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옛날이야기 31 - 교수잡사(攪睡襍史) 1

從心所欲 2020. 8. 28. 10:22

「교수잡사(攪睡襍史)」는 19세기 말에 편찬된 것으로, 편찬자는 알 수 없다. 「교수잡사」는 전대에서부터 전해온 이야기에 일정한 변화를 주어 만든 패설집이기는 하지만, 창작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들도 몇 편이 들어있다. 이 책에는 총 87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성에 관련된 이야기는 37편이다.

「교수잡사(攪睡襍史)」는 ‘잠을 어지럽히는 여러 이야기’ 정도의 뜻이다.

 

 

☞위모미열(謂母迷劣)

 

예전에 향족(鄕族)인 어리석은 선비가 있었다. 사람됨이 어리석었지만, 그의 집은 다소 부유하였다.

▶향족(鄕族) : 조선시대 지방의 자치 기구인 향청(鄕廳)의 가장 높은 직임(職任)인 좌수(座首)나 그 아래 별감(別監) 등의 향원(鄕員)이 될 자격이 있는 집안

 

선비의 아버지인 생원은 자못 여색을 좋아하였다. 생원의 집에는 열일곱 살 된 계집종이 있었다. 계집종은 어려서부터 안방에서만 자라 일찍이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규방 처녀와 다름이 없었고, 얼굴도 아주 예뻤다. 생원은 그녀를 늘 가까이하려 했지만, 안방에서 시중을 들며 아예 밖으로 나오지 않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생원은 꾀 하나를 생각해내고 이웃 마을에 사는 박의원을 찾아갔다. 생원은 평소 친하게 지내는 박의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 꾀를 말했다.

“내가 꾀병을 부리면, 자네는 반드시 이러저러한 말을 하게. 그러면 좋은 방법이 있을 걸세.”

의원은 허락하였다.

며칠 후 밤이 되자, 생원은 갑작스레 몹시 아픈 척을 했다. 고통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러자 곁에서 일하던 집안사람이 선비에게 급히 이 사연을 알렸다.

“어르신의 병환이 갑자기 위중해졌습니다.”

선비는 놀랍고도 걱정스러워 즉시 아버지께 나아가 문후(問候)를 여쭈었다. 그러자 생원이 말했다.

“온 몸이 아프지만, 한기(寒氣)가 더욱 고통스럽구나.”

생원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더니, 급기야 혼미하여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다. 마치 목숨이 끊어지는 지경에까지 이른 듯했다. 선비는 몹시 걱정스러워 즉시 박의원을 불러 진맥토록 했다. 박의원은 진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선비가 따라 나와 병세를 묻자, 의원이 대답하였다.

“며칠 전에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렸을 때는 불편한 기색이 없었는데.........언제 환후가 이처럼 위중해지셨지? 노인의 맥도(脈度)가 저러하니, 내 어리석은 생각에는 쓸 수 있는 약이 전혀 없소. 그러니 이름난 의원을 찾아가 노인에게 마땅한 약재를 구할 수 있는지를 의논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문후(問候) : 웃어른에게 안부(安否)를 여쭘
▶맥도(脈度) : 맥박(脈搏)이 뛰는 정도(程度)

 

선비는 십분 놀랍고도 당혹스러워 의원의 손을 잡고 간청하였다.

“당신보다 나은 다른 의원은 없지 않소. 또한 당신은 부친의 기질과 맥도도 잘 알지 않소. 그런데 어찌하여 좋은 처방은 생각지 않고 급히 나가려고만 하시오?”

박의원은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말했다.

“모든 약이 합당하지만, 딱 한 가지 처방이 있긴 하오. 그렇지만 이는 얻기가 매우 어렵소. 만약 잘못 쓰면 해가 되기 때문이오. 그러니 고민이 되는구려.”

“비록 구하기가 어렵다 해도 내 마땅히 힘을 다해 구할 것이오. 그러니 그저 말씀이나 해주시오.”

“병환은 오로지 가슴과 배에 한기가 맺힌 데서 비롯된 것이라오. 만약 십육칠년 동안 다른 사람을 겪어보지 않은 숫처녀를 구해, 따뜻한 방에 두고, 병풍으로 바람을 막고, 가슴을 마주 대고 끌어안고 누워 땀을 빼면 쾌차하실 것이오. 그 외의 다른 약은 소용이 없소. 생각건대 열여섯, 열일곱 된 여자 중에 상민이나 천민이라면 다른 사람을 경험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자세히 알 수 없고, 규중 여자라면 비록 환자를 위해 한때의 약으로 쓴다 하더라도 누가 즐겨 그것을 허락하겠소? 이는 이른바 매우 어려운 일이외다.”

