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

정조 15 - 지(知)·행(行)·지(志)

從心所欲 2020. 7. 8. 10:44

 

[이응록(李膺祿, 1808 ~ ), <6폭 책거리 병풍> 1864~1871년추정작품, 종이에 채색, 각 120 x 43cm, 경산시립박물관]

 

[19세기 조선 궁중화원 이형록(李亨祿.1808~) <6폭 책거리 병풍> 지본채색 각 61 x 38cm 국립중앙박물관]

 

이형록(李亨祿)은 책가도로 유명했던 궁중화원이었다. 그의 책가도는 구도가 짜임새 있고, 색채가 중후하며, 표현이 매우 섬세한 것이 특징이라 한다. 이형록은 57세인 1864년에 이응록(李膺祿), 64세인 1871년에 이택균(李宅均)으로 두 번 개명하였다.

 

책가도(冊架圖)는 우리말로 ‘책거리(冊巨里)’라고도 한다. 책거리에는 책을 놓은 선반인 책가가 있는 그림뿐만 아니라 책가가 없이 책을 비롯한 기물들을 나열한 그림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책거리가 책가도보다는 상위 개념이다. 책거리(冊巨里)는 일거리, 이야깃거리처럼 책을 비롯한 문방사우 등 사랑방의 여러 물품을 그린 그림을 가리킨다. 책과 문방사우(文房四友) 등을 주제로 한 책거리 그림은 학문에 대한 열망에서부터 인생의 행복과 장수까지 상징하는 길상화(吉祥畵)였으므로 사대부는 물론, 조선 사람이라면 모두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림이었다.

 

【어좌 뒤의 서가를 돌아보며 입시한 대신들에게 이르기를 “경들도 보이는가” 하시었다. 대신들이 “보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찌 경들이 진짜 책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책이 아니라 그림일 뿐이다. 예전에 정자(程子)가 이르기를, 비록 책을 읽을 수 없다 하더라도 서실(書室)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 그림으로 인해서 알게 되었다. 책 끝의 표제는 모두 내가 평소 좋아하는 경사자집(經史子集)을 썼고 제자백가(諸子百家) 중에서는 오직 장자(莊子)만을 썼다.”

 

그리고는 탄식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요즈음 사람들은 글에 대한 취향이 완전히 나와 상반되니, 그들이 즐겨 보는 것은 모두 후세의 병든 글이다. 어떻게 하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이 그림을 만든 것은 대체로 그 사이에 이와 같은 뜻을 담아 두기 위한 것도 있다.” (제학 신 오재순이 1791년에 기록하다, 「일득록(日得錄)」)】

▶경사자집(經史子集) : 경부(經部), 사부(史部), 자부(子部), 집부(集部)의 준말로서, 동양의 전통적인 도서 분류법. 크게 나누어 경부에는 사서오경, 사부에는 역사책, 전기문과 관청의 각종 문서, 자부에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책, 집부에는 개인의 문집이 포함된다.

 

 

【어느 날 가마가 정원을 지나가는데 이때 정원의 꽃들이 한창 만발한 데다 새벽 비가 내린 뒤에 아침 안개가 옅게 깔려 있었다.

봄에 만물이 처음 소생할 때 지극한 이치를 볼 수가 있다. 꽃봉오리가 아직 맺히지 않았을 적에는 색상과 모양이 모두 공(空)이나 생명의 의지는 그 속에 들어 있다. 이는 바로 우리 사람의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이다.

꽃잎이 비로소 열리면 홍색, 자색이 구분되어 나무마다 각각의 꽃을 피우니 이는 바로 마음이 이미 발한 뒤에 일어나는 모양이다. 안개가 꽃을 덮고 있어 꽃이 안개 속에 있을 적에 안개 밖에서 꽃을 보면 희미하여 구분할 수가 없을 듯하지만 가까이 가서 꽃을 보면 분명히 보인다. 안개가 걷히고 꽃이 드러나면 꽃은 본래 그대로 있으니 이것이 꽃의 본래 모습이다.

