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조선의 기생 17 - 사회적 인식

從心所欲 2021. 7. 17. 14:45

머리를 얹지 않은 10대 초반의 나이 어린 여자 기생을 동기(童妓)라 하고, 이들은 머리를 올린 뒤에야 정식 기생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동기는 지방의 교방(敎坊)에서 악가무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기예(技藝)를 닦는 동안에도 여악에 동원되는 일이 있었다. 지방의 향연에 동원되기도 하고, 특히 궁중정재 가운데 연화대(蓮花臺)와 선유락(船遊樂)에서는 나이 어린 여악(女樂)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동래부사접왜사도> 10폭 中 부분, 머리를 올린 장기들과 사이에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동기들의 춤추는 모습이 보인다.]

 

동기들이 머리를 얹는 것은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신분이 관기(官妓)이기 때문에 이것도 관아에서 관여를 했다. 동기가 머리를 올리기 위해서는 우선 기생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예의 습득수준이 먼저지만 그와 함께 나이도 고려사항에 포함되었다. 대략 15세 전후다. 일반적으로 노비는 16세에 공식적으로 노비질(奴婢秩)에 등록이 되는데 기생은 이보다 조금 빨랐다. 동기는 머리를 얹으면 관노비안(官奴婢案)에 머리를 얹었다는 의미의 ‘가관(加冠)’ 이라는 기록과 함께 ‘기생질(妓生秩)’에 등록이 되면서 공식적 기생이 된다. 동기(童妓)에서 장기(壯妓)가 되는 것이다. ‘가관(加冠)’은 원래 조선시대 남자가 관례(冠礼)를 행하고 갓을 쓰던 일로 예전의 성인식이다. 그러니까 동기가 성인식을 치렀다는 의미다. 지금 전하는 ‘기생질(妓生秩)’ 기록에 따르면 한 날에 여러 명이 ‘가관(加冠)’하여 기생으로 등록된 경우도 있다. 같이 한 날에 머리를 얹은 것인지 아니면 행정상의 편의로 몰아서 기록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동기들이 성인식을 치루는 것은 관아의 우두머리 기생인 행수기생(行首妓生)의 소관이었겠지만 실제로 그 일을 집행하는 것은 소위 ‘수양어머니’로 불리는 기생어미들이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동기의 머리를 올려주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조선 후기 특히 일제 강점기 때 정착된 풍습으로 보고 있다. 조선의 기생들은 비록 천한 신분이었지만 노래는 ‘팔지언정 몸은 팔지 않는다’는 ‘매창불매음(賣唱不賣淫)’을 불문율처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중에 기생이 되어서 수양어머니를 통해 사적으로 기생 영업을 할 때도 그것은 악가무를 파는 것이지 몸을 파는 것이 아니었다. 손님과 기생이 잠자리를 하는 것은 번외행사인 것이다. 그래서 기생의 수양어머니는 동기의 첫 남자를 돈 많은 인물보다는 앞으로 기생을 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을 골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양어머니의 선택에 따라 그 상대는 인품 있는 인물이나 벼슬아치일 수도 있고, 때로는 험한 앞날에 대한 단련을 위해 고의로 동기에게 수치심을 잔뜩 안길 수 있는 인물을 고르기도 하였다.

 

영조 20년인 1744년, 영조의 기로소(耆老所) 입사(入社)를 축하하는 진연이 경희궁 숭정전에서 열렸다. 이때의 「진연의궤」에 의하면, 팔도의 각 읍에서 선상(選上)된 향기(鄕妓)는 모두 52명이었다. 뽑혀 올라온 선상기(選上妓)들에게는 각각의 임무가 주어지고 그들은 개별적으로 장악원의 악사(樂師)들의 지도를 받았다. 아래는 당시 선상기들의 신상과 주어진 역할을 정리한 표의 일부다.

 

출신지 기생이름 나이 임무 담당 장악원 악사
충주기생 선금(善今) 20세 노래 이처중(李處中)
공주기생 해월(海月) 52세 도기(都妓) 박천빈(朴天彬)
죽선(竹仙) 27세 장고 김재홍(金再弘)
원주기생 예분(禮分) 30세 노래 오천우(吳天祐)
복매(福梅) 28세 노래 이진흥(李震興)
안동기생 낙선(洛仙) 41세 처용무 김준영(金俊英)
옥섬(玉蟾) 37세 처용무 임두성(林斗星)
몽안(夢安) 25세 처용무 박만적(朴萬積)
채옥(彩玉) 37세 거문고 함덕형(咸德亨)
해주기생 이단(二丹) 36세 노래 황세웅(黃世雄)
현매(顯梅) 17세 노래 함덕형(咸德亨)
해란(海蘭) 37세 노래 박검송(朴儉松)
복섬(福蟾) 23세 노래 김진해(金鎭海)
전주기생 옥섬(玉蟾) 31세 장고 박만의(朴萬儀)
황주기생 단애(丹愛) 30세 가야금 황세대(黃世大)
상례(尙禮) 32세 노래 오천우(吳天祐)
안악기생 기린(琪獜) 26세 노래 김재홍(金再弘)
평양기생 모란(牡丹) 24세 노래 함덕형(咸德亨)
동월(冬月) 24세 노래 이지영(李枝英)
양대월(陽臺月) 23세 노래 황세대(黃世大)
두견화(杜鵑花) 30세 노래 이처중(李處中)

