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전(傳) 김홍도 사인풍속도권

從心所欲 2020. 10. 26. 22:50

1745년생인 김홍도는 1738년생인 담졸(澹拙) 강희언(姜熙彦)과 7살 차이다. 그럼에도 김홍도의 <단원도(檀園圖)> 제발(題跋)을 보면 두 사람은 친구처럼 지냈던 듯하다.

기술직 중인출신의 여항문인화가였던 강희언은 인물의 묘사 양태와 수지법 등에서 음영법과 근대원소(近大遠小)의 단축원근법 등을 활용하여 이전의 풍속화에 비하여 좀 더 현장감까지 살려낸 풍속화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그의 대표적 풍속화가 《사인삼경첩(士人三景帖)》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여항문인을 비롯하여 부유한 비양반층까지 서화 애호풍조가 변화되고 확산됨에 따라 풍속화는 새로운 시대적 세태와 인정물태(人情物態)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으로 변화되고 발전하였다. 이전에는 고아하고 아취 있는 세계를 숭상하고 통속 세계를 푸대접하던 가치관이 신분세계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통속 세계까지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결과였다. 광통교(廣通橋)다리 기둥에 도화서 고수(高手) 화원들이 그린 풍속화(俗畵)를 걸어놓고 파는 풍경까지 생길 정도로 정조년간에는 풍속화에 대한 수요와 제작이 늘어났다.

 

이 시기에는 풍속화를 속화(俗畫)라고 불렀는데, 속화는 원래 문인화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저속한 그림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속화는 풍속화 또는 민화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풍속화에 대한 수요는 민간에서 뿐만 아니라 궁중에서도 있었다. 임금으로 하여금 백성들의 생활상을 늘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백성의 생업인 농업과 누에치고 비단 짜는 일을 그린 풍속화인 경직도(耕織圖)가 그것이다. 또한 태평성대를 과시하기 위한 성시전도(城市全圖) 같은 그림들도 제작되었다. 그리하여 정조 7년에 이르면 규장각 차비대령(差備待令) 화원을 선발하는 시제(試題)로 풍속화가 채택되기 시작했으며, 정조와 순조 연간에 규장각 차비대령(差備待令) 화원을 선발하는 화제로 속화가 가장 많이 출제되었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궁중에서도 속화의 수요가 많았음을 의미한다.

▶차비대령(差備待令) 화원 : 조선후기 왕실과 관련된 서사 및 도화 활동을 담당하기 위하여 임시로 차출되는 화원

 

정조 원년인 1777년 무렵부터 김홍도, 김응환, 신한평, 이인문과 같은 도화서(圖畵署)의 일급화원들이 강희언의 집에 수시로 모여 주문받은 그림들을 그렸다고 한다. 김홍도의 1778년 작품인 <행려풍속도(行旅風俗圖)>병풍이 강희언의 집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풍속도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에서 보는 서민풍속화를 연상하고 실제로도 대부분의 풍속화를 차지하지만, 사대부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도 있고 그것을 사인풍속도(士人風俗圖)라고 한다. 주된 주제는 수렵도, 계회도, 시회도, 평생도 등이다.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려진 《사인풍속도권(士人風俗圖卷)》이 일본과 한국에 전한다. 하지만 그림 내용은 강희언의 작품과는 다르다. 강희언의 그림이 인물에 중점을 둔 반면 김홍도의 그림은 산수를 위주로 하는 계회도(契會圖)의 모습에 더 가깝다.

 

[전(傳) 김홍도 《사인풍속도권》中 <북일영(北一營)>, 지본수묵담채, 34.5 x 45cm, 일본 유현재(幽玄齋)]

 

북일영(北一營)은 조선시대 훈련도감 소속 궁궐의 호위부대로 경희궁 북문인 무덕문(武德門) 밖 지금의 종로구 사직동에 있었다. 청사건물은 모두 16칸이었으며, 이곳에는 훈련도감의 초관(哨官) 1인이 마군(馬軍) 55인, 말 18필을 거느리고 근무하였다. 그러나 경희궁 경호의 주력부대는 인근에 있는 어영청 소속의 북이영(北二營)이었다고 한다.

그림은 그 북일영 옆 활터에서 도포 차림의 선비들이 활을 쏘는 장면을 그렸다.

 

[전(傳) 김홍도 《사인풍속도권》中 <남소영(南小營)>, 지본수묵담채, 34.5 x 45cm, 일본 유현재]

 

남소영은 어영청(御營廳)의 분영(分營)으로 현재의 중구 장충동에 해당하는 한양 남부 명철방(明哲坊)의 남소문(南小門) 옆에 있었다. 청사는 모두 194칸이었고, 초관(哨官) 1인과 지방군 12인이 입직하였다고 한다.

