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56 - 잘못된 관례는 힘써 고쳐라.

從心所欲 2021. 7. 3. 15:17

[전 김홍도(傳 金弘道) <누숙경직도(樓璹耕織圖)> 中 제적(提積 : 걸어쌓기), 33.6 x 25.7cm, 국립중앙박물관 ㅣ 〈누숙경직도(樓璹耕織圖)>는 송나라의 누숙(樓璹)이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를 참고하여 농업과 잠업의 일을 순서에 따라 묘사하여 황제에게 바친 것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에는 연산군 4년인 1498년에 조선에 처음으로 전래되었다 하며, 청나라 때의 〈패문재경직도(佩文齊耕織圖)〉와 함께 왕에게 올리는 감계화(鑑戒畵)로 제작되었다.]

 

 

● 율기(律己) 제2조 청심(淸心) 11

무릇 전부터 내려오는 그릇된 관례는 굳은 결심으로 고치도록 하고, 혹 고치기 어려운 것이 있더라도 자신은 범하지 말 것이다.

(凡謬例之沿襲者 刻意矯革 或其難革者 我則勿犯)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고, '청렴한 마음가짐'을 뜻하는 청심(淸心)은 그 가운데 2번째이다.

 

서로(西路)의 방번전(防番錢), 산간의 화속전(火粟錢), 기타 장세전(場稅錢)ㆍ무녀포(巫女布) 같은 것은 비록 잘못된 관례이기는 하나 모두 조정에서 알고 있는 것들이니 혹 그대로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西路)의 와환채(臥還債) - 호전(戶典) 곡부(穀簿) 환상조(還上條)에 자세히 기록하였다. - 남방의 은결채(隱結債) - 전정조(田政條)에 자세히 다뤘다. - 는 비록 오래도록 내려오는 관례지만 단연코 먹어서는 안 된다.

▶서로(西路) : 서도(西道).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지방의 통칭(通稱).
▶방번전(防番錢) : 번(番) 서야 할 사람을 대신하여 번을 서게 하고 그 대가로 받아내는 돈.
▶화속전(火粟錢) : 화전세(火田稅)를 돈으로 바치는 것.
▶장세전(場稅錢) : 향시(鄕市) 또는 읍시(邑市)에서 장사하는 자에게 받는 자릿세로 추정.
▶무녀포(巫女布) : 무녀(巫女)에게 징수하는 세포(稅布). 무포(巫布).
▶와환채(臥還債) : 환곡(還穀) 연말에 거두어들이지 않고 거두어들였다고 상부에 보고하고(이것을 번질[反作]이라고 한다), 또 봄에 환곡 중에서 실제로 대여하지 않고 대여해준 것처럼 하여 1석에 대해 돈 1냥을 거두어들인 것을 가리킴. 이것을 아전이나 수령, 심지어 절도사까지도 착복하였다고 한다. 《牧民心書 戶典 還上》
▶은결채(隱結債) : 은결(隱結)은 경작지로서 불법적으로 수세(收稅) 대상에서 누락되어 있는 농지. 은전(隱田) 또는 은루(隱漏)라고도 한다. 이 은결에 대해 아전이나 수령이 실제로는 수세하면서 중앙에 보고하지 않고 부정으로 착복한 것을 은결채라 한다.

 

