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

연암 박지원 34 - 백이론(伯夷論) 상(上)

從心所欲 2021. 7. 25. 14:03

박지원의 <백이론(伯夷論)>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에 실린 <백이열전(伯夷列傳)>에 대하여 논박한 글로 『연암집』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에 실려 있다. <백이열전(伯夷列傳)>에 실린 백이와 숙제(叔齊)에 대한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의 제후(諸侯)인 고죽군(孤竹君)의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숙제에게 지위를 물려주려 했는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숙제가 형인 백이에게 양보하려 하였다. 백이는 “아버지의 명이다.”라고 하고는 달아나 버렸다. 그러자 숙제도 왕위에 오르려 하지 않고 달아나 버리니, 나라 사람들이 다른 형제를 왕으로 세웠다.

백이와 숙제가 뒷날 문왕(文王)이 되는 서백(西伯)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로 갔는데, 도착해 보니 서백은 이미 죽었고, 그 아들 무왕이 아비의 신주(神主)를 수레에 싣고서 동쪽으로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정벌하려 하였다. 백이와 숙제가 말고삐를 부여잡고 충고하기를, “아버지가 죽었는데 장사도 지내지 않고 전쟁을 하는 것을 효(孝)라고 하겠습니까?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하는 것을 인(仁)이라고 하겠습니까?” 하니, 무왕의 측근 신하들이 무기로 치려고 하였다. 그러자 강태공(姜太公)이 “이들은 의로운 사람입니다.” 하고는 부축하여 나갔다.

무왕이 은나라를 평정하고 나자 천하가 모두 주(周)나라를 종주국으로 받들었으나, 백이와 숙제는 수치스럽게 여겨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며 수양산(首陽山)에 은거하며 고사리를 캐 먹고 살다가 굶어 죽었다.

 

 

<백이론(伯夷論)> 상(上)

 

《사기(史記)》에, 무왕(武王)이 주(紂)를 치러 나서자 백이가 말고삐를 끌어당겨 못 가도록 하며 충고했고, 무왕이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자 백이는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굶어 죽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논한다.

 

[은(殷)나라와 주(周)나라의 영토 ㅣ 은(殷)나라의 원래 국가 명칭은 ‘상(商)’이다. ‘은(殷)’은 상(商) 왕조가 멸망한 이후 주(周)나라에서 상(商)을 낮춰 부른 명칭이다.]

 

[주(周)나라의 영토와 제후국가]

 

백이가 무왕에게 충고한 사실은 경서(經書)에 나타나 있지 않다. 이것은 제(齊)나라 동쪽 시골 사람들의 말인데 사마천(司馬遷)이 취하여 역사적인 사실로 만들었으니 이는 믿을 것이 못 된다. 비록 그렇지만, 이 책을 믿을진댄 논의할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경서(經書) : 여기에서는 《서경》을 가리킨다.
▶제(齊)나라 …… 말 : 「맹자」만장 상(萬章上)에 나오는 구절로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가리킨다.

 

백이는 이른바 천하의 대로(大老)요 현인(賢人)이므로 서백(西伯)이 일찍이 예의를 갖추어 그를 봉양했다. 그런데 이때에 와서 무왕의 측근 신하들이 백이를 무기로 치려고 했던 것이다. 아, 선왕이 예의를 갖추어 봉양했던 신하이자 천하의 이른바 대로요 현인인데도, 측근의 신하들이 곧장 그 앞에서 무기로 치려고 했더니, 무왕은 오히려 “내가 아니라 무기가 그렇게 한 것이다.”라는 식이었다. 그러니 이때 태공(太公)이 아니었던들 백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겠는가.

▶천하의 대로(大老) :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서 맹자가 말하기를 “백이는 폭군 주(紂)를 피하여 북쪽 바닷가에 살다가 문왕이 정벌에 나섰다는 말을 듣고 ‘어찌 그에게 귀의하지 않으리오. 나는 서백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고 들었다.’ 하였으며, 강태공이 폭군 주를 피하여 동쪽 바닷가에 살다가 문왕이 정벌에 나섰다는 말을 듣고 ‘어찌 그에게 귀의하지 않으리오. 나는 서백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고 들었다.’고 하였다. 이 두 노인은 천하의 대로(大老)인데 문왕에게 귀의하였으니, 이는 천하 사람들의 아버지가 귀의한 셈이다. 천하 사람들의 아버지가 귀의했는데, 그 아들 되는 자들이 어찌 문왕에게 귀의하지 않으리오.”라고 하였다. 대로는 덕망 높은 노인이란 뜻이다.
▶내가 …… 것이다 : 「맹자」양혜왕 상(梁惠王上)에서 맹자는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지 않고 흉년만 핑계 대는 위(魏)나라 왕에게 “이것은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고서도 ‘내가 아니라 무기가 그렇게 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비난하였다.

