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안 짓고 시골살기

시골인심?

從心所欲 2021. 1. 22. 07:45

 

길을 막았느니 물을 못 쓰게 했느니 하여 귀농인과 현지인의 갈등을 보도하는 뉴스들을 접하면 도시인들은 무의식중에 “시골 인심이 옛날과 다르게 변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누군가 땅을 사서 시골에 내려왔다고 치자.

그런데 자신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이 남의 땅을 거치게 되어 있었다. 소위 말해서 맹지(盲地)다. 그러니까 당연히 땅값도 쌌을 것이다. 땅을 파는 사람과 부동산에 물어봤더니 그 길은 수십 년 동안 사용해온 길이라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땅을 샀다.

 

실제로 내려와 살면서 그 길을 이용해 드나드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포장이 안 된 길이 불편하여 길을 포장하고 싶었다. 그래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 먼저 길이 속해있는 땅주인을 찾아가 최대한 예의를 갖춰 물었다. 그랬더니 땅주인은 예상보다도 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귀농인은 승낙을 못 받은 것보다 거절하는 땅주인의 태도에 마음이 상하여 땅주인에 대하여 안 좋은 마음을 갖고 돌아온다.

 

도시에서 내려온 사람은 이것이 그래도 건네 볼만한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땅주인 입장에서 그 말은 그냥 내 땅 거저 달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애초에 자신의 땅을 길로 쓰게 해준 것은 먼저 살던 사람과의 관계 때문이다. 새로 이사 온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그래도 쓰던 길 못 쓰게 할 수 없어 그냥 내버려둔 것만 해도 시골의 큰 인심이다. 도시에서 누가 내 땅을 남이 길로 사용하도록 내주는가? 비포장으로 사용하는 것은 묵인이지만 포장까지 허락하면 그 길을 집으로 들어가는 길로 공인해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물어볼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골 사람들을 무지렁이로 보고 무시하는 행위다.

 

요즈음은 웬만한 진입로는 자기 돈 들이지 않아도 지자체에서 다 포장해준다. 먼저 살던 사람이 비포장의 불편함에도 그냥 살았을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땅을 산 자신의 실수는 제쳐두고 시골인심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경우가 없는 짓이다.

 

남의 신경 전혀 안 쓰고도 살 수 있는 도시와는 달리 시골에서는 자잘한 것까지 남과 얽히게 되는 일들이 많다. 먼저 살던 사람이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로 누리던 권한을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자신이 그 권한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런 착각이 결국 문제를 일으켜 시골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시골인심 변했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