 내면을 기르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말이 입에서 되는 대로 튀어나와 이치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니, 어찌 여기에 힘쓰지 않겠는가.】

 

 

【주자가 "책은 책으로 보고 물건은 물건으로 보아야지, 먼저 자신의 견해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는데, 독서(讀書)와 격물(格物)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일에도 이렇게 해나가야 한다.】

▶격물(格物) : 「대학」의 8조목 가운데 하나로 올바른 앎에 도달[致知]하기 위하여 사물의 이치(理致)를 연구하는 것. 무엇이 근본이고 말단[本末]인가를 헤아린다는 의미도 있다.

 

 

【평생에 하지 않는 것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예로부터 하나의 절개를 가진 사람이면 모두 그러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관직이 대관(大官)에 이르더라도 의견을 내어 곧장 행하는 사람이 없는데, 이는 아는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일 뿐이다. 옛사람이 "사대부의 가슴속에서 세 말의 먹물이 담겨 있지 않다면 어떻게 붓을 놀리겠는가."라고 하였다.】

 

 

【한가롭고 여유 있는 것은 학자(學者)의 큰 병통이지만, 이 점은 다스리는 자에게도 그러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은 용감하게 해 나가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결연히 버려야 한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인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인지를 충분히 따져보아서,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판단한 후에 행해야 한다.】

 

 

【총명은 사람마다 제각기 달라서 한 번 보면 즉시 외웠다가 곧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고 처음에는 둔한 듯하여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있는데, 끝끝내 지켜내는 사람이 위기(爲己)의 학문을 하는 것이 된다. 일시적으로 예리하고 빼어난 재능은 끝내 크게 성취하지 못하고, 단지 한순간 사람들을 놀라게 할 뿐이다.】

▶위기(爲己)의 학문 : 「논어」에 나오는 “옛날에 학문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했지만, 오늘날은 남을 위해 한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구절에서 나온 위기지학(爲己之學). 자기 자신의 본질을 밝히고 수양을 위한 학문.

 

 

【옛날의 유명한 석학들은 모두 연보(年譜)가 있고, 우리나라 문집에도 연도에 따라 엮어 기록한 조목이 있다. 이는 이력(履歷)에 대한 계보(系譜)에 불과한데도 모두가 존중하여 기록한다. 하물며 하루에 수많은 정무를 처리하는 경우이겠는가. 내가 처리하는 정령(政令)이 비록 보잘것없으나 매일 점검하는 것도 심신에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요즘 『일성록(日省錄)』을 편집하는 것이 대체로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외에도 내 나름대로 기록하여 두는 것이 있는데, 아무리 정사가 바빠도 반드시 이를 쓴 뒤에야 잠자리에 든다. 이 역시 지키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연보(年譜) : 한평생 지낸 일을 햇수와 차례에 따라 간략하게 쓴 기록

 

[장한종 <책가도병(冊架圖屛)>, 8폭병풍 지본채색 195.0 X 361.0cm, 경기도박물관, 책가도는 책을 통해 문치(文治)를 하려는 정조(正祖)의 구상에 의해 화원이 제작한 것이 시초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장한종 <책가도병(冊架圖屛)> 그림 부분. ‘쌍희(囍)’자 문양을 새긴 휘장을 걷어낸 듯이 보이도록 한 구성이 독특하다..]

 

 

【새로 뽑은 근신(近臣)들에게 "그대들은 근래에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 하였는데, 읽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하교하기를 "이는 하지 않는 것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공무를 보느라고 여가가 적기야 하겠지만, 하루 한 편의 글을 읽고자 한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과정을 세워 날마다 규칙적으로 해나간다면 일 년이면 몇 질(帙)의 경서(經書)를 읽을 수 있을 것이고, 몇 년간 쉬지 않고 꾸준히 해나간다면 칠서(七書)를 두루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따로 독서할 날짜를 구하고자 한다면 책을 읽을 수 있는 때가 없을 것이다. 선비라면서 경서를 소리 내어 읽어 익히지 못한다면 선비다운 선비가 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칠서(七書) : 사서(四書) 삼경(三經). 경우에 따라서는 「손자(孫子)」「오자(吳子)」「사마법(司馬法)」「위료자(尉繚子)」「황석공삼략(黃石公三略)」「육도(六韜)」「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의 일곱 가지 병서(兵書)를 가리키기도 함.

 

 

【나는 하루에 어떤 글을 몇 번 읽고, 어떤 글을 몇 줄 읽는다고 반드시 과정을 정해놓고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그만둔 적이 없다. 이는 문자(文字) 공부에 유익할 뿐 아니라 마음을 잡는 공부도 된다. 승지가 승정원에 있을 때라도 공무를 보는 여가에 매일 일정한 규칙과 격식을 두어 글을 보면 비록 정신을 집중하여 공부하는 것만은 못하지만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사관(史官)은 들어와 기다리는 때가 빈번하므로 여가 시간은 없겠지만, 겨울밤이 무척 기니 토론하는 자리에서 물러간 후에 부지런히 공부하려는 정성만 있다면 어찌 책을 볼 겨를이 없겠는가? 근래에 보면 젊은 사관들이 애당초 글을 읽으려는 생각을 갖지 않으니, 이렇게 하고서야 종이를 손에 든 채 섬돌 주변을 맴돈다는 탄식을 면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 김구(金絿)가 집현전(集賢殿)에 들어와 숙직을 하면서 달밤에 글을 읽었는데, 성조(聖祖)께서 이를 가상히 여겨 불러서 만나보고 술을 하사하기까지 하셨다. 이 일이 지금까지도 미담으로 전해오고 있으니, 후진(後進)들이 법 삼을 바가 아니겠는가?】

▶김구(金絿) : 조선전기 홍문관직제학, 동부승지, 좌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서예가.

▶성조(聖祖) : 중종(中宗)

 

【경서에 쓰인 성인의 말을 말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신명이 나서 어깨를 들썩이고 발을 구르게 하는 일이라, 선유(先儒)의 '추환(芻豢)'에 대한 깨우침이 절실하게 들어맞는다. 근래에는 신하 중에 배움을 좋아하는 자가 없어서 내가 토론하고자 하여도 말할 사람이 없다. 이것은 높고 멀어서 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데, 단지 번거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오래도록 버티지 못해서 그런 것일 뿐이다.】

▶추환(芻豢) : 풀을 먹는 짐승과 곡식을 먹는 짐승, 또는 그 고기. 「맹자(孟子)」에 ‘이와 기가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은, 마치 추환이 우리 입을 즐기도록 해 주는 것과 같으니라(理氣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라는 구절이 있다.

 

[이형록, <책가도>, 지본채색, 8폭 병풍, 140.2×468.0cm, 삼성미술관 리움]

 

 

 

참고 및 인용 : 정조이산어록(2008, 손인순, 고전연구회 사암),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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