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55 - 민간의 물건을 사들일 때 싸게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從心所欲 2021. 6. 25. 18:40

[전 김홍도(傳 金弘道) <누숙경직도(樓璹耕織圖)> 中 대기(大起 : 잠깨기), 33.6 x 25.7cm, 국립중앙박물관 ㅣ 〈누숙경직도(樓璹耕織圖)>는 송나라의 누숙(樓璹)이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를 참고하여 농업과 잠업의 일을 순서에 따라 묘사하여 황제에게 바친 것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에는 연산군 4년인 1498년에 조선에 처음으로 전래되었다 하며, 청나라 때의 〈패문재경직도(佩文齊耕織圖)〉와 함께 왕에게 올리는 감계화(鑑戒畵)로 제작되었다.]

 

 

● 율기(律己) 제2조 청심(淸心) 10

무릇 민간의 물건을 사들일 때에 그 관식(官式)이 너무 헐한 것은 시가(時價)로 사들여야 한다.

(凡買民物 其官式太輕者 宜以時直取之)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고, '청렴한 마음가짐'을 뜻하는 청심(淸心)은 그 가운데 2번째이다.
▶관식(官式) : 관에서 정한 규례(規例). 여기서는 관에서 정한 가격.

 

호 태초(胡太初)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벼슬살이의 요점은 청렴과 근면이니 털끝만큼이라도 혹 이지러지면 그 정사에 미치는 해독은 아주 심하다. 또 누구나 염치가 자신이 당연히 할 일인 것을 모르랴만, 물욕이 얽히고 형세가 급박하여 점차로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본래 빈천한 사람은 처자들의 울부짖는 소리에 흔들리고, 본래 부귀한 사람은 호사스러운 생활의 비용이 있어야 하며,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음식을 잘 차려 손님을 즐겁게 해주고, 요로에 결탁을 힘쓰는 사람은 선물 보따리를 후하게 하여 호의를 통하며, 또 그보다 심한 것은 아들 장가들이고 딸 시집보낼 때 비단과 금으로 짐을 꾸리니 청렴하려 한들 되겠는가?

탐욕에 사로잡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본디 생각할 여지도 없겠지만, 다소나마 맑은 논의를 두려워하는 자라도 ‘나는 위로는 공금을 도적질하지 않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재물을 함부로 취하지 않은 것으로 족하다. 음식물을 사는 데는 본래 관에서 정한 값이 있으니 내가 이를 시행하면 무엇이 부끄러우며, 빈객을 접대하는 데도 전례가 이첩(吏貼)에 열거되어 있으니 그대로 따르면 무엇이 부끄러우랴.’ 하는 데 지나지 않을 것이니, 어찌 부끄러운 말이 아니겠는가?”

 

상고하건대, 본래 관에 정한 값이 있다고 하는 것은 요즈음 이른바 관정식(官定式)이다. 관에서 정한 가격은 대개 헐한 것을 따르게 마련이고, 혹 그 중에 비싼 가격을 따른 것이 있더라도 관에서는 쓰지 않으니 아전들이 견뎌낼 수 있겠는가.

물건의 귀천은 시세에 따라 변하는데, 관식(官式)은 일정하여 백 년이 되어도 고치지 않으니, 시세에 따라 알맞게 맞추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격이 헐하면 아전들이 괴롭고, 아전들이 괴로우면 백성들이 침해되어서 마침내는 그 해(害)가 아래 백성들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니 아전들이야 무슨 상관이랴.

 

대개, 아전의 됨됨이는 즐거우면 나아가고, 괴로우면 물러서는 것인데, 물러서지 않는 것을 보면 거기에 즐거워할 만한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성의 됨됨이는 즐거워도 머물러 있고 괴로워도 머물러 있어서, 그들 자신이 토지에 매달려 있는 것이 마치 밧줄로 묶여서 매를 맞는 것과 같으니, 비록 그곳을 떠나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괴로움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수십 년 이래로 이른바 계방(契房)이라 하여 부역(賦役)을 면제받는 마을이 날로 늘어나서 치우친 부역의 괴로움 때문에 백성이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 폐단을 없애려 하면 아전들은 ‘도망가겠다’ 한다. 내가 그 이유를 살펴보니, 하나는 열읍(列邑)에서 감사(監司)에게 아첨하는 일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억지로 정한 관식(官式)의 물가가 공평하지 못한 데 있다.

아전이 해를 입으면 그 형세가 반드시 그만두겠다고 할 것이고, 관에서 만류하려면 반드시 그 욕심을 채워 주어야 하는데, 위로는 차마 그 이익을 포기할 수 없고 아래로는 세금을 더 부가할 수 없다. 그래서 한 마을을 아전에게 떼어 주고 계방을 삼게 하니, 천하에 교사(巧詐)하고 비루하며 인색한 것이 이보다 더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새로 도임하는 수령은 모두 계방을 없애려고 하나 일단 그 묘리를 알게 되면 또한 묵묵히 없애려는 생각을 그만두지 않는 이가 없으니, 근본이 자기로 말미암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계방(契房) : 공역(公役)의 면제나 또는 다른 도움을 얻으려고 미리 관아의 하리(下吏)에게 돈이나 곡식을 주는 일.

 

무릇 관에서 쓰는 물건은 춘분(春分)과 추분(秋分) 두 때에 시가(時價)를 개정하고, 반년 동안 시행하여 그대로 둘 만한 것은 그대로 두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서 오로지 시가에 따르고 깎지도 말고 함부로 더 주지도 않는다면 또한 좋지 않겠는가.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낮과 밤이 같아 춘분ㆍ추분이 되면 도량(度量)을 같게 하고 형석(衡石)을 고르게 하며, 두용(斗甬)을 비교하고 권개(權槪)를 바르게 한다.”

한 것은 또한 이런 뜻이다.

▶도량(度量) : 도는 길이, 양은 분량으로 즉 자[尺]와 말[斗].
▶형석(衡石) : 무게로 즉 저울.
▶두용(斗甬) : 말과 섬.
▶권개(權槪) : 권은 저울의 추, 개는 곡식을 될 때 윗부분에 쌓인 곡식을 밀어서 고르게 하는 원기둥모양의 나무방망이(평미레).

 

무릇 이노(吏奴)들이 바치는 물건이 만약 사들이는 과정에서 백성들의 원망을 듣지 않게 된다면 계방(契房) 등이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비로소 마음대로 개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노(吏奴) : 지방 관아에 딸린 아전(衙前)과 관노(官奴)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