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53 - 각박하거나 정직한 척 하는 것은 군자의 취할 바가 아니다.

從心所欲 2021. 6. 19. 07:12

[전 김홍도(傳 金弘道) <누숙경직도(樓璹耕織圖)> 中 분박(分箔 : 잠상나누기), 33.6 x 25.7cm, 국립중앙박물관 ㅣ 〈누숙경직도(樓璹耕織圖)>는 송나라의 누숙(樓璹)이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를 참고하여 농업과 잠업의 일을 순서에 따라 묘사하여 황제에게 바친 것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에는 연산군 4년인 1498년에 조선에 처음으로 전래되었다 하며, 청나라 때의 〈패문재경직도(佩文齊耕織圖)〉와 함께 왕에게 올리는 감계화(鑑戒畵)로 제작되었다.]

 

 

● 율기(律己) 제2조 청심(淸心) 9

교격(矯激)한 행동이나 각박(刻迫)한 정사(政事)는 인정(人情)에 맞지 않으므로 군자가 내치는 바이니 취할 것이 못 된다.

(若夫矯激之行 刻迫之政 不近人情 君子所黜 非所取也)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고, '청렴한 마음가짐'을 뜻하는 청심(淸心)은 그 가운데 2번째이다.
▶교격(矯激) : 정직을 가장하는 행동.

 

양계종(楊繼宗)이 돼지머리 때문에 마누라를 내쫓고 - 아래 제가조(齊家條)에 보인다. -허자(許鎡)가 나무막대기를 밟아 굴리도록 하여 아들의 발을 따뜻하게 한 것은 - 부임(赴任) 치장조(治裝條)에 보인다. - 각박한 정치가 아닌가.

공기(孔覬)가 비단을 불 속에 던지고, 이견공(李汧公)이 서각(犀角)ㆍ상아(象牙)를 물속에 던진 것은 - 해관(解官) 귀장조(歸裝條)에 보인다. - 교격한 행동이 아닌가. 이런 일들은 다 군자가 하지 않는 것이다.

▶양계종(楊繼宗)이 ... 내쫓고 : 양계종은 명(明)나라 관리. 고을 원으로 있을 때 그의 부인이 한 마부로부터 돼지머리를 받아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었는데, 음식을 먹고 난 양계종이 부인에게 돼지머리의 출처를 물었다. 사실을 알게 된 양계종은 소속 아전들을 불러낸 뒤 자신이 집을 잘 다스리지 못해 처가 뇌물을 받았다며 약을 먹어 음식을 토해내고 그날로 처자를 돌려보냈다.
▶제가조(齊家條) : 율기 6조 중 제3조
▶허자(許鎡)가 ... 따뜻하게 : 중국 명나라의 관리 허자(許鎡) 고을 수령으로 있을 때, 그 아들이 겨울에 추위에 견디다 못해 밖에서 숯을 구해오면 좋겠다고 하자, 허자가 창고에서 나무막대 하나를 가져 오게 하고는 아들에게 “이것을 밟아 굴리도록 하라. 발이 저절로 따뜻해질 것이다”라고 했다는 고사.
▶치장조(治裝條) : 부임 6조 중 제2조
▶공기(孔覬), 이견공(李汧公)의 일화 : 송나라의 관리 공기(孔覬)가 고을 원을 할 때, 그 두 아우가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짐이 배로 10여 척이나 되는 것을 보고 공기가 이를 강 언덕에 모아놓고 불을 질렀다.
견국공(汧國公) 이면이 영남절도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가솔들이 갖고 있던 무소뿔과 상아 등속을 모두 찾아내어 강물에 던져버리고 떠났다.
▶귀장조(歸裝條) : 해관 6조 중 제2조

 

정선(鄭瑄)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대부들이 덕을 손상하는 것은 이름을 내려는 마음이 너무 급한 데서 오는 일이 많다.”

 

고제(高齊) 고적간(庫狄干)의 아들 사문(士文)은 성품이 청고(淸苦)하여 공료(公料) - 국가 봉급 - 도 받지 않았다. 그의 아들이 관주(官廚)의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칼을 씌워 옥에 여러 날 가두고 곤장 2백 대를 때린 후 걸려서 서울로 돌려보냈다.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적발하여, 베 한 자나 쌀 한 말 받은 장죄(贓罪)도 관대하게 보아 주는 일이 없이 탄핵해서 영남(嶺南)으로 귀양 보낸 자가 1천 명이나 되었는데, 모두가 풍토병으로 죽으니, 그의 가족들이 울부짖었다. 고적사문(庫狄士文)이 그들을 잡아다 매를 때리니 때리는 매가 그 앞에 가득하였으나 울부짖는 소리는 더욱 심해갈 뿐이었다. 임금이 이를 듣고,

“사문의 포악함이 맹수(猛獸)보다 더하다.”

하였다. 그로 인해 죄를 받아 파면되었다.

▶고제(高齊) : 중국의 북제(北齊).
▶고적사문(庫狄士文) : 《북제서(北齊書)》에만 고적간의 아들로 나오고, 다른 기록들에서는 고적간의 손자로 나온다.

 

정선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전에 어른들의 말을 들으니, ‘상관(上官)이 탐욕스러우면 백성들은 오히려 살 길이 있으나, 청렴하고 각박하면 바로 살 길이 끊어진다.’라고 하였다. 고금을 통해서 청리(淸吏)의 자손이 흔히 떨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각박함 때문이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