그림만으로는 무슨 모임인지 알기 어렵다. 건물 옆과 뒤편에서 음식 준비를 하고 있는 규모로 보아 당시 유행하던 간단한 술을 겸한 문인들의 시회 모임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傳) 김홍도 《사인풍속도권》中 <세검정( 洗劍亭)>, 지본수묵담채, 34.5 x 45cm, 일본 유현재]

 

검을 씻는다는 세검(洗劍) 은 인조반정 때 반정 인사들이 광해군 폐위를 논의하며 칼을 씻었다는 설이 가장 널리 퍼진 이야기지만, 그 외에도 영조 때 총융청(摠戎廳)을 이곳으로 옮겨 도성 방위와 북한산성의 수비를 담당케 하면서 군사들의 휴식처로 세웠다는 설과 연산군 때 유흥을 위해서 정자를 지었다는 설도 있다. 세검정은 역대 왕들의 실록이 완성된 뒤에는 반드시 세검정에서 세초(洗草)하였다는 말과, 장마가 지면 도성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물구경을 하였다는 내력도 전한다. 정자 앞에 너른 바위가 있어 여염집 아이들이 여기에 붓글씨를 연습하여 돌 위에 항상 먹물이 묻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선비나 문인들의 모임 장소로도 유명했던 곳이다.

▶세초(洗草) : 실록 편찬이 완료된 뒤 사용되었던 사초(史草)나 초고들을 파기하던 제도로 소각하거나 파기하기도 하였지만 보통은 물에 씻어 글씨를 지우고 종이는 재생하여 활용하는 방법을 썼다.

 

이 그림에도 꽤 많은 선비들이 정자 안에 모여 앉아있고 또 정자 뒤뜰에서는 여인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도 보인다. 앞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시회 모임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솜씨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그림이 과연 김홍도의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와 같은 류의 그림으로 김홍도가 60세 때에 그린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契圖)>와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화풍이 변한다고는 하지만 산수를 그리는 방법이나 인물 묘사에 차이가 있어 보인다. 특히 김홍도는 작은 인물 묘사도 섬세하고 인물들을 비교적 통통하게 그리는데 비해 《사인풍속도권》의 인물들은 풍채가 갸날퍼 보인다.

 

[<기로세련계도> 부분, 산과 나무]

 

[<기로세련계도> 부분, 인물 묘사]

 

[<기로세련계도> 부분, 인물 묘사]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유현재에서 소장한 《사인풍속도권》의 그림과 매우 유사한 그림이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 박물관에서는 이 그림을 조정규(趙廷奎)의 전칭작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傳) 조정규, <세검정도> 지본수묵담채, 32.9 x 44.1cm 도쿄국립박물관 오구라컬렉션]

 

조정규(趙廷奎)는 생몰년이 알려지지 않은 조선 후기의 화가다. 산수, 인물과 더불어 어해(魚蟹)를 특히 잘 그렸다고 하며, 어해도는 장한종(張漢宗)의 원체화적(院體畵的)인 기법을 토대로 했고, 산수화는 김홍도(金弘道)의 필치를 따르면서도 더 근대적인 방식을 취했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임전 조정규 필 산수도(琳田趙廷奎筆山水圖)>에서 보이는 산뜻한 담채(淡彩)와 건필(乾筆), 대담한 윤묵(潤墨)의 구사가 그의 화풍의 특색이라고 한다. 임전(琳田)은 조정규의 호이다. 그림에는 화제인지 관지인지 알 수 없는 ‘林田’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어, 이로 미루어 이 작품을 조정규의 것으로 보고 있다. 조정규의 호인 임전(琳田)과는 한자가 다른데, 그것은 별 문제가 안 되는 모양이다.

 

[<임전 조정규 필 산수도(琳田趙廷奎筆山水圖)>, 지본담채 27 x 33.6cm, 국립중앙박물관]

 

유현재 소장 사인풍속도권의 <북일영>과 <남소영>과 틀린 부분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매우 흡사한 그림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고려대 박물관은 이를 김홍도 작품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까 김홍도의 전칭작 《사인풍속도권》은 유현재 소장본 한 세트와 도쿄국립박물관과 고려대가 합쳐 따로 한 세트를 갖추어 두 세트가 있는 셈이다.

김홍도의 전칭작을 주장하는 이유가 설마 소장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은 아니라 믿고 싶다. 

 

 

 

참고 및 인용 : 한국미술정보개발원, 우리역사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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