신관(新官)의 부쇄가(夫刷價)는 절대로 두 번 거두어서는 안 되며 - 이미 부임(赴任) 제배조(除拜條)에서 언급했다. -추관(推官)의 고마전(雇馬錢)도 절대로 헛것을 받아서는 안 되며 - 열읍(列邑)에 고마고(雇馬庫)라는 것이 있는데, 추관이 행차할 때마다 고마고에서 수십 냥의 돈을 지불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이에 한 달에 세 번 추심을 하되 문서로만 감영(監營)에 보고하고 실지로는 몸소 행차하는 일이 없는데 고마전은 그대로 받아쓰고 있다. -궁결(宮結)의 잉여전(賸餘錢)도 절대로 도둑질해 먹어서는 안 되며 - 모든 궁방(宮房)의 무토면세전(無土免稅田)은 1결(結)에 대하여 호조(戶曹)에서 돈을 받는 것은 7냥이 못 되는데 흉년에 쌀이 귀하게 되면 매결(每結)에 수십 냥을 거두어서 거기서 남는 것은 본읍(本邑)이 먹는다. -민고(民庫)의 잗다란 명목의 돈은 결코 관례에 의하여 받아들여 써서는 안 된다. 이런 종류의 예는 낱낱이 들 수 없다. 요는 수령된 자가 의리를 헤아려서 그것이 천리(天理)에 어긋나고 왕법(王法)에 위반되는 것이면 절대로 자신이 범해서는 안 된다. 혹 구애되어 없애기 어려운 것은 비록 개혁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부쇄가(夫刷價) : 신구(新舊) 수령의 영송(迎送)에 동원되는 인부와 쇄마(刷馬)에 대하여 지방의 저치미(儲置米)에서 지불하는 대가를 말한다. 삼남(三南)의 연읍(沿邑)에서는 돈으로 지급하였다. 쇄마(刷馬)는 지방에 비치하여 두었다가 관용(官用)에 제공하는 말이다. 저치미는 각 지방에서 각종 세곡(稅穀)으로 받아들인 쌀을 저축하여 둔 것.
▶추관(推官) : 죄인을 심문하는 관원.
▶고마전(雇馬錢) : 관아에서 역마(驛馬) 이외에 민간으로부터 고용(雇傭)하여 쓰는 비용으로 지출하기 위한 돈. 고마법(雇馬法)은 역마(驛馬) 외에 민간의 말을 징발하여 쓰는 법으로 조선조 현종(顯宗) 때에 경기 감영(京畿監營)의 관할 아래에서 시행하였고, 뒤에 각도에 시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각 군현마다 고마고가 설치되어 고마전의 재원으로 사용하였는데, 수령의 신영(新迎) · 체귀(遞歸) · 출장 등에 이용되었다.
▶궁결(宮結) : 내수사(內需司) 및 후궁(後宮)과 왕자, 왕녀들에게 세금이 귀속되는 궁방전(宮房田)이라는 명목의 전토(田土)에서 거두어 각 궁(宮)에 내려지는 결세(結稅).
▶무토면세전(無土免稅田) : 여러 궁방(宮房)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설치한 궁방전(宮房田)은 유토궁방전(有土宮房田)과 무토궁방전(無土宮房田)으로 나뉜다. 유토는 토지의 수익권(收益權)을 궁방(宮房)이 갖고, 무토는 실제 전지의 소유권은 없이 수세권(收稅權)만 있는 전지이다. 즉 무토는 호조에서 세금을 걷어 해당 궁방에 바치는 형태였다. 두 전지는 모두 면세(免稅) 특권이 있었다.
▶민고(民庫) : 관아의 임시비용으로 쓰기 위하여 군민(郡民)으로부터 받아들인 돈ㆍ곡식 등을 저축하는 창고.

 

무릇 방번전(防番錢)ㆍ화속전(火粟錢)은 비록 전부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패잔(敗殘)한 마을로서 군액(軍額)을 채우기가 어렵고 지적하여 징수할 데가 없는 것들은 죄다 감면해 주어야 하고 인색해서는 안 된다.

 

고려 김지석(金之錫)은 고종(高宗) 말에 제주부사(濟州副使)가 되었다. 제주도 풍속에 남자 나이 15세 이상은 콩 1곡(斛)씩을 바치고 아문(衙門)의 아전 수백 명이 각각 해마다 말 1필씩을 바치면 부사(副使)와 판관(判官)이 나누어 받았기 때문에 수재(守宰)가 되면 비록 가난한 자라도 다 치부하게 되었다. 정기(井奇)ㆍ이저(李著) 두 사람이 이 주(州)의 수령으로 있다가 모두 장죄(贓罪)로 파면되었다. 김지석이 제주에 부임하자 바로 콩과 말[馬]을 공바치는 제도를 없애고 청렴한 아전 10명을 골라 아문의 아전으로 삼으니 정사가 물처럼 맑아지고 백성과 아전들이 사모하고 복종하였다. 이보다 앞서 경세봉(慶世封)이란 사람이 제주의 수령으로 있었는데, 또한 청백하기로 소문이 났다. 그래서 이 고을 사람들이,

“전에는 세봉(世封)이 있었고 뒤에는 지석(之錫)이 있었다.”

하였다.

고려 권단(權㫜)이 경주 유수(慶州留守)가 되었다. 전부터 백성들에게 능라(綾羅)를 거두어들여 저장하는 한 창고가 있었는데 갑방(甲坊)이라 하였다. 이 능라를 공물(貢物)로 바치는 액수에 충당하고 남는 것이 매우 많았는데 모두 유수(留守)의 사유(私有)가 되었다. 권단은 갑방 제도를 없애고 1년에 거두어들인 것으로 3년 동안의 공물에 충당하였다.

▶권단(權㫜) : 고려 문신(1228 ~ 1311). 경주 유수(慶州留守)ㆍ밀직제학(密直提學) 등을 지냈으며 청렴 근면하기로 이름이 났다.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난 뒤에는 선홍사(禪興寺)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능라(綾羅) : 무늬가 있는 비단.

 

가황중(賈黃中)이 승주지주(昇州知州)로 있을 적에 하루는 부고(府庫)를 조사하다가 자물쇠가 단단히 채워진 것을 보고 열어보니, 보화(寶貨) 수천 궤짝이 나왔다. 이는 모두 이씨(李氏) 궁중의 물건으로서 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가황중이 목록을 작성하여 위에 올리니 태종(太宗)이 감탄하기를,

“부고의 물건은 장부에 기록되어 있더라도 탐욕스러운 자는 오히려 금법(禁法)을 어기면서 차지하려고 하는데, 더구나 이런 물건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하고, 돈 2백만 전을 주어 그의 깨끗함을 표창하였다.

▶가황중(賈黃中) : 송(宋)나라 태조(太祖)ㆍ태종(太宗) 때의 벼슬아치.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