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궁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진상되고 열람된 화목(畵目) 중에 감계화(鑑戒畵)가 있다. 위정자(爲政者)인 왕과 왕세자가 올바른 윤리와 통치관을 확립하도록 돕고, 왕실과 종친, 신하와 백성의 교화를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던 그림이다.
궁중의 대표적인 감계화로는 백성들의 생업인 농업이나 잠업(蠶業)과 관련한 풍속을 월령 형식으로 읊은 『시경(詩經)』「빈풍편(豳風篇)」칠월(七月)조를 그린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와 역시 『시경』 「무일편(無逸篇)」의 ‘남의 위에 서는 사람은 일신의 즐거움이나 자기 몸의 편안함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그린 ‘무일도(無逸圖)’가 있었다. 이런 그림들은 왕의 등극이나 세자의 탄신, 지방 행차 등의 기념 선물로 빈번하게 진상되었다.
빈풍(豳風)은 『시경』국풍(國風)에 있는 편명(篇名)으로, 주(周)나라 주공(周公)이 섭정을 그만두고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성왕(成王)을 등극시킨 뒤에 백성들의 농사짓는 어려움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지은 시이다. 빈(豳)은 지금의 중국 섬서성에 있던 나라 이름으로, 빈풍은 빈나라의 노래라는 뜻이라 한다.
「빈풍편(豳風篇)」칠월(七月)조의 앞부분은 이렇다.
【칠월에 대화심성이 기울어 흐르면 구월에는 옷을 지어준다
동짓달에 찬바람 불고 섣달에는 매섭게 추워지니
옷이 없고 털옷이 없으면 어찌 한해를 넘길까
정월에는 농기구를 수선하고 이월에는 발꿈치를 들어 쟁기질 한다
우리 아녀자들이 저 남쪽 밭으로 밥 가져오면 권농관이 기뻐한다
칠월에 대화심성이 기울어 흐르면 구월에는 옷을 지어준다
봄날되어 햇살 따뜻해지면 꾀꼬리가 울어대고
아가씨들 대광주리 가지고 오솔길 따라 연한 뽕잎 따러간다.
봄날이 길기도 길어 다북쑥 수북이 캐노라면
여인들 마음 울적하고 서글퍼 공자에게 돌아가고 싶어라.
칠월에 대화심성이 기울어 흐르면 팔월에는 갈대를 벤다.
누에치는 달에는 뽕나무 가지를 치니
저 도끼를 가지고 멀리 뻗은 가지 치고 여린 가지는 놓아둔다
칠월엔 왜가리 울면 팔월에는 길쌈을 하노라
검정색 노랑색 물들여 내 붉은색 가장 곱거든 공자의 옷을 만든다.
(중략)
유월엔 아가위와 머루를 먹고 칠월엔 아욱과 콩잎을 삶는다
팔월에는 대추 따고, 시월에는 벼를 베어
이것으로 봄 술 빚어 노인의 장수를 빈다.
칠월에는 오이 따고, 팔월에는 박을 타며
구월에는 깨를 털고 씀바귀 캐고 가죽나무 베어 우리 농부들 먹인다.
(후략)】
이 시를 주제로 한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는 정조 이후에도 규장각 차비대령화원을 녹취하는 화제(畵題)로 자주 출제될 만큼 궁중의 주요 화목이었다. 그런 빈풍칠월도가 후세로 가면서 백성들의 밭 갈고 길쌈하는 일상생활을 그리는 경직도(耕織圖)로 변모하였다. 경직도는 생업에 종사하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정치에 힘쓰라는 의미에서 왕의 침전에 설치하여 왕이 드나들면서 늘 보도록 하였다는 그림이다.
청록산수화풍으로 그려진 이 그림의 유물명은 경직도이지만 빈풍칠월도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림에는 뽕잎 따는 여인, 술 마시는 사람들, 나무열매 따는 사람들, 지붕 위의 박을 따는 장면 등이 다양하게 들어있다. 1600년대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록산수화풍을 띠는 장식화 계열의 이 화려한 경직도는 여덟 폭으로 구성된 병풍이다. 각 장면마다 벼를 심어 수확하는 일, 초가지붕을 개량하는 일, 사냥하는 일 등이 사계절에 맞게 묘사되어 있다. 가까운 풍경에서부터 먼 풍경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고 세련된 필치를 보이면서 원근법과 음영법 같은 서양화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후대의 것으로 보인다. 그림 속 인물과 의복 표현도 이전의 중국풍에서 많이 벗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궁중회화였던 경직도는 궁중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유행하게 된다. 담채로 그려진 아래의 <필자미상 경직도>는 사용한 재료로 미루어 궁중이 아닌 사가(私家)에서 제작하여 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속예술사전(국립민속박물관), 한국고전종합DB(한국고전번역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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