 

여기에서 비록 사물에 때가 묻고 가려져도 본래의 성으로 회복될 수 있다는 이치를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멀리는 온갖 꽃들의 피고 지는 것과 가까이는 마음의 고요한 가운데 느끼는 것이, 어느 것 하나 이 이치 아님이 없으니 모두 몸소 깨달아야 한다.】

 

 

【양예손(楊豫孫)의 서당일기(西堂日記)에,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요 천지는 사람의 근본이니, 사람이 근본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하늘을 아비 삼고 땅을 어미 삼은 뜻을 알 수 있다. 하늘을 알면 문득 사람답게 되고, 어질면 효도할 수 있으니, 천지와 부모는 애당초 두 가지 근본이 없다. 그러므로 하늘 섬기기를 부모 섬기듯이 하라고 한 것이다." 하였으니, 이 말은 대단한 격언(格言)이다. 하늘을 속이고자 하더라도 마음을 속일 수 있겠는가? 마음을 속이는 자는 부모를 속이는 것이고, 부모를 속이는 자는 하늘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니 한 생각의 어긋남을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양예손(楊豫孫) : 명(明)나라 때 관리로 1500년대 인물

 

 

【'지(知)'와 '행(行)'이라는 두 글자는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도 같고 새의 양 날개와도 같아서 어느 하나만을 없애버릴 수가 없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이 이미 남김없이 설명하였다. 그런데 이른바 '진실로 안다(眞知)'는 것은 선을 행해야 하고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기를, 마치 배고플 때 밥을 먹고 목마를 때 물을 마시며 물에 뛰어들어서는 안 되고 불과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이, 분명히 아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알아야만 비로소 '진실로 아는 것'이 되어서 한 푼을 알았으면 한 푼을 행하게 되고 열 푼을 알았으면 열 푼을 행하게 되니, 만약 '지(知)'에 진실로 알지 못한 바가 있다면 '행(行)'에도 부족한 점이 있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배우는 자들은 단지 명목과 거듭되는 횟수로써 비교하고 따져서 변론을 한다.

예컨대 명덕(明德)과 성(性)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태극(太極)이 통체(統體)인지, 오행(五行)이 각각 구비되어 있는 것인지 따위를 말하는 경우라면, 한바탕 좋은 말을 잘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옛사람들의 이른바 "지와 행을 같이 진행시켜야 한다."는 말은 결코 이와 같은 것이 아니다.】

▶통체(統體) : 전체. 물건의 몸통이 하나.

 

 

【덕성을 높이는 것과 학문하는 것 가운데 어느 하나도 그만두어서는 안 되니, 조금이라도 치우치면 차질이 있게 된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으로 구분해서 말하자면, 강론하는 것은 참으로 아는 것이 아니며, 최종의 경지까지 궁리하여 이르러야 비로소 참으로 아는 것이 되니, 궁리하여 이르러 간 공부가 완전한 경지에 이르면 자연 실천해 갈 수 있다. 대체로 실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 그 근본을 따져보면 모두가 참으로 알지 못한 데서 연유한다. 사람이 불선(不善)이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오훼(烏喙)1)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듯이 한다면 불선을 행할 리가 없다. 다만 궁리하는 것만을 위주로 하는 사람은 실천을 소홀히 할 수도 있다. 주자(朱子)의 성리학에서는 조금도 치우친 것이 없었지만 주자 문하의 천박한 학자들은 이미 형식적인 학문으로 흐른 폐단이 있었는데, 상산(象山)의 학문 역시 이들이 격동시킨 것이다.】

▶상산(象山) : 남송(南宋)시대의 학자 육구연(陸九淵)의 호이다. 그는 ‘마음이 곧 이[心卽理]’라는 명제를 정립하고, 심(心)을 성(性)과 정(情), 도심(道心)과 인심(人心),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으로 구별한 주희의 학설에 반대하였다. 그의 심즉리설은 왕양명(王陽明)이 실천에 중점을 두는 심학(心學), 즉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로 계승되었다.

 

【주자가 임택지(林擇之)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 몸으로 실천을 해야 진보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들떠서 뿌리가 없는 병통을 말한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에게 병이 있을 때 증세를 모르면 치료하기가 어려운 것과 같다. 아무리 진실한 마음으로 실제의 일을 해 나가도 진실함이 부족할까 걱정인데, 흔들려 안정되지 못하여 마치 바람에 날리는 버들개지와 같아 일을 하자마자 흩어져 정착할 곳을 모르게 된다면 무슨 일을 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실제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마치 농부가 좋은 밭을 가꾸는 데 봄에 갈고 여름에는 김매는 것을 시기에 맞추어 대응하는 것과 같다.】

 

 

