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의 금강산 장안사(長安寺) 그림이 많고 유명하지만 진재 김윤겸도 장안사를 그렸다.
서기 500년대 중반 즈음에 창건된 장안사는 이후 비에 무너지고, 불에 타기도 하여 여러 차례 중건이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건물을 중수한 것은 1863년이었다. 그러나 그 규모는 원래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림으로는 많이 본 장안사이지만, 지금 실물로 장안사를 본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1년 6.25 전쟁 당시 폭격을 받아 모조리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흑백사진 유리 건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있어 그 면모를 대강 짐작해볼 수는 있다.
장안사는 대웅보전과 사성지전을 각각의 중심축으로 하는 두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성지전은 대웅보전의 동쪽에 위치한다. 이 사진의 오른쪽 구역에 있을 사성지전은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다. 사진은 장안사 전경이라기보다는 ‘장안사 대웅보전 일대’가 더 맞을 듯하다.
장안사의 중심건물인 대웅보전은 화강석 월대 위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1층과, 정면 3칸과 측면 2칸의 2층으로 지은 다포식 건물이다. 건물의 정면은 가운데 정칸을 가장 넓게 하고 좌우로 가면서 점차 넓이를 좁혔다. 정칸은 4개의 문짝이 들어가는 넓이이고, 정칸 좌우의 제1협칸은 3짝, 좌우 양쪽의 끝 칸인 퇴칸에는 1짝의 꽃살문을 달았다. 이는 건물의 중심을 강조하는 한편, 지붕의 무게가 건물의 양옆으로 쏠리게 된다는 건축 원리를 적용한 결과물이라 한다.
가운데 닫집에는 적멸궁(寂滅宮), 왼쪽 닫집에는 극락궁(極樂宮) 이라는 편액이 보인다. 적멸궁(寂滅宮)은 불상을 모시지 않고 법당만 있는 불전(佛殿)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석가세존이 깨달음을 얻고 법을 설하신 보제도량(菩提道場)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로 미루어 가운데 모신 불상은 석가모니불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극락전(極樂殿)은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사찰 당우(堂宇)를 가리키므로 극락궁(極樂宮)이란 편액이 붙은 닫집 아래의 불상은 아미타불로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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