이때 선비의 어미가 마침 창밖에서 의원의 말을 듣고 잇다가 급히 선비를 불렀다.

“내가 의원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 약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을 듯하구나.”

“어디서 얻을 수 있는데요?”

“아무개 계집종은 어렸을 때부터 내 이불 속에서 자라나서 지금까지 문밖에 나가본 적이 없거든. 양반집 처녀와 다름없지. 나이도 지금 열일곱이고. 만약 약으로 쓰기 위해 숫처녀가 필요하다면 이 아이를 쓰면 크게 걱정할 것이 없으리니, 어찌 좋지 않겠느냐?”

선비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가르침대로 하겠습니다.”

선비는 박의원이 한 말과 어머니의 뜻을 아버지께 아뢰었다. 그러자 생원이 말했다.

“세상에 어찌 그런 약물이 있겠느냐? 하지만 박의원의 말이 그렇다고 하니, 그저 한번 시험한다고 해서 해로울 것이 뭐 있겠느냐?”

그날 밤, 선비는 병풍으로 온돌방의 사방을 막고, 계집종에게 옷을 벗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있도록 했다. 선비는 문밖에 있고, 선비의 어머니는 창밖에 서서 생원과 계집종이 땀을 흘리는 모습을 살폈다. 이윽고 생원은 계집종과 함께 운우의 정을 나누는데, 그 모습이 몹시 음탕하였다. 선비의 어머니는 ‘쯧쯧’ 혀를 차고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이것이 가슴을 맞대고 땀을 빼는 약이라더냐? 이렇게 땀을 뺄 양이면 어찌하여 나와 함께 땀을 빼지 않는고?”

선비가 뒤를 따라오다가 이 말을 듣고 흘겨보며 만류하였다.

“어머님은 어찌하여 그처럼 어리석은 말씀을 하십니까? 어머님이 숫처녀입니까?”

이 말을 들은 사람들 모두 포복절도하더라.

 

 

☞구역야질(狗亦冶質)

 

어떤 사람이 대낮에 아내와 음탕한 일을 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운우의 정이 무르익을 때였다. 대여섯 살 된 아들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자 아버지가 급히 말했다.

“어서 밖에 나가 놀아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 무슨 일을 하시는 거죠? 자세히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나가지 않겠어요.”

아버지는 괴로워하며 말했다.

“이것은 풀무질이란다.”

이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밖에 나가 놀았다. 그때, 손님이 오더니 아이에게 물었다.

“네 부친은 댁에 계시냐?”

“안방에 계시는데요.”

“안방에서 뭘 하는데?”

“풀무질하시는데요.”

손님은 알 수가 없어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풀무질이라니? 그것이 무슨 일인데?”

이때, 마침 마당에서 수캐가 암캐의 등 위에 올라타 교미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급히 손님을 불러 말했다.

“손님! 손님! 저 개도 풀무질을 해요!”

손님은 크게 웃었다. 아이의 부모도 듣고 크게 웃었다.

 

[최재순 <겨울이야기>, 60 x 90cm]

 

☞병비대지(兵裨代之)

 

영남 수령 아무개가 순행하는 길에 산골 마을을 지날 때였다. 행차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장을 친 듯이 죽 늘어섰는데, 행차가 위엄 있고 엄숙하며 성대하기까지 하여 모두 칭찬하며 말했다.

“사또의 행차가 신선과 같네.”

그 가운데 있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저 사또와 같은 분도 부부간에 관계를 할까?”

그러자 그 사람은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며 대답했다.

“사또는 만금(萬金)과 같이 귀중하신 몸이신데, 어찌 스스로를 수고롭게 하여 그 일을 하겠나? 반드시 병방(兵房)이나 비장(裨將)에게 그 짓을 대신하도록 하겠지.”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잇몸을 드러내고 웃더라.

 

 

☞읍쉬선망(邑倅善忘)

 

한 고을 원의 건망증은 비할 데가 없었다. 좌수(座首)의 성(姓)을 물으면 다음 날에는 또 그 성을 잊어버렸다. 이렇게 며칠 동안 묻고 잊기를 반복했지만, 늘 잊고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을 원이 다시 좌수에게 성을 물었다.

“홍(洪)가입니다.”

고을 원은 매번 좌수의 성을 잊어버리는 것이 민망하여 홍합 하나를 그려 벽에 붙여두었다.

다음 날, 좌수가 들어왔는데, 고을 원은 또 그 성을 잊어버렸다. 벽에 붙어 있는 홍합 그림을 보았지만, 그것이 홍합인지 아닌지조차 잊고 말았다. 다시 홍합 그림을 유심히 보니, 그 모양이 꼭 여자의 음문과 비슷했다. 그래서 좌수에게 물었다.