 

옛날에 이윤(伊尹)은 한 사람의 필부라도 제자리를 얻지 못하면 마치 자기가 그를 떠밀어 도랑 속으로 처넣은 것같이 여겼으며,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이를 죽여 천하의 왕이 될 수 있다 해도 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또한 무왕의 뜻이기도 하다. 무왕은 아마도 천하를 향해,

“은나라 백성들이 제자리를 얻지 못했다.” 하고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주나라가 장차 일어날 적에 대로요 현인이라는 이가 제자리를 얻지 못했으니, 무왕이 천하를 얻은 것은 아마도 백성들이 제자리를 얻지 못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또 무왕은 천하를 향해 외치기를, “은나라가 노성(老成)한 사람의 말을 저버렸다.” 하였다.

그러나 주나라가 장차 일어날 적에 대로요 현인이라는 이가 불의를 충고했으니, 무왕이 천하를 얻은 것은 아마도 충고를 듣지 않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또 천하를 향해 외치기를, “은나라가 죄 없는 이를 죽였다.” 하였다. 그러나 주나라가 장차 일어날 적에 대로요 현인이라는 이가 온전히 죽음을 맞지 못했으니, 주나라가 천하를 차지한 것은 아마도 죄 없는 이를 죽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무릇 이 세 가지는 무왕이 남을 정벌한 명분이었는데도, 난폭하게 거리낌 없이 행동했단 말인가?

▶이윤(伊尹)은 …… 않았으니 : 이윤은 은나라 탕왕(湯王)의 재상으로, 탕왕의 부름을 받아 하(夏)나라의 무도한 걸(桀)을 치고 은나라를 세우는 일을 도왔다. 「맹자」만장(萬章)에, 이윤은 “천하의 백성 중에 필부(匹夫)와 필부(匹婦)라도 요순(堯舜)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신이 그를 밀어 도랑 속으로 처넣은 것과 같이 생각하였다.” 하였고,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공손추가 백이와 이윤이 공자(孔子)와 같은 점을 묻자, 맹자가 답하기를, “백리(百里) 되는 땅을 얻어서 임금 노릇을 하면 모두 제후들에게 조회 받고 천하를 소유할 수 있거니와, 한 가지라도 불의를 행하며,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이를 죽이고 천하를 얻는 것은 모두 하시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같은 점이다.” 하였다. 또한 《서경》 열명 하(說命下)에, 이윤은 “한 사람의 필부라도 제자리를 얻지 못하면 ‘이는 나의 허물이다.’ 하였다.”고 한다.
▶노성(老成)한 사람 : 덕망 높은 노인이라는 뜻과 함께, 노련한 옛 신하라는 뜻도 있다.

 

무왕이 기자(箕子)를 감옥에서 풀어 주고, 비간(比干)의 무덤에 봉분을 해 주고, 상용(商容)의 마을을 지나갈 때 수레에서 경의를 표했으면서, 유독 백이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이는 무슨 까닭인가? 아, 살았을 때는 예의를 갖추어 봉양하기를 문왕(文王)과 같이 하고, 그가 떠날 적에는 신하로 대하지 않기를 기자와 같이 하고, 의롭게 여겨 표창하기를 상용과 같이 하고, 그가 죽었을 적에는 봉분하기를 비간과 같이 해야 옳았을 것이다.

▶무왕이 …… 표했으면서 : 《서경》 무성(武成)에 나온다. 상용(商容)은 은나라 주왕 때 대부가 되어 직언을 하다가 내쫓긴 현인(賢人)이다. 《사기》 백이열전에는 무왕이 상용의 마을에 정표(旌表)를 내렸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탕(湯)과 백이와 무왕은 똑같은 생각이었다. 그들은 천하와 후세를 위해 염려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탕 임금이 걸(桀)을 내쳤는데도 천하 사람들이 흡족해하며 아무도 괴이하게 여기는 자가 없자, 탕 임금은 진실로 이미 염려하기를, “나는 후세 사람들이 나를 구실로 삼을까 걱정이다.” 하였다.

그런데 무왕이 마침내 그 뒤를 따라 그와 같은 일을 행했으니, 천하 사람들이 또 흡족해하며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후세를 위하여 염려됨이 진실로 클 것이다. 그러므로 백이가 무왕을 비난한 것은 그의 거사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리를 밝혔을 따름이며, 무왕이 백이의 봉분을 만들어 주지 않은 것은 그를 잊은 것이 아니라 그의 의리를 밝게 드러냈을 따름이니, 천하와 후세를 염려한 점은 똑같았다.

아, 예의를 갖추어 봉양한들 그의 의리를 후세에 밝히기에는 부족하며, 표창한들 그의 의리를 후세에 밝히기에는 부족하며, 신하로 대하지 않은들 그의 의리를 후세에 밝히기에는 부족하며, 봉분을 만들어 준들 백이를 후대하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영국, 1794, <일본왕국도> 속의 조선해(Corean Sea), 동북아역사재단]

 

 

번역문 출처 : 연암집(신호열 김명호, 2004, 한국고전번역원)