【『사기정의(史記正義)』는 장수절(張守節)이 편찬한 것인데 "『사기』는 52만 6,500자로 2413년의 일을 서술하였고, 『한서(漢書)』는 81만 자로 225년의 일을 기록하였으니, 이것으로 그 우열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후세에 이르러서는 『한서』에 비해 또 몇 만의 글자가 더 늘었겠는가. 사관(史官)의 재주가 세상의 수준과 마찬가지로 점점 못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증자고(曾子固) 『남제서(南齊書)』의 서문(序文)에 "양사(良史)는 그 명철함이 반드시 만사(萬事)의 이치를 두루 꿰뚫어 보고, 그 도가 반드시 천하의 쓰임에 맞고, 지혜가 반드시 알기 어려운 뜻에 통달하고, 문장이 반드시 드러내기 어려운 실정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니, 그런 뒤에라야 그 직임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너희 붓을 잡은 신하들은 이러한 뜻을 몰라서는 안 된다.】

▶『사기정의(史記正義)』: 『사기(史記)』의 대표적인 주석서 중의 하나

▶증자고(曾子固) : 북송(北宋) 시기의 관리이자 문학가, 산문가, 사학가였던 증공(曾鞏). 자고(子固)는 증공의 자.

▶양사(良史) : 훌륭한 역사가 또는 역사책(歷史冊).

 

 

【경술(經術)과 문장(文章), 그리고 조세(租稅)의 회계와 군대의 병법 따위에 대해 어찌 사람마다 다 완벽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다 완벽하기를 바란다면 장부를 처리한다든지 가축을 먹이는 재주만 가진 보통 사람도 역시 찾아내기가 어렵다.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인재를 구하기 어렵기가 지금처럼 심한 적이 없었다."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요즈음 사대부들의 풍기는 실로 한심한 점이 많으니, 경의(經義)에 대해 말하자면 구두(句讀)를 제대로 떼지 못하는가 하면 문장(文章)을 놓고 말하자면 자질구레한 소설 작품을 탐하여 읽는데다가, 행실과 말씨는 애당초 삼가고 조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처신함은 제멋대로이면서도 까마득히 고칠 줄을 모른다. 입만 벌렸다 하면 천박하고 어긋난 말을 내뱉으면서도 태연한 자세로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데, 이러한 풍조가 마침내 아무도 바로잡을 수 없는 습속을 이루고 말았다. 이는 실로 이끌어주는 사람이 그 방법을 그르쳤기 때문이니, 내가 이 점에 대해 무척 부끄럽게 생각한다. 비록 그러하기는 하지만, 어찌 끝내 바로잡을 수 없기야 하겠는가. 먼저 근신인 그대들부터 서로 노력하여 힘써 통렬히 이러한 습속을 떨쳐버린다면 멀리 있는 신하들도 보고 감화될 것이니, 그 결과 반드시 해마다 달라 보이는 효과가 있게 될 것이다.】

▶경의(經義) : 경전(經典). 경서(經書). 또는 그 뜻.

 

 

【무릇 사람이 말을 발설하고 일을 실행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살피는 데 달려 있을 뿐이요, 세상 사람들의 들뜬 여론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천하에는 일정한 이치가 있지 일정한 일은 없는 법이다. 만약 남을 의식하고 자신을 살피지 않는다면 끝내 주재(主宰)함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 터이니, 선비로서 조정(朝廷)에 서는 자는 더욱 깊이 경계하여야 마땅하다.】

▶주재(主宰) : 주장(主掌)하여 맡음

 

 

【사람이 너무 안일하면 마음에 중심이 없으며 너무 방탕하면 기운에 통제가 없으니, 사려는 조심히 해야 하고 거동은 추슬러야 한다.】

 

 

【어떤 일이 어렵다고 하는 것은 모두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재능과 분수는 본래 한계를 정해둔 양이 있으나 즐거운 마음으로 지향(指向)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고, 게으른 마음으로 지향하면 허물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 일을 기뻐하는 사람은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쉽다고 느끼지만, 일을 싫어하는 사람은 게으른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어렵다고 느낀다.】

 

[<책가도 10폭 병풍>,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역사책은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선한 일을 보면 문득 감동하는 바가 있고, 악한 일을 보면 문득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당(唐)나라는 내시 때문에 망하였으니 경계하여 멀리하고, 송(宋)나라는 소인배 때문에 망하였으니 거울 삼아 물리친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생각이 반이다. 그러나 말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실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학문이란 날마다 평소 행동하는 데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있어서는 행동하고 멈추고 말하고 침묵하는 것이고, 집안에 있어서는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고, 나라에 있어서는 적임자에게 맡기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고, 책에 있어서는 책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간단하고 가까운 것을 버려두고 다시 어디에다 힘을 쓴단 말인가.】

 

 

【인(仁)은 마음의 덕(德)이요, 성(誠)은 행동의 진실한 부분이다. 말한 관점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어질면 곧 성실하지 않음이 없고 성실하면 곧 어질지 않음이 없는 법이다.