[1744년 진연에 출연한 각 읍 기생의 나이 및 임무 일람표(한겨레음악대사전, 2012. 송방송)]

 

이때의 선상기 중에는 나이가 52세나 된 공주기생 해월(海月)도 있었다. 그녀의 임무는 도기(都妓)라고 되어있는데, 도기(都妓)는 국가 행사에 동원된 기생(妓生)들의 우두머리인 행수기생(行首妓生)을 가리킨다. 통상 “서울의 경기(京妓)가 50세가 되면 악적(樂籍)에서 빼고 공역(公役)을 면제한다.”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규정에 따라 나이 50세가 되면 기생의 역을 면하게 되는데, 그녀가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연향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은 특별한 경우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안동의 낙선(洛仙)이라는 기생은 41세이고 그 외에도 30대의 기생들이 적지 않다. 연산군 때와는 달리 미모와 나이보다는 기예에 중점을 두어 선발한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국역(國役)을 담당하던 장정이 나이 60이 되면 ‘늙었다[老]’고 하여 비로소 군역(軍役)이 면제되는데 이를 노제(老除)라 한다. 기생의 경우도 나이 50에 이르러 기생의 역이 면제되는 것을 역시 노제(老除)라 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기적(妓籍)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는 50이 되기 이전에도 기역(妓役)을 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비록 기생의 역이 50세까지로 규정되어 있을지라도 실제 50이 가까운 기생이 연회에 불려 다닐 일은 거의 없다. 기생들이 한창 활동이 많을 나이는 20대이다. 벌써 30대만 되어도 노기(老妓)라는 타박을 듣게 된다. 기생으로서는 한물가서 크게 가치가 떨어진 30대가 되면 여러 가지 사정을 내세워 기역을 면하기 시작했다. 한 고을에 묶여 20년 가까이 기생생활을 하고나면 고을 아전과도 적잖은 친분이 쌓였을 것이니 관대한 수령을 만났을 때 그들의 도움을 받아 기역을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을 제대로 호소하면 나이 50이 되기 전이라도 기역을 면제받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기역이 면제되는 것을 발괄노제(白活老除), 또는 정장노제(呈狀老除)라 한다. 조선시대 기생질(妓生秩)에 30대부터 기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40대는 행수기 정도를 제외하고는 적에 남아있는 기생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기생에 대하여 전하는 이야기들은 주로 뛰어난 외모나 가무 실력, 시를 잘 짓는 능력, 의로운 행위나 기생임에도 절개를 지킨 것과 같은 우호적인 내용들이지만, 모든 기생들이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황진이나 춘향이나 계섬, 매창, 논개, 계월향, 운낭자 같은 기생들은 모두 다른 기생들이 갖고 있지 않은 뛰어남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이다. 그들이 행의(行儀)라 하여 사대부를 대한 법도를 배웠다한들 겨우 기초를 터득한 수준에 불과한 것이고 그들의 보편적인 교양수준도 특별한 기생 이야기로 전해질 만큼 높았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생들은 그 신분만큼이나 천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잘 알려진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변사또가 춘향을 처음보고 하는 말속에는 조선시대 기생들에 대한 당시 사회의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춘향이가 올라가 아미(蛾眉)를 숙이고 서 있으니
사또 욕심이 대발허여
“게 앉거라. 듣던 말과 과연 같구나. 침어낙안(沈魚落雁)이란 말을 관히 존각하였더니 폐월수화(閉月羞花) 허는 태도 보든 중 처음이요, 짝이 없는 일색이로구나.
네 소문이 하 장하여 경향에 낭자키로 내 밀양 서흥 마다 허고 간신히 서둘러 남원부사 허였더니 오히려 늦은 바라 선착편은 되었으나 녹엽성음(綠葉成陰) 자만지(子滿枝)가 아직 아니 되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로다.
그래 구관자제가 네 머리를 얹혔다지.
그 양반 가신 후로 독수공방 했을 리가 있나.
응당 애부(愛夫)가 있을 테니 관속(官屬)이냐 건달이냐
어려이 생각 말고 바른대로 말하여라.“
▶녹엽성음(綠葉成陰) 자만지(子滿枝) : 당(唐)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시에 나오는 구절로
결혼하여 자녀가 많은 것을 ‘푸른 잎이 그늘을 만들어 열매가 가득하다’로 비유한 것.