“당신의 성이 보(寶)가지?”

(세속에서 여자의 음문을 보지(寶池)라고 하는 까닭이었다.)

“보가가 아니고, 홍가입니다.”

이에 고을 원은 웃으며 말했다.

“맞아, 맞아! 내가 홍합을 그려놓고도 또 그것을 잊고 말았네 그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포복절도하더라.

 

 

☞우서오답(愚婿誤答)

 

예전에 한 사람이 경상도에서 아내를 맞이하였다.

혼례를 마친 뒷날, 장모는 사위를 불러 아침 인사를 나눈 다음 말을 꺼냈다.

“어젯밤에 대단치 않은 물건을 보냈는데 얼마나 했는가?”

대단치 않은 물건은 곧 밤참을 말하는 것이고, 얼마나 했는가는 얼마나 먹었는가를 묻는 말이었다. 그런데 사위는 대단치 않은 물건을 그의 딸에 대한 겸양의 말로 받아들이고, 얼마나 했는가는 몇 차례 그 짓을 했는가로 잘못 받아들였다. 이에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세 판이요.....”

장모는 사위의 어리석음에 마음이 어수선하였다. 이에 머리를 돌리며 혼잣말을 했다.

“인사가 도리어 돌쇠 아범만도 못한가보다.”

돌쇠 아범이란 그 집의 종놈으로, 사위의 어리석음이 종놈보다 심함을 자탄한 것이다.

그런데 사위는 또 자신의 근력이 돌쇠 아범만 못하다는 것으로 오해하였다. 그래서 격분하여 덥석 무릎을 꿇고 말했다.

“돌쇠 아범이 어떤 흉악한 놈팡이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사위는 열흘 동안 수백 리를 괴로이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짧은 밤 동안 세 판이나 했습니다. 그런데도 부족하시다고요?”

장모는 몹시 해괴망측해하며, 다시 말을 하지 않았다.

 

 

 

☞이비대양(以鼻代陽)

 

예전에 촌아낙이 있었는데, 성품이 몹시 음탕하고, 음문 또한 몹시 넓었다. 그녀는 항상 견줄 데 없는 큰 양물을 얻어 음욕을 충족시키고자 하여 백여 명이 넘는 사내를 상대해보았지만, 웬만큼 양물이 크다는 사람들조차도 그녀에게는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톨의 좁쌀에 불과했다. 그래서 촌아낙은 자신에게 합당한 사람을 구하려고 사람이 많이 모인 시장을 몰래 살피며 나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촌아낙은 한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은 대나무로 만든 삿갓을 쓰고 있었는데, 코가 아주 커서 삿갓 바깥으로까지 나와 있었다. 촌아낙은 그것을 보고 몹시 기뻐했다.

“일찍이 코가 큰 사람은 양물도 크다는 말을 들었는데, 저 사람은 코가 대삿갓 밖에까지 나와 있지 않은가! 이로 미루어본다면, 그의 양물이 심히 장대할지라. 내 욕망을 어찌 충족시켜주지 않겠는가?”

그러고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이끌고 왔다. 술과 고기를 성대히 갖춰 대접한 후, 촌아낙은 그에게 하룻밤 자고 가라고 요청했다.

이윽고 일을 벌일 때였다. 사내의 양물은 자그마해서 마치 새끼손라가락만했다. 흥이 무르익을 즈음이 되자, 촌아낙은 자신도 모르게 몹시 실망하여 두 발로 그를 차버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정까지 해가며 겨우겨우 그를 데려왔고, 또 후히 대접하느라 모아둔 돈까지 쓰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한 것이 너무 분하고 애석했다. 이에 촌아낙은 두 손으로 사내의 두 귀를 잡고 맹렬하게 그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의 큰 코로 자신의 음호에 나아갔다 물러나기를 무수히 반복하게 했다.“들인 공이 애석하니, 그 큰 코로라도 작은 양물을 대신해주오. 그렇게 해서라도 나의 욕정을 조금이라도 달래주오.”

큰 코를 가진 사람은 한없는 곤욕을 당하고 문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계곡에 나아가 코를 씻고 떠났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 모두 껄껄대며 웃었다.

 

{최재순 화백 작품]

 

☞욕매삼대(辱罵三代)

 

예전에 촌사람이 혼례를 치를 때였다. 혼인을 주관하는 할아버지는 손자를 보내 건넛마을 안사돈에게 잔치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손자는 스무 살의 총각이었다.

