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44 - 일의 대체(大體)를 지키는 것도 하나의 방도다.

從心所欲 2021. 5. 27. 19:13

[전 김홍도(傳 金弘道) <누숙경직도(樓璹耕織圖)> 中 삼운(三耘 : 세벌매기), 33.6 x 25.7cm, 국립중앙박물관 ㅣ 〈누숙경직도(樓璹耕織圖)>는 송나라의 누숙(樓璹)이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를 참고하여 농업과 잠업의 일을 순서에 따라 묘사하여 황제에게 바친 것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에는 연산군 4년인 1498년에 조선에 처음으로 전래되었다 하며, 청나라 때의 〈패문재경직도(佩文齊耕織圖)〉와 함께 왕에게 올리는 감계화(鑑戒畵)로 제작되었다.]

 

 

● 율기(律己) 제1조 칙궁(飭躬) 13

전례(前例)에 따라 일을 줄이고 대체(大體)를 힘써 지키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기는 하지만, 시대의 풍속이 맑고 순후하며 지위도 높고 명망도 두터운 사람이라야 그렇게 할 수 있다.

(循例省事 務持大體 亦或一道 唯時淸俗淳 位高名重者 乃可爲也)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신(修身)ㆍ제가(齊家)ㆍ치국(治國)ㆍ평천하(平天下)가 일체 자기의 행동을 바르게 하는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는 만큼, 수령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칙궁(飭躬) :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

 

육가(陸賈)는 말하였다.

“군자가 다스리는 것은 혼연히 일이 없고 적연히 소리가 없다. 관부(官府)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고 촌락에는 아전들이 없는 것 같다. 역(驛)에는 밤길을 가는 역졸이 없고 향(鄕)에는 밤중에 소집되는 군사가 없다. 노인들은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장정은 들에서 밭갈이를 하게 된다.”

▶육가(陸賈) : 한(漢)나라 초기 대신으로, 고조(高祖)를 도와 통일에 힘쓰고 왕실을 도왔다.

 

생각하건대, 한(漢)나라 초기에는 진(秦)나라의 가혹한 정치를 이어받아서, 백성들과 함께 휴식하려 했기 때문에 그 논의가 대부분 이와 같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이를 본받아 팔짱끼고 앉아서 침묵만 지킨다면 만사는 다 그릇되고 말 것이다.

급암(汲黯)이 동해 태수(東海太守)로 있을 적에 백성을 다스리되 맑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여 승사(丞史)를 골라 일을 맡기고 다스림은 대체만을 살필 뿐이요 조금도 까다롭게 하지 않았다. 급암은 병이 잦아서 내아(內衙)에 누워 나가지를 않았다. 한 해 남짓하여 동해는 잘 다스려졌다.

▶급암(汲黯) : 한(漢)나라 관리로 의협을 좋아하고 기절(氣節)을 숭상하였으며, 직간(直諫)하기로 유명하였다.
▶승사(丞史) : 승(丞)과 사(史)로 모두 속관(屬官).

 

생각하건대, 급암은 위엄과 신망이 본래 중하였고, 또 사람됨을 알아서 맡겼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니, 평범한 사람이 함부로 이 방법을 본뜨면 온 고을에 수심과 한탄 소리가 날 것이다.

 

당(唐)나라 육상선(陸象先)이 포주(蒲州)를 다스리게 되었는데, 일찍이 말하기를,

“천하는 본래 일이 없는데 용렬한 사람이 요란스럽게 만들 따름이다. 진실로 그 근원을 맑게 하면 일이 간략하게 되지 않음을 어찌 걱정하랴.”

하였다.

남조(南朝) 송(宋)의 사비(謝朏)가 의흥 태수(義興太守)로 있을 적에 잡사(雜事)는 돌보지 않고 모두 강기(綱紀)에게 맡기면서,

“나는 태수(太守) 구실만 하면 될 뿐이다.”

하였다.

▶사비(謝朏) : 남조(南朝) 송(宋)ㆍ제(齊)ㆍ양(梁) 삼조(三朝) 때의 벼슬아치
▶강기(綱紀) : 수령의 속관인 주부(主簿)의 별칭.

 

생각하건대, 이는 이른바 대체(大體)를 지킨다는 것이다. 위엄과 명망이 본래 드러나야 이처럼 할 수 있는 것이요, 못난 사람이 이를 본받으면 모든 일이 잘못될 것이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