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 12 - 입고출신(入古出新)

從心所欲 2017. 11. 27. 12:59

 

역시 35세 때, 주사가 청나라의 고순이라는 사람에게 <直聲留闕下 秀句滿天東>이라는 행서 대련을 써서

보낸 적이 있다. 이  <直聲留闕下> 대련은 추사의 30대 후반 글씨의 또 다른 기준작이 된다.

 

 

<直聲留闕下 秀句滿天東>

 

중국에 보내는 것이어서 더욱 그곳의 풍을 따른 것인지 글씨에 살이 찌고 윤기가 흐른다.

이런 것을 두고 박규수가 추사의 중년 글씨가 기름졌다고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씨에 서려 있는

자신감과 웅장한 필체에서는 대가의 중년시절 기개가 엿보인다.

 

청대 서예는 비문에만 주로 사용되던 전서와 예서를 서예의 본격적인 장르로 끌어올렸다.

여기서 비로소 청대풍(淸代風)이라고 할 고졸미(告拙美), 예스러우면서도 개성을 잃지 않는 글씨를

창출하는데, 청대 비학파(碑學派)글씨의 우두머리는 완당에게 큰 영향을 준 등석여와 이병수였다.

그러나 등석여와 이병수는 옛것에 너무 몰입하여 새로운 글씨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고전을 무시하고 개성만

추구하였던 병통을 보여주던 양주팔괴1와는 정반대의 현상이었다.

 

분방한 개성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로서 고전의 힘에 의지하는 것, 즉 옛 것을 본받으면서 새것을 창출한다는

것으로 청나라 사람들은 이것을 入古出新이라고 했다. 入古出新은 바로 고증학의 기본정신이라 할 만한 것이다.

입고출신의 정신으로 새로운 글씨를 추구한 이들은 건륭 연간의 이른바 건륭 4대가로 꼽히는 담계 옹방강, 석암

유용, 산주 양동서, 몽루 왕문치 이었다. 이들은 비학뿐만 아니라 첩학(帖學)에서도 고증학적 입장에서

탐구하고 그것을 본받으면서 새로운 서체를 시도했다.

추사는 조선에 있으면서도 청나라 서예계의 이런 사정을 훤히 꿰뚫곻 있었고 이러한 국제적 조류에 동참했다.

추사는 한나라 예서 중에서도 후한(後漢 :東漢 )시대가 아니라 전한(前漢 : 西漢)시대의 예서로 거슬러 올라

가야 입고출신의 정신이 더욱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추사의 예술적 소신이자 탁견이었다.

실제로 추사는 제주도 귀양살이에 들어가서는 열심히 전한시대의 예서를 임모하면서 새로운 경지로 들어선다.

청명선생은 완당이 전한시대 예서를 본받으며 발전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조선에 돌아온 완당은 옹방강의 서법을 그대로 따르기에 힘썼다. 그러나 천재적 예술인인 완당이 여기에 만족

리는 없다. 그는 서법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당에서 남북조, 다시 위진(魏晉)에서 한예(漢隸)에 이르고

예(隸)근원이 전(篆)에서 왔다는 데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마침내 완당은 예(隸)를 쓰기 시작하였고, 동한

(東漢)의 예가 파임과 삐침2으로 외형미가 부드러운 데에 불만을 가지고 다시 서한예(西漢隸)에서

본령을 찾으려 하였다....

그러므로 완당의 임서는 옛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필법으로 쓴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른

이론적 근거는 옹방강, 완원을 위시한 중국인들에게 얻은 것이나 작가로서의 발전은 그의 천품과 노력에

의하이루어진 것이다. 이 예법(隸法)은 그대로 행(行)·초(草)에도 응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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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출판 학고재에서 2002년 출간한

유홍준著 『완당평전』을 발췌, 요약하면서

다른 자료를 참조하여 임의 가필, 재구성한 것입니다.

  1. 揚州八怪 : 괴(怪)란 정통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며, 보통 왕사신(汪士愼) ·황신(黃愼) ·김농(金農) ·고상(高翔) ·이선(李鱓) ·정섭(鄭燮) ·이방응(李方膺) ·나빙(羅聘) 등 8인을 이르나, 고상 대신 고봉한(高鳳翰), 이방응 대신 민정(閔貞)을 드는 경우도 있어 반드시 고정되어 있지 않다. 또 화암(華喦)도 8괴에 준하여 취급된다. 8괴의 공통적인 특색은 전통적인 화법이나 기교에 구애되지 않고 독창적 ·개성적인 표현으로, 화훼(花卉) ·인물을 즐겨 다룬 점이다. 대부분 관리의 길에는 들지 않고 시와 서화를 즐기며 자유인으로 지냈다. (두산백과) [본문으로]
  2. 삐침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하는 획으로 영자팔범의 '략'과 같은 획(丿)이며, 파임은 영자팔법의 '책'과 같이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하는 획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