손자는 곧바로 사돈집에 가서 할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잔치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안사돈은 총각인 손자와 동행하였다. 두 사람이 냇가에 이르렀다. 안사돈은 물을 건너기가 어려웠다. 그러자 손자가 자신이 등에 업어 냇가를 건네주겠다고 했다. 안사돈은 그 말을 따라 손자의 등에 업혀 시내를 건넜다.

시내 중간에 이르렀을 때, 손자는 업고 있는 안사돈의 음호에 가운뎃손가락을 집어넣고 흔들어댔다. 안사돈은 몹시 화가 났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마침내 사돈집에 이르자, 안사돈은 총각의 아버지를 보고 몹시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 아들이 나와 함께 이곳에 올 때 냇가에 이르자, 나를 업고 물을 건네주었지요. 그때 이러저러한 일을 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개자식이 어디에 있답니까?”

총각의 아버지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안사돈은 말씀을 멈추어주십시오. 다시 말씀하지도 마시고요.”

“사돈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양물이 움직이는데, 멈출 수가 없어서요.”

“당신과도 족히 말할 수가 없네요.”

안사돈은 혼인을 주관하는 할아버지를 찾아가, 화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어르신의 요청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그런데 시내를 건널 때 댁의 손자가 이러저러한 짓을 하더군요. 그래서 아까 젊은 사돈인 댁의 아드님께 말씀드려 손자의 죄를 다스리게 하려 했지요. 그런데 젊은 사돈은 여차여차 대답하더군요. 어찌 놀랍고 사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르신께서는 반드시 댁의 아드님과 손자를 책망하여 이후로는 행실을 바르게 하도록 가르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말을 듣자, 할아버지는 눈물을 머금고 길게 탄식하였다. 그러더니 고개를 떨어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사돈은 ‘사돈께서 놀랍고 부끄러워 저러시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고는 말했다.

“어르신께서 이렇게까지 불안해하실 것은 없습니다. 그저 젊은 사람들을 경계하고 타이르시면 그것으로 좋겠지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닙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양물이 곧바로 반응하여 욕망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늙고 기력도 없어 이렇게 좋은 말을 듣고도 양물이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마음도 무덤덤하네요. 어찌하여 죽지도 않는지.......이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안사돈은 이에 더욱 화가 나서 욕을 해댔다.

“네 집의 할아비와 자식, 손자는 삼대 모두 후레자식이로구나!”

지금도 쓰는 ‘후레자식 삼대’란 욕은 여기서 처음 나온 것이라 한다.

▶후레자식 : 원문은 ‘독아자(獨兒子)’ 이다. 「교수잡사(攪睡襍史)」이본에는 ‘환자(鰥子)’로 쓰인 것도 있다. 둘 다 ‘홀아비자식’이라는 뜻이다. ‘후레자식’ 또는 ‘호로자식’이라고 하면 ‘배운 것 없이 막되게 자라 버릇이 없는 사람’이라는 경멸적 의미를 갖는데, 이 ‘후레자식’의 어원에 대해서는 세 가지 어원설이 있다.
첫째는, ‘홀에’나 ‘홀의’를 오랑캐를 뜻하는 ‘호노(胡奴)’ 또는 ‘호로(胡虜)’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음(音)이 비슷한 ‘호노(胡奴)’ 또는 ‘호로(胡虜)’와 연계하여 갖다 붙인 해석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둘째는, ‘홀에’나 ‘홀의’를 ‘조롱박’을 뜻하는 ‘호로(葫蘆)’로 보는 것이다. 이 설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기초한다.
중국 한나라 때 ‘호광(胡廣)’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본성이 ‘황(黃)’이다. 이 사람은 5월 5일에 태어남으로써 부모가 이롭지 않다고 생각하여 ‘호로(조롱박)’에 넣어 냇가에 버렸다. 그 아이를 어떤 사람이 거두어 길렀는데 ‘조롱박’에 들어 있었다고 하여 ‘호로’라는 성을 붙였다. 부모가 없고 본성을 바꾸는 것이 아주 큰 욕이므로 ‘호로’라는 말이 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짝이 없이 혼자뿐인’이라는 뜻의 접두사 ‘홀’과의 연관성이다. ‘홀의 자식’이 점차 변하여 ‘후레자식’이나 ‘호로자식’으로 변했을 가능성이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애비(에미)없는 후레자식’이라는 욕이 흔히 쓰였었다. ‘독아자(獨兒子)’나 홀아비 환(鰥) 자를 쓴 ‘환자(鰥子)’나 모두 그 뜻으로 보면 이에 가깝다.

 

 

번역본 출처 : 조선후기 성소화선집(김준형 옮김, 2010,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