사람이 태어남에는 이미 천지(天地)의 이치를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몸속에 쌓여 있는 것 가운데는 그 어느 것도 살리고자 하는 의욕이 아닌 것이 없으며, 살리고자 하는 의욕이 일단 발하여 나오기만 하면 곧 작게는 우물로 기어 들어가는 어린아이를 구출해주는 일부터 크게는 백성을 사랑하고 생물을 사랑하는 일과 온 세상의 모든 사물을 다 덮어주고 보호해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여기에서 확충해나가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니 애당초 여기에 어찌 한 가닥의 사의(私意)나 이욕(利欲)을 용납할 틈이 있겠는가. 사의나 이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면 한결같은 것이요, 한결같다면 곧 성(誠)이다. 따라서 인(仁)과 성(誠)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이치가 아닌 것이다..】

 

 

【전교(傳敎)를 쓰라고 명하였는데, 이때 주서(朱書) 중의 구절을 인용한 말이 있었다. 연신(筵臣)이 "이 구절은 『주서절요(朱書節要)』에 나오는 듯한데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기에 "『주서절요(朱書節要)』 제 몇 편 몇 판을 찾아오라." 하였더니, 찾아온 후에 보니 그러하였다. 학문이란 모두 일상생활 속에 있는 것이다. 이밖에 어찌 따로 학문을 추구할 곳이 있겠는가.】

▶전교(傳敎) : 임금이 내린 명령

▶연신(筵臣) : 경연(經筵)이나 서연(書筵) 등에서 경전(經典) 등을 강론(講論)하는 신하. 때로는 경연 등에 참석하는 신하를 총칭하는 의미로도 쓰임.

 

 

【선유(先儒)가 모두 뜻을 세우는 것을 최초의 공부로 삼은 것은 참으로 옳다. 사람의 행동은 기(氣)가 용(用)이 되고 뜻(志)이 장수가 되기 때문에 진실로 뜻이 완전히 확립되면 학문도 완전한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주역』에 "군자는 덕에 나아가고 학업을 닦는다." 하였으니, 나아가고 닦는 것이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최초의 공부만이 아니라 비록 성현(聖賢)의 경지에 이르는 지극한 공부라 할지라도 뜻을 세우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뜻을 세우는 것은 성실과 공경을 공부하는 것과 같아서 위 아래가 통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학문을 함에 있어서 뜻을 세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뜻이 확고부동하면 비록 동요시키고 바꾸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이다. 학문하는 자의 공부가 중단되는 것은 오로지 뜻이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는 "먼저 그 큰 근본을 세워야 한다."고 하였고, 주자는 "먼저 표준을 세워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 뜻을 결코 혼동하여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먼저 큰 근본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뜻을 세우는 것을 지적한 것이고, "먼저 표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마치 조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큰 근본은 바로 근본 바탕이고 표준은 바로 모방이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마땅히 학자로 하여금 평이하고 명백한 곳에 힘을 쓰게 해야 한다." 하였다. 이른바 평이하고 명백한 곳이란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는 등 늘 행하는 일이니, 요순(堯舜)의 도리도 이에 불과하다. 후세 사람들이 '학(學)'이라는 한 글자를 끄집어내어 특별하게 하기 어려운 일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사람과 배움이 따로 나뉘어져 두 가지 길이 되기에 이르렀으니, 이 때문에 정학(正學)이 날로 쇠미해지고 세교(世敎)가 날로 낮아지는 것이다.】

▶정학(正學) : 바른 학문이란 뜻으로, 보통 공자(孔子)의 바른 학문을 의미.

▶세교(世敎) : 세상의 가르침. 교육과 정치의 힘으로 풍습이 잘 교화된 사회의 가르침.

 

 

참고 및 인용 : 정조이산어록(2008, 손인순, 고전연구회 사암),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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