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 14 - 반야심경(般若心經)

從心所欲 2017. 11. 30. 15:29

 

추사가 중년에 남긴 정통적인 예서체 작품으로 <貞夫人光山金氏之墓> 비액 전면 글씨가 있다.

추사의 나이 48세 때 규장각 대교였을 당시의 글씨다.

 

  [김정희  <貞夫人光山金氏之墓>, 묘비탁본]

 

이 글씨를 보면 추사가 글자 구성에 얼마나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는지에 감탄하게 된다.

특히 '光'자의 구부린 획과 '墓'자의 흙 토(土)를 처리한 것을 보면 자유자재로운 천부의 자질이 느껴진다.

추사의 이러한 글씨체는 노년에 들어서면서 더욱 그 특질을 발휘하며 추사체의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한다.

그러나 <板展>처럼 고졸한 글씨를 쓴 것은 만년의 일로, 중년에는 그처럼 무심의 경지에 든 글자를 쓴 일이 없다.

한 서예가의 글씨가 변해가는 과정은 무엇보다도 편지 글씨와 해서작품에 가장 잘 나타난다. 편지 글씨란 본인이 작품이라는 의식을 갖지 않고 쓴 것이기 때문에 그 서예가의 필법이 거짓없이 드러나며, 해서작품에는 그렇게 변화된 결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추사의 간찰을 보면 50대에 이르러서는 우리가 추사체의 참 멋이라고 생각하는 획의 굳셈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능숙히 구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추사의 편지 글씨는 확실한 연도가 있어 그 편년을 대략 잡을 수 있지만 해서작품은 기년이 밝혀진 것이 중년 시절에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필획의 구사로 보아 추사 중년의 해서로 생각되는 명작이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반야심경般若心經>첩이다. 본래 경전은 정성들여 반듯하게 정자로 쓰게 되었기 때문에 추사로서는 드물게 이런 명작을 남겼다.

 

[김정희 <반야심경>]

 

이 <般若心經>첩 글씨를 보면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한 것이 역력한데 글자의 결구(結構)1는 그가 가장 따랐던 구양순체의 힘 있고 각진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필획은 대단히 부드럽게 운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추사의 글씨로는 힘과 함께 단정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서려있다고 뭇 사람들이 칭송하며 사랑하는 글씨다.

그러나 추사체의 참맛은 변화에 있다고 할 때, 같은 중년의 해서체라도 거기에 약간의 행서기를 넣어 강약의 리듬과 필세에 동감(動感)을 준 <제월노사안게霽月老師眼偈>가 제멋이라 할만하다. 4자 24행의 긴 게송을 장축으로 쓰고 또 그 후기를 작은 글자의 행서로 곁들여 작품 전체의 구성에 더욱 추사다운 변화가 구현되었다. 그 후기를 보면 제월대사가 나이 70에 갑자기 아나울타병이라는 눈병에 걸려 그 제자들이 걱정을 하자 이 게송을 지어주며 빨리 산사(山寺)로 돌아가 관음전에 걸고 빌게 했다는 것이다.

추사는 이렇게 중년에 들어서면 자신의 모든 서체에 하나의 틀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제주도 유배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한차원 높여, 그 무궁한 변화를 얻는다. 완당은 유배중에도 여전히 연경학계의 새로운 동향과 신간서적을 끊임없이 접하고 있었다.

 

[김정희 <霽月老師眼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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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출판 학고재에서 2002년 출간한

유홍준著 『완당평전』을 발췌, 요약하면서

다른 자료를 참조하여 임의 가필, 재구성한 것입니다.

 

 

 

  1. 글자의 점과 획을 조화롭게 조형(造型)하는 방법으로 건축적인 아름다움을 갖는 해서를 대상으로 하는 이론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