춘향이 공손이 여짜오되,
“천기의 자식이오나 기안에 착명 않고 여염생장(閭閻生長) 하옵더니 구관댁 도련님이 연소한 풍정으로 소녀 집을 찾어와서 서상가약(西廂佳約) 간청허니 노모가 허락하고 백년가약 받들기로 단단맹서(團團盟誓) 했사온데 관속 건달 애부 말씀 소녀에게는 당치않소.“

“그거 얼굴을 보고 말 들으니 안팎으로 일색이로구나. 옥안종고다신소(玉顔從古多身素)는 기양공의 글짝이라. 인물 좋은 여인들이 절행이 없건마는 저 얼골 옥 같은데 마음마저 일색이로구나.
네 마음 기특허나 이도령 어린 아해 귀가(貴家)댁에 장가들고 대과급제 하게 되면 천리타향의 잠시 장난이지 네 생각할 리가 있겠느냐
너 또한 고서(古書)를 읽었다니 사기(史記)로 이르리라.
옛날에 예양(禮讓)이는 재초부(再醮婦)의 수절(守節)이라. 너도 나를 위해 수절하거드면 예양과 일반이니 오날부터 몸단장 곱게 하고 수청 들게 하라.“
▶재초부(再醮婦) : 재가한 여자

 

기생의 정절 같은 것은 믿지도 못하겠고 알 바도 아니라는 투다. 이도령이 한양에 간 후로 당연히 다른 남자들을 만났으리라 지레 짐작하며 그나마 자식을 낳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정약용이 자신의 이복동생이자 서자인 정약횡(丁若鐄)에게 기생에 대하여 경계한 말에서도 당시 기생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정약횡은 당시 신분 때문에 비장(裨將)을 하려고 도모하던 중이었다.

▶비장(裨將) : 조선시대 때 감사(監司)ㆍ유수(留守)ㆍ병사(兵使)ㆍ수사(水使) 등의 지방 장관들이 데리고 다니던 막료(幕僚).

 

내가 보건대, 비장(裨將)의 천 가지 결정과 만 가지 과오는 한 글자에서 일어난다. 비난이나 칭송, 영광과 치욕이 오직 이 한 글자에 달려 있다. 한 글자라고 하는 것은 무슨 글자일까? 바로 음탕할 ‘음(淫)’ 자가 그것이다.

관기 중에 요염한 자는 많은 사람들이 눈길을 보내며, 음행을 잘하는 자는 필시 남 먼저 그 기생과 눈이 맞게 된다. 한번 발 빠른 자의 차지가 되어 버리면, 즉시 뭇 사내들이 수염을 비비 꼬며 남몰래 승냥이 이빨을 갈고 있을 것이다. 어찌 위태롭지 않겠는가? 더구나 이 요물은 반드시 어렸을 때부터 벌써 높은 사람들을 많이 거쳤을 것이니, 간교한 구멍이 반드시 일찍 뚫렸을 것이고, 욕망의 골짝도 반드시 일찍부터 넓혀졌을 것이다. 그녀의 아양 떨고 부비며 하소연하는 솜씨가 틀림없이 신비하고 절묘할 것이요, 그 의복이나 장식에 소요되는 것들을 요구하는 것도 틀림없이 사치스럽고 분수에 넘칠 것이다. 바보 같은 사내들이 한번 빠지게 되면 좋은 향기가 나는지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 분간을 못 하고, 신지 짠지도 구별을 못 하게 된다. 마음을 잃고 몸을 망치는 것이 이로부터 시작된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곧고 깨끗하게 자신을 지켜서 절간의 중이다 고자다 하는 비웃음을 달갑게 받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말없이 물러나 양보하여 동료들이 다 고르고 난 뒤까지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 권세 있는 아전이나 힘센 군교(軍校)나 사납고 교활한 사람이 좋아하는 첩인가를 알아보고, 첩이라면 모두 다 피해야 한다.

마시고 먹으며 즐겁게 잔치하는 자리에서 늘 말과 웃음이 적고 차분하고 조심성 있고 좀 서투르고 소박한 사람을 찬찬히 살폈다가, 그녀가 오래전부터 사랑하던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보고 그가 전부터 앓아 오던 병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아본다. 그녀를 불러 방에 오게 하여 여러 날 동안 알아보고 시험해 본 뒤에, 이 여자 정도라면 틀림없이 전혀 해로울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 가까이하면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끝내 기생과는 인연을 맺지 않는 편이 더 좋은 것이다.

대체로 기생과 인연을 맺는 자들은 반드시 “의복과 음식 때문에 방에 두는 기생이 꼭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보건대, 기생첩을 두는 비용이 꽤 많이 든다. 그 비용의 절반만 가지고도 수급비(水汲婢)에게 은혜를 베풀면서 그녀의 지공을 받으며 끝내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 여종은 정성을 다 기울여 받들 것이다. 틀림없이 방기(房妓)보다 열 배는 나을 것이다. 여러 잡된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수급비(水汲婢) : 관아에 속해서 잡역에 종사하는 여종
▶방기(房妓) : 가정 없이 외지인 변방에서 근무하는 무관의 살림을 돕도록 군영에서 배치해주던 방직기(房直妓).

 

 

참고 및 인용 : ‘妓生案’을 통해본 조선후기 기생의 公的 삶과 신분 변화(2010, 박영민), 한겨레음악대사전(송방송, 2012, 보고사), 문화원형백과(2004, 한국콘텐츠진흥원), 여유당전서(허권수, 한국인문고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